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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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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문재인

beautician 2018. 9. 11. 16:35

 

아침에 아버지랑 한참 설전을 벌였는데 어떤 맥락에서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 안나도 '지금 대통령이 빨갱이라 문제인 거여'라며아버지가 열변을 토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했으니 말이죠.

 

"그런 식으로 보면 나도 빨갱인데 아버지 그렇게 간단히 집안에 빨간 줄 그어도 괜찮아요?"

 

"네가 이해를 못해서 그래. 난 다 경험에서 우러난 얘기를 하는 거다."

 

"문대통령이랑 무슨 경험을 겪었길래요?"

 

"저 놈 변호사잖아 변호사들이 약자를 위해 무료로 봉사한다 하지만 받을 거 다 받아 먹고 하는 거야."

 

"뭐 그런 변호사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게 문대통령이랑 무슨 상관 있어요?"

 

"인권변호사였다잖아? 똑같은 놈들이야."

 

"옛날 군사독재정권이랑 싸우던 사람들이 문재인이 변호해 준다며 돈 뜯었다고 그래요?"

 

"내 친구가 직접 겪은 일이야."

 

"아버지 친구가 반정부 운동 했다고요? 빨갱이 친구 두셨어요?"

 

"아니, 그놈은 빨갱이 아녀. 암튼 약자 도와준다는 변호사 놈들이 약자들 돈 쪽쪽 빨아먹기만 하더라."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문대통령이랑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고요?"

 

"에이~, 어째 애들이 다 그리 생겨 먹었냐?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대략 이 대목에서 나도 조금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가족들끼리 정치얘기하는 건 정말 바람직한 일이 아니죠. 하지만 아버지가 어디 가서 다른 사람 앞에서 저런 논리로 문대통령이든 누구든 막무가내로 비난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 근본적인 걸 생각해 보세요. 문대통령 변호사 시절 그 약자들을 양산해 내던 이들은 당시 공안검사하던 황교안 같은 사람, 판사랍시고 긴급조치 위반자들에게 사형선고 땅땅 때리던 양승태 같은 사람들이에요. 욕을 하려면 가해자들인 그런 인간들을 욕해야지 왜 약자들 변호해준 변호사들이 사례금을 받았네 안받았네를 두고 빨갱이라 하는 거에요?"

 

"난 황교안 양승태가 그런 짓.했단 소리 들러보지 못했다"

 

"문재인이 그랬다는 얘기도 못들어 봤잖아요?"

 

"내 친구가 겪은 일이라니까."

 

"그분이 문재인한테 수임시킨 것도 아니잖아요."

 

"인권변호사는 다 똑같은 놈들이야!"

 

이건 절대 이성적인 결론이 도출될 대화가 아닙니다. 서로 기분만 상하고 특히 아버지는 빨갱이가 된 아들을 근심하게 되는 수순리 되는 거죠.

 

"알았어요. 아버지. 문재인 빨갱이 맞아."

 

아버지 얼굴이 그제서야 좀 누그러집니다.

 

"난 그런 빨갱이가 좀 더 많아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황교안 양승태 같은 하이에나들도 그래야 먹고살 게 나올 것이고."

 

아버지 눈꼬리가 또 올라갑니다.

 

"암튼 아버지 그 연세에 예나 지금이나 그런 부분에서 뜻 굽히지 않고 늘 일관성 지킨다는 점을 정말 높게 평가해요."

 

내가 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아버지는 피식 웃음을 흘립니다.

 

"우리 애들이 왜들 다 저런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날 이해 못해도 난 아버지 이해해요"

 

이날의 대화는 이렇 화기애애하게 흘러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