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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담보한 맹세 - 숨빠뽀쫑 (Sumpah Pocong) 본문
죽음을 담보한 맹세 - 숨빠뽀쫑 (Sumpah Pocong)
뽀쫑귀신은 주로 무덤근처, 바나나 나무 밑, 또는 수풀이 비교적 많이 우거진 곳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 때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거나 이상한 소리, 범상치 않은 냄새, 주변 개들의 이상행동 같은 그 전조가 항상 먼저 나타나며 심지어 물건들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뽀쫑이 어떤 식으로 출현하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많이 떠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Penampakan Nyata hantu Pocong(뽀쫑귀신 실제 현신장면)이라고 이름 붙여진 동영상입니다. 이 동영상에서는 두 명일 것으로 짐작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깊은 밤 숲 속을 지나는데 2분 45초경 조우하게 되는 뽀쫑의 모습은 사뭇 소름끼칩니다. 물론 비교적 선명하게 뽀쫑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상 역시 합성이기 쉽지만 최소한 인도네시아사람들이 생각하는 뽀쫑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엿볼 수 있는 자료임엔 틀림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BEPw-M6Po&feature=youtu.be
유튜브 뽀쫑 영상
뽀쫑이 잡혔다는 기사나 동영상도 발견할 수 있지만 손가락 만한 크기의 유리병 안 뽀쫑은 미동도 없는 인형이 틀림없어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뽀쫑과 관련해 정말 그 이상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극도로 진지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건 법정이나 회교사원 머스짓(Mesjid)에서 벌어지는 숨빠뽀쫑 (Sumpah Pocong), 즉 ‘뽀쫑의 맹세’라는 의식입니다.
이 뽀쫑의 맹세에 대해서는 한 학자가 기술한 내용을 인용합니다.
(전략)
뽀쫑이란 사람의 시신이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이다. 이불 호청처럼 넓은 흰색 천으로 시신을 둘둘 감싼 후에 머리끝과 발끝 부분의 천을 사탕 모양으로 꽁꽁 동여 맨 모습이 뽀쫑인 것이다. 그러므로 뽀쫑의 맹세란 뽀종의 모습으로 행하는 맹세이다. 이슬람 사원에 가서 뽀쫑의 모습을 한 채 이슬람 종교지도자의 주관 하에 많은 증인들을 불러놓고 “신이시여, 저의 진실은 이러이러합니다, 제 말이 거짓이라면 당신의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것이다. 이슬람 성전인 알꾸란까지 머리맡에 두고 한 맹세이니, 만일 그 맹세가 거짓이라면 그는 신의 노여움을 사 죽음에 이를 것인데, 마침 뽀쫑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바로 땅 속에 묻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뽀쫑의 맹세는 정통 이슬람의 전통에는 없는 것이지만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신자들 간에는 자신이 어떤 혐의를 받게 된 경우 그리고 그 혐의를 부정할 만한 어떠한 물리적 증거도 제시할 수 없는 경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이 맹세를 거행한다. 혹은 분쟁 당사자 쌍방이 누구의 주장이 진실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행하기도 한다. 흔히 주술적 혐의, 부채관계, 그리고 배우자의 부정행위 등이 뽀쫑의 맹세를 통해 해결되는 사안들이다.
예를 들어 주술을 걸어 이웃과 친지를 아프게 했다는 혐의를 받는 사람이 있다 치자. 그에게로 겨눠진 주술 혐의의 근거라고는, 아픈 사람의 꿈속에 그가 나타난 이후 병세가 시작되었다는 것뿐인데, 이런 경우 자신이 주술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단이 없으므로, 위대한 신 앞에 죽음을 불사한 맹세를 함으로써 자신의 결백을 입증한다. 인도네시아를 30여 년간 철권 통치해 온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막내아들 토미 수하르토(Tommy Suharto)조차도 아내와의 가사 분쟁 도중 아내가 재산을 빼돌리고 혼외 관계를 가졌었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아내가 반박하자 둘이서 동시에 뽀쫑의 맹세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었다.
전통 촌락공동체 사회에서 주술적 혐의나 부채관계 그리고 배우자의 부정행위는 자칫 군중재판식의 폭력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행위는 국가법에 호소하기 이전에 이미 촌락공동체의 안위와 도덕성을 실제적으로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으로 간주되기 때문인데, 이런 경우 뽀쫑의 맹세는 그 분쟁해결기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발휘한다. 공동체 모두가 믿고 있는 초월적 권위에 기대어서 죽음을 각오하고 맹세를 한 자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도 없을 뿐더러 만일 그 맹세가 거짓이었더라도 정의로운 신께서 반드시 갚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정의구현 열망을 충족시킴과 동시에 현실적으로 폭력사태를 방지하는 효과까지도 있다. (후략)
(조윤미 덕성여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 신흥지역연구단 공동연구원)
다음은 숨빠뽀쫑의 실제 사례 중 하나입니다.
며칠 전 2014년 9월 6일 언론사JPNN(Jawa Pos National Network)은 숨바뽀쫑 관련사건을 보도했다. 동부 쁘로볼링고 지역 마르세드 (Marsed, 57세)의 장인 부나냔 (Budayan, 70세)은 자신이 병에 걸린 이유가 자신의 사위가 주술을 부렸기 때문이라 고발했으며 마르세드는 자신의 결백을 위해 집 근처의 모스크에 뽀쫑맹세를 하러 갔다. 마르세드는 모스크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장인에게 내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뽀쫑맹세의식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며 현장의 이슬람지도자는 그를 위해 해당 의식을 실시했다고 JPNN은 밝혔다.
(출처 – 한인포스트)
숨빠뽀쫑의 전통은 주로 마두라와 자바지역 무슬림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입니다. 현행 사법제도에서는 죄인을 정죄하기 위해 충분한 증거를 제시해야 하고 이 증거들은 공식서류, 증인의 증언, 사건분석 등 단계를 통해 모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 단계의 증거만으로는 재판관이 판결을 내리기 어려울 경우 이 숨빠뽀쫑이 네 번째 증거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법조문에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냥 시체흉내를 내며 증언하는 것이니 아무렇게나 거짓말을 해도 되겠지 생각할 수 있지만 뽀쫑의 맹세를 대하는 무슬림들의 생각은 사뭇 진지합니다. 뽀쫑의 맹세를 하고서도 거짓을 발설한다면 당일 또는 최장 40일 내에 위증자가 급사하는 식의 액을 맞고 그 자손들도 7대에 걸쳐 저주를 받게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이 뽀쫑의 맹세는 진실을 파헤치는 하나의 도구로서 그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맹세는 인권침해 소지가 있지 않을까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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