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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끼따스 비자연장] 오버스테이 했다고??

beautician 2017. 8. 21. 16:11
(앞서 '비자정책이 뭐 변검도 아니고'에서 이어집니다)



우여곡절 끝에 비자수속을 위한 모든 서류를 준비해 이민국에 접수시켰고 4일 후에 와서 사진찍고 지문날인 하라는 말과 함께 접수증 비슷한 서류를 한장 받아 들였습니다. 중간에 독립기념일 휴일이 끼었으니 아마 정규 수속기간은 3일인 거겠죠.

이제 KITAS 연장을 위한 수속이 거의 다 끝난 것입니다.
론 KITAS를 발급받은 후에도 경찰청에서 STM이라는 서류를, 관할 SUDIN 관청에서 SKTT라는 임시거주증을, 그리고 또 어딘가를 가서 Labda라는 역시 거주확인증 같은 것을 받아야 합니다. STM은 운전면허증 갱신하려면 꼭 필요한 서류이고 차량등록증 STNK를 연장하려면 SKTT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미리 수속하지 않고 늦추고 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와 아침 일찍부터 아내와 함께 이민국에 갔습니다. 하필 우리 담당직원이 일이 있어 늦는다 했지만 매년 사진찍고 지문날인하는 과정은 30분이 채걸리지 않는 간단한 일이었으므로 혼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직원에게 오지 말라 하고 내가 직접 수속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반전의 나라. 절대 실망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내 서류는 이미 준비완료된 상태인데 아내 서류가 전혀 수속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이 나라에서는 뭐 하나 매끄럽게 되는 게 없습니다.

더욱이 아내의 서류가 수속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아내가 오버스테이때문인 듯 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창구직원이 대놓고 내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그렇게 수근거리는 것을 내가 용케도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사실 아내의 kitas는 지난 해 발급받을 때부터 문제가 있다는 걸 이미 발견했지만 kitas 진행할 때마다 늘 있는대로 진이 빠지므로 나중에 하자고 늦추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비자는 내 부양인이니 내 날짜에 따라야 하고 그래서 당초 이메일로 받은 이민국 서류에도 만료일은 같은 날이었지만 정작 발급된 아내의 kitas에는 그 만료일이 나보다 10일 정도 이른 날짜로 찍혀 있었던 것입니다. 명백한 이민국 측 실수입니다. 신분증을 잘못 인쇄한 겁니다. 이런 건 인도네시아에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너무나 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자칫 비자연장이 시간에 몰려 아내의 kitas 만료일을 넘긴 후에도 연장수속이 되지 않으면 막무가내인 인니 관청에선 분명 오버스테이 문제를 들고나올 것이고 명백한 자기들 실수로 기인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걸 절대로 인정할 리 없으니 번거로운 상황이 되기 전에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kitas 수속하기 2주 전쯤 이미 정정수속을 해 이민국 컴퓨터 상 아내의 kitas 만료일을 내 kitas 만료일과 동일하게 맞춰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오버스테이 문제로 아내 kitas 연장이 보류되고 있다는 상황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정식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2층 창구직원은 이민국 3층의 아리스라는 사람을 만나라고 합니다. 아침 9시에 이민국 도착했는데 내가 오랜 기다림 끝에 3층에 올라간 것은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Kitas 사진 찍으러 갔다가 2시간 넘게 기다린 것은 지난 20여년 동안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2층의 아리스라는 매니저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습니다. 때는 팀 금요일. 정오부터 한 시간 가량 숄랏줌앗이라는 대대적인 이슬람 낮 기도회가 있는 날. 여기 참석하는 것은 무슬림 남자들의 의무이고 11시반쯤부터 사원에 모여들기 시작하니 11시에 자리를 비운 아리스는 사무실에 돌아오는 대신 곧장 숄랏줌앗에 갔다가 오후 1시반쯤 어슬렁어슬렁 복귀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이 문제 처리할 다른 분은 없으신가요?"

3층 창구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은 문제의 원인도 그 해결책도 제대로 모른 채 이민국에서 반나절동안 아내를 바보처럼 오도카니 앉혀놓고 있는 부담스러움과 초조함에 등떠밀린 분명한 실수입니다. 인니 공무원들은 서둘러 달라 부탁한다 해서 서둘러 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게 예전엔 가능했습니다. 물론 서둘러 달라 부탁하며 두툼한 봉투를 찔러줘야 했습니다. 그러면 안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 정부가 공무원들의 뇌물과 향응을 철저히 금지시킨 후, 비록 고위공무원이나 정치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BBK나 최순실 못지않은 더욱 거대한 부정부패와 비리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일선 창구에서 봉투를 건내는 것이 불가능해진 이후 인니 공무원들은 민원인보다 더욱 철저히 자기들 중심으로 일처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추궁당하는 것은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 급하면 미리 시작했으면 될 일 아니에요? 게다가 kitas 연장은 만료일 1개월 전에 연장신청서를 창구에 넣어야 하는 거에요. 지금 며칠인데 이제 와서 신청하면서 뭘 빨리 해달라는 거에요?"

