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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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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뱀의 혀를 가진 사람들

beautician 2022. 10. 9. 11:43

이기심의 향연

 

 

18일간의 한국출장.

자카르타 폭동 후인 1999년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 3개월가량 머물었던 일 이후 가장 길었던 출장이었다. 어머니가 위독해 비행기를 탄 것이니 사실 출장이라 할 것은 아니다.

 

9월 12일(월) 자카르타행 비행기를 타자 마치 진이 빠진 듯한 느낌. 목의 통증과 두통이 심해진 듯하여 6시간 반의 비행시간 중 하려했던 원고작업을 도착 이후로 미뤄야 했다. 최근 일을 조금 더 늘렸더니 그만큼 늘어난 원고마감이 파상공격을 해대고 있어 시간을 아껴야 하는데.

 

이번 한국출장의 어떤 부분이 그토록 날 소진시킨 것일까?

어머니의 장례? 책과 옷과 가방들로 발디딜 틈 없던 오금동집을 청소하고 책을 몇 트럭 분이나 내버린 것? 여수를 방문하고 처남들을 모두 만나는 등 처가댁 쪽에 나름 최대한 시간을 배분한 일? 아버지와 둘이 지내면서 알게 된 아버지의 나쁜 건강상태와 함께 지내기 어려울 정도의 고집과 강요?  아니면 불편한 폭주에 말도 못할 독선을 버이는 막내 제수를 세 차례 이상 만나야 했던 일? 아버지 주변에 정모 요양사, 이모 목사 같은 사기성 짙은 캐릭터들이 도사리고 있어 사실 아버지가 스스로을 지키기도 어렵다는 상황의 인식?

 

내기 아버지에게 해드리려 하는 일과 당신이 실제로 누리고자 하는 일상의 괴리가 그간의 노력과 결의를 무색하게 하기도 했다.

 

우린 좀 더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젊고 성실한 요양사들이 규정대로 주 5일 하루 세 시간씩 아버지를 방문해 요리나 청소, 외출을 지원하여 아버지 혼자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지만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프라이버시와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사양하거나 기피하면서 오히려 말이 통하는 70대 노인 요양사를 내심 선호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불편하게 여기는 것을 강요할 수 없다.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없다. 그게 분명히 아버지에게 손해가 되는 것인데도 아버지가 고집을 부린다면 그 고집을 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맥시멀리스트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냉장고에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그것도 멀리 마천시장까지 가서 낑낑 들고 오신다는 것. 병원에서 엄마 간병을 하면서도 당신 양복을 챙겨오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것. 도대체 병실에서 간병하는데 왜 양복이 필요할까?

 

책과 물품을 정리하다 보니 나오는 20개 넘는 돋보기 안경, 30개 가까운 손톱깎기들, 족히 100 자루는 넘는 필기구와 문구들...... 정말 아버지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벌어진 상황들일까?

 

이모 목사는 언젠가 반드시 아버지에게 해를 끼칠 인간이다. 아버지가 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교단에서 제명된 사람을 구제하고 실체가 없어진 시온교회 담임목사 자리를 주어 결과적으로 주변에 맴돌 기회를 준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그가 뱀 같은 혀를 가진 인간이란 걸 아버지도 모르진 않는 눈치다. 하지만 어머니 장례 때 그가 마치 상주라도 되는 듯 관련 예배 대부분을 집전하도록 놔둔 것도 용납하기 어렵다. 어머니의 마지막 길에 사기꾼 목사가 끼어들다니…… 그걸 막지 못했다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포천 하늘나라공원에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그는 우리 막내동생을 뒷자리로 데리고 가 뭔가 속삭였는데 거기 홀라당 넘어간 막내가 자기 처 즉 제수에게 전달한 얘기를 제수가 상 잘 치르고 난 자리에서 마치 폭로하듯 터트렸다. 아버지를 지금 오금동 내 집에 모실 때 아버지가 '평생 죽을 때까지의 사글세 선급'이라며 내놓은 돈 1억 원에 교회자금이 섞여 있으니 그 돈이 들어간 내 집에 교회가 일정부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우리가 아버지를 모시려 이전 세입자를 내보냈으니 아버지가 그 보상차원에서 전에 살던 집 전세돈을 준 것인데 동생과 그 처는 내 집에 교회를 차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버지가 그 돈을 내 집에 넣은 것이 그들에겐 속상할지 모르나 자기들이 모셨으면 그 돈이 자기들에게 돌아갔을 터다. 한국에 있는 형제들이 아버지를 모시지 않으니 노인들이 전세집을 전전하며 매년 오르는 전세값 걱정하지 않도록 해외에 사는 아들이 아버지를 모신 것인데 그걸 배아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이모 목사가 뱀같이 혀를 놀려 동생과 제수 마음 속에 이미 품고 있던 불만에 불씨를 댕긴 것이다.

 

어쩌면 이모 목사는 나보다 인간과 그 마음 속 욕망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 자리에서 제수는 내 집 문제만 들먹인게 아니라 20년 전 벌어젔던 1600만원 대출하여 아버지를 도왔던 일에 대해 '장남이 일으킨 문제로 패가망신하게 된 아버지를 자기들이 주택마련 적금을 헐어 도왔다'며 장남을 몰아세웠는데 그간 20년 동안 뭘 했길래 직접 얘기한 바 없다가 하필 그날 형과 형수 그리고 그집 두 딸들이 있는 자리에서 터트려버린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들은 다 이상 문제삼지 않고 이버지에게 그 돈 돌러받을 생각 없다면서도 집안의 장남을 아버지 패가망신 시킬 뻔한 악당으로 몰고 자기들은 구원자를 자칭하며, 집안 전체가 화해하고 용납하여 화목하게 끝날 수도 있었던 어머니 장례의 대미를 장남을 모욕하고 차남의 집 소유권을 문제삼는, 아니면 그만이란 식의 폭로전으로 끝마쳤다. 제수의 마음 속이 살짝 비쳤다. 내가 당신들을 반드시 해꼬지 하고 말겠어!

 

목사 부인이 왜 그런 악독한 마음을 품게 되었을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모 목사의 속삭임에 홀라당 넘어간 것이다. 그날 이후 오늘 귀국하기 전까지 막내 부부를 두 번 더 만나야 했으니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 시간이 거북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몸의 진이 빠지는 것은 의외로 욱체적 노동이 지나친 경우보다 마음과 생각이 혼미하고 어지럽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어머니를 보내고 혼자 남은 연로한 아버지, 그것도 사실상 독거노인 생활을 해야 하는 아버지를 위해 최선의 방도를 모색하고 도모해야 할 시점에 우린 모두 자기 자신의 이해에만 주목하는 이기심을 유감없이 보여준 듯하다.

 

아들이 이번 장례식에 오지 못해, 그리고 장례식에 온 딸이 곧바로 싱가포르로 돌아가 그런 적나라한 이기심의 향연을 보지 않은 것을, 자카르타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이 글을 쓰며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다.

 

 

2022.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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