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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민속과 주술

세빡따끄로가 등장하는 독수리사냥 민화

beautician 2022. 5. 18. 11:33

[남부 술라웨시 민화] 독수리 잡이

 

괴조

 

남부 술라웨시의 한 왕국에 일곱 명의 공주를 둔 국왕이 살았습니다. 왕국의 전통에 따라 공주가 일곱 명이 되면 왕실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 그 중 하나를 거대한 독수리에게 바쳐야 하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왕실이 대대로 짊어지고 있던 저주이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왕의 마음을 초초하고 무겁기만 했습니다. 그는 공주들 중 누구 하나도 잃고 싶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하면 일곱 공주 모두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먹지도 자지도 못할 만큼 골몰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가지 방책이 떠올랐습니다.

“독수리 잡기 대회를 열어보면 어떨까? 내 백성들 중 높은 무술실력과 도력을 가지고 저 거대한 독수리를 물리칠 만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왕은 다음 날 아침 모든 백성을 왕궁 앞에 모이게 했습니다.

“백성들은 듣거라. 저 거인 독수리를 잡는 대회를 열겠노라. 누구든 저 독수리를 잡으면 남자라면 공주와 혼인시켜 내 사위를 삼을 것이고 여자라면 왕실의 가족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백성들 앞에 공표했습니다.

“전하! 그 대회는 언제 하는 겁니까?”

백성들 중 한 사람이 큰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왕실고문이 예측하기로는 거인 독수리가 일주일 후에 우리 왕국에 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훈련에 정진해 힘과 무위를 가다듬도록 하라!”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거인 독수리가 오기 전까지 힘껏 단련했습니다. 모든 남자들은 왕의 사위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모든 여성들은 왕실에 들어가 공주 중 한 명이 되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한편 왕실 경비병들은 궁전에서 좀 떨어진 곳에 바루가(Baruga)라고 하는 임시 오두막을 만들었습니다. 그 바루가는 독수리에게 바쳐질 공주가 죽기 전까지 머무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수리를 유인할 함정이 될 터였습니다. 그 바루가 안에는 여자 아이를 닮은 인형, 과자 등 먹을 것, 소꼬(sokko-찹쌀로 만든 밥), 독수리가 먹을 음료를 담은 항아리 등이 준비되었습니다.

 

바루가(baruga)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고 독수리가 날아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공주들 중 미끼가 되어 줄 한 명이 경비원들에 의해 바루가로 안내되었고 많은 백성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비록 열심히 연습했지만 결국 거인 독수리를 이겨낼 사람이 없을 경우 독수리밥이 되고 말 공주의 운명을 걱정했습니다.

 

“날 용서하거라, 공주야. 이 나라의 전통과 관례가 이렇다는 것이 한스럽구나. 하지만 걱정말거라. 독수리 잡기 대회를 하는 중이니 반드시 널 구해낼 것이다. 우리 백성들 중 저 거인 독수리를 물리칠 용사가 나올 것이야.”

국왕은 이렇게 말하며 공주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려 했습니다.

 

왕과 가족들, 그리고 경비병들은 독수리가 오기 전 먼저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비록 장담했지만 걱정을 완전히 떨칠 수 없었습니다. 선대로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거인 독수리를 대적해 물리친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공주는 혼자 바루가에 남았고 그 주변 숲 속에 독수리 잡기 대회에 참가한 백성들이 포진해 독수리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칼과 창 같은 날카로운 병장기를 들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독무를 피워 올릴 준비를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독수리의 목을 걸 밧줄을 가져온 이도 있고 죽창을 만들어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루가 앞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한 청년이 바루가 안에 앉은 아름다운 처녀를 보고 냉큼 오두막에 올라와 공주에게 다가갔습니다.

“예쁜 아가씨! 왜 여기서 혼자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요?”

그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는데 이미 일주일째 왕국을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독수리잡기 대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보아 이 나라 사람이 아닌 것이 분명했습니다.

“난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공주는 침울한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뭐라고요?”