3층 창구에서 온갖 브로코들을 응대하고 있던 40대 초반쯤의 질밥을 쓴 여자가 내게 화를 내며 그렇게 소리질러 댑니다. 3층 홀을 가득 매운 브로커들 앞에서, 그것도 직접 수속하겠다고 온 외국인에게 말입니다. 그건 그 여자가 꼭 나쁜 사람이라거나 내 서류에 큰 하자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1개월 전  연장 신청해야 한다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 규정이 발효되어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갑질을 하다보니 튀어나온 새빨간 거짓말일 뿐입니다. 누구도 한달 전에 kitas 연장신청서를 넣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녀가 그런 식으로 부당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강변입니다. 자기들은 절대 틀릴 리 없는데 서류수속이 늦는다고 그걸 자기에게 따지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죠. 봉투도 내밀지 않고 창구에서 공개적으로 빠른 수속을 요구한다고 해서 절대 그 수속시간이 앞당겨지지 않는 법입니다. 오히려 미운 털이라도 박히지 않은면 정말 다행입니다. 인도네시아 이민국에서는 말입니다.

오후 1시반이 넘어 다시 찾아온 이민국 3층엔 아리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바쁜 공무나 회의가 있어 외출한 것인지 또는 어딘가 사우나에서 느긋하게 마사지를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 만만한 업체를 찾아가 탁자에 두 발을 올리고 앉아 돈을 뜯고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또다시 하염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기다리자 반대편 창구의 여직원이 날 불러 용건을 묻더니 서류를 뒤져 내 아내의 파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담당인지 그 수속절차가 어떻게 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그래서 당연히 어떤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몸으로 떼우다 보면 부담스러워진 공무원 누구 한 명쯤은  신경을 쓰게 되고 내키지 않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수속을 해보려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20분쯤 후 그.여직원이 내게 내민 서류는 아내의 오버스테이 벌금 금액이 적힌 청구서입니다. 기가 막혔슴니다.

오버스테이 벌금청구서


내가 오래동안 3층에서 죽치며 아리스를 기다린 이유는 그 오버스테이 판정이 부당하고 그 부당성을 증명할 모든 증거서류들을 내가 가지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으까요. 하지만 그 설명을 들은 창구직원은 어깨를 들썩해 보입니다.

"오버스테이 판정을 메모해서 보낸 건 우리가 아니에요. 2층 창구에서 그렇게 적어 보냈으니 우린 그에 따라 조치할 뿐이라고요. 게다가 이미 이 청구서가 시스템에 등록되었으니 이젠 어쩔 수 없어요. 일단 돈을 내시고 그 다음에 2층에 항의하라고요."

내가 2주전  kitas만료일을 정정한 게 바로 그 2층 창구인데 거기서 오버스테이  판정을 해 놓고 나보고 직접 3층에서 돈을 내든 설득을 하든 쇼부를 보라 한 겁니다. 내가 2층에서 상황을 묻고 만료일 관련 얘기를 했을 때 자기들 잘못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분명히 알았을 텐데 자기들이 얼미든지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민원인이 포기하거나 또는 돈으로 책임지도록 만드는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며, 설령 그 잘못이 명백하다 하더라도 민원인이 어찌어찌 시간과 상황에 쫒겨 돈으로 해결해 결과적으로 상관에게 자기 실수를 들키지 않기를 바리는 것이죠. 물론 내가 그냥 그걸 넘어갈 리 없습니다. 그냥 넘어가고 돈으로 떼워야 만사 매끄럽고 빨라지는데 말입니다. 내가 Kitas 만료일 정정 사실을 설명하자 창구 직원은 여전히 뚱한 표정입니다.

"민료일은 정정되어 있군요. 그런데 이거 연장신청할 때 만료일 정정한 걸 여기 창구직원에게 설명했나요?"

그 신청은 내 직원이 했으니 그가 뭐라 말하며 신청서를 넣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만료일이 이미 정정되었다는 얘기는 그 직원에게 미리 말해 두었으니 직원으로서는 다 해결된 문제라 생각하고 특별한 설명없이 접수시켰을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요? 기본적으로 내 부양인인 아내의 kitas 만료일이 내 것과 틀린 것이 분명 이상해 보일 것이고 그럼에도 오버스테이로 의심되면 자기들 시스템에서 확인해야 할 사안일 텐데 접수하여 수속하면서 그런 단계들을 그냥 뛰어넘은 창구직원들은 근무를 태만히 한 것이라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무원들은 뭔가 잘못을 저지를 리 없는 고귀한 인간들이란 전제는 여전히 유효해, 창구직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루에 처리하는 서류가 몇 명 분인 것 같아요? 접수할 때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우린 접수된 서류대로 처리할 뿐이라고요!"

