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자카르타행 비행기 여행 본문
비행기 여행
스마랑에서 자카르타로 돌아갈 때에는 비행기를 탔다.
자카르타에서 스마랑 따왕(Semarang Tawang)까지의 기차요금은 50만 루피아, 스마랑-자카르타 비행기요금은 라이언에어 기준 대략 80만 루피아. 별로 큰 차이가 없다. 물론 비행시간은 한 시간이어서 특급열차 아르고의 다섯 시간에 비해 훨씬 빠르지만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이동하고 각종 수속을 밟고 라운지에서 대기하는 등 여기저기서 흘리고 다니게 되는 짜투리 시간이 많아 오히려 다섯 시간 동안 뭔가 진득하게 작업을 할수 있는 기차여행이 훨씬 더 효율적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6월 22일 자카르타 감비르 역을 떠나 스마랑까지 가던 다섯시간 동안 난 수필 여러 편의 초안을 썼다.
하지만 만약 자카르타-수라바야 사이의 여행이었다면 당연히 비행기가 편리했을 것 같다. 수라바야는 가장 빠른 기차로도 8시간 걸리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창문 밑으로 보이는 지상에는 집들이 마치 좁쌀처럼 보인다. 어제 기차를 탔을 때는 그런 집들이 차창 밖으로 순식간에 스쳐지나가 버렸다. 어떤 경우에도 그 집 또는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애환을 겪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멀리서 내려다 보거나 아무리 가까이 봐도 수박 겉핥기 식이라면 절대 그 내용을 알 수도, 본질에 접근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여행이란 여행지의 골목을 지나고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이고 그래야만 공부가 되는 것 같다. 대학의 인류학자 교수들이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현지 지방 깊숙한 곳 마을에 들어가 몇 개월 이상 살면서 그 사회와 문화를 익히는 것도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라고 이해한다. 결국 문화를 익히려면 지근 거리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의 인생을 인도하거나 판단하는 목사나 판사 같은 사람들이 신학교를 나와 바로 목회를 시작하거나 법대와 고시원을 거쳐 고시에 붙고 곧바로 판사가 되어 법복을 입고 사람들의 사건들을 심리하고 판단하는 시스템은 작금의 한국사회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경시하느냐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인생을 책으로만 배우고 자신 개인의 편협한 가치관으로만 인식한 것만을 밑천으로 감히 남의 인생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모름지기 이리 저리 살아야 한다고 설파하며 당신 죄가 이리저리 해서 중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평생 검사로 살다가 어느날 운수대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지난 2년 넘게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후유증으로 몸살에 시달리는 국가와 사회가 이번엔 전세계적 경제위기 한 가운데에 놓여 위태롭게 흔들리고 북한과 일본, 심지어 미국과의 관계도 심상치 않은데 '대통령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말하는 걸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는 우리 사회. 대통령이 세상을, 국가를, 국민들을 너무 띄엄띄엄 본 게 분명하다. 그는 비행기 타고서 저 발아래 도시를 몇 번 내려다보고 그 지역전문가가 되어버린 것과 다름 아니다.
앞으로 5년간 무너져 내릴 국가의 위상, 호가호의, 국민이 부여한 권한으로 국민들을 짓밟으며 나라를 좀먹을 사람들, 그럼에도 그 속에서 살아나가야 할 우리들. 대통령 처음이라 잘 모른다는 대통령이 처음인 우리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항공기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어떤 이들에게 우리 인생이란 저 아래 바둑알처럼 보이는 마을 속 잘 보이지도 않는 것이므로 마구 짓밟고 분탕질을 쳐도 그 속에서 짖이겨져 터져 죽고 밟혀 죽는, 실제 숨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저들이 알게 되는 것은 아직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의 일일 것이다. 장기판의 장기알 굴리듯 사람들을 부리고 남들 조사하고 심문해 감옥에 처넣는 일을 전문적으로 했던 저들이, 그게 정치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아무쪼록 빨리 도래하길 기원한다.
선정은 지도자가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달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오만과 방자함으로 시작된 시대의 주역들이 과연 선정을 베풀 수 있을까?
아니면 고작 선정적인 세상으로 이끌어 가고야 말 것인가?
인생경험이 있는 이들이 판사, 목사를 해야 하는 것처럼, 경륜과 인성을 갖춘 사람이 국가와 사회를 이끄는 사람이 되었어야 했다.
비행기 오랜 만에 한 번 타고 별걸 다 생각하게 된다.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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