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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끊지 못한 모성 –웨웨곰벨 (Hantu Wewe Gombel) 본문
죽음도 끊지 못한 모성 –웨웨곰벨 (Hantu Wewe Gombel)
한국에도 아이들과 관련된 설화나 괴담들이 많은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아이들, 특히 갓난아기들과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들이 유독 많습니다. 그것은 유산이나 출산중 태아사망율 및 유아사망률이 턱없이 높던 시절 그 참담하고 슬픈 상황을 산모나 산파의 잘못으로 인정하기보다 귀신들의 못된 수작 탓으로 돌리려 했던 선조들의 의지가 그런 이야기들 속에 녹아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갓난아기를 노리는 많은 귀신들 중 빨라식(Palasik) 부류와 꾼띨아낙(Kuntilanak) 부류는 그 목적 자체가 분명히 틀립니다.
앞서 순델볼롱편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빨라식은 쁠레싯(Pelesit)이라고도 불리는데 수마트라 미낭까바우지역의 전설에 그 기초를 둡니다. 깔리만탄의 꾸양(Kuyang)이라 불리는 요물과 같은 계통이라 여겨지는 빨라식은 기본적으로 특별한 흑마술을 시전하는 두꾼이 그 본체입니다. 그는 평소엔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지내지만 밤이면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내장들을 줄줄이 매달고서 공중을 날아다니며 사람 피를 빨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빨라식의 흑마술은 가문의 비전으로서 자녀들에게 물려지며 다른 빨라식 가문의 자녀와 혼인하여 그들이 요물 빨라식이라는 비밀을 지킵니다. 이 빨라식의 주식은 갓난아기들이에요. 빨라식이 아기들을 노리는 이유입니다. 비단 갓난아기뿐 아니라 빨라식은 그 종류에 따라 산모의 뱃속 태아를 뽑아먹어버리는 놈도 있고 출산중 사망한 아기의 무덤을 파고들어가는 놈도 있습니다.
꾼띨아낙도 갓난아기를 산모에게서 빼앗아 오곤 하지만 그 의도는 아기를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꾼띨아낙은 기본적으로 출산 중 사망한 산모의 원혼이에요. 그 무엇보다도 아기의 얼굴을 직접 보지도 못한 것, 그 아기를 단 한 번 품에 안아보지도 못한 채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 원귀가 된 가장 큰 이유죠. 남의 아기를 납치하는 것은 매우 죄질이 나쁜 범죄행위이고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의 아기를 절대 잘 키울 수 없는 일이지만 꾼띨아낙은 분명 그 아기를 자신이 키우려고 데려가는 것입니다.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라고요. 그러니 꾼띨아낙이 빨라식의 난행을 본다면 그걸 가만 둘 리 없습니다.
최근 어벤져스 영화들처럼 별개의 시리즈에서 가져온 두 명의 동떨어진 주인공들을 한꺼번에 등장시켜 서로 대결토록 하는 영화들이 몇 년 전 유행이었고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도네시아에서도 당시 ‘뽀쫑 vs 꾼띨아낙’이라는 심히 실망스러운 스토리의 영화를 내놓은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뽀쫑과 꾼딜아낙은 서로 대결할 만한 사안이 없어요.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특성상 사실은 ‘빨라식 vs 꾼띨아낙’의 구도로 가는 것이 논리적으로 보다 합당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세상이 그렇듯 귀신들의 세계에서도 인지도가 문제가 됩니다. 꾼띨아낙이 인도네시아 전국구 귀신이었음에 비해 빨라식의 위상은 고작 지역구 귀신이었으므로 그 레벨의 차가 너무 컸다는 것이 캐스팅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사족이지만 아기를 납치하는 것도 아니고 면책특권 가진 귀신도 아닌데 남의 집 귀한 아들 딸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귀신들이 이런 인간들 왜 안잡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간들을 반드시 처단할 것만 같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귀신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웨웨곰벨(Wewe Gombel)이라 합니다. 이 귀신을 네네곰벨(Nenek Gombel – 곰벨출신 할머니)이라고도 부릅니다.
순다족 전승에 따르면 거대한 젖가슴을 늘어뜨린 할머니의 모습으로 현신하곤 하는 웨웨곰벨은 아렝가삐나타 야자나무 꼭대기에 살며 납치해온 아이들을 거기서 키운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고 아이들 역시 그녀의 품안에서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녀는 가정에서 학대받거나 관심 밖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주로 납치해 마치 할머니가 손주를 대하듯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호해 주다가 아이들의 부모가 그간의 잘못을 후회하는 시점에 아이들을 부모에게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웨웨곰벨은 말레이 민속에 등장하는 꼬뻭귀신(Hantu Kopek)과 외관상 많은 유사성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 성격과 추구하는 목적은 천양지차이지만 꼬빽귀신의 전설이 바다 건너 인도네시아로 넘어오면서 웨웨곰벨의 전설과 뒤섞여 변형된 듯한 흔적도 보입니다.
