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한인뉴스 연재] 2017년 2월호 - 집단빙의 본문
[한인뉴스 2월호에 연재]
인도네시아의 흑마술은 현지교민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 또는 가정부, 운전수, 직원들 같은 현지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귀신얘기 역시 문화가 다르다 보니 피부에 확 와닿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금시초문의 시커먼 동남아 연예인들에게 열광하기 힘든 것처럼 문화적, 정서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니 뽀쫑이나 뚜율이 왜 나타나 뭘하려는 귀신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무서워하기엔 좀 뻘쭘하죠. 때로는 저게 정말 귀신일까 싶기도 하죠. 하지만 끄수루빤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빙의현상을 인도네시아어로는‘끄수루빤’(Kesurupan) 또는‘끄라수깐’(Kerasukan)이라 해요.
귀신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와 그 사람을 지배하거나 일정한 영향을 끼치는 현상 말입니다. 대체로 모든 정령들과 귀신들 종류대로 여러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인도네시아이니 끄수루빤에 대한 영화들도 당연히 많습니다. 물론 엑소시스트 같은 명작과는 비할 바 아니지만요.
그런 것을 절대 믿지 않는 분들도 물론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빙의현상, 특히 집단빙의현상인 끄수루빤마쌀(Kesurupan Massal)은 한국기업들의 본격적인 인도네시아 진출이 시작되던 1980년대 후 반부터 이미 교민들의 일상과 맞닿는 사건이 되어 다가오곤 했습니다. 한국 공장들에서 벌어진 집단빙의 현상에 대한 현지 신문기사를 뽑아 보았습니다.
Belasan buruh pabrik di Purbalingga kesurupan, minta mawar putih
뿌르발링가 공장직원 수십명 집단빙의. 흰장미 요구해. 2014. 10. 8.
Merdeka.com 중부자바 뿌르발링가의 한 가발공장에서 직원 수십명이 집단빙의 되었다. 이 사건으로 깐당감빵면에 소재한 이 공장은 조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15명이 집단빙의된 인도코레스 공장의이 사건은 니팅부서의 한 여직원이 갑자기 발작적으로 비명을 지르더니 큰 소리로 통곡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회사의 경비원인 마스리꾼은 다른 직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최소한 10명 이상의 다른 직원들도 같이 빙의되고 말았어요” 라고 그는 지난 수요일 말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침 9시였다. 사건이 발생하자 회사측은 곧바로 종교지도자와 울라마를 모셔오면서 빙의현상을 일으켰던 몇몇 직원들은 안정을 되찾는 듯 했으나 다른 몇몇이 또 다시 빙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빙의된 직원들 중 일부는 그들을 진정시키려던 울라마에게 흰 장미를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게도했고 또 다른 한 여직원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행동을 하기도 했다.
집단빙의현상이 극복된 것은 오전 11시반이 지난 후였고 회사는 빙의현상을 겪은 직원들을 모두 귀가시켰다.
인도코레스의 김이사는 직원들 사이에 이런 현상이 확산되는 것을 처음 보아 크게 충격을 받았음을 인정했고 이 사건에 대한 커멘트는 진정된 후에 하겠다고 말했다. 불미스러운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회사 측은 이날 직원들을 모두 조기 귀가시켰다.
(출처 http://www.merdeka.com/peristiwa/belasanburuh-pabrik-di-purbalingga-kesurupan-mintamawar-putih.html)
인도네시아의 귀신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리 공장에서 발생한 귀신사건 때문이었다.
