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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기사번역

가해국가의 반성 (네덜란드 vs 인도네시아)

beautician 2022. 2. 23. 12:16

네덜란드의 사과 불러온 역사연구의 후폭풍

 

 네덜란드 군인들이 자행한 1947년 라와거데(Rawagede) 학살사건을 묘사한 부조가 2011년 9월 15일 서부자바 라와거데 마을에 전시되었다. (AFP/Romeo Gacad)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네덜란드군이 저지른 ‘과도한 폭력’을 며칠 전 마크 뤼테(Mark Rutte) 네덜란드 총리가 새삼 사과한 것에 대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직 공식 반응을 내지 않은 상태지만 인도네시아 역사가들 중에서는 해당 기간 인도네시아군 스스로가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도 성찰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의견도 나왔다.

 

네덜란드 총리의 지난 17일(목) 사과는 피비린내 나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대한 보다 포괄적 연구결과가 출간된 직후 나왔다. 해당 연구에서 일단의 네덜란드 역사학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식민지 통제권을 회복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조직적으로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해당 연구는 네덜란드 정부가 연구비용을 지불했고 전쟁,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 연구센터(NIMH)와 동남아 및 카리브해 연구를 위한 왕립연구센터(KITLV)가 진행했는데 그 연구결과는 1945-1949년 기간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군이 대체로 지탄받을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그간 네덜란드의 공식입장에 전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고해성사

 “그 기간동안 네덜란드 측에서 저지른 조직적이고도 과도한 폭력에 대해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 깊은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 뤼테 총리는 네덜란드의 이전 정권들이 이 문제를 줄곧 백안시해 온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이로서 뤼테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중 자행된 네덜란드의 폭력에 대해 사과한 첫 네덜란드 총리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2020년 빌렘 알렉산더(Willem-Alexander) 네덜란드 국왕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면서 독립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겪었던 ‘과도한 폭력’에 대해 사과하면서 해당 시기가 ‘고통스러운 분리’의 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자카르타는 뤼테 총리의 사과에 대해 아직 공식 반응을 내지 않았다. 물도꼬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카르타포스트의 관련기사를 외무부에 통지하자 뜨꾸 파이자샤(Teuku Faizasyah) 대변인은 외무부가 뤼테 총리 발언을 충실히 해석하기 위해 해당 연구보고서를 검토하는 중이라며 이 사안을 논평하지 않았다.

 

반성

인도네시아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네덜란드 측의 해당 연구에 대한 반응으로서 인도네시아 국가기록과 사료편찬 과정에서 흔히 낭만적으로 묘사되며 ‘영웅적’ 장면들만 강조되는 독립전쟁 기간 중 인도네시아 측이 저지른 오점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역사가들은 네덜란드 측에서 ‘준비기간’이라고 표현하는 독립전쟁 시기에 인도네시아-네덜란드 혼혈들, 화교들, 네덜란드와 내통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쓴 인도네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혁명의 이름으로 자행된 잔혹한 폭력을 인도네시아인들 대다수가 모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네덜란드 측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가자마다 대학 역사학자 스리 마르가나(Sri Margana)는 네덜란드의 해당 연구가 학술적 측면에서 딱히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진 않았지만 네덜란드 정부가 비용을 댄 연구라는 측면에서 학문적 담론보다 더욱 큰 파급효과를 가졌다고 보았다.

 

네덜란드 역사가들이 식민지시대에 저지른 자신들의 과오들을 들춰낸 것처럼 이제 인도네시아 역시 역사의 그늘 속에 숨겨둔 인도네시아 측의 오점들을 스스로 밝혀 내야 할 시기라고 그는 주장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국가사료들 속에서 발견되는 반성할 부분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외면하면서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영웅적 서사만을 만들어 보여줄 건가요?”

 

그는 이번 네덜란드의 연구에 상응하는 학술적 연구를 로컬 역사학자들이 수행할 수 있도록 인도네시아 정부가 조치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양국의 연구협력 필요성도 강조했다. “네덜란드가 이번에 한 것처럼 인도네시아 역시 과학적 연구결과를 토대로 정치적 입장을 정립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줄 지은 소송들

이러한 연구와, 뒤이어 나온 사과는 네덜란드 정부를 대상으로 독립전쟁 기간 중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강제하는 소송제기로 연결될 개연성이 높다.

 

2011년 네덜란드명예부채위원회(KUKB)는 라와거데(Rawagede) 학살 전쟁범죄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를 네덜란드 법원에 제소한 바 있다. 이 단체는 해당 소송에서 승소했고 법원은 네덜란드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금 2만 유로(약 2,700만 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KUKB는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인도네시아 독립일자를 수카르노가 독립선언서를 공개 낭독한 1945년 8월 17일로 인정하라는 별도의 소송을 제기할 계획도 밝힌 바 있다. 현재 네덜란드는 주권이양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1949년에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단체는 인도네시아 독립일을 네덜란드 측이 1945년으로 인정해야만 그해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신생정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하면서 이를 명명한 ‘경찰행동’이 사실상 군사적 공세였음을 인정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마르가나 박사는 네덜란드가 1945년 독립선언서 낭독일을 인도네시아 독립일로 인정하도록 만들면 이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기간 중 인도네시아 측 전사들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도 인도네시아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수순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식민지 유산

해당 연구보고서 미주에서 교육문화연구기술부 힐마르 파리드(Hilmar Farid) 문화담당 국장은 이 연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해당 연구가 1945-1949년 기간 식민지 전반상황을 이해함으로써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려 했다고 평가했다. 연구진들이 폭력의 근원을 식민지 운영시스템에서 찾았고 식민 당국이 권력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물리적, 상징적 폭력을 휘둘렀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독립전쟁 기간 동안 벌어진 과도한 폭력이 식민지시대가 낳은 유산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이 유산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진실의 폭로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 연구 프로젝트는 바로 그 부분에서 크게 기여했다고 힐마르 국장은 덧붙였다.


출처: 자카르타포스트

https://www.thejakartapost.com/indonesia/2022/02/21/new-war-study-sparks-call-for-self-reflectio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