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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박물관

루방부아야 - 1965년 9월 30일 쿠데타의 흔적

beautician 2016. 8. 6. 10:00


따만미니 앞 따미니 스퀘어 앞길을 지나거나 뽄독거데 몰을 지나 들어가면 그 한 가운데 정도에 루방부아야 전시관이 있습니다.

정식명칭은 공산당 반란 박물관이란 이름을 달고서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점철한 공산당의 발호와 봉기, 반란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1965년 9월 30일 쿠데타에 가장 많은 전시면적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루방부아야야는 아예 해당 쿠데타에 헌정된 것이라 볼 수 있죠. 아이러니한 것은 사실상 이 쿠데타에 공산당이 연루되었거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조작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점이죠. 이 쿠데타의 성격은 한국의 쿠데타들이 그랬듯 군체계와 진급누락에 불만을 품은 소장파들이 군수뇌부와 충돌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여기 서계신 여섯 장성들이 이 쿠데타에서 살해당한 분들이죠. 물론 이 중엔 중위가 한 명 포함되어 있습니다.


맨 오른쪽의 삐에르 뗀데안 중위(죽은 후 대위로 추서됨) 말입니다.


공산당은 그 잔혹함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 쿠데타를 바라보는 시각은 공산당 당수 아이딧의 사주를 받은 당시 수까르노 대통령이 노농적위대를 창설하려 한 것이 그 방아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흐맛 야니 중장을 비롯한 군수뇌부들은 당연히 이를 반대했죠.


그래서 공산당은 폭력을 휘둘렀고


이슬람이 태반인 인도네시아에서 이들은 매우 문란한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성들은 체포되었고


살해되어 폐우물에 유기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진압작전이 시작되었고


수하르토 소장이 진압군을 지휘했습니다.


살해된 장성들의 유해는 수습되어 장갑차를 이용해 묘지로 향했고 


이 사건으로 쇄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수까르노는 마침대 수퍼스마르라는 권력이양서를 수하르토에게 만들어 줍니다.


많은 장성들이 쿠데트군에 연루되었음에도 대통령궁 경호단장 운뚱 대령이 주동자로 처벌된 것은 좀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수하르토가 권력의 중심에 들어섭니다. 이 부조물은 루방부아야의 장성들 동상 받침대에 세겨져 있는 것들입니다.



이 방은 19765년 10월 1일 새벽 루방부아야 지역으로 잡혀온 장성들이 고문당하는 장면을 실물크기로 재현한 디오라마.


왼쪽부터 수쁘랍또 소장, 수또요 준장, 뗀데안 중위


이 분은 빠르만 소장


왼쪽이 수쁘랍또 소장






루방부아야 반대편에 전시관 두 동이 있습니다. 여긴 그 입구.



마디운 사태 당시 사살되는 공산당 당수 무쏘.








루방부아야에서 수습된 수또요 장군의 유해




유해수습을 위해 산소탱크를 맨 군인이 폐우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죽은 지 사흘이 된 장성들의 시신은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습니다.


장갑차를 이용해 발인이 이루어졌습니다.





등뒤에서 총을 맞은 야니 장군


뒷줄 가운데가 아흐맛 야니 장군. 그 우측이 사르워 에디 위보워 장군. PETA 시절


체포되는 수쁘랍또 장군



어깨를 대검에 찔린 M.H.하리요노 장군. 그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살됩니다.


S.빠르만 장군



사살된 빤자이딴 준장





수또요 준장





뗀데안 중위




야니 장군












이들 희생자들에 대한 내용들이 이 전시관에 몇 번씩이나 반복되어 전시되어 있습니다.





2016.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