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밑바닥 블루스

밑바닥 블루스 (1)

beautician 2021. 12. 23. 11:07

 

ep1. 남자들이 문제

 

  

2011년의 일입니다. 아직도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죠.

한해가 순식간에 내달려 어느새 12월이 되자 월초부터 송년회들이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자카르타 시내에서 열리는 한 동문 송년회에 참석하기 위해 그 시간을 대려고 사무실에서 포장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나는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 솔직히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주인공이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내 인생인데 말이죠.

 

한국에서 날아온 제품에 플라스틱을 입히고 다시 스티커를 붙이는 일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원래 400개쯤 작업하는 데 직원 3-4명이 달라 붙어도 오전 내내 일해야 하는 적잖은 시간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그걸 내가 땀 뻘뻘 흘리며 혼자 달라 붙어 끙끙대며 일하는 건 순전히 내 잘못입니다. 직원들을 몽땅 다 짤라 버렸기 때문이죠.

 

다 짤랐다는 건 좀 어패가 있습니다. 사실 몇 놈은 짤리기 전에 뼁소니를 쳤어요. 수금한 내용도 맞지 않고 재고도 맞지 않아 조용히 조사하던 중에 한 직원의 비리를 포착했지만 그게 사실은 영업팀 직원 전원이 공모하여 1년 이상 조직적으로 해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다 파악하기도 전에 주범 두 명이 도주해 버렸고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나머지 공모자들을 해고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영업팀과 매일 어울렸으므로 그 사건에 절대 관련이 없을 수 없었던, 하지만 그 후에도 천연덕스럽게 능청을 떨던 운전사를 짜른 것이 2011년 중반이었죠. 반드시 널 짜르리라 맘 먹었던 일이었으므로 난 그날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직원을 몽땅 짜르니 더 이상 비리가 벌어질 여지가 없어 속은 시원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번엔 회사가 돌아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그 사이 틈틈이 구인광고도 내고 소개도 받아 올해 받은 신입사원들만 10여명이 넘었죠. 물론 걔들이 남아 있었다면 제품 400개를 나 혼자 포장하고 있을 리 없지요.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72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특히 여직원들을 예쁜 제복을 입고서 사무실 안에서 화초처럼 우아하게 앉아 일하길 바라는 모양이었지만 하루 종일 자카르타 천지의 미용실들을 찾아 돌아 다녀야 하는 우리 일이 그 친구들에게는 3D 직종과 진배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남자직원 두 명은 정말 장렬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랜달(Randal)이라는 마나도 출신은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운전능력을 발휘했습니다. 2011년 당시에도 자동차로는 하루에 4-5군데를 방문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오토바이로도 7-8군데 정도를 다니면 이미 초인적 수준이었어요. 길하지만 랜달은  15군데 정도를 오토바이로 다녔습니다. 이미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선 거였죠. 어떻게 그리 할 수 있는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안 모곳(Daan Mogot)에서 고속으로 달리던 오토바이가 뒤집히면서 함께 타고 있던 우리 필드캡틴 메이가 버스웨이에 내동댕이 쳐져 버스바퀴에 깔릴 뻔하는 아찔한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랜달이 사실은 마약에 취한 채로 오토바이를 운전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필드 캡틴 메이가 동행하지 않을 때면 하루에 두 번쯤 센티옹(Sentiong)의 집까지 일부로 돌아가 약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는 겁니다. 그러니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미친 듯이 오토바이를 달렸던 것이죠.

 

그 사실을 알고서 더 이상 랜달을 회사에 둘 수 없었습니다. 사고가 우려되는 것뿐 아니라 그의 마약문제로 우리 회사까지 불필요하게 경찰에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일지 몰라도 당시 인도네시아의 경찰은 민중이 지고가야 할 십자가 같은 것이었는데 나무가 썩을 대로 썩어 악취가 심하고 만지기만 해도 병이 옮을 것 같은, 그런 비슷한 존재이거든요.

 

랜달을 그렇게 내보내니 이제 헤르디(Herdi)만 남았습니다. 헤르디는 우리 거래선에 있던 부인 레레(Rere)가 부탁을 해서 채용한 친구인데 첫 눈에도 겉멋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레레는 출산을 몇 주 앞둔 상태였고 또 라마단 금식월도 다가 오고 있어 돈이 필요한 시기였으므로 난 어떻게든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헤르디가 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레레는 아기를 낳고 출산휴가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문제는 늘 출산휴가때 벌어집니다. 2010년 우리 영업팀 직원 전원이 공모하여 돈과 물건을 빼돌리기 시작한 것도 필드캡틴 메이가 임신하여 거동이 불편해지면서부터였고 막판에 출산휴가로 회사를 비운 3개월 동안 그들의 비리는 절정에 달했었죠.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던 출산휴가도 어느덧 끝나고 메이가 복귀하자 주모자들은 눈썹을 휘날리며 앞다퉈 도주했던 것입니다. 조금 경우는 틀리지만 레레의 출산휴가 기간도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Selingkuhan

