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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개똥같은 등단

beautician 2018. 5. 13. 21:30



가족을 버릴 각오로 문단에 들어올 생각이 있습니까?”

 

A시인은 상당히 술이 올라 있었습니다. 물론 스스로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빈땅 병맥주 네 병째부터 예상치도 않았던 주사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에요. 그러니 가족들 인정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요. 난 문학을 위해 가정을 다 버린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등단해 글을 쓰려면 그 정도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해요.”

 

말이 오락가락해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자꾸 가족을 버리라는 쪽으로 대회를 전개시키고 있었습니다. 백방으로 사업활로를 모색하며 현지 미용계 거장들을 동원해 미용세미나를 조직하고 있던 나에게 그가 그런 말을 하던 이유는, 내가 예전 한국문인협회 원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장님께 질문-최근 서점가와 출판업계에 불황이 계속되고 있고 스마트폰 보급과 인터넷 발달로 수많은 컨텐츠들이 범람하면서  글이나 순수문학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대폭적으로 감소해 가고 습니다그런 가운데 대학 문창과에서는 매년 신예들을 쏟아내고 경쟁자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으니 순수문학을 추구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라고 사료되는데 적도문학상 수상자들이 이번 수상을 계기로 문학에 뜻을 세운다면 앞으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가게 되는 것일까요글을 써서 살아가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시대에 각오해야  것은 무엇일까요 기대할  있는 희망은 어떤 것이 있을지 문학계 원로의 혜안을 들려 주셨으면 합니다.



자카르타에서 있었던 한 문학상 시상식에 왕림해 주었던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문효치 시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죠.하지만 그건 올해 4월의 일이었고 A시인이 끌라빠가딩의 한 치킨집에서 침을 튀기며 문인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은 11월 말입니다. 물론 이사장님은 당시 즉답을 피해 우회적으로 이야기했지만 난 그 반응이 참 지혜로웠다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문단의 원로이지만 젊은 문인들이 앞으로 살아갈 방법을 규정하고 예단하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와 별다른 교류가 없던 A시인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그 질문을 토대로 내가 전업작가가 되려는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 버리고, 내가 위의 질문을 던진 지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저녁시간엔  굳이 나를 불러내, 문인이 되려면 가정을 버려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돋구며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본격적인 문인이 된다는 것은 경제적 금치산자가 된다는 의미와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것은 문인 생태계의 저 위쪽  극소수의 포식자 그룹에게나 가능한 일이고 다른 이들을 다른 직업을 병행하거나 만성적인 빈곤의 늪 속에 빠져있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나 말고 누가 이런 말을 해 주겠어요? 프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자카르타에 문인이라 할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요? 그 사람들 중에서도 누가 당신한테 이런 얘기를 해줄 수 있단 말입니까?”

 

, 번지수를 크게 잘못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11월에 글쓰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어 멀리 지방에서 날아온 A시인이 12월 초까지 2 주일가량 자카르타에서 묵는다고 하여 한번쯤 식사를 대접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그가 만나자고 연락해 왔기에 식당으로 모셨던 것입니다. 명색이 시인이니 어느 정도 문학에 대한 얘기는 나오리라 생각했지만 프로의 경험이라며 가족을 버리라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프로는 이기적이어야 해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업작가들은 다 재수없는 이기주의자들이어야 한단 말입니까?”

말뜻을 잘 들어봐요. 자기 몸값을 알아서 올리는 사람이 프로인 거에요. 날 봐요. 내가 자카르타에 온 건 수금하러 온 거에요. 문협에서도 내가 필요하니까 비행기표까지 끊어주면서 모셔오는 거잖아요? 당신도 뭐 하러 모임을 위해 머슴처럼 일해주는 거에요? 스스로 몸값을 올려야 프로란 말이오!”

책 좀 몇 권 옮겨주고 행사 준비 지원해 주면서 돈 달라 하란 말인가요?”

날 봐요. 난 회비도 안내요. 한국에서도 연회비 30만원 달라해서 내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여기서도 그거 못낸다고 했더니 가입서에 서명만 해달라 하더군요. 자기들이 내줬겠죠. 프로란 그런 거에요

그것 참, 프로란 게 개똥 같은 거군요!”

