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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로 수용소 (Hoa Lo Prison in Hanoi) 본문

베트남 박물관

호아로 수용소 (Hoa Lo Prison in Hanoi)

beautician 2017. 4. 22. 10:00


일요일 오후 베트남여성박물관을 나와 두 번 째로 들른 곳은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호아로(Hoa Lo)수용소였습니다.

이 수용소는 월남전 당시 미군조종사들을 감금했던 곳으로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베트남이 아직 왕들에 의해 다스려지던 당시부터 존재했었고 특히 프랑스의 강점기 당시 수많은 베트남의 독립투사들이 감금되고 고문받고 무자비하게 처형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가벼운 생각으로 들어섰던 이 오래된 수용소를 돌아보며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지더군요.


한편 이 수용소에 대한 베트남인민의 시각은 두 개의 관점을 갖습니다.

그 하나는 프랑스인들이 얼마나 혹독하게 베트남의 독립투사들을 말살하려 들었는지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미국인조종사 포로들을 이 수용소에 수감하고 얼마나 인간적으로 다루었는지 하는 것입니다. 그 후자의 시각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게 다 쇼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용소를 전시관으로 바꾸고 보여주는 가장 굵은 테마는 역시 프랑스에 대한 투쟁의 역사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호아로 거리에 들어섰습니다. phố 라는 단어는 아마 '거리'라는 의미이겠죠?

핀트가 좀 흔들렸는데 호아로수용소의 외벽입니다. 빨간 가건물은 매표소.

저 문 아치에 세겨넣은 Maison Centrale은 무슨 뜻일까요? 




호아로수용소 조감도




첫 건물 2층의 전시관. 아마도 베트남 승전 후 정치상황과 정부 주요인사들이 호아로 수용소에 대해 협의하고 방문하고 하는 역사적 사실들을 전개해 놓은 것 같았습니다.









수용소 도면



수용소의 미니어쳐.



예전엔 이 수용소에 갖힌 죄수들에게 저런 사다리 같은 키를 씌웠던 모양입니다.

좁은 침상에 저렇게 다리를 잠금장치에 줄줄이 엮어 놓았던 모양이구요. 그 사진의 배경으로 워터마크처럼 보이는 모습은 나중에 등장할 이 수용소 내 부조조각의 한 장면입니다.

수용소의 밤을 재현.






정말 많은 표정들과 생각들, 입장들, 건강상태와 절망 등등이 묻어납니다.


맨 끝자락에 앉은 이 분들은 이 전시관을 빠져나가는 관광객들을 마치 그 당시 프랑스인 간수들을, 아니면 일본군들에게 그랬듯 반항적인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침상이 있던 방의 반대쪽 출구. 역시 철창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독방도 있고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도 있습니다.

그 뒤안길에는 저렇게 벽에 부조(릴리프)조각들이 붙어 있고 그 당시 죄수들이 탈출하는데 사용했던 지하수로의 모형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저렇게 수로에 땅굴을 파고 탈출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부터 월남전 얘기가 시작됩니다.



미국에서 벌어진 반전시위들


그리고 호아로수용소의 미국인조종사 포로들



북베트남군은 저렇게 미국인조종사 죄수들에게 의료검진등 혜택을 베풀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그림은 마음을 짠하게 합니다. 당시 수용소에 갖혀 있던 한 미국인조종사가 그때 직접 그린 것이라 합니다.

미국의 북베트남 폭격과 당시 베트남인들의 치명적 피해. 그리고 대공방어사격, 격추, 체포, 수감....등 일련의 이야기들





위에서 두 번 째 사진의 조종사는 훗날 베트남에서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간 후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당시 북베트남의 고사포부대



얼마 넓지도 않은 수용소 뒷뜰의 일부는 이렇게 야외전시장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부분은 수용소에서 스러져간 베트남 독립투사들의 원혼을 달래는 사원이 되어 있었고요.








이쪽은 가족실, 2인실 등의 좀 더 작은 감방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 한 가운데에 이게 있었습니다. 킬로틴, 키요틴이라고도 하는 프랑스 전매특허인 단두대. 이 것으로 얼마나 많은 베트남인들이 목을 잘렸을까요?





호아로 수용소는 비단 남자들만 가두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베트남 여성들도 이곳에 투옥되었고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2인용 감방의 내부를 보여줍니다.




작은 창살사이로 들여다 보이는 2인실 내부.

이곳에 갖혀있던 죄수들이 방에서 끌려나오는 순간 좁은 복도의 끝엔 저 단두대가 보였던 거겠죠? 그렇게 끌려나온 죄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감옥 안에서 올려다 보이는 창살창문.

그 창문 밖엔 이런 천진난만한 아가씨들이 있었을텐데 말이죠.

또 다른 건물의 2층은 당시 수감자들의 이름을 위패처럼 모시고 있었습니다.

)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줌도 안되는 유품을 남기고 이 수용소에서 사라져 갔죠. 우리도 치면 남대문형무소 같은 거라 할까요?


오래 전은 국가의 독립을 위해 애쓰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들은 수십년, 근백년이 지나가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그 형형한 안광이 눈에 선합니다.



2014.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