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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과 세월호 리본

beautician 2017. 11. 22. 10:00


[불기둥과 세월호 리본]

 

 

자유한국당에 샤먼이 한 명 있다는 것이 얼마 전 확인되었습니다.

그전에도 있었는지, 정말 지금은 달랑 한 명만 남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어쨌든 '포항 지진이 문재인 정부에게 내린 하늘의 경고이자 천심'이라는 취지로 말한 류여해 의원은 정말 신의 계시를 받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는 '~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라며 한 발을 빼고 책임을 회피하는 기술을 시전하며 하늘의 뜻을 살짝 모호하게 만드는 정통 샤먼이라면 하지 않을 부끄러운 언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는(이런 경우 그녀라는 인칭대명사를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 느껴집니다. 지진 피해자들을 누군가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한 제물 정도로 폄하해 여기는 사람을 그녀의 범주에 넣는 건 내 미학적 취향이 허락하지 못합니다) 팩트를 밝히기보다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자기 의지를 우회적으로 피력했지만 결국 세간의 비난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사람들이 바보들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세상은 변했고 국민들도 변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똑똑하고 더 많은 정보를 다양하게 섭렵하고 있는 국민들을 머리 위에 이고 살고 있는데 왜 아직도 말 한 마디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면 그는 더 이상 정치가가 아니라 고도의 사기꾼이나 최면술사일 겁니다.

 

정권에 대한 천벌에 그토록 민감했던 류의원이 왜 박근혜 정권의 몰락에 대해서는 아무런 전조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경고도 하지 못했는지는 그래서 불가사의로 남습니다. 전엔 서울시민들 의견도 묻지 않고 무작정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던 정신 나간 장로 서울시장도 있었는데 이번엔 여의도에 등장한 샤먼…… 정치판 참 다이내믹 합니다.

 

사실은 내가 더 신끼가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2016년이 60년만에 돌아온 '병신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참 뜬금없다고 느끼면서도 그게 누군가를 말 그래도 병신년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신의 유머 섞인 선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정말입니다. 신의 뜻을 읽는다는 거, 사실 별 거 아닙니다.


 

물론 샤먼들은 국회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인도양의 해저지진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단의 아쩨를 비롯해 동남아 전역에서 40만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을 때에도동일본 대지진이 일본 동부해안을 유린하며 1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에도 그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민족에게 내린 천벌이라고 주장하는 잔인한 목사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한국 교단의 유명한 목사들이었고 그 말을 하던 순간 그 대형교회들의 수많은 성도들이 '아멘'을 외쳤겠지만 그런 망발은 그 목사들이 만유의 주 하나님의 성령에 감화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이생의 정욕에 충만한 세상의 잡신들과 접신했던 결과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기독교의 신이 그렇게 파렴치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버린 세월호 사고 국면에서도 서슴지 않고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신념에 가득 찬 목소리로 세월호 사건은 일반 교통사고라며 침을 튀겼고 어떤 이들은 안된 일이지만 우리 책임이 아니라며 정권과 정부의 치부를 가리는 것에만 전력하면서 유족들의 슬픔을 더욱 짓밟았고 어떤 목사들은 그게 하나님의 뜻이었다 말하며 성도들에게 편견과 집단 이기주의를 심으려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사고의 진상조사를 방해했을 뿐 아니라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달라며 단식하는 유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으로 대변되는 악의의 송곳니를 서슴지 않고 드러낸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그런 신념 역시 잡신들과의 접신 때문이었거나 누군가 슬며시 내민 돈신과의 접신 때문이었겠죠. 물론 후자의 경우는 접신이 아니라 접선이라 하는 게 맞을 듯 합니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규명이란 정말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인데 그런 일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또는 모든 진상이 이미 드러난 것이 아니냐는 뜬금없고 근거도 없는 이유로, 또는 사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시체팔이를 하며 정치적 목적에 세월호 사건을 이용하려 한다며 온갖 이유와 핑계와 논리를 주워섬기며 진싱규명을 가로막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세월호 사고의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난다는 건 정말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요? 또한 그게 밝혀진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죽어 자빠질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 생각은 편협과 악의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니면 그걸 감춰야 하는 절절한 이유가 있던가요. 단 한 명이 죽어도 그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은 필수적인 일인데 하물며 300여명이 몰살당한 사건의 진상규명을 왜 하면 안된다며 그토록 방해하는 것일까요? 대통령 한 명이 총에 맞아 시해 당하면 난리법석을 떨며 전방위 수사를 펼치고 사람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잡아 죽이기까지 하면서 그 진상을 규명했는데(또는 전력을 다해 그런 식으로 최선을 다해 은폐, 왜곡했는데) 300여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의 생명은 그 한 명에 비해 그토록 가치가 없단 말입니까? 더욱이 밝힐 수 있는 진실을 굳이 밝히지 말자 하는 건 이상함을 넘어 수상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유족들이 배가 안치된 목포신항을 떠나 빈 관을 놓고 마침내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가족을 잃고 그 시신조차 찾지 못한 유족들의 깊은 슬픔을 정치적 경제적 잣대로 재어 재단하고 규정하는 것은 정말 비인간적인 일인데 그런 일들이 인터넷 공간에서는 오늘도 무수히 벌어집니다. 누구한테 돈 받고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라면 원래 인성이 그렇게나 바닥인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널렸다는 얘기일까요?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라면 무슨 놈의 신념이 그렇게나 파렴치하단 말입니까? 12월 초에 세월호 유족 두 분과 416연대 한 분, 그렇게 세 사람이 인도네시아에 와서 사흘간 간담회를 갖는다는 공지가 뜨자 자카르타 교민사회에서도 아직도 세월호 팔아먹느냐,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놈들이 있다고 목청을 돋궈 비아냥거리며 기염을 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자녀를 그렇게 비극적인 사고로 먼저 보내고 그 며칠 후, 또는 그 몇 백 일 후에야 싸늘하고 훼손되기까지 한 시신을 받아 들어야 했던 부모들, 그 시신마처 찾지 못한 엄마들의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아 간담회에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물론 그분들의 절절한 마음을 들어주고 할 수만 있다면 어깨를 한번 토닥거려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당신들이 도대체 무슨 전문지식이 있어 멀리 자카르타까지 와서 안전과 사회정의에 대해 말하려 하냐고 삿대질 하는 짓은 절대 하지 못합니다. 그건 사람 할 짓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짓이 신의 뜻일 리도 없습니다. 신의 뜻을 헤아려 봐야죠. 여의도의 샤먼들처럼 말이죠.