꼬빽귀신은 크고 길다란 젖가슴을 가진 할머니로 현신하며 수유하는 엄마의 젖을 빼앗아 완전히 말려버린 후 배를 곯는 아기를 잡아 먹는데 주로 거대한 젖으로 휘감아 질식시켜 죽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면에서 바장귀신(hantu Bajang)과도 유사점을 갖는데 산모의 몸에 남는 임신선이나 배가 불러오면서 살이 트고 갈라지는 것은 바장귀신이 핡퀴고 간 흔적이라고 합니다. 꼬빽귀신으로부터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기 가까이에 뭔가 날카로운 물건을 두어야 하는데 그것은 꾼띨아낙으로부터 태아를 지키기 위해 산모가 날카로운 못이나 바늘, 은장도 같은 것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도 맥락이 닿습니다. 하지만 웨웨곰벨은 절대로 아기를 잡아먹지 않습니다.
웨웨곰벨과 꼬빽귀신 모두 저녁 마그립 기도시간 즈음부터 나타나는데 그래서 땅거미가 드리우기 시작하면 부모들은
‘웨웨곰벨한테
잡혀가기 전에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아이들에게 소리치곤 하죠. 말 안듣는 아이들에게 ‘그리 땡깡부리면 나중에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 든가
보채며 우는 아이들에게 ‘호랑이가 우는 애기들을 물어간단다’라며 얼르며 달래던
옛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밤에 돌아다니는 이런 귀신들의 이야기들은 아직도
산짐승들이나 도적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기에 정신이 팔린 어린 아이들
등을 밀어 빨리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좋은 이유가 되었을 것이고 한편으로 아이들을 모질게 대하는 부모들에게는 경종을 울렸을 것입니다. 최근 발리에서 어린 엔젤리나가 후견인이었던 계모에게
상속권 문제로 참혹하게 살해되어 유기된 사건을 보면서 정말 웨웨곰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또 사족이지만 웨웨곰벨이 길고 거대한 젖가슴을 가진 할머니라는 측면에서 완전변태 일본만화 이나중 탁구부의 키시모토 할머니를 떠올린 건 나 혼자 뿐이었을까요?
아무튼 밤늦게까지 밖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조심해, 웨웨곰벨이 온다!’고 놀래키는 것은 어른들 입장에선 하나도 무섭지 않겠지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넘쳐흐르는 상상력을 가진 어린아이들은 머리 속으로 무시무시한 웨웨곰벨을 떠올리며 무서워 진저리를 치기도 했을 것입니다.
웨웨곰벨에 대해 기술한 자료 하나를 들춰봅시다.
전승에 다르면 웨웨곰벨은 긴 젖가슴을 늘어뜨린 여인으로 묘사되며 높은 나무 위에 처소를 만들어 잡아온 아이를 그곳에 둔다고 합니다. 아이에게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음식이 제공되는데 처음엔 거부하는 아이의 입 속에 억지로 처넣지만 나중엔 아이의 눈에 그 쓰레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보여 허겁지겁 먹어 치우게 됩니다. 그렇게 웨웨곰벨이 주는 음식을 먹은 아이는 어느새 차분해지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조차도 없어지게 됩니다. 아이가 제 정신을 차린다 한들 오금이 저릴 정도의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누가 도와주지 않는 한 밑으로 내려갈 방법도 없습니다.
납치된 아이를 찾기 위해 어른들은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선 동네사람들을 동원해 마을 인근과 귀신이 살만한 아름드리나무들을 뒤지며 수색합니다. 이 수색에는 코코넛과육을 가는 강판이나 땀빠(Tampah)라 불리는 소쿠리 같은 전통주방용품들을 동원해 리듬에 맞춰 벅벅 긁어대거나 땡땡 두들겨 가며 숲속을 헤쳐 나가다 보면. 그 소리를 들은 웨웨곰벨은 나무 위에서 리듬에 맞춰 춤을 추게 되는데 젖가슴 밑에 감춰둔 아이의 모습이 그 와중에 살짝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리를 내는 데에 더 이상의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리듬이 더해져 웨웨곰벨의 춤이 점점 더 격해지면 그 스텝에 밟혀 자칫 나무줄기들이 꺾이고 그 커다란 가슴이 들썩거리며 그 밑에 끼워 두었던 아이가 나무 밑으로 추락할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죠. 납치대응 프로코콜이 참 꼼꼼합니다.
