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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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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 블루스

밑바닥 블루스 (3)

beautician 2021. 12. 25. 11:27

ep3.  경찰들이 더 문제

 

 

 

메이가 소매치기랑 경찰서에 가게 된 것은 메이의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상황에 떠밀린 것이죠.

수퍼맨 아저씨의 선빵으로 시작된 사람들의 린치로 소매치기는 반 죽음될 정도로 뭇매를 맞았고 이윽고 현장에 도착한 경찰들에게 수퍼맨 아저씨가 증인을 자처하면서 메이가 피해자라며 등을 떠밀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우리 지구대 정도인 폴섹(POLSEK)에 가게 됩니다. 스넨에서 쯤빠까마스(Cempaka Mas)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있는 바로 그 작은 경찰서 말입니다.

 

하지만 난 직원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경찰과 엮이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도 타의 모범이 되고 만인이 존경해 마지 않는 청렴결백한 경찰관이 어딘가 분명 있겠지만 내가 겪은 경찰들 중엔 돈을 뜯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내 오랜 파트너인 릴리의 형부 수랏만(Suratman)은 십수년 전에도 경찰군 상사였으니 우리 군대로 치면 지금은 정년을 앞둔 원사쯤 되었을 겁니다. 그는자신을 부통령 보디가드라고 소개했지만 아마도 부통령 일행 차량의 에스코트를 몇 번 한 것 정도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통령, 부통령을 경호하는 빠스빰쁘레스(Paspampres)라는 부대가 있는데 그건 경찰이 아니라 육군소속이었거든요.

 

한편 그는 스스로 매우 청렴한 경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어제 밤 불심검문을 하다가 STNK를 제시하지 못하는 차량을 하나 잡았어요. , 알다시피 도난차량들이 STNK 없이 많이 돌아 다니죠?” STNK는 차량등록증입니다. 그래서 운전자를 잡아 넣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남들 같으면 한 몫 챙길 상황이었죠. 하지만 시민들 사정도 봐 줘야죠. 그래서 10만 루피아(약 8천 원)만 받고 보내 줬다가 왜 갑자기 청렴을 떠나며 동료들에게 핀잔을 들었어요.

그는 진심이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오십보백보였지만 그에게는 그게 청렴의 증거였던 것입니다.

 

내 현금카드를 분실해 통장 잔고를 몽땅 털린 일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신규거래를 할 따마다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야 하지만 당시엔 한번만 비밀번호를 넣으면 여러 거래를 연속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ATM기계에서 카드를 회수하는 걸 잊고 나오면 큰 낭패를 보게 되는 환경이었어요. 지금은 무엇때문인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난 아무튼 너무 서두르다가 현금카드를 ATM 기계에서 빼지 않은 채 부츠를 나왔는데  사실은 ATM 화면에 거래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 아직 떠있는 상태였어요. 한참 후에야 지갑에 현금카드가 없다는 것을 발견해 현금카드를 기계에 넣어둔 채 나온 걸 깨닫고 화들짝 놀라 급히 카드 정지신청을 했지만 이미 잔고가 거덜난 상태였습니다. 은행은 그게 온전히 내 과실이라는 입장이었으므로 어떠한 보상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되찿을 수도 있을 거란 실낱 같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범인은 분명 내 뒤에 ATM 부츠에 들어온 사람일 테니 CCTV를 확인하면 인상착의를 확인할 수 있을 터였고 거래 명세표에 시간이 찍혀 있었으니 정확한 범행시간을 유추할 수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범인이 내 잔고를 반자르마신(Banjarmasin) 지점의 누군가의 구좌로 몽땅 송금했음을 은행이 확인해 주었으니 일단 돈받은 사람도 누구인지 이미 확인된 상태였습니다. 범인을 거의 잡은 것이나 다름 없었던 거죠.

