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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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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 페이셜 익스프레션

beautician 2017. 12. 8. 10:00


Default Facial expression



차를 몰고 아파트를 드나들 때마다 난 개찰구에 앉은 주차직원에게 엷은 미소를 띄워주려 합니다. 수많은 차량이 지나갈 때마나 활짝 웃으며 표를 받는 어린 여성에게 죽일 듯 딱딱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건 너무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빨을 드러내며 큰 미소를 짓는 것 역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친 친근함의 표시는 오히려 그.여직원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게다가 내 웃는 얼굴은 젊은 시절과는 달리 더 이상 매력적이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난 내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대에게 거만해 보이거나 전혀 관심도 없는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만한 과장된 반응을 보이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난 나름대로 상황에 맞게 상대를 배려하며 애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엷은 미소를 짓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 보여지는 모습은 내 의도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종종 깨닫곤 했습니다.

거울 앞에서 그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을 때였습니다. 내가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했던 그 얼굴은 거울 속에서 어딘가 불편한 듯 얼굴을 조금 찡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풋풋하던 시절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낡은 자동차의 액셀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예전의 속도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얼굴 근육들의 반응정도가 크게 떨어진 것입니다. 내 뇌가 기억하는 것보다 조금 더 웃음기를 띠어야만 하는 겁니다. 꽤 즐거워 소리내 웃는 정도로 레벨을 올려보니 비로소 얼굴에 엷은 웃음기가 번졌습니다. 기본 표정이 너무 어둡고 엄숙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디폴트가 너무 내려가 버린 겁니다.

그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엔 사뭇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불쾌한 인생을 살아왔던 것일까요? 

그 찡그린 얼굴을 본 주차장 여직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난 왜 좀 더 웃어보이려 하지 않았을까요? 

난 왜 평소엔 사람들을 향해  좀처럼 웃지 않는 걸까요? 

길을 걷다가 쇼윈도나 지하철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은 왜 저렇게나 어두운 것일까요?

정말 중립적이던 평소의 표정이 어느덧 표독스러워지고 무시무시해진 것입니다. 그 디폴트를 원래대로 돌려놓아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노력은 해볼테지만 일단은 내가 친절하게 엷은 미소를 지어주었다고 생각했던 그 주차장 여직원은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노려본다고 생각했을 테니 많이 미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