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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민속과 주술

웃는 물소 문딩수리 (Pesugihan Munding Seuri)

beautician 2019. 6. 15. 10:00

문딩수리 재물주술 (Pesugihan Munding Seuri)

 

떵가라 측면에 있는 찌보다스의 구눙거데(Gunung Gede) 지구는 찌안주르(Cianjur)도시를 세우고 귀신부인들을 거느렸던 라덴 아리아 위라나두다타르의 아들 라덴 수리아 끈짜나가 살던 곳이라도 합니다.

 

떵가라 지역에도 오두막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땅이 무덤처럼 봉긋 솟아오른 곳이 있습니다이곳은 사람들이 재물주술의식을 시전하는 성지이지만 보름달이 뜬 날에만 효험을 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 장소로 가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아 이 재물주술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가파른 경사길을 하루 종일 걸어 올라가야 하며 우기엔 길이 미끄러워 낙상사고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하지만 이 모든 역경들조차 그들이 쉽게 부자가 되고자 하는 굳은 의지에 대한 가벼운 시험이라 여겨져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거데산(Gungung Gede)



의식은 해가 지면서부터 시작합니다시전자들은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어 인근 진흙 늪에 몸을 담궈야 하는데 그 전에 슈리의식이 벌어지는 성소(수련장늪에 꽃잎들을 뿌리고 향을 태웁니다그 의식은 새벽이 밝을 때까지 중단없이 계속되며 새벽 햇살이 비친 후에야 시전자들은 늪에서 올라와 풀밭을 이리저리 구르며 풀에 몸을 문질러 진흙을 씻어낼 수 있습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시전자들은 다시 늪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늪 속에서 시전자들은 제물로 바쳐진그러나 실제로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기 아이들의 기형적인 얼굴들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부자가 되고 싶다면 나중에 자기 아이가 안면기형을 타고날 것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즉 자녀의 건강과 미모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죠이때 이들은 그나마 안면기형의 종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데 놀랍게도 그들 대부분이 하필 언청이 얼굴을 선택한다고 합니다이 선택은 아마도 모종의 방법으로 미래의 자녀 얼굴 비주얼이 지원되는 상황에서 여러 모습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일 텐데 굳이 언청이 얼굴을 선택한 것은 그들이 원치 않았던 다른 선택들이 더욱 처참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부자가 되는 게 분명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절박함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해도 그 파국적 결과를 전적으로 자녀들에게 지우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다 너희를 위해서 그랬어그래서 비록 너희들이 언청이라도 그나마 금수저 물고 태어난 건 다 내 덕이야.

 

부모는 자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문딩수리 재물주술(pesugihan Munding Seuri)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의 잔혹함을,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무정함을 웅변적으로 시사합니다한편 순다어의 Munding Seuri ‘웃는 물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건 어쩌면 웃고 있는 듯한 물소의 표정에서 언뜻 언청이의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 아닐까요?

  

이 주술이 요구하는 것은 비단 그 뿐이 아닙니다시전자들은 소도 몇 마리 키워야 하는데 소들은 의식을 치룬 늪 근처에서 얻을 수 있다고 하며 반드시 자기 집에 데려가 키워야 합니다. 만만찮은 값을 치르고 최소 소 한 마리를 사야 한다는 뜻이죠. 꾼쩬은 장사를 할 기회를 얻고 소값은 복채가 되는 셈입니다그외에도 매월 보름달이 뜨면 시전자들은 건초 한 묶음씩을 준비해 침상 밑에 놓아 두어야 하는 등 매번 충족시켜 줘야할 제법 복잡한 조건들이 따라붙습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