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무함마디야 4

무함마디야 제48차 묵타마르 회의 개최 (2022. 11. 19-20)

무함마디야 신임의장 선출 위한 묵타마르 회의 개막 중부자바 솔로 소재 마나한(Manahan) 스터디움에서 11월 19일(토) 무함마디야의 제48차 묵타마르(Muktamar) 회의가 열렸다. 이날 개막식에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부터 뿌안 마하라니 국회의장까지 정부 고위 관료들과 주요인사들이 바틱 복장을 하고서 참석했다. 조코위 대통령과 뿌안 외에도 국민수권당(PAN) 줄키플리 하산 당대표의 참석이 눈길을 끌었다. 과거 아미엔 라이스(Amien Rais)가 무함마디야 의장을 역임하던 시절 국민수권당 창립을 선언한 바 있어 국민수권당과 무함마디야는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제48차 묵타마르 회의는 11월 20일(일)까지 계속되며 다섯 가지 의제를 처리하는데 그중 하나가 2022-2027년 임기의 무함마디야 ..

무함마디야가 군소종교 무시?

종교부 장관의 군소종교 축일축하 문제삼는 무함마디야 Eva Safitri - Kamis, 29 Jul 2021 08:54 WIB 무함마디야 중앙지도부 수장 다낭 카흐마드(Dadang Kahmad)가 바하이(Baha'i) 공동체의 바하이력 178년 나우루즈 축일(Naw-Ruz 178 EB)에 야쿳 코릴 쿠오마스 종교부 장관이 참석해 축하메시지를 낸 것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바하이교가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 종교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바하이교는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을 이어 19세기에 이란 지역에서 탄생한 종교다. 다당은 28일(수) 기자들에게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은 좋지만 종교부에 바하이교를 대표하는 부서도 없고 종교부 장관은 국가의 공식 고위 공직자”란 사실을 상기시켰다. 공..

부야 함카 (Buya Hamka) (5)

초창기 경력 글쓰기와 창작 말릭은 7개월 간의 메카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빠당빤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중간 정박지인 메단에서 배를 내렸다. 그곳에서 말릭은 저널리즘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화교신문인 뻘리타 안달라스(Pelita Andalas)에 하지 순례를 다녀온 경험에 대한 글을 썼다. 그는 처음으로 수마트라 타왈립과 그의 아버지가 선봉에 선 미낭까바우 이슬람 개혁운동에 대해서도 글을 썼다. 이 첫 원고들을 쓰면서 함카는 그의 속에 있던 저널리스트 소양에 눈을 떴다. 이란 잡지의 무하마드 이스마일 루비스(Muhammad Ismail Lubis) 사장도 말릭에게 원고를 청탁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신문과 로컬 잡지에 글을 쓰는 것 외에도 말릭은 압둘 아지즈(Abdul Azis)가 ..

부야 함카 (Buya Hamka) (3)

함카의 청년기 타지생활 말릭은 자주 혼자 먼 길을 떠나 미낭까바우의 여러 곳을 여행하곤 했다. 그가 워낙 자주 부모를 떠나 멀리 돌아다니자 아버지는 그에게 “먼 데 총각(Si Bujang Jauh)”이란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말릭은 15세가 되자 자바섬에 가고 싶었다. 그는 아버지에게도 알리지 않고 집을 나섰다. 마닌자우의 할머니에게만 하직인사를 올렸을 뿐이다. 그는 마닌자우에서 할머니가 쥐어 준 여비를 들고 긴 여정에 올랐다. 육로를 통해 벙꿀루를 거쳐 그곳에 사는 어머니 가문 친척들에게 여비를 보태 달라고 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말릭은 병에 걸리고 말았다. 벙꿀루에 도착하면서 말라리아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 와중에 천연두까지 걸리고 말았는데 말릭은 그런 상태에서 기어이 나빨 뿌티(Nap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