 

물론 그의 오만은 주사이기 쉬웠습니다. 그의 쉰소리를 견디며 밤 10시가 지나 간신히 자리를 마치고 호텔에 데려다 주자 김시인은 1층 바에서 한 잔 더 하자며 팔을 잡아 끌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건데 어떻게 뿌리칠 수 있냐며 졸라댔는데 난 집이 바로 호텔에서 길 건너편이니 못이기는 척 그의 주사에 주저앉았습니다. 우린 첫 자리에서 이미 큰 맥주병 여덟 개를 마셨고 두 번째 자리에서는 코로나 맥주 10 병을 시켰습니다. 물론 A시인이 3분의 2 이상을 마시는 중이었어요.

 

내가 왜 굳이 당신을 불러내서 이런 얘기를 하겠어요?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무슨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얘기하세요. 당신 속마음을 왜 나한테 물어요?”

 

그냥 하면 될 대화를 자꾸 극적으로 몰아가려는 그의 시도가 좀 짜증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화 중에 밑도 끝도 없이 사랑이 뭔지 아세요?’ ‘좋아하는 건 사랑과 무슨 차이인지 알아요?’ ‘슬픔의 정의를 말해봐요하며 치고 들어와 내가 잠시 머뭇거리면 그것 보라는 듯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가르치려 들었습니다. 시인과의 대화라는 게 참 역겨운 거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소설가가 되는 걸 도와줄 수 있는 건 나뿐이에요. 내 친구 중 소설가들이 있는데 그 중 무지 유명한 놈 하나는 분명 안받아줄 테지만, 그래도 당신을 문하생으로 받아줄 쟁쟁한 사람을 소개해 줄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당신을 등단시켜 주고 이끌어 줄 거에요. 그런 비용이 보통 200에서 500 정도 든다는 건 문단의 공공연한 비밀이에요. , 꼭 그걸 내라는 게 아니에요. 우선 나랑 같이 한국에 날아가서 그 소설가랑 이틀쯤 막걸리 마시는 걸로 우선 인연을 맺어줄 수 있어요.”

 

그는 내게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등단시인인 그가 자카르타에서 시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시 짓는 법을 가르쳐준다며 수업료를 받고 각종 형태의 비용을 받는 것처럼 내게 소설가 등단을 미끼로 내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등단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

김시인님 등단하셨다면서요? 등단한다는 게 어디 문학상을 한번 타면 되는 거에요? 아니면 책을 몇 권 내면 되는 거에요? 아니면 누구한테 등단 증서를 받아야 되는 거에요? 등단하도록 해준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요?”

그건 여러 가지 길이 있는데…”

 

그가 말하는 등단의 길이란 유력한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유력한 문인의 후원을 받아 문단의 인정을 받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두 번째 길을 제시하려는 거였고요.

 

당신이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받은 거 알아요. 하지만 그거 문단에선 아무 것도 아니에요. 한국에선 그런 거 쳐주지도 않아요. 그리고 문학상 출신들 중 문단에 오래 남아있는 사람도 거의 없어요. 후원자가 없으면 도태되는 거라고요.”

 

물론 그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은 아닙니다. 서정문학으로 등단한 문협인니 회장님도 그런 말을 했는데 한국에서 뭔가 대단한 문학상을 탔다는 A시인도 이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겁니다. 물론 나 역시 대한민국 외교부 소속 재외동포재단에서 재외국민들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문학상이, 비록 내로라 하는 문단의 기라성같은 심사위원들을 초빙해 당선작을 뽑는다 해도, 그 권위가 유명매체나 문예지 또는 문인단체의 문학상에 미치지 못할 것임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A시인이 말하는 후원자를 통한 등단이란 대학에서 지도교수를 모시고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과 마찬가지란 걸 알았습니다. 문단의 후원자를 얻는다는 건 극단적인 갑을관계 속으로 뛰어든다는 뜻이었어요. 문단을 떠들썩하게 하던 유명 작가들의 문하생 성추행 사건들이 왜 그리 공공연연히 자주 벌어지는지 대충 미루어 짐작케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게 현실이에요. 난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현실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시는 현실을 체화시켜 자신만의 내면의 목소리를 끄집어 내는 거라 하던 A시인이 이번엔 현실을 따르라고 강변합니다. 이 사람이 오락가락하는 건 물론 주사 때문이죠.