이 얘기의 시작은 공장 작업장에서 일하던 미싱공 한명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실신하면서부터다. 당시 주변 사람들 증언에 따르면 초졸 학력밖에 안되는 이 미싱공이 실신한 상태에서 화란어를 중얼거리더라는 것이다. 그런 소문에 종업원들 사이에 퍼지면서 공장은 패닉상태에 빠졌고 종업원들이 수십명씩 동시에 귀신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기절하는 사태가 잇따랐는데 이는 옛날 이 지역에 있던 화란인들과 중국인들의 공동묘지터 위에 공
장이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에 처음 입주할 때 적절한 이슬람식 축복의식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종업원들이 본 귀신들은 대개 공장 벽면에 달린 회전식 선풍기 위에 붙어 납짝하게 쭈구리고 앉아 새빨간 눈을 부라리며 사람들을 노려보았다고 하며 때로는 직원들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흐늘거리며 지나갔다고도 전한다. 그 와중에 강제귀가시켰던 한 창고직원은 흐리멍텅한 눈에 침을 마구 흘리며 창고 한 구석이 자기 집이라면서 자꾸 기어들어가는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공장은 공포 속에 침몰해 가동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목사님을 불러와 기도회도 갖고 울라마 (Ulama)를 청빙해 이슬람식 의식을 갖기도 하고 급기야 두꾼을 불러 검은 염소의 머리와 다리를 잘라 여자화장실 타일바닥 밑에 묻고 피를 주변에 뿌리는 축신술을 한 후에야 비로소 귀신사건은 어느 정도 잠잠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장이 가까스로 완전 정상화된 것은 귀신을 봤다는 직원들을 순차적으로 전원 퇴직시킨 후였다.
귀신이라는 존재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장가동 같은 경제활동을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현실적 위협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사무실의 어두컴컴한 복도와 그 뒤의 새카만 사무실 공간이 그 당시처럼 으시시했던 적이 없다. 화장실을 가게 되면 세면대 앞에 붙어있는 거울에 존재할 리 없는 무언가가 비칠 듯 했고 집에 돌아가서도 화장실의 조그만 창문 뒤로 그 높이엔 절대 있을 수 없는 산발한 사람 머리 하나가 불쑥 떠오를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출처 - http://blog.daum.net/dons_indonesia/20)
이상은 내가 근무했던 북부 자카르타 짜꿍 (Cakung) 보세공단 소재 봉제공장에서 1994년 도에 발생했던 단체빙의사건에 대해 그로부터 몇년 후 써두었던 글의 일부입니다.
당시의 이 사건도 앞서 세 개의 신문기사에서 보았던 것과 거의 같은 패턴으로 진행됩니다. 단지이 사건이 며칠간의 조기퇴근이나 조업중단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빙의사례자들 전원의 퇴출로 이어졌으므로 아무도 해피엔딩을 맞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런 후 이 공장에서는 두 번 다시 단체빙의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공장들과 작업장에서 이런 집단빙의현상이 매년 발생하고 있지만 기업 이미지의 실추를 우려하는 사측에서는 최선을 다해 사건을 은폐하고 직원들 입을 단속하므로 우리들 귀엔 이런사건들이 대체로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상 소개한 사례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셈입니다. 집단빙의는 비단 인력집약적 공장에서뿐 아니라 콩나물시루 같은 각급 학교들과 많은 인원들이 동원되는 특정 종교행사 같은 곳에서도 곧잘 발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사례들에서 대충 눈치챈 것과 같이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집단빙의현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빙의, 귀신에 홀리거나 귀신에 씌이는 현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영화나 실례에서 보듯 빙의는 개인이 생명의 기로에 설 때가지 반복되고 집요하게 지속되며 때로는 악화되어 심지어 파국에 이르기도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집단빙의현상은 다분히 일관성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물론, 악령에게 빙의되면 영화 엑소시스트의 어린 리건(Regan)처럼 누구나 다 360도 목이 회전하거나 몸을 브릿지상태로 뒤집어 거미처럼 냅다 달리거나 악취 풍기는 녹색슬 라임을 물대포 쏘듯 뿜어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한편 빙의된 상태에서 내뱉는 말들이 정확한 발음으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실신한 사람이 화란어로 말했다거나 중국어를 구사했다는 부분은 좀처럼 신뢰하기 힘듭니다. 그렇게 보고하는 사람 자체가 중국어나 화란어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거니와 끄수루 빤 되었다는 현지인들은 대개 끊임없이 비명을 지르며 뭔가를 중얼거리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게 보통이거든요.