어른들 눈에 띄인 것을 안 웨웨곰벨은 곧바로 자취를 감춥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나 웨웨곰벨은 대적하려 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물리적 위해를 끼치려 하지 않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아이를 되찾았다는 거죠. 납치의 여파로 아이는 혼란을 겪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웨웨곰벨에 대한 공포도 점점 잊게 될 것입니다.
(출처 http://ekoprastowo.com/2013/10/31/hantu-indonesia-wewe-gombel/)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시골주민들에게 웨웨곰벨은 익숙한 존재입니다. 자바의 전승에 따르면 웨웨곰벨은 사람과 닮았지만 무시무시한 어금니와 긴 손톱을 가졌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칼에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셔 곰벨(gombel)이라는 단어는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의미의 ’gembel’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웨웨곰벨의 활동시간은 마그립기도가 끝난 후부터이고 주로 친구나 형제, 부모의 모습으로 나타나 산책을 청하는 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희생자는 자신이 납치당한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런 방법으로 급기야 자기 사는 곳까지 데려가는데 그곳은 수로나 강둑일 수도 있고 무덤이나 수목이 빽빽하게 들어찬 한적한 곳일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에 중부자바 뿌르워레조(Purworejo) 지역에서 아이들이 웨웨곰벨에게 많이 납치되어 그 지역주민들은 아직까지도 당시의 공포를 기억하고 있고 그래서 조금만 오후가 깊어져도 아이들이 밖에서 놀지 못하도록 집안으로 불러 들이곤 합니다. 당시의 일을 주민들을 통해 조사하려 하다가 때마침 웨웨곰벨에게 납치된 물야니(Mulyani)라는 여아를 찾으러 나가는 주민들을 필자도 따라나가게 되었습니다. 물야니가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은 밤 9시경이었고 통장에게 그 사실을 알린 가족들은 그 마을의 한 두꾼으로부터 물야니가 악마에게 잡혀 갔으며 그 악마는 필시 웨웨일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두꾼의 지시에 따라 아이를 찾으러 가는 주민들은 프라이팬, 버켓, 접시, 유리잔, 밥그릇 같은 주방용품들을 가지고 나가 아이를 찾는 내내 그것들을 두드리거나 긁어 소리를 냈습니다. 웨웨는 그런 소리를 무서워해 도망간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웨웨가 도망갈 때 아무쪼록 납치한 아이만은 놔두고 가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진행했을 때 물야니가 빽빽한 숲 속의 높은 나무 위에 있는 것을 마침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말을 못했습니다. 입고 있던 옷은 누더기로 갈아입혀져 있었고 몸 전체에 마른 풀이 엉겨붙어 있었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연 물야니는 자신이 개천에서 멱을 감을 때 엄마가 와서 산책하자 하여 따라나섰는데 어딘가 매우 번잡한 곳을 지난 것까지는 기억하고 그 이후의 기억은 전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민들로서는 그것이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웨웨는 늘 그런 방법으로 아이들을 납치하곤 했으니까요. 웨웨는 형제자매로 변신해 아이를 안심시켜 데려간 후 혼을 빼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거미가 내리기 전에 아이들이 집밖에서 놀지 않도록 하고 해변이나 하천 등 한적한 곳에서 혼자 물놀이를 하거나 쓰레기처리장 같은 곳도 혼자 다니지 않도록 조심시켜야만 합니다.
(출처 : http://www.indospiritual.com/artikel_kisah-wewe-gombel-culik-anak.html)
두 번 째 기사는 약간 주작의 냄새가 나지만 이 두 개의 기사가 묘사하는 웨웨곰벨은 서로 많은 차이점을 보입니다. 지역에 따라 웨웨곰벨에 대한 관념이 틀리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에 산재한 웨웨곰벨들이 개체마다 서로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순델볼롱의 얘기를 해주었던 까라왕 출신 할머니도 웨웨곰벨에 대한 경험담이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아직도 6-7살 때의 일이니 1950년대 말이나 1960대 초쯤이라 봐야 할까요? 모를 심기 위해 물은 대어 놓은 논에서 놀던 아이들은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즐거운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논에서 개구리며 가재를 잡고 있었는데 낮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미꾸라지들이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점점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나중엔 논에 있던 미꾸라지들이 몽땅 다 몰려들었는지 가져온 소쿠리들이 가득찼고 잔뜩 재미가 들린 아이들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미꾸라지 잡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 저거, 저기 누구야?”
그 중 한 아이가 그렇게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잠깐 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 보았습니다. 지는 해가 남긴 강렬한 진홍색 노을을 등지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논 한가운데에서 허리를 숙인 한 여자가 아이들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면서 미꾸라지들을 몰아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자는 아무래도 키가 성인남자들보다 더 커 보였거든요.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논의 진흙바닥을 헤집고 있는 그 여자의 팔은 두 개가 아니라 네 개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저기, 아줌마, 누구세요?”