 

헤르디는 우리 거래선에게 팁을 챙긴 일이 들통나 나와 메이에게 크게 혼난 일이 있었지만 그건 버릇인지 아니면 경제문제가 절박해서인지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일하기 싫어 화장실에서 졸도한 척 연극까지 해서 이거 좀 미친 놈이다 싶었죠. 하지만 레레가 출산한 후 2주가 멀다 하고 화장실에서 넘어지고 친정에 갔다 넘어져 다쳤다고 해서 그 와중에 남편을 내 보내긴 좀 곤란했습니다. 그러다가 르바란 연휴가 다가왔고 근무일이 턱없이 모자랐지만 THR 보너스까지 넉넉히 챙겨 주었죠

 

저희 남편이 메이랑 같이 지방 출장 간 거 맞나요?”

 

레레가 그렇게 내게 물어 온 것은 르바란 휴무가 끝나고 업무 개시한 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는데 난 메이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헤르디는 업무개시 첫 날 메이에게 SMS를 보내와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잘란 라야 보고르 (jl. Raya Bogor)의 주소 몇 번지를 묘지 주소라며 알려 왔었기 때문입니다. 묘지에도 주소가 있다는 것이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전화를 넘겨 받은 메이가 레레와 장시간 통화를 하더니 내게 보고한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에게 모친상을 알리고 휴가를 얻은 헤르디는, 그러나 레레에게는 메이와 함께 지방 세미나에 참석하러 간다며 집을 떠났다는 겁니다. 아무리 일손이 딸려도 똥오줌 못가리는 신입을 지방출장 보낼 정도로 우리 그렇게 허접한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떠난 남편이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닿지 않자 남편과 메이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한 레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회사와 아내를 따돌린 헤르디는 다른 여자와 놀아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레레가 남편의 취직을 위해 내게 어렵게 부탁을 해오던 그 시기에 헤르디는 임신한 아내 대신에 다른 애인을 얻어 밖으로 돌았던 것이고 레레가 넘어졌다며 조퇴하고 결근했던 것도 모두 거짓말로, 레레는 출산 후 한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 헤르디는 매번 그런 핑계를 대고 애인 품으로 달려 갔던 것입니다. 심지어 출산 축하금, 르바란 상여금도 레레에게는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묘지 주소라고 알려준 그 주소는 레레 부모님이 사는 집 주소였어요. 헤르디는 돼먹지 못한 인간의 표본 같은 녀석이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마침 우리도 헤르디를 벼르고 있던 차였거든요. 그가 르바란 휴무 직전에 방문했던 거래선들에게서 이런 저런 말도 안되는 불평불만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가 제품들을 배달하면서 팁을 강요했다는 것 말고도 헤르디는 거래선 직원들에게 돈을 빌린 곳도 있었고 신제품으로 바꿔 주겠다고 하며 쓰던 제품을 수거해 간 곳도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가 수거해 간 제품들은 어딘가에 중고 헐값으로 팔아 넘겼겠죠.

 

더욱 심각한 문제는 헤르디가 내 방을 뒤졌다는 사실이었어요. 돈은 사무실에 두지 않고 제품은 창고에 있으니 없어진 것은 몇 가지 부품들뿐이었지만 2010년 영업팀 전체가 공모하여 비리를 저지를 당시에도 그들은 감히 내 방까지 뒤지진 않았으므로 헤르디의 행동은 괘씸하기 짝이 없었고 그래서 다음 날도 그가 출근하지 않으면 레레를 통해 책임을 물으려 맘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헤르디는 자기 아내에게조차 그런 짓을 했고 며칠 후엔 심지어 아내의 오토바이 소유증서인 BPKB를 몰래 빼내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 갚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편이 저지른 모든 사고를 책임져야 할 입장이 된 레레에게 화가 나기는커녕 더 없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헤르디는 결국 회사에도, 자기 아들을 막 낳아준 레레에게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핸드폰 번호도 바꿔서 연락이 닿지 않았죠. 하지만 세상은 좁은 것이어서 일주일도 지나지 그가 어디 숨어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참 민망스럽게도 그는 한 게이의 루마 수순(Rumah Susun), 말하자면 슬램에 가까운 서민임대아파트 같은 곳에 얹혀 살고 있었어요. 현지에서 흔히 쓰는 속어로 게이 중 남성 역할을 하는 사람을 레콩(Lekong), 여성역할 햐는 사람을 뻬웡(Pewong)이라 부르는데 헤르디는 거기서 뻬웡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레레는 내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고 그 결과 나는 또 다시 메이를 제외한 전직원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고친 후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는 남자를 가까이서 본 것은 헤르디가 처음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사실 별로 놀랍지도 않았죠. 메이가 출산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도주한 직원 두 명 중 무하마드(Muhamad)라는 친구 역시 아내가 아이를 낳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도주한 후 우리 거래선 수금을 가로채려고 보고르에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었던 날 그의 아내는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지를 받습니다. 번호는 남편 것이었고요.

