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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밑바닥 블루스

밑바닥 블루스 (2)

beautician 2021. 12. 24. 12:12

 

 

ep2. 버스웨이도 문제

 

 

다음날인 토요일, 난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뜬금없이 청소용 플라스틱 버켓(바께스)과 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버켓에 새까만 때가 꼬질꼬질하게 끼어 있는 것을 못 본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사무실 청소가 직원들 책임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쁘고 튼튼한 청소도구들을 내가 쓰려고 사놓고 틈틈이 직접 청소도 하고 청소도구도 꼼꼼히 닦아 놓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편에 언급했던 랜달, 헤르디 같은 친구들도 가끔 청소를 했는데 쓰레기가 더러운 것이지 쓰레기 치우는 청소도구들은 쓰레기통까지 포함하여 모두 반짝반짝 윤이 나야 한다는 내 생각에 그들은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청소도구가 쓰레기만큼 더러운 상태인 게 당연하다고 여겼죠. 물론 이건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의 사고방식 차이가 아니라 개개인의 성격에서 기인한 관념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무실 한 가운데에서 그 버켓을 끼고 앉아 비누 묻힌 구두솔로 안쪽 바닥을 박박 긁어내고 있을 때 메이가 사무실에 막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매일 보던 얼굴인데도 그날 메이 모습에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케이블 TV 스타무비 채널에서 한창 워킹데드 (The Walking Dead) 시즌 2가 방영되며 인기몰이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별로 살이 없는 얼굴에 다크써클이 광대뼈까지 내려온 메이의 모습은 그 드라마 속 좀비와 닮아 있었고 마치 그 캐릭터에 충실하려는 듯 한쪽 다리까지 절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어제 내내 연락도 안되고…, 발은 또 왜 그래?”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목청을 가다듬으며 구두솔로 메이의 다리를 가리키는데 솔에 묻은 비누거품들이 사무실 타일바닥으로 후두둑 튀었습니다. 아침부터 버켓을 끼고 앉은 내 꼴이 우스웠는지, 아니면 그런 질문 자체가 허망했던 것인지 메이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습니다.

 

그런데 메이의 전체적인 행색도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오늘도 또 영업하고 수금하러 함께 나가야 할 텐데 메이는 늘 신던 운동화 대신 다 떨어진 보라색 고무슬리퍼를 신고 있었죠. 그리고 내가 영업용으로 사준 튼튼하고 예쁘장한 에이거(EIGER) 브랜드의 가방 대신에 색상이 다 바랜 더럽고 허름한 푸른색 가방을 매고 있었습니다.

 

"뭔 일 있었어?" 이렇게 물으며 물 뭍은 손을 옷에 대충 훔치고 다가가자 씁쓸한 미소가 일그러지더니 메이는 곧 훌쩍거리며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메이는 나와 함께 돌아다녔습니다. 회사 오토바이들이 있었지만 랜달과 헤르디를 내보낸 후 그 오토바이를 운전할 사람도 없었고 메이도 나도 오토바이 운전은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다른 직원들을 더 받을 때까지 당분간 내가 메이룰 태우고 미용실들을 돌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그 빌어먹을 400개 눈썹풀 포장 때문에 메이가 오랜만에  혼자 거리에 나섰다가 그날 오후 내내 연락이 끊겼던 것입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를 여러 통 보냈지만 회신이 없었습니다. 그날 송년회에서 돌아온 시간이 이미 11시가 넘지 않았다면 메이 집에 무슨 일인지 보러 갔을 겁니다. 들고 나간 가방 안의 쌤플들만 판매가 기준 수천만 루피아(한화 수백만 원) 정도 가치가 되었고 월초라 수금한 돈도 꽤 액수가 되었을 터여서 어쩌면 강도를 만난 건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도 했습니다. 하지 메이가 그날 우타이(Utay)와 함께 움직이겠다고 했으므로 둘이 같이 있었다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으리라 믿었습니다. 우타이는 백수였지만 메이의 동생 리스티(Listy)의 남편이었고 오토바이 택시인 오젝(ojeg) 기사를 오래 해서 오토바이만큼은 나름 잘 모는 친구였으니까요. 그래서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 메이의 행색은 전날 뭔가 사고를 당한 것이 분명한 모습이었습니다. 왼쪽 다리만 저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몸 왼쪽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 랜달이 몰던 오토바이 뒤에 탔다가 다안 모곳(Daan Mogot) 버스웨이에 내동댕이쳐져 그 힘들다는 아랫배 착지에 성공했지만 뒤이어 달려온 버스 바퀴 밑에 머리가 들어갈 뻔 했던 그날 밤도 메이는 비슷한 행색을 하고 회사에 돌아왔었습니다.

