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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주술은 왜 인간의 목숨을 제물로 삼을까?

beautician 2023. 4. 10. 11:39

반자르느가라 사건으로 본 인도네시아 재물주술의 실상

 

내가 인도네시아 무속에 관심을 갖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 2014년의 일이니 벌써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친구가 뻴렛주술의 피해자가 된 듯한 증상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판단을 하던 그 친구가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3년은 족히 걸렸고 그 후유증의 흔적을 아직도 간간히 보이곤 합니다.

 

당시 그 친구를 돕고 싶어도 내막을 모르면 도울 수 없다는 생각에 시작한 공부가 이젠 대충 교민사회에선 나름 귀신전문가로 통하게 만들었고 몇년 전에는 심지어 그라메디아에서 출간한 귀신만화 스토리작가로 참여하기도 하고 현지 역사협회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가 주최한 줌 세미나에서 인도네시아 귀신 강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뭔가에 한번 푹 빠진다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런데 당시 잘 이해가 안가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주술은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는 산뗏주술, 총칼을 맞아도 죽지 않는 신체를 만드는 일무끄발(Ilmu Kebal), 말하자면 금강불괴술, 상대방에 마음에 나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억지로 심는 뻴렛주술(Ilmu Pelet), 그리고 당대에 큰 부자가 되도록 귀신들의 힘을 빌리는 뻐수기한(Pesugihan) 재물주술로 크게 대분됩니다.

 

대부분의 주술이 뚬발(tumbal) 즉 제물을 요구하는데 그게 대개는 누군가의 생명이죠. 하지만 동물의 목숨으로 대신하거나(유대교 등에서 가축을 잡아 제사 지내듯), 마하르(Mahar)라고 하는 복채를 두둑히 내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죽이거나 저주를 거는 게 가능한데 재물주술만큼은 누군가를 해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부자가 되겠다는 것뿐인데도  꼭 누군가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도록 강요한다는 부분이 의아했습니다.

 

물론 제물로서의 목숨이란, 내가 이 주술을 시도하는 댓가로 도움을 주는 귀신에게 내 생명을 바치는 대신 다른 이의 생명을 내놓는다는 의미이므로 대개는 배우자나 자녀, 부모의 목숨을 바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현지인들 사이에선 흑마술을 하는 두꾼을 가족들도 경원합니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흑마술을 시전하는 댓가로 다른 가족들이 죽어나갈 판이니 말이죠.

 

2년쯤 전에 데폭에서 바비응예뻿(Babi Ngepet)이란 돼지요괴가 출현했다는 기사가 난 적 있습니다. 물론 그건 한 우스탓이 귀신을 쫒아냈다는 명성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자작극인데 진짜 바비응예뼷을 불러내려면 두꾼을 통해 돼지요괴를 만나 얻은 침을 자기 자식에게 바릅니다. 그러면 아이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시전자는 비로서 스스로 멧돼지 형태의 재물주술돼지로 변해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웃집 벽에 몸을 벅벅 긁어대는 것만으로 그 집안의 패물들을 자신의 비밀 주머니 안으로 빼돌리게 됩니다. 뭐, 그런 얘기입니다.

 

대머리 아기귀신 뚜율이나 헐크 비슷한 녹색괴물 부토이조(Buto Ijo) 같은 것들도 대표적인 재물주술에 동원되는 귀신들입니다. 모두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내놓고 얻게 되는 능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누군가 뚜율이나 바비응예뻿 주술을 부린다고 알려지면 동네사람들이 찾아와 치도곤을 놓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그는 도둑일 뿐 아니라 살인자인 셈이니까요.

 

이것 말고도 우앙가입(uang gaib)을 사는 방법도 있습니다.돈이 들어가는 방법이라서 누군가의 목숨을 제물로 바칠 필요가 없다는 광고가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수법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이번에 중부자바 반자르느가라에서 벌어진 사건이나 몇 개월 전 찌안주르에서 워원이란 자가 자기 식구들을 거의 다 죽인 사건이 이런 방식이라 보입니다. 현세의 돈을 지불하면 그걸로 영적 세계에 있는 우앙가입을 사오는 겁니다. 찌안주르에서는 7천만 루피아를 받고서 50억 루피아로 불려주겠다고 한 거죠. 즉 현세와 영적세계 사이의 환율이 그 정도 된다는 겁니다.

 

두꾼들이 하는 이런 개소리는 다 사기지만 거기 홀라당 넘어가는 사람들이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믿는 한국인들 숫자 만큼 꼭 나옵니다.

 

문제는 절대 그런 일, 즉 두꾼이 그렇게 뻥튀기된 금액의 돈을 내줄 수 있을 리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돈을 찾으러 간 사람은 둘 중 하나의 경우에 맞닥뜨립니다. 두꾼의 말이 사기란 것을 깨닫고 대판 싸운 후 두꾼을 경찰서에 끌고 가거나 그런 결과를 원치않는 두꾼이 자기 명예도 챙기고 돈도 굳히기 위해 돈을 받으러 온 피해자를 살해하여 암매장하는 것이죠.

 

이번 반자르느가라 사건에서 슬라멧 도사라 불리던 또하리(Tohari)는 최소한 12명을 그런 식으로 죽였습니다. 찾아온 피해자에게 재물주술을 완성시키기 위한 마지막 의식이라며 해가 진 후 산 속에서 함께 기도하는 척하며 피해자에게 특별한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그 물은 청산가리를 탄 것이어서 피해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슬라멧아 피해자를 곧바로 그곳에 암매장하는 수법이었습니다. 

 

나중에 경찰이 그곳을 파보니 시신이 12구나 나왔습니다. 광명천지에 그런 미신을 믿고 돈도 뻇기고 결국 목숨까지 뺏긴 사람들이 그리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제야 왜 재물주술을 위한 제물이 꼭 인간의 생명이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부자가 되려는 욕망의 지름길을 찾는 것이  때로는 누군가를 저주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한 파국을 불러오기 때문인 것이죠.

 

반자르느가라에서 벌어진 슬라멧 도사 살인피해자 시신 수습

 

2023.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