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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뚫린 구멍 - 순델볼롱 본문
순델볼롱 - 등에 뚫린 구멍
이번주 주말의 귀신극장은 순델볼롱 편입니다.
전국 에피소드들이 모이고 또 다시 전파되면서 결과적으로 꾼띨아낙처럼 하나의 통일된 관념이 성립된 전국구 귀신이 되고 나면 다시 각각의 개체들이 새삼 조명을 받게 되는데 지역별 간판스타들로는 안쫄 다리의 미녀(Si Manis Jembatan Ancol) 씨티 아리아의 유령이나 카사블랑카 터널의 붉은 옷을 입은 여자귀신이 대표적입니다. 다리가 잘려 자카르타 시내 찝또망운꾸수모 병원에서 오늘도 밤마다 배로 기어다니는 간호사 귀신 수스터르응예솟(Suster Ngesot), 얼굴에 눈, 코, 입이 없는 여인 ‘한뚜 무까라타’(Hantu Muka Rata) 등의 선수들도 등장하고요.
자바 전설에 등장하는 순델볼롱(Sundel Bolong)도 절대 뒤지지 않는 꾼띨아낙의 대표선수입니다. 임신중 겁탈당해 생매장당한 무덤 속에서 아기를 낳는다는 스토리의 전개상 꾼띨아낙과 많이 닮아 있지만 결정적인 차별점은 긴 머리칼로 덮일 듯 말 듯한 등 부분에 등뼈와 내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다는 점입니다.
순델(Sundel)이란 창녀를 뜻하는 자바어, 볼롱(Bolong)은 '구멍'이라는 뜻입니다. ‘몸에 큰 구멍이 난 창녀’라고 번역될 만한 단어의 조합입니다.
까라왕(Karawang)에서 들었던 버젼에서 순델볼롱의 전설은 자바의 한 국왕이 아름다운 후궁을 맞이하면서 시작하는데 그 여인이 덜컥 왕의 후사를 임신하여 정실인 왕비의 불타는 시기심에 기름을 붓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왕비는 용한 두꾼을 불러 후궁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산뗏저주를 겁니다. 출산하던 날 아기가 난산 끝에 산모의 등을 뚫고 나오도록 한 것입니다. 자연적이지 못한 이유로 처참한 죽음을 맞은 후궁은 귀신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등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 그녀의 원혼을 순델볼롱’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물론 왕후입장에서는 그 후궁을 ‘창녀’라 부르고 싶었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참작되므로 이 호칭을 누가 작명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국왕은 밤마다 찾아와 왕궁이 떠나가도록 간드러진 꾼띨아낙의 웃음소리를 웃어대는 그 귀신이 사랑하던 후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때마침 국왕을 찾아온 영험한 울라마는 그 원혼이 급기야 왕국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 예언했지만, 간절히 도움을 구하는 국왕의 요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순델볼롱과 마주친 울라마는 순델볼롱의 정수리에 거다란 나무못을 박아 넣습니다.
그건 훗날 빠꾸 꾼띨아낙(Paku Kuntilanak – 원혼의 대못)이라 불리게 되는 것인데 인도네시아인들은 그렇게 여자원귀의 정수리 어느 일정지점에 대못을 박아 넣으면 귀신이 더 이상 조화를 부릴 수 없도록 능력을 제한하고 원혼을 사람처럼 실체화하여 구속하고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머리에 못이 박힌 순델볼롱은 음산한 원혼의 기운이 가려지며 예전의 그토록 아름답던 후궁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가히 환생이라 할 만한 것이었죠. 비록 시전자의 능력에 묶여 사람들 말을 순순히 따랐지만, 그러나 그녀의 본성은 여전히 꾼띨아낙이었습니다. 그녀의 정수리에 박힌 대못이 그 본성을 짓누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왕으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사랑했던 후궁이 예전 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국왕은 그녀를 다시 맞아들여 총애했고 왕궁과 왕국에는 다시 평화가 돌아왔습니다. 왕후만 빼고서 말입니다. 왕궁의 축제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후궁의 섬뜩한 눈빛에 왕후는 오금이 저리도록 무서웠습니다. 그녀가 예의 두꾼을 호되게 질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두꾼 역시 한 번 죽였던 후궁을 또 다시 얼마든지 죽일 능력이 있다고 증명해 보여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귀신 순델볼롱으로 되돌아간다면 국왕은 더 이상 그녀를 총애할 리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계략과 술법을 발휘한 끝에 두꾼은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후궁의 정수리에서 대못을 뽑아내고 맙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들은 두꾼이나 왕후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원래의 무시무시한 순델볼롱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주저도, 미련도 없이 그녀의 원한을 왕궁에 철저히 쏟아 붓기 시작했고 예전 울라마가 예언했던 것과 같이 그렇게 파국으로 치닫으며 왕국의 운명도 크게 기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능력있는 두꾼들이 꾼띨아낙 머리에 대못을 박아 자기 수하로 부린다는 얘기가 있고 빠꾸 꾼띨아낙이란 제목으로 몇 년 전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순델볼롱은 그 영화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순델볼롱의 얘기는, 물론 이 까라왕에서 들은 전설과는 사뭇 다릅니다.