 

우타이랑 출발한 게 아니었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금요일 아침, 일주일 전부터 약속을 해 두었는데도 우타이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필사적으로 발을 빼더랍니다. 메이와 출발하면 하루 종일 쉴새 없이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겠죠. 예전에 데리고 있던 직원들은 중간에 옆으로 새기 일쑤였어요. 그러고선 가지도 않은 곳을 다녀왔다며 그럴싸한 보고를 했지만 그 화려한 활동내용에 비해 결과는 늘 형편없었으므로 그게 다 뻥이라는 걸 대충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그런 직원들에겐 매일 여러 군데 목적지들을 밤늦도록 모두 커버한 후 적잖은 판매실적과 수금한 돈을 잔뜩 들고 돌아오는 메이가 늘 눈에 가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 직원들이 득실거릴 때에도 메이는 명색이 필드캡틴이면서도 직원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눈치였습니다.

 

우타이가 같이 가는 게 아니었다면 내가 메이에게 혼자 가도록 허락했을 리 없습니다. 여직원 혼자 적잖은 돈과 고가의 물건을 가방에 넣고 보호자도 없이 자카르타 천지를 다니는 건 사람과 물건 모두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렇게 그날 수금이 펑크 날 판이었는데 부지런한 메이는 별 일 있겠냐 생각하며 나한테 따로 말하지 않고 다른 오젝을 수배했습니다. 그런데 렌뗑 아궁(Lenteng Agung)까지 간 오젝기사가 오토바이 등록증을 잊고 가져오지 않아 경찰 불심검문에 걸릴 거라며 메이에게 다른 오젝을 구하라고며 내려주었답니다. 말이 그렇지 사실은 메이를 길바닥에 버리고 간 겁니다. 아마도 메이가 설명해 준 그날 일정을 듣고 질린 오젝기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중간에 무리하게 발을 뺀 것 같았습니다.우타이가 그날 메이와 약속을 어겼던 것과 대체로 같은 이유로요.  돈은 많이 벌고 싶지만 일은 그리 열심히 하기 싫은,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욕망이 현지 빈민층에서는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됩니다.

 

버스웨이

메이는 거기서부터 비싼 오젝을 포기하고 앙꼿(Angkot) 같은 다른 대중교통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싸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예전에도 오토바이들이 부족하고 일이 다급할 땐 앙꼿을 타고 출발하는 영업팀도 있었습니다. 8인승 밴을 개조한 소형버스 앙꼿은 인도네시아 서민들의 훌륭한 발이었고 메이는 반둥에서도 앙꼿을 타고 돌아 다니며 적잖은 성과를 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팀 단위로 움직일 때의 얘기였고 여자 혼자 보내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메이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맙니다. 앙꼿을 타고 다니던 오후 늦게까지도 모든 게 순조로웠는데 하필 다른 대중교통수단에 비해 비교적 안전하다는 버스웨이에서 말입니다. 버스웨이는 한국의 버스웨이와 달리 도로에 벽을 세워 버스웨이 구획을 따로 만들고 버스웨이용 별도의 버스가 다니는 특이한 교통수단입니다. .

