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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차차 증조할머니 별세

beautician 2021. 11. 22. 12:44

 

 

11월 15일(월) 차차네 증조할머니, 그러니까 메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내가 술라웨시 출장을 갈 때 '손에 뭘 좀 넣어줄까?'라는 제의도 해오고, 오토바이 사고로 다쳐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한동안 만지고 마사지해 걸어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나름 신통력있는 백마술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오래도록 고생하다가 80세가 넘어 고단한 인생을 마침내 마친 것이다.

 

무슬림들의 믿음 속에는 그런 신통력 즉 귀신과의 계약을 통해 얻은 매직을 가진 사람들은 죽을 때 고통받으면서도 죽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고 하는데 임종하기 며칠 전부터 그런 상황이었다고 한다. 죽은 듯 숨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움직이며 고통스러워 하고 방안을 돌아다니다가 또 다시 죽은 듯 누워버리는 일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에게 간 메이가 보내온 사진을 보고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결국 우스탓이 와서 기도하며 그런 매직의 기운을 씻어낸 후에야 눈을 감았다고 한다.

아직도 인도네시아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메이와 아이들도 거기서 하루 밤을 보냈다. 아이들은 다음 날 수업에 들어가야 하니 집에 갔어야 하지만 증조할머니의 임종을 본 아이들은 어딘가 무서운 마음이 들어 엄마 옆에 붙어있기로 한 것이다.

 

모니 빈티 자스민(Moni Binti Jasmin)

향년 86세

 

2년 가까이 지속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희생된 끝물이어서 늘 고객으로 넘쳐났던 앰블란스나 묘지, 화장터가 갑질을 부리는 건 예상된 일이었다. 원래 무슬림의 관습대로라면 사망한 날 매장했어야 하지만 엄청난 돈을 달라는 묘지 관리회사 측의 요청에 결국 메이는 12년 전 죽은 동생의 묘에 할머니를 합장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보내준 돈 대부분이 무덤과 관련해 소비되었다고 한다.

 

 

머스짓에서 알꾸란 공부(ngaji)를 줄곧 해온 마르셀이 증조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며 머리맡에서 기도를 해주었다고 하여 크게 칭찬해 주었다. 집안 어른이 가는 길을 지켜 드리고 종교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일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다음 날 집에 돌아온 아이들을 잠깐 들러 만나 보았다.

그렇게 한 사람을 보낸 가족들의 삶은 여전히 계속 되고 있는 걸 보면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2021.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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