모든 건 신청인들의 잘못이란 것이죠. 게다가 그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시스템에 입력된 것이니 이젠 어쩔 수 없어요. 일단 그 오버스테이 벌금을 내고 다시 오세요."

그 온갖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kitas 만료일을 먼저 수정한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보통의 경우라면 공무원들 위신을 봐서라도 지는 척 하겠는데 그런 사유로 내가 생돈을 내서 그들의 치부를 가려줘야 한다면 예전 이민국 직원들에게 온갖 말도 안되는 막무가내 이유로 돈을 뜯기던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참고 지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이거 보세요. Kitas에 날짜 기재가 잘못된 건 내가 그렇게 쓴 게 아니에요. 여기 담당자 실수잖아요. 그리고 그 실수를 그냥 놔둔 것도 아니고 2주 전에 다 정정완료했잖아요. 그걸 비교확인하지 않은 건도 내 잘못이 아니에요. 그 확인이 가능한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건 이민국 담당자였잖아요? 결국 내 잘못은 하나도 없이 모두 이민국에서 담당자 실수로 벌어진 일인데 왜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합니까? 내 잘못이 없다는 걸 나도 알고 당신도 아는데 왜 내가 벌금을 내요? 오히려 그 이상한 시스템을 고쳐야 하지 않아요?"

담당자 얼굴이 시뻘겋게 변합니다. 물론 자기 잘못을 지적당하면 오기를 부리며 화를 내는 건 비단 인니공무원들 만이 아닙니다. 화사에서도 그런 직원들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왜 굳이 사람들 앞에서 사람을 망신 주시는 겁니까? 따로 불러서 혼낼 수도 있는 일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놈은 따로 불러 혼내도 흥분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보는 눈이 없으니 더욱 못된 짓을 할 수도 있죠. 그는 남 보는 앞에서 지적당해서 화가 난 게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지적당하는 것 자체가 싫은 겁니다. 이민국 담당자는 다행히도 그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의 메카니즘은 크게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상관한테 물어볼게요. 그런데 이분이 외출하셨네.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려 보세요."

멀쩡한 외국인이 유창한 인도네시아 말로 그렇게 항의했다는 사실이 그 친구들에게도 큰 압박이었을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전에 이어 오후내내 동행하면서 대기실에 앉아있던 아내의 표정이 곱지 않습니다.

'화상아. 직접 수속하겠다더니 이게 뭐냐? 돈 좀 제대로 벌어서 우리도 브로커 쓰자!!"

아내는 아무 말도 안하는데 그런 텔레파시가 내 머리에 곧장 수신됩니다. 사실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아내에게 무턱대고 끝까지 기다리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아내가 먼저 내 차를 몰고 돌아가고 나 혼자 대기실에서 한 시간 가량 기다린 끝에야 그날 투쟁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버스테이 했다는 기록에 녹색 싸인펜으로 부서장 서명과 함께 OK란 메모가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2층 창구에 신청접수증 넣으면 번호를 받아 사진촬영, 지문날인 한 후 이런 서류를 줍니다.

중간접수증이라 칭합시다. 오버스테이(OS) 3일에 줄이 그어지고 ok 사인이 났습니다.


이 중간접수증을 경리창구에 가져가면 이렇게 세팅해 줍니다.

이제 이걸 가지고 국영은행에 가서 수속비를 입금시키면 됩니다.



"원하시면 지금 사진 찍으시면 됩니다."

창구 직원은 그렇게 말하지만 사진을 찍어야 할 내 아내는 이미 집으로 돌아간 후였어요. 때는 금요일 오후. 결국 사진촬영과 지문날인은 월요일로 미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Kitas 용 사진활영과 지문날인을 위해 이틀을 연속으로 이민국에 오는 초유의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사진촬영, 지문날인의 수속을 마치고 나면 다시 은행에 가서 수속비 1인당 205만5천 루피아씩을 내고 입금증을 포함한 서류 일체를 다시 이민국 경리 창구에 넣고 거기서 받은 서류를 다시 접수창구로....그런 수속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겁니다.

중간접수증을 가지고 국영은행에 가서 비용을 치르면 이런 영수증이 나오고


은행에서 받은 영수증을 다시 이민국 경리창구에 넣으면 이 서류를 만들어 주는데 다시 2층 장구에 가서 이 서류를 제출하면 오른쪽 위에 KITAS 발급일을 적어 주므로 최종접수증으로 보면 됩니다.



월요일날 이민국에서 또 딴소리를 하진 않겠죠.

결국 거의 끝까지 왔지만 난 진이 다 빠지고 말았습니다.

2017. 8. 21.

동부자바 말랑(Malang)의 이민국에서 민원인들에게 막무가내로 돈 뜯는 행위 (Pungutan Liar = Pungli)에 대한 전쟁선포식을 갖는 장면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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