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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영화검열 시스템 (2018) 본문
인도네시아 영화검열 시스템
(영화제작 100주년보다 빨리 온 인도네시아 영상검열 100주년)
영화진흥위원회 인도네시아 통신원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의 몇몇 지표들은 그 수치가 매우 열악하다 할 수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로컬영화 제작편수입니다. 2017년 118편에 불과했고 2016년의 117편에 비해 겨우 한편 늘어났을 뿐이죠. 올해도 9월까지 63편의 영화개봉이 예정되어 있어 작년 수치를 넘지 못하기 쉽습니다. 또 다른 수치는 스크린 숫자가 불과 1,200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억7천만 명에 육박하는 인도네시아는 인구 1백만 명 당 스크린이 4.8개에 불과하니 한국의 50개, 중국의 30개에 비해 인프라가 너무 작은 거죠. 로컬영화 제작편수와 스크린 숫자는 영화산업에 있어 매우 결정적인 지표여서 최근 인도네시아 관련 당국의 최대 현안은 영화제작환경 개선과 상영관 추가확보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도네시아 영화산업이 2016년 1월부터 해외자본에 개방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장개방 직후 영화산업의 큰 뉴스는 넷플릭스를 위시한 온라인 영화매체들의 대거 진입이었지만 CJ E&M이 발 빠르게 합작영화에 제작비를 투자해 2016년엔 <의사견습생의 바보일기>(Catatan Dodol Calon Doktor)가, 2017년엔 <사탄의 주구>(Pengabdi Setan)가 제작되어 현지 개봉되었습니다. 로맨스 코미디 장르의 첫 영화는 6만 명 정도의 관객을 들이는데 그쳤지만 호러 장르의 두 번째 영화는 420만 명의 관객을 들이면서 2017년 로컬영화 최고 흥행작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올해 부천 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도 <Satan's Slave>라는 제목으로 출품된 바 있었죠. 인도네시아는 백만 관객 돌파가 한국의 천만 관객 돌파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데 2015년까지만 해도 유료관객 100만이 넘는 로컬영화가 평균 2편 쯤 나오다가 2016년부터는 로컬영화 관객들이 크게 늘며 10편 전후의 백만 관객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사탄의 주구>의 420만 관객은 역대 3위에 해당합니다. 제작비 1억7천만 원을 투자해 19억 원 정도를 벌어들였어요.
2018년엔 CJ의 합작영화소식 대신 헐리웃 메이저인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Fox International Production)이 제작비를 투자한 <위로사블랭 212>(Wiro Sableng 212)라는 16세기 배경의 무술영화가 9월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폭스가 CJ를 넘어설지 관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죠. 합작영화들이 잇달아 흥행에 성공해 다른 해외 메이저들의 추가 투자가 이루어지면 인도네시아 영화제작 환경은 분명 더욱 개선될 것입니다.
이들 영화는 영화검열위원회(Lembaga Sensor Film -LSF)의 검열을 거치는데 앞서 언급한 <사탄의 주구>도 여기서 상영 전 검열을 받았습니다. 영화검열위원회 홈페이지에 검열결과가 공지되는데 <사탄의 주구>는 17세 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고 검열비용 약 2만원을 결재했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2017년 흥행작 대부분은 13세 이상 관람가 허가를 받은 작품들이었으니 <사탄의 주구>는 불리한 연령대 판정을 받고서도 매우 선전한 셈입니다.
목적으로 한 모든 영화와 광고영상들을 검열하는데 영화의 주제, 영상, 각 장면, 음향, 번역자막 등을 평가하여 배급 및 공개상영 가능여부를 판정하고 이를 통과한 영상물에 대한 가시청 연령대를 판정합니다. 연령대는 SU(전연령), 13세 이상, 17세 이상, 21세 이상으로 나누어지고 해당 판정내용이 기재된 검열통과확인서를 발급받게 되는 거죠. 검열에 불합격하면 불합격 라벨이 붙어 반려되는데 제작자 또는 영상 소유권자가 수정작업을 거친 후 다시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역시 문화적 차이가 있으니 검열기준에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겠죠? 물론 세계가 점점 좁아지면서 국제기준에 수렴하는 추세이지만 인도네시아는 최대 이슬람 인구를 가진 나라답게 종교적인 부분이 검열기준에 크게 반영됩니다. 그래서 성적 표현영상들은 예전부터 폭넓게 잘려나간 대신 폭력적인 장면들은 대체로 생생히 보여주는 편이었어요. 영화나 광고영상은 아니지만 2000년대 초 발리에서 두 차례 폭탄테러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희생되었을 때 관할경찰이 TV기자회견을 하면서 유류품들과 함께 늘어놓았던 자살폭탄테러범들의 잘려나간 머리들을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선정적인 장면들을 보도나 영화에서 모두 모자이크 처리되기 시작했죠.
