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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모르는 인도네시아 대표귀신 – 근드루어 (Genderuwo) 본문
우리가 잘 모르는 인도네시아 대표귀신 – 근드루어 (Genderuwo)
인도네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중량급 메이저 귀신 근드루어(Genderuwo)가 우리 교민들에겐 왜 여전히 생소하기만 할까요? 아무래도 외모가 좀 빠지는 걸까요?
아기를 잡아먹는다고도 소문난 이 놈은 험악한 얼굴과 거대한 덩치, 날카로운 손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서 파렴치하게 고작 아기한테나 덤벼들다니…! 이슬람식 관점의 악령인 진(dzinn)의 일종이라 여겨지는 근드루어는 대체로 인간과 비슷한 실루엣을 하고 있지만 고릴라나 유인원에 더욱 가까운 외관입니다. 사나운 표정과 거대한 몸집, 다부진 체격, 울긋불긋한 검은 피부엔 거칠고 긴 털이 빽빽이 나 있습니다. 거기에 위아래로 어긋난 어금니도 길쭉이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 그림은 근드루어의 음산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가장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드루어가 항상 저런 모습을 하는 건 아닙니다. 명색이 귀신인 만큼 젖은 바위, 오래된 폐건물, 습하고 인적 드문 깊고 어두운 숲 속 거대한 나무 같은 곳에 은밀히 깃들어 있죠. 전승에 따르면 워노기리 60킬로미터 동쪽 슬로고히모면 다날라야 자연보전지구 티크나무 숲과 족자에서 60킬로미터 지점인 꿀론쁘로고, 르마뿌띠 뿌르워사리 기리물요 등 지역에 근드루어가 자주 출몰한다고 합니다.
근드루어는 그 덩치나 외견상 북미 사스콰치(sasquatch)나 히말라야 설인 예티(Yeti) 등에 견줄만 하지만 평소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귀신이라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물론 공격받거나 사는 곳이 훼손당해 격분하면 맨 눈으로도 볼 수 있도록 현신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한편 사는 곳과 외관에서 웨웨곰벨과 유사해 근드루어는 동종의 남자 귀신, 웨웨곰벨은 여자 귀신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근드루어는 자살한 사람, 온전히 매장되지 못한 사람, 급사하여 이승의 일을 체념하지 못한 이들의 혼에서 생겨난 것이라 합니다. 생전 부정부패를 일삼거나 남의 재산을 가로챈 악인들도 죽어 근드루어가 되는데 살아있을 때 그토록 난장판을 부린 것처럼 죽어서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런 근드루어는 놀랍게도 인간과 소통 가능한 존재여서 사람이 불러낼 수도 있고 근드루어가 스스로 사람에게 접근해 오기도 합니다. 많은 전설에서 장난기 많은 근드루어가 때때로 털이 뽀송뽀송한 작은 생물로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거대해져 사람을 놀래키기도 하고 한밤중에 남의 집에 돌맹이를 던져대는 장난꾸러기로 묘사됩니다. 사람 모습으로 현신해 여자들을 유혹하거나 아이들과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죠. 문제는 그쯤에서 끝나지 않고 여인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거나 자는 여자를 더듬기도 하며 입고 있던 속옷을 감쪽같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 입혀 놓기도 합니다. 나름 놀라운 재주지만 사람이라면 자칫 콩밥 먹기 쉬운 버릇입니다.
무시무시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근드루어가 명실공히 인도네시아 대표 ‘색귀’로서의 명성을 얻은 이유는 소홀히 취급받는 부인, 과부들을 즐겨 유혹해 실제 성관계까지 맺기 때문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근드루어는 잠시 집을 비운 남편이나 멀리 떠난 애인, 심지어 세상을 떠난 그리운 낭군의 모습으로 다가오므로 여인은 상대방이 근드루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열어줍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무죄라는 겁니다. 더욱이 근드루어는 절륜의 방중술을 발휘해 여인들이 평생 겪어보지 못한 최고의 황홀경에 빠뜨린다고 하죠.
근드루어는 인간이 상상도 못할 엄청난 색욕과 리비도를 가져 예쁜 여인을 보면 색정을 참지 못합니다. 어떤 전승에서는 근드루어가 여인의 자궁속에 들어가 살며 숙주를 색정광으로 만든다고도 합니다. 그 여인은 미친듯이 남자와 사랑을 나누지만 불타는 색욕이 좀처럼 충족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또 다른 남자를 찾아 욕정을 불태운다는 것이죠. 그건 여인이 자궁 속 근드루어의 지배를 받기 때문인데 근드루어는 그 속에서 여인이 관계 중 느끼는 황홀경을 함께 즐긴다고 합니다. 코를 찌르는 듯한 역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여인들을 성공적으로 유혹하는 근드루어의 인간승리, 아니, 귀신승리에 찬사 박수 보냅…. 이러다 잡혀가겠다.
자 이제, 근드루어가 나쁜 놈인 건 알겠는데 이 놈을 무서워해야 하는 포인트는 도대체 뭘까요?
