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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문학기행] 후기

beautician 2017. 9. 28. 12:00

자바문학기행 후기

 

배동선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대개의 경우 그 여정을 통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죠. 물론 그 새로운 것이란 매우 오래된 것이기도 합니다. 보로부두르 사원처럼 말입니다. 천 년은 족히 넘는 오래된 건축물이 내게 새롭게 다가오는 그 아이러니컬한 접점이 가끔은 더없이 짜릿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앉아있는 수많은 불상들 대부분의 목이 잘려 있다는 사실에서 그 짜릿함이 씁쓸함과 맞닿아버립니다. 유적이 화산재 밑에 깊이 파묻혀 버렸던 것은 불가항력적 천재지변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불상들의 목이 날아간 것이 화산 때문일 리 없습니다. 한동안 한국의 학교교정들과 공원에 세워진 단군상들 목을 자르던 사람들이나 이라크 모술의 고대 유적을 파괴하던 IS와 비슷한 의도를 가진 이들이 천 년 전 자바에도 살았던 것입니다. 산천도 사실 별반 의구하지 못하고 인걸은 두말할 나위 없이 간 데 없지만 종교적 민족적으로 편을 가르고 마침내 상대방 목을 날리는 것만으로 부족해 상대편 신들의 목까지 날려야만 성이 차는 그 야만은 천 년이 지나도 왜 변치 않는 것일까요.

 





그런 씁쓸함은 고색창연한 암바라와 형무소 뒤편에서 스러져가고 있던 일본군 위안부시설을 만날 때에도 느껴집니다.

 

암바라와는 1945 11월 인도네시아군과 영국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입니다. 우리가 동상과 도로이름으로 잘 알고 있던 수디르만 장군이 그 해 10월 스마랑에 상륙해 남하하던 2차대전 승전국인 영국군을 마글랑에서 패퇴시킨 전공으로 5사단장이 되었다가 뒤이어 4성 장군인 전군사령관으로 선출되어 수까르노의 재가를 기다리던 시절이었죠. 그는 당시 막강한 최신병기들로 무장하고 강력한 공중지원까지 받던 영국군을 상대로 절대적인 화력열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죽창으로 무장한 인도네시아군을 이끌고 최전선에서 일본도를 휘두르며 전투를 독려한 끝에 마침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고 패퇴한 영국군은 윌렘요새로 퇴각해 공성전을 치르다가 결국 스마랑으로 철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암바라와에 또 다른 네덜란드의 요새유적이 없다면 그날 방문했던 암바라와 형무소가 십중팔구 그 윌렘요새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주둔한 탱크부대 영내에도 수디르만 장군의 동상이 높이 세워져 있었던 것이겠죠.



 


그런 인도네시아의 자랑스러운 역사 뒤에 한국인들의 뼈저린 고통의 역사가 숨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어간 한국인 위안부들과 일본군 군무원들의 망령들이 아직도 떠돌고 있을 것만 같은 그곳은, 그러나 잡동사니로 가득 차 점점 더 부스러져 갈 것이고 조만간 그 건물도, 그곳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남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힘없으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암바라와 수용소와 일본군 위안부 시설이 우리 목덜미를 잡고 흔들며 강변하고 있는데 해방 후 70여년, 한국전쟁이 끝난 후 60여년이 흐르는 동안 매년 천문학적 국방예산을 물쓰듯 쓰고 우리 젊은이들의 청춘과 노동력까지도 물쓰듯 쓰면서도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북핵과 사드에 치이고 우리 좀 지켜달라, 좋은 무기 팔아달라 애원하며 누군가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작금의 현실은, 오래 전 언젠가 내 어깨에 달려 있었던 육군 계급장마저 부끄러워지게 만듭니다.

 

한편 자바문화의 깊은 저변 한 자락에 심어진 어린 묘목, 사산 자바문화연구원은 또 한 조각의 자랑스러움입니다. 그 묘목이 누구나 찾는 높은 산 정상에 심어져 천대만대 독야청청할 것이 아니라 낮은 곳 모퉁이 잡목 숲에 심어져 주변 다른 나무들과 어우러져 커갈 것이라 더욱 귀하고 그것을 심은 손길이 힘센 거인의 우락부락한 손이 아니라 우리들과 다름없는 작고 연약한 손이 수없이 베이고 다치고 못이 박히도록 수고한 끝에 마침내 뿌리를 내릴 준비를 했다는 것이 더욱 대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카르타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또뼁이렝댄스(Topeng Ireng Dance)나 꾼뚤(Kuntul) 공연을 연구원 개원식에서 처음 접하면서, 바로 그런 것, 우리가 모르는 자바문화를 개발해 소개하는 것이야말로 사산 자바문화연구원의 진면목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 중 하나가 아니겠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함께 여행을 떠난 사람들과의 마음의 거리를 조금이나마 좁힐 수 있었다는 것이 그렇게 자바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 것 이상의, 무엇보다도 큰 성과였습니다. 그러니까 여행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