인도네시아 영화검열위원회의 검열기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대중에게 폭력, 도박, 마약 및 향정신성, 중독성 약품의 오남용을 부추기는 내용
② 노골적인 포르노그라피
③ 단체간, 부족간, 인종간, 직능간의 반목을 부추기는 내용
④ 종교적 가치를 훼손하거나 조롱하고 더럽히는 내용
⑤ 대중의 법률 위반을 부추기는 내용
⑥ 인류의 품위와 존엄성을 해치는 내용
이 검열기준은 때로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검열위원들의 개인적 신념과 종교적 성향 등이 결정을 크게 좌우할 우려도 엿보입니다. 포르노는 말할 나위도 없고, 인도네시아가 비록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세속국가이지만 이슬람 근본주의 교리가 점차 득세하는 요즘 이슬람에 대한 비난과 모욕을 담은 영화는 상영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해당 감독과 배우들도 개인적 비난과 린치를 당하기 쉽습니다. 비단 영화검열만의 문제가 아닌 게 되는 것이죠.
시청가 연령대를 표시하지 않을 경우 서면경고, 벌금, 상영관 폐쇄, 상영관/배급사 허가취소 등의 행정규제가 뒤따르고 미검열 영상 또는 검열 불합경 영화를 배급, 상영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100억 루피아(약 8억원) 미만 형사처벌을 한다는 조항도 영화산업에 대한 2009년 법령 33호(UU 33/2009)와 영화검열위원회에 대한 2014년 정부명령 18호(PP 18/2014)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영화검열위원회의 준거법이 2009년에 제정되었지만 영화검열위원회의 역사는 네덜란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도네시아에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일 것이고 그때에도 아무 영화나 다 보여주었을 리 없지만 영화검사위원회(Komite Pemeriksa Film)이라는 영화검열 전문기구를 설치한 것이 1916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검열위원회는 2016년 영화검열 100주년 기념식을 갖고 검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은 기념책자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로컬영화제작이 시작된 것은 1926년의 일이고 인도네시아 영화의 날은 1962년에 제정되었죠. 그러니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8년쯤 후에 영화 100주년 기념사업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영화제작보다 영화검열을 먼저 시작했고 이를 잊지 않고 검열 100주년을 기념하는 인도네시아는 어쩌면 제작보다 검열에 더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요즘 인도네시아 영화제작자들에게 자체검열문화(Budaya Sensor Mandiri) 정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영화검열이 영화제작자들의 창의성을 더욱 북돋아 줄 것이라며 영화제작사의 자체검열을 요구하는 영화검열위원회와 관련 전문가들의 주장을 보면 인도네시아 영화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해외자본의 투자유치 못지않게 영화검열위원회의 전향적 마인드 변화가 선제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영화검열위원회는 새로운 문제에 당면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죠. 그것은 넷플릭스와 아마존 비디오로 대변되는 온라인영화 서비스 업체들의 컨텐츠를 어떻게 ‘검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화검열위원회는 상영관용 수입영화들을 빠짐없이 검열하지만 인도네시아인들이 핸드폰으로 받아보는 온라인 서비스 영화들은 그 원본파일이 외국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화들은 과연 영화검열위원회의 검열대상일까요?
또한 국제합작영화가 계속 늘어나면 CJ나 폭스처럼 제작비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나 연출, 무대까지 간여하는 식으로 그 투자형태가 다양해질 텐데 영화검열위원회의 엄격한 가위질은 현재 인도네시아의 작은 시장을 넘어 해외시장 수출까지 바라보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영화를 제작하려 할 것이 틀림없는 외국 투자자들의 투자의지를 북돋을까요? 아니면 감퇴시킬까요?
인도네시아 영화검열위원회가 인도네시아 영화시장 개방 이후 지난 2년 남짓 축적된 이런 질문들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자료
영화검열위원회 홈페이지 (http://lsf.go.id/)
인도네시아의 영화검열 메커니즘(기사)
https://celebrity.okezone.com/read/2018/02/25/206/1864621/mekanisme-sensor-perfilman-indonesia
인도네시아 영화검열 개요와 절차(기사)
http://www.hukumonline.com/klinik/detail/lt57e382ada65e8/kriteria-penyensoran-film-di-indonesia
Filmindonesia 홈페이지(http://filmindonesia.co.kr)
영화진흥위원회 인도네시아 통신원 보고서 - 2017년 인도네시아 영화산업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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