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영화

인도네시아 영화 <가장 달콤한 작전> 리뷰

beautician 2022. 12. 16. 11:59

[영화리뷰] <무시무시하게 맛있는(Ngeri-Ngeri Sedap)>(2022)

 

 

이 영화를 몇 마디로 정리하자면……

 

2022년 로컬영화 흥행순위 상위를 차지한 유일한 코미디 드라마 영화로 인도네시아 영화를 대표해 2023년 초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

 

그래서 당연하게도 202211월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22) 여러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하고 무관에 그치고 만 의문의 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부 수마트라에 사는 바딱족(Suku Batak)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전통과 애환을 작품 속에 잘 녹여내 영화 초반에는 시종 입에서 미소와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하고 후반을 넘어가면서는 가족과 가부장, 가족 속 여성들이 당연한 듯 치러야 하는 희생의 의미를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하도록 했던 영화.

 

 

원제 <Ngeri-Ngeri Sedap>, Ngeri는 무섭다, 소름끼친다, Sedap은 맛있다는 소리의 의성어이니 <무시무시하게 맛있는>이 맞는 번역이라 보인다. 영화 도중에도 음식에 독을 탔네 마네 하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원제의 의미는 꼭 음식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맛있는 음식처럼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의 이면엔 무시무시하다 할 만한 구태의연한 전통과 관례가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고 집안의 여성들과 자녀들을 옥죄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즉 바딱족 가족으로서 사는 것이 버거우면서도 즐겁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튼 제목 그대로 무시무시한것을 맛있게버무렸으니 영화가 재미있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는 굳이 <아주 달콤한 작전>이라는 제목을 달아 올려두었으니 검색할 떄 참고하기 바란다.

 

2022년 12월 6일 기준 로컬영화 흥행순위. 빨간색은 드라마 장르 <무시무시하게 맛있는>은 4위

 

바딱족 정서

주인공 부부는 바딱 토박이 기독교인으로 장성한 3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장남 도무, 장녀 사르마, 차남 가베 그리고 막내 사핫. 그래서 주인공 부부는 영화 속에서 도무아빠, 도무엄마로 불린다. 세 아들은 모두 도시에 나가 대학을 다닌 후 그곳에 정착했는데 도무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순다 여인과 결혼을 강행하고 가베는 자신을 법대에 보내 판사나 변호사가 되기 바라는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코미디언이 되어 TV에서 얼굴을 알렸다. 막내 사핫은 대학생봉사활동을 했던 자바의 한 농촌에 머물며 그곳 사람들에게 새로운 농사기법을 가르치는 농촌지도자가 되어 있다.

 

장남이 부모를 모시는 우리 풍습과 달리 바탁에서는 형들은 분가해 나가고 막내가 끝까지 집에 남아 부모를 봉양하고 나중에 그 집을 유산으로 받는다. 하지만 사핫이 외지에 나가 있어 장녀 사르마가 묵묵히 부모를 모시며 살고 있다.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기분파이기도 한 도무아빠는 오래 전 혼자된 어머니를 위해 잔치를 여는데 꼭 참석해야 하는 아들들이 고향에 돌아오지 않으려 하자 도무 엄마와 이혼할 것처럼 거짓 분위기를 연출해 깜짝 놀란 아들들을 불러들인다.

 

아들들은 부모의 이혼을 막기 위해 고향에 온 것이지만 도무아빠는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아들들의 행동과 계획을 좌절시키려 한다. 당연히 아들들은 이에 반발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자기 주장을 하며 부딪히는 동안 사실은 도무엄마와 사르마가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죽이고 남편과 아버지의 말에 항상 복종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도네시아, 체면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남존여비 전통, 그런데 종교는 기독교, 타종족에겐 폐쇄적이고도 배타적인 결혼문화, 군인이나 변호사, 조직폭력 같은 것에 특화되었다고 알려진 바딱인들의 불 같은 성정, 이런 것들이 어떻게 하나로 어우러진 사회로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의아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그런 불가사의한 전통은 바딱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전국 곳곳에서도 발견된다. 이슬람 유일신을 섬기는 족자 술탄국이 마물들의 여왕 니로로키둘을 왕실의 수호자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나 미낭까바우 사회의 모계상속 전통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바딱의 전통과 문화를 너희들이 다 알고 있어야 할 기정사실처럼 불친절하게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가르치듯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오스카에 출품된 것도 아마 그런 부분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배우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도무아빠와 엄마는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친구들에겐 능청스럽게 농을 던지지만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고 바딱 가정이란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장 가부장적 꼰대인 도무 아빠를 연기한 아르스웬디 브닝스와라 나수티온(Arswendy Beningswara Nasution) 1957년생.

 

1985년부터 영화에 출연했는데 주로 조연이었다. 최근엔 2017<사탄의 숭배자> 1편의 주인공 가족들 이웃의 우스탓 역할, 2019<군달라> 등에도 얼굴을 보였다.

