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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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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8년만에 KL에서 만난 나타샤

beautician 2022. 11. 9. 10:28

 

2013년 12월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첫날 밤 만난 나타샤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2013년 12월 끈다리 이후 2014년 상반기 싱가포르였다. 당시 이야기는 몇년 전 '니켈광산 영적 방어작전'을 연재할 당시 일부 공개한 바 있다.

당시 릴리의 요청에 따른 현금수송을 위해 래플스플레이스에서 그해 몇차례 만났는데 이번 만남이 그후 처음이니 8년 만이 된다. 원래 조호 바루에 있던 나타샤가 마침 KL로 옮겨와 일하고 있다는 연락을 우염히 며칠 전에 받아 이번 딸 결혼식 참석을 위한 여행 첫날 밤 약속이 잡힌 것이다.  

만나기로 한 곳은 KLCC 수리아 몰 4층의 Madam Kwan's. 

말레이시아 음식 전문점이라며 나타샤가 추천한 곳이다.

나타샤와 처음 만난 것은 다시 1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 2004년 경. 당시 아직 20대 중반이었던 인텔리 인디언 아가씨도 이젠 40대 중년에 들어섰다. 

세월 앞엔 정말 장사 없다.

당시 사회경험 없이 의욕과 용깅 충만했던 나타샤는 깔리만탄 석탄사업을 하면서 고배를 마시며 궁지에 몰렸는데 나타샤를 구원해주었던 건 릴리였다. 릴리는 나타샤가 더 이상 인도네시아에 들어와 이런저런 사고를 치거나 당하지 말고 조호바루와 싱가포르를 다니며 주로 광산서류작업과 해외마케팅을 담당해줄 것을 요구했고 두 사람은 10년쯤 서로에게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그러다가 나타샤의 능력이 커져 아랍 자금을 끌어올 수 있을 정도가 되고, 그러나 릴리는 현장에서 많은 문제에 휘말리며 나타샤가 끌어온 아랍자금에 실수를 하면서 두 사람 관계가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해 결국 지금은 서로 지극히 불편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사실 릴리가 사업적 문제보다 뻴렛주술을 휘두르는 찌레본 출신 아리에게 당해 자신을 추스르지 못하던 2014-2016의 3년간 릴리는 많은 돈과 사람들을 잃었다. 나는 남았지만 릴리는 결국 나타샤를 잃고 말았다.

마담콴스에 나타난 그 나타냐는 활짝 미소짓고 있었다.

2008년 경 딸이 처음 싱가포르에서 혼자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외로움을 타던 당시 내가 나타샤를 불러내 가끔 딸을 들여다봐 달라고 부탁했던 적이 있다.

결국 그게 그렇게 되진 않았지만 KL에서 8년만에 본 나타샤는 당시의 선의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우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KLCC 수리아몰 4층의 마담콴스



2022. 10. 14
사돈댁 저녁 스케쥴을 위해 출발하기 직전 아직 호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