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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요 칼럼] 윤문이란?

beautician 2017. 2. 7. 10:00
글쓰기 윤문 작업이 어려운 이유
최병요 · 06/17/2014 02:48PM
 
 
 
 
저널리스트, 대한언론 편집위원, 더 저널아카데미 대표
 
문(潤文)이라고 하면 언뜻 이해하지 못하고 흔히 ‘아마 글을 각색해서 잘 다듬는 일’ 정도로 이해한다. 
 
윤문은 그렇게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사전적 의미는 ‘글을 다듬고 고침’이지만 윤문은 남이 쓴 글을 쓴 사람의 수준에 맞춰 어느 계층의 독자든 납득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글로 거의 완벽하게 재창조하는 행위다.
 
따라서 윤문을 입에 담으려면 글 쓰는 기술은 물론 저자의 문문(文紋)과 대상 독자의 수준을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혹자가 회고록 윤문을 의뢰했다. ‘대강 맞춤법이나 봐 달라’ 는 주문이었다(완벽한 글이라고 내세우는 사람의 글일수록 흠이 많아 애를 먹는다).  
 
꽤 열심을 다해 쓴 글이었지만 출판하기엔 한참 부족해 우선 문장 구조부터 잡아나갔다. 결과를 보여줬더니 ‘고친 게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며 의기양양했다. 그래서 원문과 새빨갛게 고친 부분을 대조시켜주었더니 얼굴이 빨개졌다.

윤문이란 그런 것이다. 정작 저자조차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원문의 의도와 작문습관을 살려주면서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다.
 
어느 분의 자서전을 윤문하는데 오스트리아 여행담이 나왔다. 린쯔에 있는 ‘포스트 알파인’사를 방문해서 많은 정보를 획득했다는 자랑이었다. 저자에게 물었다. ‘혹 제철회사 푀스트 알피네 사 아닙니까?’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아니, 그런 오지에 있는 낯선 회사의 이름까지 다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 윤문을 하려면 천문 지리 역사 문학은 물론 철학 종교학 심리학 언어학까지 두루 견식을 갖추지 않고서는 어렵다. 외국어도 영어는 물론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히브리어 스페인어 아랍어까지 알만큼은 알아야 한다. 심지어 식물학 동물학 풍수지리에 대한 개념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남의 글을 윤문할 수 있다.
 
글줄이나 쓸 줄 안다고 아무나 누구든 손쉽게 돈벌이나 심심풀이로 하는 줄 잘 못 알고 있는 저자들은 비용의 과다함을 못마땅해 한다. 한번은 사서삼경을 통달했다는 분의 어렵기만 한 글을 대했다.

7세 때 이미 대학과 논어를 독파한 필자가 불문곡직 오류를 지적하자 언짢아  했지만 비용을 깎아달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오자탈자나 잡아주는 교정이면 충분하지 꼭 윤문이 필요하냐고 대놓고 질문하는 분이 있다. 그럴 때 하는 얘기가 있다. ‘일회용 카메라로 찍어도 사진 웬만큼 나온다. 그러나 고감도 디지털 카메라로 찍는 사진과는 다르다. 온 가족의 기념사진을 일회용 카메라로 찍을 수야 없지 않느냐’ 고.

너도 나도 윤문작가로 나서는 사람을 보면 좀 위태롭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