 

아르스웬디 브닝스와라 나수티온(왼쪽)과 띠카 빵가베안

 

그의 부인 도무엄마 역할의 띠카 빵가베안(Tika Panggabean)1970년생으로 아르스웬디와 13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서 기뻐하고 슬퍼하는 부인이자 어머니의 역할을 너무 잘 해냈다. FFI 2022에서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2003년에 데뷔한 띠카 빵가베안은 2017년과 2019년 각각 <스위트 20>(<수상한 그녀>의 리메이크), <베바스(Bebas)>(<써니>의 리메이크)에 출연했고 CJ E&M에서 투자한 또 다른 2019년 영화 <히트 앤 런(Hit & Run)>에도 출연하면서 한국과 알게 모르게 꽤 깊은 관계를 맺었다. 2021년에는 <알리와 왕후들(Ali & Ratu Ratu Queens)>같은 잘 빠진 넷플릭스 영화에도 출연했다. 문제작들, 흥행작들에 자주 얼굴을 비춘 그녀는 꽤 선구안이 좋은 듯하다.  

 

두 사람 모두 바딱 사람들이다. 나수티온, 빵가베안 모두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바딱 사람들은 그 이름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는데 역사책이나 우리 주변에도 땀부볼론, 심볼론, 시마뚜빵 같은 사람들은 100% 바딱 사람이다. J 순경 살인사건에 E 이경으로 불렸던 사람의 이름은 후타바랏인데 그 역시 전형적인 바딱 이름이다.

 

이외에도 아리또낭, 하시부안, 실라라히, 긴띵, 까로까로, 슴비링, 따리간, 빈땅, 링가, 띠남부난, 땀박, 시아기안, 실로, 마똔당, 바뚜바라, 다울라이, 하라합, 루비스, 딴중 같은 이름들도 전형적인 바딱사람들이다.

 

이 영화의 큰 아들 도무로 나오는 보리스 보키르 마눌랑(Boris Bokir Manullang)이나 장녀 사르마 역의 기타 버비타 부타르부타르(Gita Bhebhita Butarbutar), 감독인 베니 디온 라자국국(Bebe Dion Rajagukguk)도 이름만 봐도 바딱 사람인 게 분명하다.

 

한편 둘째 가베 역의 누그로호 아크마드(롤록스-Lolox)와 막내 사핫 역의 인드라 제겔(인드라 구나완)은 이름만 봐도 바딱 사람이 아닌 게 분명하다. 극에서는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사람 역할도 하듯 바딱 아닌 사람이 바딱 연기를 한 건데 사투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종족의 연기를 하는 것은 경상도가 전라도 연기하는 것과는 좀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1990년생 라자국국 감독은 2015년에 배우로 데뷔했고 2016년부터는 시나리오도 썼다. 그러다가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2019<고스트라이터(Ghost Writer)>가 첫 작품이다. <무시무시하게 맛있는>는 그의 두 번째 감독작품. 그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FFI 2022에서 외면당한 이유

2022년은 호러영화 전성시대. 흥행상위 15편의 로컬영화 중 9편이 호러영화였다.

 

하지만 <무시무시하게 맛있는>는 다른 영화들에 못지 않게 잘만든 영화다. 호러영화가 압도한 흥행랭킹에서 이 영화는 280만 명의 관객이 들어 로컬영화 흥행 4위를 기록했다.

 

<무시무시하게 맛있는(Ngeri Ngeri Sedap)> FFI 2022에서 여러 부문 후보로 올랐지만 결국 무관에 그친 것은 현지 영화인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드라마 장르의 배타적 우월성, 모름지기 드라마라면 대중의 인기와 흥행보다는 예술성, 시의성, 문제의식 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인 것 아닌가 싶다.

 

그것은 호러영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920만 관객이란 공전의 흥행성적을 낸 <무용수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 역시 이번 FFI 2022에서 단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다. 관객들이 그 영화를 사랑하든 말든 심사위원들이 그 영화는 수준이 낮아라고 말 한 마디 하면 그걸로 끝인 셈이다. 그건 어쩌면 영화인들이 관객들을 위해 영화를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관객들은 수준낮은 인간들로 간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역대 인도네시아 영화제와 인도네시아 기자영화제(FFWI)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호러영화 수상작들을 보면 FFI 2020 수상작 <지옥의 여인> FFWI 2022 수상작 <사탄의 숭배자 2: 커뮤니언>이 모두 조코 안와르(Joko Anwar) 감독 작품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그는2017년에도 <사탄의 숭배자> 1편으로 로컬영화 흥행 수위를 차지했을 뿐 아니라 FFI에서 비록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진 못했지만 영상, 음향, 시각효과, 예술 등 7개 부문을 휩쓴 바 있다.

 

따라서 영화제 수상기준에는 영화제작사와 감독의 네임밸류에도 상당 부분 가중치가 주어지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따라서 <무시무시하게 맛있는>2022 인도네시아 영화제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이유를 굳이 찾자면 별다른 실적이 없었던 영화사 이마지나리(Imajinari) 제작했고 감독으로서 경험이 일천한 대체로 무명인 베네 디온 라자국국(Bene Dion rajagukguk) 감독의 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정도다. 제작사와 감독의 네임밸류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쨋든 2022 흥행에 성공한 유일한 코미디 영화로 기록되었다.  

 

베네 디온 라자국국 감독

 

결론

영화가 재미있다는 얘기를 쓰려 했는데 논문을 써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