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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 본문
온라인차별부터 생명위협까지: 인도네시아 떠나는 성소수자들
차별과 배제, 심지어 살해위협까지 받는 인도네시아의 성소수자들 상당수가 결국 인도네시아를 떠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물론 인도네시아에 잔류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나 대다수가 성적취향에 대해 보다 관대한 다른 나라 시민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18년에 독일 국적의 게이 파트너 프레드릭 폴레르트(Frederik Vollert)와 결혼한 라길 마하르디카(Ragil Mahardika) 역시 그런 성소수자 중 한 명이다. 현재 독일로 이주한 그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queer) 등 이른바 ‘LGBTQ’라고 통칭되는 성소수자들은 정부로부터 어떤 권리도 보호받지 못하며 단순한 공문서 한 장 발급받는 것부터 시작해 일상에서 겹겹이 쌓인 장벽들에 막히고 부딪히며 고통받아야 한다. 그들에겐 정부기관이나 민간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도전이며 사회와 종교기관의 겁박은 집요하고도 일상적이다.
라길은 성적취향과 업무능력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게이라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이 인도네시아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며 게이들은 미래가 뻔히 위험으로 점철된 인도네시아에서 결코 살아갈 수 없다고 단정짓는다.
라길은 최근 폴레르트와 함께 대중적이면서도 늘 논란이 따라붙는 유명 유튜버 데디 코부지어(Dedy Corbuzier)의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코부지어는 정부기관과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전반의 집중포화를 받고서 해당 에피소드 동영상을 삭제했다.
해당 동영상은 결과적으로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적개심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게이로 사는 법’이란 제목이 달린 이 동영상은 코부지어가 사과하며 삭제하기 전까지 이미 600만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다. 많은 이들은 코부지어가 조회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라길과 폴레르트를 미끼로 사용하고서, 이후 성소수자들에게 등을 돌린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동영상이 삭제된 것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데디 코부지어의 권리이니까요.” 라길의 코멘트는 사뭇 신중했다.
라길은 해당 동영상에 출연하기 전에도 자신의 소설미디어를 통해 성소수자들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그가 코부지어의 팟캐스트 출연요청에 응한 것도 자신의 목소리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팟캐스트 출연 후 라길에 대한 온라인 공격은 극에 달했고 그를 살해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정당하다며 악담을 퍼붓는 이들까지 나타났다.
“나는 살인자도, 부패범도 아니지만 온라인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몇 번이고 거듭되는 살해위협엔 익숙합니다.” 그는 담담하게 반응했다.
공포 속에서 사는 삶
자카르타포스트는 몇 년 전 캐나다로 이주한 레이너(Rainer)와 에카(Eka)도 취재했다. 그들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풀네임 노출을 꺼렸다.
레이너는 고국과 지인들을 떠나 머나먼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기로 한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자신과 연인이 인도네시아에서 겪어야 했던 여러 차례 목숨의 위협이 그러한 결정을 강요했다고 말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박해가 더욱 가중된 것은 2015~2016년 기간이었고 당시 레이너는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들이 가정을 이룰 수도, 미래를 가질 수도 없음을 확신했다.
아직도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던 2016년 레이너는 유명 인사의 성소수자 동등권 지지 컬럼을 인용한 기사 링크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유명 온라인 포럼에 공개하는 것만으로 살해위협을 포함한 온갖 공갈협박에 시달렸다. 해당 포럼에서 그의 신원과 사진, 그리고 파트너의 신상이 자신의 동의도 없이 무작위로 공개되는 것을 보면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실질적인 신변 위협을 느낀 것이다.
공동 은행계좌를 개설하는 것은 다른 모든 시민들에게 동등하게 허용된 권리였지만 레이너와 에카는 인도네시아에서 해당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그들이 겪는 또 다른 문제는 성소수자 커플이 가입할 수 있는 적절한 가정보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14년 오타와에서 결혼한 레이너와 에카는 당시 자녀입양을 계획하고 있었으므로 보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그들은 결혼 2년 후 인도네시아에 돌아왔다가 너무 많은 문제에 부딪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 시민권을 얻었다. 캐나다에서의 혼인등록은 간편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캐나다에서 종교기관이나 단체들은 개인의 결혼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종교가 개인 성적취향을 문제삼아 이 결혼이 되니 안되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기업들도 직원들의 성적 성향을 업무와 연관짓지 않는다. 성소수자들도 차별 없이 업무능력에 의해서만 평가받으며 직원의 성적취향을 문제 삼는 회사는 법적 제제를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레이너는 캐나다에서는 게이 커플이나 레즈비언 커플들이 다른 일반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안전, 건강,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국가로부터 보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동등권에 대한 개념이 인도네시아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무관심은 축복이 아니다
성소수자들이 질병을 옮기는 정신이상자들이며 정신적 외상을 입어 후천적으로 게이가 되었다는 것이 인도네시아 성소수자들에게 전통적으로 덧씌워진 낙인이었다. 비정상인이란 것이다.
심지어 2016년 땅그랑 시장 아리프 R 위스만샤(Arief R Wismansyah)는 미고렝(볶음면)을 너무 많이 먹어 게이가 되는 거라며 성소수자들을 비하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공동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나 삶의 동등한 권리 같은 것도 아직 기대하기 이른 인도네시아에서 동성결혼이 인정되기를 바라는 것은 시기상조다.
인도네시아에는 아직도 성소수자들 차별을 합법화하는 많은 법령들이 남아 있는데 2008년에 제정된 포르노법이 가장 대표적이다. 해당 법령 4조 1항은 호모섹슈얼리티를 비정상적 성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레이너와 에카는 이제 가정을 꾸리고 미래에 대한 달성가능한 꿈을 꾸고 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데려온 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집을 살 돈도 모으고 있다. 레이너는 인도네시아에 아직도 많은 성소수자 동료들이 합법적인 결혼이 가능해질 거란 꿈을 품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국가와 사회가 그들은 인정하고 존중하며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라길은 차별당하지 않기 위해,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또는 직장에서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많은 ‘라길’들이 인도네시아 사회 곳곳에 아직 많이 살고 있으므로 인도네시아 성소수자들의 권리 함양을 위해 계속,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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