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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민속과 주술

귀신 통해 돈버는 법 – 재물주술: 근드루어 편

beautician 2019. 5. 31. 10:00

귀신 통해 돈버는 법 – 재물주술: 근드루어 편

 

인도네시아 귀신들에겐 까마귀고기가 군침을 돌게 하는 별식인 모양이어서 숲에 사는 귀신마물들을 불러낼 때 가장 많이 사용됩니다.  닭고기를 대량 소비하는 인간들이 대단위 양계장을 운영하는 것처럼 숲속의 귀신들도 같은 이유로 숲에 까마귀를 키운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죠근드루어를 불러내는 것도 까마귀고기를 구워 냄새를 피우는 게 가장 효과적입니다.

 


근드루어를 제대로 불러 내려면 까마귀구이를 굽는 것부터 올바른 규칙과 순서를 지켜야만 합니다우선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사용해야 해요칼날의 날카로움에 따라 갓잡은 까마귀에게서 피가 얼마나 콸콸 쏟아지느냐가 결정됩니다그런 다음 피부가 깨끗해질 때까지 깃털을 말끔히 뽑아냅니다 깨끗히 손질한 후 닭고기 잉꿍(ingkung)을 만드는 식으로 양 다리를 묶은 후 숯불 위에 올려 굽는 겁니다. (그림 참조의식장소로는 냄새가 잘 퍼져나갈 탁 트인 무덤가가 적합합니다.

 

이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근드루어에게 소환자의 의지를 알리기 위해 주문을 외는 것입니다복권도박에 나올 당첨번호를 알아내려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근드루어를 불러냅니다최소한의 용기와 비용으로 한 몫 챙겨보려고 귀신을 불러내는 것은 뻐수기한즉 재물주술의 일종입니다. 근드루어가 주문을 듣고 까마귀구이 냄새를 따라 의식장소에 도달한 것이 느껴지면 시전자는 재빨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외쳐야 합니다. “복권 당첨번호를 알려줘!”라고요. 근드루어가 미끼를 먹어버리거나 낚아채가기 전에 말이죠근드루어가 음식을 먹고서 배가 부르면 소환자의 요구를 듣기도 전에 숲으로 돌아가 버릴지 모릅니다.

 

여기에 틈새시장이 생깁니다. 근드루어를 부르려면 우선 덫을 놓아 까마귀를 잡고 모든 장비들을 갖춰 규정된 요리법에 따라 조리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데 굽기만 하면 될 상태로 까마귀고기구이를 미리 손질해 파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보이지 않는 뚜율도 불티나게 팔리는 무속시장에서 이런 까마귀고기는 실체도 있고 판매자의 노력도 들어간 매우 신빙성 있는 상품입니다. 수요가 공급을 낳는 법이고 까마귀고기로 로또당첨번호를 알 수 있다는데 사람들이 배팅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광고가 나돌기도 합니다.

 

빚도 갚고 돈도 불러오는 까마귀구이 판매

 

까마귀는 귀신들이 매우 좋아하는 새다까마귀구이를 위해 얼마든 지불할 용의가 있는 귀신들은 수도없이 많다.

 

거데도사와 그가 직접 운영하는 미스터리우스9999에서는 그동안 몇 번 씩이나 까마귀고기 꼬치구이를 팔려고 계획했었다이 의식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뿐 아니라 초자연적 존재들에게 까마귀구이를 수월하고 안전하게 팔기 위해 신의 이름이나 기도문성서의 문구를 입에 올려서는 안된다.

 

모든 건 개인의 수완에 달린 것이라 그 성공을 무조건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다행히도 몇몇 고객들은 이 방법을 통해 그간의 진 빚들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눈 앞에 현신하는 초자연적 존재를 마주 대하는 일이므로 오직 용기와 진심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그런 존재들이 까마귀구이를 사려고 현신했을 때 공포에 질려 의식 도중 도망가거나 귀신이 무서워 다시는 까마귀구이를 팔지 않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까마귀구이를 파는 장소는 개천가 같이 초자연적 존재들이 많이 사는 음산한 곳이다그러니 이 의식에 할 용의가 정말 있다면 그런 겁장이같은 생각은 아예 하지 않기 바란다.

