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출판

막스 하벨라르와 시티 누르바야

beautician 2019. 7. 9. 10:00
 



8월 10일엔 <막스하벨라르> 한국어 완역본 출판기념회가 자카르타에서 열립니다. 양승윤교수님과 시와진실사의 기획으로 2016년 태동한 이 번역 프로젝트가 올해 7월 중순 한국에서 마침내 인쇄 완료될 예정인데 그 출판기념회 장소가 굳이 자카르타로 잡힌 건 책의 배경이 네덜란드 식민지시대의 인도네시아 즉 동인도일 뿐 아니라 번역팀에 참여한 두 사람이 인도네시아에 산다는 것을 배려했기 때문입니다. 2017년 5월에 넘긴 초벌번역이 2년 남짓 지나 대충 잊을 만할 때에 마침내 책이 되어 나온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다음 번역할 책이 정해진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입니다. 식민정부 관리출신 네덜란드인 물타뚤리가 쓴 <막스하벨라르>가 현지 귀족들와 네덜란드 식민정부가 결탁한 결과물인 폭력과 착취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당시 자바에 수 차례 인위적 기근을 몰고온 강제경작제도를 마침내 종식시키고 현대사회에서도 세계 공정무역의 기반이 되었던 것처럼 미낭카바우 작가 마라 루슬리가 1926년 출간한 <시티 누르바야>는 문학사적 의미가 큰 소설로 수많은 나라에 번역본이 소개된 작품입니다.  식민지시대 배경 소설을 연달아 번역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굳이 상업적 목적을 쫓는 게 아닌 만큼 두 번 째까지는 근대배경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 근 세기의 인도네시아를 역사적 저변으로 훑고 올라가며 인상적으로 소개하는 한 방식이 될 거라 보입니다.

얼마 전 인니어본을 구한 후 싱가폴의 딸에게 부탁해 아마존에 영어번역본을 주문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명색이 작가, 소설가이면서도 번역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에 대해 <막스 하벨라르> 당시에는 일말의 자괴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도 창작활동을 하지 않을 때면 상당 기간 번역으로 소일했다는 얘기를 알게 된 후 가벼운 마음으로 번역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집필활동이 아직 먹고사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아직 해가 떠 있는  시간엔 사기꾼들이 판치며 무리한 요구와 욕설이 난무하는 험한 세상에 좀더 몸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내가 경험해 본 자칭 작가들의 세계도 그리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하긴, 인생이 꼭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쨋든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거겠죠.(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