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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원 행사에 교민 배제는 당연한가?

beautician 2023. 9. 11. 22:02

한국문화원 행사는 인도네시인들을 위한 것: 교민 배제는 당연한가?

 

지난 5월이었으니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지만 인도네시아 한국교민지 인터넷판에 두근두근, 한국귀신 만나기: 한국공포영화 상영회라는 기사가 일제히 실린 일이 있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에서 526() CGV 퍼시픽플레이스점에서 한국 공포영화 세 편을 상영한다는 공지였다.

 

 

기사 내용을 정리하자면 <클로젯>, <여고괴담 6: 모교>, <마루이 비디오>를 상영하니 관람을 원하는 17세 이상 교민은 주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 홈페이지에서 관람을 신청할 수 있고 비용은 무료라는 것이었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한국 영화팬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란 문구도 달려 있었다.[1]

 

한국문화원에서는 한국문화를 인도네시아에 알리는 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그 반대방향은 없는, 대체로 일방적인 한국문화 알리기라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 그게 원래의 기능이니 불만은 없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 활동은 한인니문화연구원(원장 사공경) 같은 민간단체가 오랫동안 해오던 터였다. 물론 한국문화원은 정부 예산으로 돌아가지만 한인니문화연구원은 개인과 회원들이 출연한 비용으로 어렵사리 빠듯하게 지탱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그 궤를 달리 한다. , 얘기가 옆으로 갔다.

 

한국문화원 행사들이 자체 웹사이트에 좀 더 빨리 공지가 되지만 거길 들여다보지 않는 교민들에게는 나중에 행사가 다 끝난 후 이런저런 행사가 있었다는 기사를 교민지에서 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행사 중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 미리 공지가 되었다면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게 문화원 업무방식인가 싶어 굳이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화원의 영화상영행사가 행사일 이전에 교민매체에 공지된 것이 새삼스러웠고 특히 그게 영화라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 영화산업동향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현지 주요 영화 리뷰를 남기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가 인도네시아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보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물론 그 데이터는 주로 관객수라는 수치로만 나타나지만 저런 상영회라면 간단한 관객 인터뷰도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526() 오후 1시에 열리는 상영회 공지가 바로 하루 전인 525()에 나오면 그 일정에 맞출 수 있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을 터. 평일 오후에 시간을 빼려면 마침 방학이거나 반차라도 내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득 든 생각이 왜 이 시점이 이렇게 공지를 냈을까? 사실은 오지 말라는 얘기일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한국문화원이 교민매체에 공지한 것이 늦었다기보다 문화원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하지 않은 내 탓이지 싶었다. 홈페이지에는 미리 공지가 되어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그 공지가 언제 올라왔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좀 이상한 점들이 보였다. 인니어판에는 교민지보다 사흘 빠른 522일에 올라온 공지가 있었지만 한국어판에는 해당 공지가 보이지 않았다.

 

인니어판 한국어판

https://id.korean-culture.org/id/1525/board/232/list?pagenum=8

https://id.korean-culture.org/ko/1525/board/232/list?pagenum=2

https://id.korean-culture.org/ko/1525/board/232/list?pagenum=3

 

위의 표처럼 인니어판과 한국어판 사이에는 겹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인니어판에 있는 공지내용 대부분이 한국어판에 누락되어 있기 때문에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한국어 말하기 행사는 인니어판 공지사항 8페이지에 있는데 한국어판에서는 2페이지에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한국어판에는 6 페이지 분량의 행사공지가 기재되지 않은 것이다.

 

왼쪽 인니어판 세 번째에 있는 한국귀신 만나기 영화상영행사가 한국어판에는 아예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어판을 방문하는 한국인들, 교민들로서는 이런 행사가 있는지 죽어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물었다.

 

 

굳이 공문까지 보내 문의할 것은 아니어서 한국문화원 직원에게 이렇게 물었지만 이른바 -SIP’을 당했다. 직원 독단으로 답하지 않은 것인지, 상관에게 물어보고 답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건지는 모른다. 물론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음을 인정한다.

 

결국 한국문화원은 인니어판과 한국어판의 내용을 달리해. 의도했던 그렇지 않든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의 참여를 배제하는 쪽으로 홈페이지를 운영해온 것으로 보인다. 대단한 일은 아니니 지금 당장 이거 들고가서 문의할 생각은 없지만 직원이 답해주지 않으니 언젠가 문화원장님을 만나게 되면 좀 물어보고 싶다.

 

홈페이지를 어떻게 운영하건 그건 운영주체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한국어판과 인니어판을 달리 운영해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의 참여를 배제한 것은 해당 프로그램에 한국인들 참여가 필요없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일부 한국어판에 포함된 문화원 행사들은 한국인들 참여가 필요하기에 등재한 것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들을 토대로 지난 5월의 저 두근두근 한국귀신 상영회는 어떤 의미로 사실상 누가 가기 불가능할 정도로 촉박한 시점에 모든 교민매체에 관련공지를 실으며 교민들을 초청한다고 말한 것일까?

 

한국어판 인니어판

https://id.korean-culture.org/ko/1525/board/232/list


https://id.korean-culture.org/id/1525/board/232/list


https://id.korean-culture.org/id/1525/board/232/list?pagenum=2

 

911일 다시 확인해 본 한국문화원 홈페이지의 문화원 행사페이지의 한국어판과 인니어판은 이상과 같은 차이를 보인다. 한국어판에는 행사 공지가 전체의 반 정도밖에 올라오지 않았다.

 

엄청난 양의 행사를 소화하며 활발히 일하는 우리 한국문화원이 우리 교민들을 상대적으로 소외시키고 있다는 생각은 아마도 전적으로 나 혼자만 괜히, 아무 쓸데없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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