 

앞서 언급한 류여해 의원은 그나마 신의 뜻을 읽어 포항지진을 신의 경고라 하지 않았습니까? 영암삼호교회의 이형만 목사는 포항지진이 종교인과세 때문이라는 파렴치한 소리를 해대며 류 모 의원에게 동조하지 않습니까? 신관들은 참 대단합니다. 시류를 읽고 신의 뜻을 읽었다는 거 아닙니까? 해석이 완전히 틀려 버리긴 했지만요.

 

출애굽시대의 유대민족에겐 하나님이 매일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침마다 일용할 양식 만나가 하늘에서 내렸고 이집트를 떠나던 날로부터 가나안땅에 들어가던 날까지 4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낮에는 구름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했습니다. 그건 굳이 샤먼이나 신관이 아니더라도 신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확신시켜주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믿고 의지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늘 의심하고 반발하고 반항하며 엇나갔습니다. 결국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열을 받고야 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수 백만 명을 40년간 시나이 반도로 종횡무진 끌고 다니다가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해당 세대에선 단 두 명만 제외하곤 모두 사막 속에 묻어버리고 말 정도로 말입니다. 밤하늘을 훤히 밝히며 타오르는 거대한 불기둥은 처음엔 이스라엘을 지키는 놀라운 기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저 그렇고 그런 일상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민족은 그것이 더 이상 놀랍지도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린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요.

하지만 우리들도 부족한 믿음을 탓해야 합니다.

병신년의 유머를 보여주었던 그 신은 2017 3월의 어느 날 한반도의 하늘 위에 구름으로 노란 리본을 만들어 내걸어 주었습니다. 세월호를 인양하고 있던 바로 그 날에 말입니다.




신은 하늘에 그 노란 리본을 내걸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너희 아픔에 나도 항상 함께하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어 배와 함께 아이들과 진실을 돌려보내 주마. 그러니 더 이상 아무 걱정 할 필요 없어……라고요.

 

하지만 우린 류여해나 이형만 만한 믿음도 없어 인양이 잘못될까 한없이 걱정하기만 했습니다. 이제 목포신항에 누워 있던 그 세월호는 내부 수색작업을 모두 마치고 다시 바다로 나가 똑바로 세워지는 작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그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난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분명 사필귀정으로 흘러가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철저히 책임지고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깊은 한과 슬픔도 모두 보상되고 치유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날 신이 굳이 하늘에 노란 리본을 내걸며 한 약속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포항지진은 하나님의 경고 따위가 아니고

동남아와 동일본의 지진과 쯔나미가 천벌일 리 없고

세월호 사고가 신의 원한 것일 리 없습니다.

난 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 슬픔이나 아픔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까요.

 

그래서 하늘에 내걸렸던 노란 리본은 눈멀고 귀먹은 우리들에게 정녕 신이 자신의 진심을 말해주려 했던 것이라 믿습니다. 그날 그렇게 벌어지고야 만 처참한 일을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반성과 노력의 표시로서 말입니다.

 

그리고 여의도와 대형교회에 서식하는 샤먼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습니다.

접신을 하더라도 잡신과는 하지 마시라고요.

그러니 뻘소리를 하게 되는 거라고요.

 

 

2017.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