 

그러나 경찰서에서는 내 여권과 KITAS를 압수하듯 가져가 돌려주지 않으면서 이런 것들을 물었습니다. 한달 월급 얼마 받으쇼?” 당신 현지처 있죠? 조사하면 다 나와!” 당신 사는 집은 산 거요? 가격이 얼마요?” 여기 비자 아무리 봐도 위조된 것 같은데 위조가 아니란 걸 증명해 보시오!" 이 친구들이 날 털고 있었던 겁니다. 그날 난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후에야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돈을 잃어버린 것보다 그날 경찰서에서 당한 일들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일주일쯤 후 날 취조한 형사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고 난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범인이 있는 곳을 알았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그의 말이 계속되엇습니다. "반자르마신에으로 잡으려 가야 하는데 형사들이 다섯 명쯤 가서 사흘을 묵어야 하니 경비가 대략 2천만 루피아(약 170만 원) 정도 들어요. 지금 송금해 줄 수 있어요?” 돈을 주면 범인을 잡아주겠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메이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뭔가 파는 것엔 일가견이 있어 이런저런 장사를 해 조금씩 모은 돈에 은행 대출까지 얹어 데뽁에 핸드폰 가게를 냈는데 가게를 세 개 더 낼 정도로 번창했습니다.그러다가 옆집 핸드폰 가게를 하던 바딱 남자를 사귀었는데 그 결말은 미혼모가 되어 버려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파국을 맞은 사름들이 늘 그렇듯 그 과정에서 번민하며 정신이 없던 사이, 3년간 동업했던 친구가 세 군데 가게 재고를 몽땅 가지고 달아나 버렸어요. 그 일을 경찰에 신고한  이후 수시로 가게에 찾아오는 형사들에게 사준 밥값이며 핸드폰 요금을 공짜로 충전해 준 것만 천만 루피아(약 80만 원)를 족히 넘었답니다. 그러다가 동부자바 어딘가로 도망간 그 친구를 경찰이 체포해 오겠다면 터무니없는 비용을 요구해 왔고 그때 이미 파산에 임박해 있던 메이는 경찰이 요구하는 금액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메이는 경찰과 엮이지 말라는 내 말을 100% 이해했을 것입니다.

 

내가 또 한 번 경찰에게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내 사무실 앞 주차장에 세워 놓았던 차량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있엇어요. 당시 난  막 몇 년 전에 겪은 파산의 구덩이에서 벗어나던 시기였는데 타격이 여간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현금카드 사건의 기억이 아직 생생해 경찰서에 가고 싶지 않아 도난신고를 메이에게 시켰습니다. 그런데 끌라빠가딩 폴섹의 경관이 차량 등록증의 이름을 보고 내가 외국인임을 알고는 내가 직접 신고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답니다. 내 차를 도난당한 걸 메이가 신고하는 게 불법이라며(?) 나를 데려오지 않으면 메이를 체포하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답니다. 그만큼 메이가 어수룩해 보였던 거죠.

 

결국 내가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또 다시 월급이 얼마냐, 현지처가 있느냐를 물으며 나한테 얼마나 돈을 뜯을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 약점이나 빌미는 없는지 파악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조서를 꾸미며 진을 뺐는데 이번엔 조서작성 서비스에 대한 수고비를 요구했습니다. 차를 잃어 버린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나 속이 쓰렸는데 경찰은 그 상처에 서슴없이 소금을 뿌려대며 돈을 뜯을 생각 뿐이었어요. 애당초 경찰에 신고해서 차를 되찮을 수있으리란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 조서를 꾸미는 과정에서 그들에 대한 환멸이 더욱 커지고 온갖 정도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2주쯤 지나 그 폴섹의 경관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경과를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이 왔습니다.아직 진전이 없어요. 혹시 그쪽에서 먼저 차를 찾게 되면 연락 주세요." 내가 차를 찾을 수 없어서 경찰에 신고했던 것데 말이죠. 나는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취조실

그런데 그 경찰서에 이번엔 메이가 가게 된 겁니다. 피해자로서요. 

수퍼맨 아저씨는 입에 거품을 물며 열띤 증언을 했고 온통 피투성이가 된 소매치기는 경찰서에서도 오가는 경관들에게 불쌍할 정도로 더 얻어 맞았습니다. 메이는 험악한 경찰서 분위기에 겁먹어 주눅이 들었고 담당 경관은 메이가 겁먹었음을 알아 차렸습니다. 매우 좋지 않은 징조였죠. 이제 그들은 더 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스넨 환승역에서 아슬아슬하게 소매치기이 위기를 넘긴 메이가 경찰서에서 다시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증인으로 왔던 수퍼맨 아저씨가 증언을 마치고는 메이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쿨하게 귀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경찰서엔 덩그러니 혼자 남은 메이는 군침을 흘리는 하이에나 무리 사이에 추락한 작은 새처럼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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