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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에서 만난 핵고등어

beautician 2023. 4. 13. 13:52

핵고등어

 

끌라빠가딩 그랜드럭키 수퍼마켓에 생고등어가 싸게 들어와 있었습니다.

 

 

한류성 어종인 고등어가 열대의 인도네시아 수퍼마켓에 등장한 것은 대략 15년쯤 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뿔로마스 지역 수퍼린도(Superindo) 매장에 잔뜩 들어온 고등어를 보고 무궁화수퍼의 꽁꽁 얼은 냉동 고등어 말고 이제 인도네시에서도 생고등어를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었다며 감격에 겨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싸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머스마켓 같은 곳에 가면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파는데 가격이 결코 싸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싸도 100g당 6천 루피아선, 비싸면 8천 루피아 선이었는데 그랜드럭키에서 본 고등어는 그 반값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물건이 너무 싼 값에 나와 있다면 유명 연예인이 일반 대학생들 소개팅에 나온 것처럼 뭔가 놀랄 만한 사연이 있기 마련입니다. 몰래카메라처럼 말이죠.

 

그때 뇌리에 스치는 몇 개월 전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짜꿍의 이온몰(Aeon Mall)에서 연어, 참치들 사이에 싸게 나와 있던 고등어가 떠오른 겁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다섯 마리쯤 샀는데 현지에서 가장 싼 삼게(samge)나 끔붕(kembung) 생선보다도 쌌습니다. 속으로 득템했다! 며 쾌재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자 아내가 고등어 포장된 걸 보더니 곧바로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렸습니다. 비닐포장에 붙은 가격 스티커에 '일본산'이라고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등어는 한류성 어종이니 일본 해역에서도 북쪽, 대개 후쿠시마 가까운 곳에서 잡히는 것들이죠. 지금 일본이 핵 오염수를 방류하니 마니 하면서 마치 그간 전혀 오염수 방류가 없었던 것처럼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고준위 핵물질에 오염된 지하수가 수백만 톤 일본 동해 즉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곳 해양생태계가 방사능에 오염된 것 역시 수학적 명제처럼 명약관화한 일이고요.

 

인도네시아는 일본산 해산물을 수입 금지한 16개국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빠빠야(Papaya)같은 일본 수퍼마켓에서 후쿠시마 식품전 같은 걸 열어 후쿠시마산 해산물, 농산물들을 자카르타에서 팔고 있는 것이죠.

 

그중 고등어가 일본수퍼가 아닌 이온몰에 등장한 겁니다. 뭐, 이온몰도 일본자본이 투자된 곳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잘 생각해보니 고등어는 등푸른 생선인데 그날 이온몰에서 산 고등어는 등이 희끗희끗했습니다. 그래서 독특한 고등어라 생각하고 먹어보려 했던 건데 그게 후쿠시마산 핵고등어였던 겁니다.

 

"눈 똑바로 뜨고 살어!"

 

당시 와이프한테 이런 말을 들은 기억에 고등어를 집으려던 손을 멈췄습니다. 어쩌면 자칫 등짝 스매싱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어 직원을 불렀습니다.

 

"이거 어디 거요?"

"임뽀르~" 

수입산이란 얘깁니다. 당연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선 고등어가 나지 않으니 현지 수퍼마켓에 나와 있는 고등어는 당연히 모두 수입산입니다.

"임뽀르 다리 마나?"

어디서 수입했냐고 물으니 이 친구가 살짝 눈을 피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저빵~" 일본산이란 거죠.    

 

내 눈을 피하며 목소리를 낮춘 시점에서 이 친구도 일본산 고등어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 겁니다. 자신도 거기 붙은 싼 가격에 의아해했겠죠. 후쿠시마산 농산물, 해산물들은 깜짝 놀랄 만한 싼 가격으로 세계인들을 유혹하며 내부 피폭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 고등어를 장바구니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얘들은 이온몰에서 본 것처럼 등이 희끗희끗하지 않고 멀쩡한 일반 고등어의 외관을 하고 있었습니다. 묻지 않았다면 당연히 노르웨이산일 거라 생각하고 살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쨌든 저렇게 수입된 고등어를 비롯한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은 인도네시아인들이 모두 소비하게 될 것이고 결국 팔리지 않으면 고등어 통조림으로 소비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인도네시아 산천에 쓰레기가 되어 버려질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후쿠시마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일본이 정말 방사능오염수의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걸 베에 실어 태평양 먼 바다에 나가 버릴 것이 아니라 자기들 상수원이나 후지산 정상에 뿌려 모든 일본인들이 먼저 섭취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좋으면 지들이 먼저 먹어야죠.

 

그랜드럭키에서 만난 핵고등어를 보고 별 생각을 다해 보았습니다.

 

 

2023.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