청년은 깜짝 놀라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공주는 한숨을 내쉬더니 왕국의 관례와 거인 독수리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 거인 독수리를 해치울 용사가 나타난다면 난 기꺼이 그 분의 신부가 될 거에요.”

“공주님을 몰라 뵈었네요. 죄송합니다. 오늘 제가 공주님 곁을 지켜드릴게요.”

청년의 말에 공주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내 곁에 있다가는 함께 독수리 밥이 될 거에요.”

“하하, 걱정마세요. 공주님. 제가 독수리로부터 공주님을 지켜드릴게요.”

 

그들은 그렇게 함께 독수리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도 독수리가 나타나지 않자 졸기 시작한 청년은 아예 바루가에서 공주의 발 밑에 누워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습니다. 공주는 이 배짱 좋은 청년에게 관심이 생겼고 정말 그가 자신을 구해줄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즈음 큰 소리가 나며 광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거인 독수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거대한 독수리가 상공을 빙빙 돌더니 곧바로 바루가를 향해 돌진해 내려왔습니다. 공주는 급히 자고 있던 청년을 깨웠습니다.

 

“일어나세요. 독수리가 왔어요.”

공주의 떨리는 목소리에 잠을 깬 청년은 품에서 성유물 무기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만만했던 것이죠. 그 무기는 스스로 목표를 찾아가 찌르는 외날 단검 바딕(badik)과 저절로 목표물을 옭아매는 마법의 밧줄이었습니다. 청년이 앞으로 나서고 공주는 그의 등 뒤에 숨어 눈을 꼭 감았습니다. 바루가에 뛰어든 거인 독수리는 먼저 거기 준비되어 있던 과자와 소꼬 찹쌀떡을 먹고 항아리의 물부터 마셨습니다. 그런 다음 이제 공주를 뜯어먹기 위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바딕(badik) 외날단검과 닷줄

 

숲에 숨어 독수리를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은 독수리의 엄청난 크기와 속도에 압도되어 감히 독수리에게 덤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청년이 먼저 손을 썼습니다. 그는 주문을 외워 밧줄이 독수리를 옭아매도록 했습니다. 그의 품에서 번개같이 튀어나간 밧줄이 독수리의 몸통을 휘감아 조이기 시작하자 독수리는 버둥거리며 날개를 움직여 줄을 풀려고 했습니다. 그 엄청난 힘에 줄이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인님! 더 이상 독수리를 묶어 둘 수 없어요. 어서 도와주세요.”

밧줄이 소리를 내며 청년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청년은 이번엔 바딕 단검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딕아! 저 독수리를 찔러!”

 

쏜살같이 날아간 바딕 단검이 독수리를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독수리가 세차게 움직이며 날아드는 단검을 부리로 받아치려 했지만 단검은 여지없이 독수리의 몸통을 찌르고 또 찔렀습니다. 결국 독수리는 쓰러지며 바루가 바깥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 모든 일이 공주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공주는 청년이 누군가 얘기를 주고받는 것을 들었지만 아까 주변엔 아무도 없었으므로 청년이 누구와 얘기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주변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뛰어나와 독수리가 죽은 것을 보고 혹시나 몰라 가지고 온 병장기들로 독수리를 찌르고 또 찔러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짧은 시간에 독수리를 완벽하게 제압한 청년의 실력에 모두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독수리의 몸통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나누었습니다.

 

한편 독수리를 해치운 청년은 공주에게 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가려 했습니다. 공주는 청년에게 감사하며 그 증표로 자신의 슬렌당을 벗어 주었습니다.

“목숨을 구해주어 감사합니다. 감사의 표시로 이 슬렌당을 드릴게요.”