 

그게 무슨 개똥 같은 현실입니까? 그런 게 등단이라면 안하고 말겠소.”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목소리를 높입니다.

 

내가 3년 드리죠. 보통 2년 드리는데 안타까우니 3년 드리는 겁니다. 이렇게 내가 불러서 만나는 건 이게 마지막이에요. 앞으로 3년 내에 마음이 바뀌면 그때 연락 주세요. 당신이 소설가가 되려면 날 통하지 않을 수 없어요. 싫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안된다고요.”

 

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됐고…… 그냥 먹던 술이나 마십시다.”

 

그런 뻘소리를 새벽 2시반까지 참고 들었으니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예의를 지킨 셈입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최소한 앞으로 3년간은 이 친구가 나에게 연락하지 않을 테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요.

물론 술이 깨고 나면 그는 평소의 소박하고 친근한 시인으로 돌아갈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인의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저 오만과 편견……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17. 11. 28.




[문학뉴스=윤하원 기자] 시(詩)의 위기를 넘어  ‘절멸(絶滅)’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부 문예지들의 무분별한 ‘등단 장사’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문단 내에서 높아가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소속 L시인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시를 어디 가서 돈 주고 배워서 등단하고,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 그런데 돈으로 다 되는 세상이  시인의 세계에도 있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그는 “시간 많고, 돈 많은 아줌마들, 신춘문예 출신 시인에게 가서 돈을 주고, 선물도 바쳐가며 시를 배우고 등단하는 경우를 더러 보았다. 신기한 것이 그 아줌마의 글이 그 선생님의 글과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것이다. 그럼 그 아줌마는 그 선생님의 아바타 시인일까”라고 물었다.

 

이 글에 대해 1980년대 중반 두 곳의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바 있는 C 시인은 “나는 이런 글을 올린 그 시인에게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입에 담고 싶지는 않지만 어떤 모 교수는 신춘문예 심사위원이면서도 습작생이나 돈 있는 유한부인들의 시를 아예 고쳐 주는 일도 있었다. 정말 한심하고 분노가 일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한 지방에서 발행하는 문예지를 통해 한 호 당 수십명의 시인이 등단한다고들었다. 쓰레기 같은 문예지를 적게는 수십 권, 많게는 수백 권씩 정기구독하는 대가다”라고 적었다.

 

C 시인은 “요즘 유명시인의 시집조차 팔리지 않는 현상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옛날에는 시를 좋아하는 고급독자들이 시집을 많이 샀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창작교실이나 평생교육원을 통해 시 공부를 하고난 뒤 쉽게 등단을 하고 나니 시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남의 시집을 사겠는가”라고 되물었다.

 

두 시인의 페이스북 글은 13일 오후 현재 모두 내려져 있는 상태다. 일부 문예지 관계자들이 “창작교실이나 평생교육원 문학반 등의 순기능이 적지 않은데, 이를 무시한 채 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문예지까지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이라며 이들에게 항의함에 따라 글을 부득이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이런 해프닝과 관련해 이산하 시인(사진)은 “얼마전 지방의 한 문예지가 시, 소설, 수필 등 전 장르에 걸쳐 무려 40~50명의 신인을 한꺼번에 등단시키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한 사람 앞에 2백-3백만 원 씩 그 출판사의 책을 사도록 했다는 얘기를 듣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이산하 시인, 사진 제공)

 

이 시인은 “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일이야 바람직하지만 이렇게 상식에서 벗어나고 도가 지나친 기업형 등단 장사는 마땅히 지탄받고 규제돼야 하며 우선은 문단 스스로 자정에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등단 장사를 둘러싼 이들의 개탄은 그동안의 실태가 곪을 대로 곪다가 터져 나온 것으로 보여 앞으로 문단 안팎의 반응과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hwyoon@munhaknews.com

출처 http://munhaknews.com/?p=8369&ckattempt=1 (문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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