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백신정의를 위해 부스터샷 시행을 늦추자는 주장 본문
부스터샷이 반드시 초래하고야 말 백신 불평등의 시대
전국체전(PON) 개막이 임박한 지난 10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개최지인 파푸아주와 서파푸아주에서 가능한한 많은 주민들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려 했다. 인도네시아 동쪽 끝의 이 두 개 주에서 당초 70%의 백신접종율을 목표했으나 실제 접종은 경기가 진행되는 세 개 군과 한 개 도시에서만 집중적으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코로나-19 감염율을 낮추려고 노력하던 시기에 열린 제20회 전국체전(PON XX)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 두 개 주에서 실시된 백신접종 프로그램에 힘입어 많은 파푸아인들이 다른 지역에서 백신접종을 완료하고 체전을 방문한 외부인들과 함께 각각 선호하는 종목에서 좋아하는 선수들이 메달과 명예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마음 놓고 관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체전이 끝나고 3개월이 지난 지금 파푸아주와 서파푸아주는 전국에서 가장 백신접종율이 낮은 곳으로 분류되고 있다. 체전이 끝나면서 파푸아인들은 간단히 잊혀졌고 전국 백신접종프로그램에서 소외되어 버린 것이다.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주말까지 전체 파푸아주 주민들 중 1차 백신접종을 받은 사람은 28%, 2차까지 완료한 사람은 20%에 불과하다. 그나마 1차 접종 52%, 2차 접종완료 34%를 보인 서파푸아주의 상황이 조금 더 나은 편이지만 전국 평균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이들 두 개 주와 함께 인도네시아 서쪽 끝의 아쩨주, 파푸아와 술라웨시 사이에 위치한 말루꾸주까지 네 개 주가 전체 34개 주 중 가장 낮은 접종률을 보였다.
한편 중앙정부는 전국적으로 접종대상자 2억800만 명 중 75%인 1억5600만 명이 1차 접종을 받았고 53%인 1억1000만 명이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전국 백신접종 프로그램의 성과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자축하고 있다. 그 성공의 확신을 토대로 정부는 새해가 밝으면 곧바로 첫 두 차례 접종으로 형성된 면역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3차 접종, 즉 백신 부스터샷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시행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정부 당국의 데이터만 보아도 전국이 고르게 백신접종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쉽게 엿보인다. 가장 높은 접종율을 보인 자카르타는 접종대상인구 대비 1차 접종 135%, 2차 접종완료 123%로 전국 최상위를 달렸고 그 다음은 발리로 1, 2차 각각 103%와 91%의 접종율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은 팬데믹과 경제침체로 이미 야기된 불평등과 양극화를 부스터샷 백신 프로그램이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 팬데믹 기간 동안 부자와 빈민, 농촌과 도시, 자바-발리 지역과 그 이외 지역 사이의 간극을 더욱 크게 벌린 양극화 문제에 대한 기사는 그동안 이미 넘쳐날 정도로 나왔다.
백신접종 우선순위가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극심한 정도에 따라 정해졌다는 점에서 자카르타, 자바 전역 및 발리가 우선시된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제20회 전국체전을 앞둔 시기, 파푸아인들에게 접종우선순위가 돌아간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민 중 겨우 절반이 2차 접종을 마친 상황에서 백신 부스터샷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백신접종이 경제회복의 열쇠라는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백신접종을 이미 받은 사람들은 보다 회복하기 유리한 입장이 되는 것이며 아직 백신접종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회복은 뒤로 쳐질 뿐 아니라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세계 각국의 백신접종율이 최소한 40%에 이를 때까지 부스터샷 백신접종을 연기해 달라고 부유한 국가들에게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들이 WHO의 이러한 권고를 무시한 채 이미 부스터샷 프로그램을 시행했고 인도네시아도 그 대열에 서서 내주부터 3차 접종을 시행할 예정이다.
WHO는 세계적으로 백신공급물량이 한정된 상황에서 일부 국가들이 부스터샷 백신접종을 실행하면 가난한 나라들은 백신에 접근할 기회조차 빼앗기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더 길어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코 위도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인 G20 지도자들과의 회합에서 대통령은 개발도상국들을 대변해, 부자 국가들이 백신불평등 해소 노력에 참여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 바 있다. 하지만 앞서 두 번의 접종효과를 무력화시키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예방을 위해 3차 접종이 필수적이란 보고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G20 회담에서 막 귀국한 조코위 대통령은 부스터샷 프로그램 시행을 촉구하는 2회 접종완료자들의 강력한 요청에 부딪혔다.
공식적으로는 보건의료 종사자들에게만 부스터샷 접종이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자카르타와 자바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수면 밑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3차 접종을 받았음은 공공연연한 비밀이다.
백신접종 프로그램이 정부가 원하는 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백신의 수입지연, 백신 배포행정의 난맥상, 백신접종 프로그램에 회의적인 사람들 등 다양한 저해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초 정부가 연내에 접종대상자 2억800만 명 전원에 대한 두 번의 백신접종을 완료하려 계획했지만 연말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겨우 목표의 절반만 달성한 상태다.
이 대목에서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부스터샷 백신접종을 시작할 충분한 명분을 갖추었는가?
“다 같이 회복, 더 강하게 회복(Recover together, recover stronger)”은 2021년 12월 인도네시아가 G20 의장국으로 취임하면서 내 건 모토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내에서 벌어지는 백신불평등을 방치한 상태라면 이 모토는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백신 부스터샷 프로그램은 파푸아인들과 아쩨인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백신접종권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이로 인해 발생할 더욱 큰 불평등과 양극화는 국가적으로 적잖은 사회-경제-정치적 비용을 강요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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