 

오후 5시가 막 넘어가던 시간에 메이는 어느 새 자카르타를 반 바퀴 정도 돌아 북부 자카르타 스넨(Sene) 지역의 버스웨이 환승역에 줄을 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넨은 블록엠(Blok M), 글로독(Glodok), 망가두아(Mangga Dua), 따나아방(Tanah Abang) 등과 함께 자카르타에서 서민 경제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벌어지는 시장통이자 동시에 악명높은 우범지역이기도 합니다. 좁다란 버스웨이 대합실 안은 더위와 습기로 찌는 듯했지만 그나마 개찰구를 통해 들어가는 곳이어서 양아치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했고 버스에는 제복을 입은 경비원들이 차장 역할을 하고 있어, 소매치기와 거리의 악사 뻥아멘(pengamen)들이 설치는 일반 버스와는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줄을 선 끝에 메이의 순서가 되어 버스에 타려는데 타고 내리는 승객들이 버스 입구에서 잠시 뒤엉킨 순간 버스 안쪽에 있던 승객 한 명이 그 사이를 빠르게 비집고 메이 옆을 스쳐지나면서 메이가 매고 있던 가방을 낚아 챘습니다.

 

이미 승강장에서 버스에 타려고 한쪽 발을 버스 안에 디딘 메이가 가방과 함께 당겨져 상체가 뒤로 꺾였고 뒤따라 버스에 오르던 승객 두 명도 떠밀려 비명을 지르며 플랫폼 밑 도로로 1.5미터 가량 높이에서 추락해 버렸습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버스와 환승역이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승객을 가장했던 소매치기는 그 와중에서도 메이의 가방을 빼앗으려고 가방 줄을 세게 당겼고 몸이 완전히 꺾인 상태에서도 메이는 가방을 온몸으로 껴안은 채 비명을 지르며 사투를 벌였습니다.

 

메이의 얘기를 들으며 그 상황이 눈앞에 훤히 그려졌습니다.

나 역시 버스웨이를 즐겨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아직도 자카르타에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던 아이들에게 한 대 밖에 없던 차를 내주었기 때문에 난 선택의 여지없이 방물장수처럼 제품이 든 가방을 주렁주렁 든 채 버스웨이를 타고 자카르타 천지를 돌아다녔지요. 메이가 오젝 대신 앙꼿을 선택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나 역시 당시엔 비싼 택시를 타고 다닐 여력이 없었습니다. 시내 도로에 시정부 맘대로 줄 긋고 그 도로 만들도록 세금 내준 납세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한줌도 안되는 트랜스자카르타 버스들만 다니게 해놓은 턱없이 불공평한 버스웨이가 그 엄청난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사용자들에게는 그나마 가장 빠르고 안전한 대중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런 버스웨이를 내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된 사건이 공교롭게도 하필 같은 스넨 환승역에서 벌어졌습니다. 버스 승강구 쪽의 한 남자가 충분히 비켜줄 충분한 공간이 있었지만 내리려는 나를 짐짓 못본 척하며 길목을 틀어막고 있었습니다. 그날 그가 무슨 이유로 심사가 비틀려 있었는지 알 길 없지만 그가 비켜주지 않으니 내 몸과 함께 몇 개나 되는 내 가방들이 빠져나오면서 그와 몸싸움 하는 듯한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는 불쾌한 표정으로 나에게 눈을 부라렸고 난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하면서 겨우 하차 위치에 섰습니다. 그런데 버스 문이 열리고 내가 막 내리려는 순간 그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내 목덜미를 주먹으로 내려쳤습니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쯤에 복장으로 봐서 시장통 양아치 같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자기가 당하거나 잡히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저질러 버리는 게 꼭 인도네시아인들의 특성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그런 확신을 한 겁니다. 내가 그 많은 짐을 가지고 움직이니 한 번 버스에서 내리면 절대 다시 타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자긴 안전하리라 생각하고 주먹을 휘두른 겁니다. 아까 계속 미안하다며 사과하던 내가 만만해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그땐 나도 팔팔하던 시절이라 버스 밖으로 떠밀리듯 나오면서 순식간에 가방들을 승강장에 던져 놓고서 다시 버스 안으로 뛰어 들어가 그 친구 멱살을 잡고 끌고 나왔습니다. 나도 스스로 믿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제 그 친구도 큰일나고 나도 큰일나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는 나한테 맞아죽기 직전이었고 난 혈기에 저지른 폭력의 댓가로 깽값을 물던가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갈 각이었으니까요. 환승역에서 많은 현지인들에게 둘러 쌓여 이제 막 국제격투기 경기가 벌어지려던 순간이었는데 버스에서 끌려나온 상대편 선수가 관객들을 실망시켰습니다. 남의 등에 주먹질할 악의는 있어도 일대일 맞장을 뜰 용기는 없었던 그 친구가  크게 당황하면서 곧바로 뒤돌아서 승강장에서 도약, 이제 막 플랫폼을 떠나는 버스의 닫히는 문 앞에 매미처럼 매달린 것입니다. 그는 이번엔 자길 떨어내려는 차장과 실랑이를 하면서 환승역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나로서는 결국 한 대 얻어 맞은 채로 끝났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이게 다 신의 가호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싸움이 벌어졌으면 십중팔구 현지인을 때린 죄로 구경꾼들에게 단체로 린치를 당하거나 경찰서 유치장에서 며칠을 지내야 했을 것이고 심하면 재판까지 가거나 추방당했을 지 모릅니다. 아니면 거꾸로 내가 얻어 맞고 병원신세를 졌을 지도요.  그리고 그때 내가 플랫폼에 던져놓은 내 가방들과 내용물들도 절대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날 이후 난 다시는 버스웨이를 타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시점에 바로 그 자리에서 이번엔 메이가 소매치기와 일전을 치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개의 소매치기란 순식간에 벌어지는 범행인데 문제는 메이의 가방이 너무 튼튼해 가방 끈이 끊어지지도 않고 메이가 너무 필사적으로 가방을 붙잡고 있어 마치 오징어게임 줄다리기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메이보다 소매치기가 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안이나 승강장, 그리고 승강장과 연결된 육교 계단엔 최소 수십 명의 현지인들이 있었지만 아수라장이 된 버스 입구와 승강장에서 벌어지고 있던 그 상황에 아무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겁을 먹었거나 휘말리고 싶지 않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소란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던 건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버스 안에서 메이의 다른 한쪽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려던 경비원도 이렇게 소리를 질렀답니다수다!  수다!! 레빠스 아자!"