까라왕 촌구석 작은 마을에 아이들이 모르는 어른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얼굴만 들어 아이들에게 웃어보일 뿐이었습니다. 윤곽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자글자글 주름이 진 할머니인 것만은 틀림없었습니다.
“저, 누구시냐구요?”
그러자 할머니는 힐끗 등 뒤의 노을이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을 돌아보더니 더욱 큰 미소를 지은채 아이들을 바라보며 몸을 세웠습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니?”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논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어떤 아이들은 어느 새 논둑길을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곧추 세운 할머니는 거대하다고 할 만한 큰 키를 하고 있었는데 몸 앞엔 두 개의 커다란 젖가슴이 논바닥에 닿을 듯 늘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논바닥에 넘어졌던 아이들도 허겁지겁 논두렁을 기어올라 마을로 달려가며 웨웨곰벨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질러 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날 밤 모든 마을 사람들이 숲을 뒤져야 했던 것은 논에서 놀던 아이들 중 한 남자아이가 끝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웨웨곰벨에게 잡혀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의 소쿠리 땀빠(tampah)를 각각 들고 북북 긁어대며 긴 일렬횡대를 만들어 밀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땀빠를 긁는 소리는 사람들 귀엔 하찮게 들리지만 웨웨곰벨이 감지하는 그들의 세계에서는 귀가 울릴 듯한 무시무시한 굉음으로 들린다고 사람들을 믿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 자정쯤이 되어서야 그들은 잃어버렸던 남자아이를 나무 위에서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 후 몇 주, 몇 해가 지나도록 늘 멍하니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기 일쑤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몸을 되찾아 왔지만 웨웨곰벨에게 홀린 그 아이의 넋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웨웨곰벨이 주는 음식을 처음 받아먹던 순간 그 아이의 혼은 마물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던 것이고 그날 웨웨곰벨은 자기가 키우려고 작정했던 아이의 혼만을 안고서 달아났던 것입니다.
‘웨웨곰벨’이라는 이름은, 전승에 따르면, 오래 전 스마랑의 곰벨언덕에서 벌어진 한 사건과 관련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그 지역은 네덜란드 강점기 당시 대량학살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자띠갈레(Jatigaleh)에서 반유마닉(Banyumanik) 지역으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하는데 지금도 수많은 귀신과 요물들이 심심찮게 출몰하는 음산한 곳으로 알려져 있고 어쩌다가 호기롭게 그곳에 문을 열었던 한 호텔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더군요.
옛날 그곳엔 한 쌍의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몇 년의 결혼생활 끝에 남편은 아내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임을 마침내 알게 되면서부터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점점 더 아내에게 소홀히 대하기 시작했고 아내는 여러 해 동안 비통한 마음으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남편의 뒤를 밟은 여인은 남편이 다른 여인을 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배신감에 눈이 멀어 격분한 여인은 남편을 살해하게 되고 그녀의 행동에 분개하여 떼로 들고 일어난 마을사람들을 피해 여인을 마을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되는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여인은 얼마 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분명 복수심을 안은 채 숨을 거둔 그녀의 원혼이 웨웨곰벨의 모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자바섬 전체에서 목격담이 보고되고 있는 웨웨곰벨은 그때 자살한 그 여인의 원혼일까요? 아니면 곰벨언덕에서 학살당해 파뭍힌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남기고 간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일단의 정령들일까요? 일부 상충되는 애기들이 있긴 하지만 웨웨곰벨의 이야기에서는 별다른 악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대신 아이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그 거대한 젖가슴 밑에 품어 키운다고 묘사했던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때문에 웨웨곰벨의 전승을 이야기하던 옛 인도네시아인들은 웨웨곰벨이 소외되고 학대받는 아이들만 골라 데려간다거나, 부모가 정신을 차린 후 돌려준다는 식으로 웨웨곰벨의 행동을 변호하고 감싸주려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보고된 사례들의 실제 전개상황은 전승의 내용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말입니다.
웨웨곰벨의 전설을 따라가면서 헐리웃 영화 ‘마마’(Mama)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대개의 귀신이야기들은 그들의 사무친 원한과 섬뜩한 악의가 공포를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웨웨곰벨의 전설은 그녀의 납치유괴행각에도 불구하고 죽음조차도 끊지 못한 그녀의 본능적 모성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일말의 무거움을 남깁니다.
딸 같아서, 또는 아들 같아서…라는 이유로 남의 집 귀한 아들 딸들을 직장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오히려 괴롭히고 농락하고 짓밟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어쩌면 웨웨곰벨은 국내도입이 시급한 존재가 아닐까요?
2015.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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