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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 시사회

beautician 2017. 8. 20. 10:00

 

 

2017년 8월 9일(수) 자카르타 중심부 그랜드 인도네시아 몰 6층의 CGV Cinemas 영화관에서 군함도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CJ CGV 지점장이 바뀌고 처음 있었던 시사회였고, 그래서인지 교민사회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원래 시사회의 목적이라는 게 저명한 인사들과 언론들, 파워블로거들을 초청해 시사회를 하나의 이벤트로 삼아 언론과 SNS, 그리고 입소문을 통해 영화를 홍보하려는 마케팅 활동의 일환인 것이죠. 그 시사회를 9일날 보고서 개봉일인 8월 16일을 지나 감상문을 올리는 것은 주최측에게 좀 미안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먹고 살려 애쓰다 보니 늦어진 일, 굳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뭐 배째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 8월 15일 한국의 광복절과 8월 17일 인도네시아의 독립기념일 사이인 8월 16일 군함도를 개봉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노림수나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본은 아직도 저게 정말 사람될까 싶은 언행을 반복하고 있는데 우리 역시 할 말을 해야 마땅한 상황에 일제시대 징용과 위안부 징발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그 탄탄한 시나리오와 쟁쟁한 출연진, 그리고 실감나는 연기와 물량투여 등으로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춘, 꼭 볼 만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긴장감 넘치게 전개되어가던 영화가 후반부의 전투장면에서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관객들의 호흡을 놓친 것은 옥의 티라 하겠습니다.  

 

공교로운 일이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데자뷰처럼 떠오른 것은 헐리웃 영화인 혹성탈출, 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 였습니다. 군함도에 등장하는 한국인 순사, 고상한 척 하는 민족반역자, 그 밑바닥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일본 앞잡이 한국인들의 초상이 혹성탈출의 전편에서 유인원들의 지도자 시저에게 반기를 들었던 코바의 부하들, 즉 이번 마지막 시퀄에서 Donkey(당나귀)로 불리며 인간들의 편에 서서 유인원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배신자 고릴라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본국 스크린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큰 호응을 얻었던 암살, 밀정 같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독립군들의 활동을 그렸던 영화에서 민족반역자들이 철저한 응징을 받았던 것은  우리의 현실에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민족의 피를 팔아 자기 배만 채웠던 그들이 아무런 응징도 받지 않은 채  어느새 미군들 곁에 서서 짐짓 반공의 깃발을 휘두르며 독립군들과 애국지사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던 사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사실 일본이 패망한 후 한국이 광복절을 맞았을 뿐 독립기념일을 맞지 못햇던 것은 그들을 앞세운 일본군이 한반도 내의 독립군들의 씨를 철저히 말렸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1919년 3.1 운동 당시 당당히 독립성명서를 낭독하던 기개를 가진 사람들은 상해로, 만주로, 연해주 같은 국외로 내몰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는 1945년 8월 17일 수까르노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광복을 맞고서도 그 누구도 독립선언서 낭독을 커녕 패망하고서도 서슬퍼런 군세를 유지하고 있던 일본군의 눈치를 봐야만 했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의 한 대목에서 등장하던 촛불들을 보면서 작년말 광화문 광장을 십 수 주동안 수놓았던 촛불집회를 떠올리며 감회를 새롭게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같은 이유로 이 영화를 좌파들의 영화라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민족적 수탈을 당하던 시대를 영화를 통해 목도하면서 이데올로기를 떠올리며 거기서도 좌우를 나누고 진보와 보수를 얘기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오래동안 앓아왔던 병의 후유증일 것입니다. 

 

물론 그 날도 좌파 운운하는 얘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좌석 탓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내 좌석은 F열 1번. 비행기 좌석표가 A번이면 좌측이든 우측이든 분명히 창가임을 알 수 있는 것처럼 1번이라면 한쪽 끝입니다.

 

 

 

그러니 화면은 내 좌석에서 왼쪽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고요.

 

 

 

이렇게 말입니다.

 

 

이 영화는 그래서 좌파영화가 맞긴 한데 영화관 왼쪽에 앉은 분들에게는 우파영화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인도네시아 전국 cgv 영화관에서 상영되기 시작한 이 영화가 아무쪼록 비단 한국인들뿐 아니라 현지인들이나 현지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끌어 일제시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그들에게도 전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화 스크린에 나타난 모습들뿐 아니라 책이나 다른 매체들을 통해 접하게 되는 독립군들,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그들이 정말 보통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절망스러운 시절에 저 멀리 보이는 단 한가닥 희미한 불빛에 목숨과 인생과 그 모든 것을 걸고 투지와 신념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 변절하느니 고통과 고문과 모욕은 물론 죽음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였던 그 초연함, 난 아마도 저럴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새삼 존경스러움과, 그러나 우리들 개인은 물론 국가조차 그들과 그 후손들을 그 오랜 세월동안 홀대해 왔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2017. 8.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