 

됐으니 가방을 줘버리란 거였어요.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라면 오히려 소매치기에게 달려 들어 제압해야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 경비원의 우선순위는 승객이나 그 소유물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승강장에서 난리 블루스가 벌어지건 말건 문을 빨리 닫고 버스를 출발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승강장 밑으로 떨어져 부상을 입은 승객들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때 승강장과 연결된 계단 저 뒤쪽에서 아저씨 한 명이 수퍼맨처럼 날아와 소매치기를 한 주먹에 때려 눕혔습니다.

그러자 그제서야 군중심리가 작동했습니다. 못본 척하던 주변 남자들이 어느새 이 수퍼맨 아저씨에게 가세해 소매치기를 마구 짓밟기 시작한 것이죠. 버스 경비원도 내려와서 가세했습니다. 마침내 인근 경찰들이 달려 와 상황을 수습했을 때 소매치기는 완전히 피떡이 된 채 살려 달라며 수퍼맨 아저씨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고 있었습니다. 메이는 수금한 돈이 든 가방을 그렇게 간신히 지켜 냈지만 그 와중에 벗겨져 승강장 밑으로 떨어진 신발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만 하길 다행이다. 신발은 내가 사줄게. 그런데 가방은 어떻게 된 거야? 고치는 데 맡겼어?”

그게….”

 메이가 다음에 한 얘기에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경찰이 가방을 압수했다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는데 곧 후회했습니다. 장담컨데 메이는 전날 충분히 고생을 했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생을 하며 메이가 소매치기로부터 지켜낸 가방을 경찰에게 뺏긴 겁니다. 허망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경찰이 누굽니까? 앞서 언급했지요? 당시의 인니 경찰이란 민중이 짊어지고 가야 할 썩고 더러운 십자가였다고요. 그들이 우리 돈가방을 순순히 돌려줄 리 없었으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고 몸이 저 지경이 되도록 소매치기로부터 가방을 지켜내려 했던 메이의 노력이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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