 

인도가격 Rp. 15.000.000,- ( 120만원)

 


 (출처 - 거데도사의 홈페이지)

 

까마귀구이 몇 마리에 120만원이라면 지금 당장 책상을 박차고 까마귀 잡으러 나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고 근드루어를 아무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는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으로 두꾼(무당) 말고 꾼쩬이란 사람들이 있습니다. 꾼쩬은 미술관 큐레이터와 비슷합니다. 스스로 그림을 그리진 않지만 소장 미술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죠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 사감인 필치처럼 스스로는 마법을 부리지 못하지만 호그와트 구석구석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꾼쪤은 자신의 정보로 스스로 어떤 이득도 취하지 못하지만 특정 목적을 가진 방문자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꾼쩬을 주루꾼찌(Juru Kunci),  ‘열쇠를 가진 자라고도 불립니다.

 

꾼쪤에게서 근드루어와 만날 방법과 장소를 받아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직접 계약을 맺게 되면 그 효과를 확실히 하기 위해 공물도 제대로 바쳐야 합니다. 그 공물은 소, 자바흑닭 아얌찌마니 또는 누군가의 생명 등입니다. 미리 공물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면 대개의 경우 자기 영혼을 제물로 계약이 이루어집니다하지만 영혼을 내놓는 죽을 시점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계약이행의 보증으로 평생 지킬 약속을 정합니다예를 들면 평생 팥을 먹지 않는다거나왼손 넷째손가락 손톱을 깎지 않는다거나세수는 할지언정 목욕은 절대 하지 않는다거나목요일 밤에는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거나평생 산막에서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특정 징크스가 정해지는 것이죠그 징크스를 지키지 않으면 계약은 즉시 파기되고 예고도 없이 죽음이 급히 찾아옵니다.

 


계약을 성공적으로 맺은 사람은 이제 만사형통하기 시작합니다그런데 매일 밤 그는 노랑 원숭이가 되어 근드루어와 계약을 맺었던 숲속을 쏘다니는 꿈을 꿉니다노랑원숭이가 된 그 꿈은 무척이나 상쾌하고 때로는 꿈이 아니라 현실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가끔 아침에 일어나 보면 침실에 온통 자기 흙발자국들이 찍혀 있고 자기가 자는 도중 어딘가로 뛰어나가 캐온 것 같은 금광석 돌덩어리들이 침대 옆에 수북히 쌓여 있거나 가게 매상이 몇 배씩 치솟거나 로또가 터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많은 해가 지난 후 결국 그에게도 죽음이 찾아옵니다도시의 고래등 같은 자택에서 마지막 치료를 받던 그는 근드루어를 만났던 숲으로 데려다 달라고 자식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죠결국 자식들 부축을 받아 머나먼 그 숲에 도착한 그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몸을 놀랍도록 가볍게 움직이며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점점 작아지며 변해가더니 결국은 노랑원숭이 형상이 되어 잠시 자식들을 돌아보다가 숲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그런 후 자식들이 집에 돌아가 보면 함께 숲으로 모셔갔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침대 위에 숨진 채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그들이 숲으로 모시고 갔던 것은 아버지의 영이었던 것입니다아버지의 영이 변한 노랑원숭이는 그렇게 그 숲에서 자주 눈에 띄다가 40일 후엔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그 옛날 계약했던 것과 같이 아버지의 영혼은 근드루어의 완전한 속박 속에 들어가는 것이죠.

 



 

 아직도 대체로 정체불명인 근드루어에겐 이제까지 설명한 것 이상의 뭔가가 있어 보입니다무시무시한 외관에 비해 비교적 민망스러운 평판을 가진 근드루어는하지만 명실상부인도네시아의 대표귀신 중 한 명으로 그 위상은 꾼띨아낙이나 뽀쫑뚜율 등에게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실제로 현지 애니메이션 ‘더더밋’(The Demits)에서는 순델볼롱뽀종과 함께 쓰리톱을 이루면서도 전반적으로 조금 더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근드루어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귀신 모두, 각각 방식은 다르지만 재물주술의 매개체가 되곤 합니다. 나중에 재물주술을 본격적으로 다룰 때 찬찬히 설명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