청년은 공주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길을 떠났고 공주는 독수리잡이 대회에 참가했던 백성들과 함께 궁전으로 돌아왔습니다. 청년이 사라지자 독수리의 몸통을 잘라 나누어 가지고 온 백성들이 자신들의 무용담을 부풀리며 서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독수리의 몸통이 워낙 컷으므로 왕은 대회에 참가한 모든 백성들에게 몸통을 한조각을 나누어 주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그 독수리 몸통 부분들을 집에 잘 박제해 전시해 놓고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왕국의 걱정이던 거인 독수리가 사라져 왕국은 축제분위기에 빠졌습니다. 왕은 자기가 공을 세웠다고 주장하는 백성들 중 정말 누가 독수리를 죽였는지 공주에게 물었습니다.

“아버님, 독수리를 죽인 청년은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행색이 우리 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았아요.”

“그래? 그럼 그 청년이 어떻게 독수리를 잡았는지는 보았느냐?”

국왕은 더욱 호기심이 생겨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공주가 그때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겁니다.

“죄송해요. 무서워서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잘 보지 못했어요. 단지 그 청년이 말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에요.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저 독수리를 묶어!’, ‘이제 독수리를 찔러!’ 눈을 떠보니 독수리는 이미 죽어 있었어요.”

“그렇구나. 혹시 그 청년을 다시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겠느냐?”

“네, 아버님. 그 청년의 얼굴을 기억해요. 그리고 그가 떠날 때 내 슬렌당을 주었으니 그것으로도 알아볼 수 있을 거에요.”

그제서야 왕은 독수리를 잡은 사람이 자기 백성 중 한 명이 아니라 다른 나라 청년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는 왕궁 앞에 모인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충성스러운 백성들이여! 오늘 너희들의 수고가 컸다. 그리고 공주에게 들어보니 오늘 독수리를 죽인 용사는 우리가 모르는 낯선 청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록 독수리를 잡았지만 그 청년이 갈 길을 갔다고 하니 오늘 이 자리엔 당장 내 딸을 데려갈 용사는 없겠구나. 하지만 독수리를 잡아 왕국의 저주를 씻은 날이니 큰 잔치를 베풀겠다. 수고했다. 나의 백성들!”

 

다음날부터 시작된 잔치는 크게 흥청거렸고 다양한 음식과 음료들이 백성들에게 무료로 제공되었고 연극공연도 열렸습니다. 가장 큰 유흥거리는 그 다음날에 열린 세빡타끌로 경기였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경기에 열광했고 왕과 일곱 공주들도 궁전 베란다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응원했습니다.

 

요즘도 동남아에서 유행하는 세빡타끄로(Speak Takraw) 경기

 

그런데 경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또 다른 도전자로 건장한 청년이 경기장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대단한 기량을 선보이며 상대를 압도했는데 그의 팔목에는 여성의 슬렌당이 춤추듯 나부꼈습니다.

 

“아버님, 저 사람이에요. 저 청년이 독수리를 잡은 사람이에요.”

예의 공주가 그 청년을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놀란 왕은 그 청년의 놀라운 경기 기량과 함께 독수리도 잡은 높은 도력을 젊은 나이에 품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왕은 경기를 마치고 경지장에서 나가는 청년을 불러들였습니다.

“폐하! 저한테 볼 일이 있으신가요?” 청년이 물었습니다.

“그대가 독수리를 잡은 그 청년인가?”

왕은 곧바로 직진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폐하.”

“어떻게 독수리를 잡은 것인가?”

왕의 질문에 청년은 품 속에서 두 개의 성유물을 꺼내 앞에 놓았습니다.

“폐하, 이것들은 무엇이든 찌를 수 있는 바딕 외날단검과 무엇이든 묶을 수 있는 마법의 밧줄입니다. 저는 이것들을 이용해 독수리를 잡았습니다.”

 

청년의 설명을 들은 왕과 백성들은 그 청년이 정말 그 독수리를 잡은 영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 청년과, 독수리로부터 구원받은 공주를 혼인시키고 그 왕국에서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독수리 잡이 아트 모음

 

중국 무협지도 아닌데 말하는 검, 말하는 밧줄을 사용해 무위를 떨치는 이야기가 술라웨시에 있었습니다.

 

출처:

https://dongengceritarakyat.com/cerita-rakyat-sulawesi-selatan-si-penakluk-rajawa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