개콘코너 중 ‘민상토론’을 보세요. 유민상이나 김대성이 무슨 말을 하든 김영진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로 듣고, 자기 맘대로 그렇게 믿고, 자기 멋대로 그렇게 밀어 붙이잖아요. 한번 그렇게 암시를 주고 나면 그렇게 들리기 마련입니다.
역시 개콘의 옛날 음악개그코너에서 무대 위의 박성호가 팝송 가사가 나오기 전 한국어로 암시를 주면‘All by Myself’도‘오빠만세’로 들리는 것처럼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각양각색의 외국어와 방언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는 사도행전의 기사는 익히 들어 알고 있
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귀신들의 찰진 외국어 구사능력과 국제화 수준은 아직 검증된 바가 없어 대략 민상토론식의 맥락이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 합니다. 그러니 빙의된 현지 종업원이 한국말을 중얼거렸다는 대목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켜 보려는 기자의 패기가 일견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빙의된 현지인이 분명한 한국어를 구사했다는 다른 에피소드를 좀 더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적도 있습니다.
2008년의 일입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후배로부터 그의 찌까랑 공장에서 벌어진 빙의사건 얘기를 들었습니다.
작업 중 졸도해 쓰러진 종업원이 잠꼬대 속에서누구랑 대판 싸우기라도 하듯 높은 톤의 중얼거림엔 영어가 섞여 있었고 곧이어 유창한 만다린 중국어가 튀어나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20대 초반 빈민층 여종업원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언어능력 이었죠.
이 후배가 겪은 사건은 내가 짜꿍 KBN 공단에서 겪었던 사건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어요. 첫 실신자를 곧바로 귀가시켰고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다른 종업원들을 재빨리 정리하면서 확산을 막았으니까요. 그러나 처음 실신했던 그 여직원이 보인 행동은 조금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강제귀가 직전, 제 한 몸 가누지 못해 휘청거리면서도 경비원들을 다 뿌리치고 막무가내로 법인장실에 들어선 그녀가 뭔가 씌인 게 분명한 산란한 눈초리로내 후배를 노려보며 하는 첫 마디가 이랬답니다.
“야, 박00, 내가 너랑 할 말 있는데…” 분명한 한국말로 말이죠. ….허걱! 난 온 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출처 - http://blog.daum.net/dons_indonesia/3)
대개의 경우 집단빙의 현상이란 어쩌면 귀신의 조화라기보다 자기 암시를 통해 필연적으로 증폭되어 버린 공포심,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군중심리까지 겹쳐진 뭔가 복잡미묘한, 그러나 대체로 과학적으로 설명가능한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찌까랑 후배의 경우와 같이 귀신이라고 믿어질 만한 어떤 존재가 자기 코앞까지 정면으로 달려든다면 생각이 많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물론, 그 얘기가 뻥이 아니었다면 말입니다.
아무튼 ‘빙의’란 것은 논란이 많은 화두임이 분명합니다. 한 소녀가 실제로 악마에게 빙의되어 기괴하고 처참하게 변해가는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 ‘엑소시스트’가 전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 1973년의 일이었는데 1978년엔 독일에서 벌어진 카톨릭 퇴마의식이 세간에 보도되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가 되었습니다. 1976년부터 3년간 행해진 이 퇴마의식은 당시 서구사회에서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에밀리 로즈의 엑소시즘’(The Exorcism of Emily Rose) 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영화화되어 당시 사건을 대형 스크린에 다시 구현해 냈습니다. 그 영화에서는 아름다웠던 아넬리즈 미셀의 빙의현상과 퇴마의식의 디테일들을 그 후 벌어진 법정공방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인니 민속과 주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뻴렛주술] 뻴렛주술에 걸렸는지 여부 판별법 (0) | 2017.04.06 |
---|---|
[뻴렛주술] 뻴렛주술의 종류 (2) | 2017.04.05 |
[뻴렛주술] 인도네시아 주술의 종류 (0) | 2017.04.04 |
[한인뉴스 연재] 집단빙의-2 (0) | 2017.03.07 |
[괴담]귀신 출몰하는 자카르타 시내 고층빌딩 (0) | 2016.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