근드루어는 여성을 유혹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여성을 임신시켜 아기를 낳기까지 한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세간에 회자되는 근드루어에 의한 임신은 5-6개월차에 들어서 만삭이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태중의 아이가 없어져 버리는 해괴한 사건으로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태아나 아기들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꾸양, 빨라식, 꾼띨아낙처럼 근드루어도 유산과 낙태의 책임을 곧잘 뒤집어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정상을 참작해서인지 근드루어 중엔 더러 착한 놈도 있다는 에피소드들이 적잖게 눈에 띕니다. 인간이 호의를 보이느냐 여부에 따라 근드루어의 반응도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자바의 전승에 따르면 성품이 원만한 근드루어는 긴 흰옷 입은 엄숙한 노인의 모습으로 현신하여 신성한 모스크 사원 같은 곳을 수호하고 집과 마을을 악한들로부터 지켜준다고도 하며 가난한 무슬림 아이들의 할례를 돕는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할례를 돕는다’는 말은 근드루어가 아이의 양피를 뜯어먹고 갔다는 뜻이기 쉽습니다.
자바 노인들이 근드루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1. 근드루어는 인간을 납치한다.
해질녘에 화를 내는 사람을 납치해 대나무숲 꼭대기로 끌고 간다.
2. 근드루어는 행인에게 곧잘 오줌을 싸갈긴다.
깊은 밤 커다란 나무 밑을 지날 때 지린내 나는 액체가 안개처럼 흩어져 내리는 걸 맞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나무 위 근드루어가 행인들에게 싸갈긴 오줌이다.
3. 근드루어는 남의 아내를 곧잘 건드린다.
나쁜 놈.
4. 근드루어는 찹쌀을 좋아한다.
근드루어에게 납치당한 아이를 찾아 나설 때 ‘애기 엄마가 집에서 찹쌀로 밥을 짓고 있어요’라고 소리지른다. 아이를 잡고 있던 근드루어가 그 찹쌀밥을 빨리 얻어먹기 위해 납치한 애를 놔두고 달려 가버리면 마침내 아이가 사람들 눈에 띄게 된다.
5. 근드루어는 까마귀고기를 좋아한다.
복권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행운의 번호를 받기 위해 근드루어가 산다고 믿어지는 장소나 가까운 묘지에서 까마귀고기를 굽는다. 까마귀고기를 구을 때 나는 구수한 냄새를 맡고 근드루어가 찾아오는데 고기를 얻어먹는 대가로 숫자 맞추기 도박의 당첨번호를 알려주기도 한다.
6. 근드루어는 즈낭(자바 특산의 캬라멜과자)을 좋아한다.
밤늦게 까마귀고기를 굽다보면 근드루어가 나타나 즈낭과자를 주면서 까마귀고기 구이와 바꾸자고 요구하곤 한다. 만약 OK 하면 근드루어는 까마귀고기 댓가로 즈낭과자를 한아름 안겨주는데 이 즈낭과자를 먹은 사람은 다음날 반드시 복통과 구토에 시달리게 된다. 근드루어가 준 것은 사실 즈낭과자가 아니라 흔히 ‘테통’이라 부르는 소똥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나쁜 놈.
7. 근드루어는 말벌꿀을 좋아한다.
숲속에서 만나게 되는 ‘따원궁’이라 부르는 말벌들을 혹시 그 숲에서 힘깨나 쓰는 근드루어가 키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함부로 따원궁 말벌꿀을 손대면 그날 밤에 화가 난 근드루어가 찾아와 난장판을 벌일 수도 있다.
8. 근드루어는 거대한 나무에 산다.
반얀나무, 잭푸르트(낭까)나무, 사만나무, 티크나무 같은 거대한 나무둥치에서 함부로 소변을 봐서는 안된다. 그 나무는 근드루어가 사는 곳일 수도 있는데 화가 난 근드루어가 조화를 부려 자칫 급성 방광염이나 요도염이 발병해 영영 오줌을 싸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9. 근드루어는 취하길 즐긴다.
예전 농부들은 가둥(gadung - 독이 있는 괴경-덩이줄기의 일종)을 태우거나 벌판에 세운 오두막 잠자리 밑에 놔두곤 했다. 그러면 농부를 잡아가려고 온 근드루어가 가둥 태우는 구수한 냄새를 맡고 거기에 정신이 팔려 납치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가둥을 먹고 취해 뻗어버리기도 한다.
10. 근드루어는 자는 사람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다.
어린 아이가 발을 씻지 않은 채 머스짓이나 기도실에서 잠이 들면 근드루어가 아이를 우물가로 옮겨 놓는다. 머스짓에서 자기 전에 잘 씻으라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출처 - http://juragancipir.com/10-kebiasaan-hantu-genderuwo-yang-perlu-kamu-tahu/)
근드루어의 특징을 살피다 보면 그 하는 짓이 귀신보다는 우리나라 도깨비들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됩니다. 남의 아내를 건드리는 나쁜 버릇은 처용가를 떠올리게 하고요.
이제 근드루어가 어떤 놈인지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면 색귀에 심한 장난을 많이 치는 놈이지만 외관에서 풍기는 카리즈마와 달리 아주 위험한 놈 같지는 않게 느껴집니다. 아무튼 꾼띨아낙, 뽀쫑 등과 함께 명실상부 인도네시아 전국구 귀신 반열의 대표격인 놈이니 일단 근드루어라는 이름을 기억해 둡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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