 

난 이 핸드폰을 주은 사람입니다. 이 핸드폰의 주인은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보고르 XXX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이 사람의 가족이 맞다면 병원에서 시신을 찾아 가세요.

 

무하마드의 부인은 자지러지며 나에게 도움을 청해 왔고 우리가 확인한 바 그런 병원이 실제로 있었지만 그날 교통사고로 들어온 시신은 없는 것을 확인했어요. 무하마드는 부인과 아들까지 속여 넘기기 위해 스스로 그런 주작 메시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원래 수카부미 (Sukabumi) 출신인 그가 그 후 버카시(Bekasi) 지역에서 종종 목격되었다는 얘기를 몇몇 거래선 직원들로부터 들었으므로 이젠 그쪽 동네에서 사기치고 다니는 모양이라 생각했는데 그 얘기를 전해 들은 그의 부인은 2년 넘게 함께 살았던 남편이 그렇게까지 자기를 속이려 했다는 사실에 또 자지러지며 넘어갔었죠.

 

그래서 난 직원, 운전사도 없는 나홀로 사장이 되었고 이제 유일한 직원이 된 메이는 당분간 부하 한 명 없는 필드캡틴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사원 한 명 없이 사장, 전무만 있는 회사도 수두룩한데 뭐 딱히 꿀릴 건 없었습니다. 단지 남들처럼 넥타이 매고 시내 고층건물 사무실에서 대학 나온 직원들과 영어로 업무협의하며 수천만불짜리 프로젝트를 논하는 그런 수준에 나나 내 사업이 올라있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죠. 나 같은 점조직 독립군들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런 막장드라마들은 사실 인도네시아 전체인구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빈민층에서는 매일 벌어지는 흔한 일이지만 중산층 이상의 현지인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대기업 주재원들이나, 한국인들이 순박한 현지인들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하고 있다고 믿는 일천한 현지 경력의 정의로운 새내기들에게는 도저히 알 수도 없고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죽은 척....

 

아무튼…, 사실 제품 400개 포장하는 이 테이블 건너편에 메이라도 함께 앉아 있었다면 포장은 최소 오후 1-2시면 끝나고 난 여유있게 사무실 정리하고 부부 동반 송년회에 출발하기 위해 아내를 데리러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와 약속한 오후 4시 반에 아파트에서 픽업하기는커녕 사무실에서 출발도 못한 채 허둥지둥 막판 포장에 매진해야만 했던 이유는 월초였으므로 메이라도 수금하러 내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메이는 오토바이 택시인 오젝을 타고 아침 일찍부터 자카르타 전역을 돌기 시작했고 난 우습게만 보였던 그 제품 400개에 파묻혀 똥줄을 태우다가 간신히 포장을 마치자마자 국내 택배업체 티키(TIKI) 대리점에 제품을 던져 놓고서 금요일 저녁 번잡하기 그지없는 도로를 막무가내로 운전해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출발할 다른 가족들과 함께 노심초사 나를 기다렸던 아내의 잔소리 폭탄이 작렬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특별히 길이 막혔던 그날 오후 6시에 시작하는 송년회 장소에 도착한 건 7시가 다 되어서였고 당일 폭우로 여기저기 정체가 있었던 탓에 8시 넘어 도착한 동문들도 적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송년회 장소에 도착한 후에도 정작 초조함이 가시지 않았던 이유는 메이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 시간에 문자메시지로 중간보고가 이미 여러 통 들어와 있어야 했는데 그날은 아침 10시경 데뽁(Depok)가는 길목인 렌뗑 아궁(Lenteng Agung)에서 한 차례 보고가 들어온 후 밤이 깊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던 것입니다. 내가 보내는 메시지에 회신도 없었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습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얘도 도주할 걸까요?

암만 그래도 메이 이 친구가 명색이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인데 그럴 리는 없죠. 

하지만 주인공이 연락두절이라면 뭔가 큰 사단이 난 겁니다.

 

'밑바닥 블루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밑바닥 블루스 (5)  (0) 2021.12.27
밑바닥 블루스 (4)  (0) 2021.12.26
밑바닥 블루스 (3)  (0) 2021.12.25
밑바닥 블루스 (2)  (0) 2021.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