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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귀신 출몰하는 자카르타 시내 고층빌딩

beautician 2016. 9. 22. 00:03


 



사무실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새로운 사무실을 찾아 나서야 했던 작년, 마침 시내 M.T.Haryono 거리에 있는 머나라 사이다 (Menara Saidah – 사이다 타워)라는 건물이 귀신소동으로 비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혹시 귀신 나오는 건물이라면 임대료가 엄청 쌀 것이라는 기대감에 입주상담을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하리요노 (M.T.Haryono) 거리는 코린도 사옥이 있는 큰 길로 사냥꾼 동상이 있는 사거리에서 가똣 수브로또(Gatot Subroto) 거리와 연결되는데 코린도 건물에서 짜왕 방면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빌딩입니다.

 

하지만 2007년부터 비어 있던 이 건물은 더 이상 사무실 임대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언제일지 확정되진 않았지만 건물을 허물고 뭔가 다른 것을 지을 계획이 세워져 있는 모양이었는데 분명한 것은 대로변의 멀쩡한 고층건물을 허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누군가 엄청난 손해를 보았을 것이란 점이었죠. 물론 내가 그 건물에 입주해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곳 입주자들을 내쫓고 건물을 차지해 버린 귀신들과 과연 사이 좋게 지낼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오래 전 모든 입주자들이 빠져나간 코린도 건물 5층에 혼자 작은 사무실을 임대하고 있던 당시에도 경비원들이 은밀히 수근거리던 5층 귀신들과 2년 넘게 별탈 없이 지냈던 경력이 있습니다.

 

머나라 사이다 건물이 흉가가 되어 버린 것은 경제적으로 무척 아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의 첫 인상은 옛날 헐리웃 영화인 고스트버스터스(Ghost Busters)에서 야차들이 지옥문을 열려 하던 건물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는 게 내 첫 인상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혹자들은 이 건물이 음기가 강한 무덤터 위에 지어져 귀신들이 빈번히 출몰한다고 얘기하지만 사실 지금도 수십억의 인구가 지구상 위에 살고 있고 수백, 수천만년 동안 그 몇 배 숫자의 인류가 죽어 묻힌 것이 사실인데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이 무덤터 아니었던 곳이 얼마나 되겠어요?

 

머나라 사이다의 괴담은 밤늦게 한 여자가 건물 로비에 들어서면서 시작됩니다.

빨간 색 옷을 입고 있었다는 그 아름다운 여인은 건물 경비원에게 14층에 근무하는 친구를 데리러 왔다고 말합니다. 보통은 통과시켜 주면 끝났을 상황이었지만 경비원은 여인의 아름다움에 끌렸는지 14층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과잉친절을 베풀지요. 그들은 함께 승강기에 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그래서 불평해 왔던 일이지만 머니라 사이다의 승강기는 애당초 디자인 했던 것과 달리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14층으로 올라가던 승강기가 10층 쯤에서 갑자기 정지하고 문이 열렸습니다. 아무도 없는 10층엔 어둠만이 있을 뿐이었어요. 문이 닫히고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 승강기가 14층에서 멈췄을 때 여인을 안내하려 고개를 돌리던 경비원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그 여인이 감쪽같이 증발해 버렸던 것입니다.  14층은 10층과 마찬가지로 어둠에 휩싸여 있었는데 10층처럼 조용하지는 않았습니다. 타자기 소리가 (21세기에 타자기라니? 아마도 컴퓨터 자판이나 많이 양보해도 텔렉스 정도 아니었을까요?) 어둠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14층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머리칼이 곤두선 경비원은 공포에 질려 승강기의 잠금 버튼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비명을 질러 댔고요.

 

사실 머나라 사이다에서 귀신이 나타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건물을 임대하고 있던 회사 직원들 중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고 특히 해가 지고 나면 주차장 부근에 걸터앉아 있는 여자귀신을 보았다는 증언도 적지 않았습니다. 입주자들이 공포에 질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모든 입주자들이 철수하고 건물을 폐쇄하게 된 공식적인 원인은 건물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피사의 사탑처럼 말이죠. 그래서 안전성의 문제 때문에 입주자들을 내보내고 건물을 폐쇄했다는 거에요.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머나라 사이다가 귀신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미스터리한 일들이 많이도 벌어지는 나라이고 공장이나 작업현장에서 그런 귀신 문제, 흔히 끄수루빤 (kesurupan)이라 부르는 귀신들린 직원의 발작이나 집단 히스테리 같은 것으로 인해 사업에 치명적 타격을 입거나 심지어 공장문을 닫는 상황까지 치닫는 것을 나도 실제로 여러 번 보고 들은 바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꺼진 머나라 사이다 건물 안에 귀신들이 모여들어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직도 입주자들이 있던 당시,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결국 개선하지 못했던 승강기의 느린 속도는 사실은 옛 무덤터의 수많은 지박령들이 승강기와 그 승객들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는 거지요.

 

지금도 밤늦게 머나라 사이다 앞을 차를 타고 스쳐 지나다 보면 폐허가 된 건물 앞 계단에 걸터 앉아 치렁치렁한 긴 머리칼 틈으로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빨간 옷의 아가씨를 볼 수 있을 지 모릅니다.

 

 

2013. 7. 2.

 



##Menara Saidah 괴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