원혼의 대못
순델볼롱은 등에 구멍이 난 여자귀신이다. 마주 볼 때엔 향기가 풍기지만 등을 돌렸을 때엔 썩은 비릿내가 진동한다. 순델볼롱은 사람이 붐비는 곳에 자주 출몰하고 바람기 있는 남성들을 홀려 성적인 관계를 맺으려 한다. 순델볼롱은 댄서, 또는 창녀로 묘사되며 바람둥이 남자들에 의해 비극적으로 살해된 원혼이다.
민간의 믿음에 따르면 일정한 조건 하에서 정수리 일정 부분에 대못을 박아 이 원혼을 인간이 되도록 할 수 있으며 순델볼롱과 결혼하면 단기간에 부자가 될 수 있다고도 한다.
흥미롭죠? 또 다른 곳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순델볼롱은 머리칼이 길고 흰색 긴 가운을 입은 귀신으로 등에 큰 구멍이 뚫렸는데 비록 긴 머리칼로 일부 가려져 있긴 하지만 몸 안의 내장이 들여다보인다. 순델볼롱은 겁탈당한 끝에 살해당했고 무덤 속에서 아기를 출산한다. 그래서인지 갓난아기들을 납치해 가곤 한다.
그래서 자바지역의 많은 부모들이 갓난아기의 머리맡에 알꾸란이나 야신의 편지를 놓아두곤 하는데 그것은 순델볼롱이나 꾼띨아낙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예방하려는 의도이기도 합니다.
한편 순델볼롱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존심 강한 귀신이어서 등의 구멍을 매우 부끄러워해 자신의 머리칼로 덮어 가리려 무척 애를 쓴다고도 하며 남자가 자신의 유혹을 거절하면 격분하여 그 남자의 고환을 떼어가 버린다고도 합니다. 소름 돋죠? 또한 순델볼롱은 야간에 한적한 곳을 홀로 걸어가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그런 여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성추행범들의 타겟이 되기 쉬운데 순델볼롱의 전승은 남성들에게 공포감을 주어 시골이나 숲길을 부득이 혼자 다녀야 할 여인들을 납치나 겁탈 등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순기능을 하기도 했습니다.
순델볼롱의 얘기는 관련된 많은 영화들 중에서도 1981년 시스워로 가우타마뿌뜨라 감독(Sisworo Gautama Putra)과 2007년 하눙 브라만티요 감독(Hanung Bramntyo)에 의해 제작된 ‘술델볼롱의 전설’(Legenda Sundel Bolong) 두 편이 가장 유명한데 개인적으로는 수잔나(Suzzanna)가 주연한 1981년작을 더 좋아합니다. 수잔나는 당시 종교적, 또는 전통적 사고환경에서 다른 여배우들이 귀신역을 꺼리던 상황에서 수십편의 공포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명실상부 인도네시아의 호러퀸으로서의 8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였는데 그 독특한 분위기의 눈빛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아니, 이분이 손가락욕을....!
순델볼롱을 포함해 인도네시아 꾼띨아낙들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원한을 품습니다. 그녀들을 하나같이 처참하게 겁탈당한 후 살해당했고 순델볼롱은 악의 가득한 산뗏저주를 맞아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최악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그 시대의 여성들이 세상에 복수하는 것은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야만 가능했습니다. 사실 그건 손말명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칠흑같은 밤하늘에 울려 퍼지던 그 옛날 한국도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제 인도네시아와 한국사회는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을까요? 아니면 가로등불 희미한 골목 모퉁이마다, 어두운 아파트 계단참마다, 스산한 지하주차장마다 꾼띨아낙들과 순델볼롱들이 마구 출몰하고 있어도 여전히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일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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