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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인생질문 에세이

체중계의 교훈

beautician 2021. 9. 27. 11:47

아부

 

코로나 델타변이가 한창 창궐할 때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는 옥시미터(Oxymeter)를 사놓고 만약을 대비하던 중 그런 가정용 의료기기(실제로는 검사기)가 실제로 그리 비싸지 않다는 걸 알고 와이프가 당뇨 측정기도 주문했는데 그걸로 검사해 본 결과치가 경종을 울렸습니다. 수치가 정상범위를 한참 넘어가 있던 겁니다.

 

사실 그 사이 몸무게가 늘어도, 혈압이 고혈압으로 나타나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지난 7월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을 지나면서 매일 눈이 많이 침침해지고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가 당뇨 검사결과를 보고 우선 몸무게를 빼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년 11월쯤 와이프가 한국 가서 3개월 있다가 오는 동안 살 빼겠다고 마음 먹은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10킬로 정도 급격히 살이 찐 상태였기 때문이었어요. 그것도 관성이 붙어서 이후에도 계속 불어나는 추세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건강이 정상이란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는데 어쨋든 상황을 되돌릴 기회가 온 겁니다. 첫 한달 동안 6-7킬로 정도가 빠졌는데 그걸 확인해야 하는 오래된 체중계는 이제 내려다 봐도 눈금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눈이 더 나빠진 거죠.

 

 

 

애들 어릴 때 쓰던 것이니 오래 되기도 했습니다. 몸무게를 줄이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체크하면서 자극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벼르고 벼르던 디지털 액정이 설치된 체중계를 사서 거실 한 가운데에 설치에 두었습니다. 오다가다 올라가 볼 요량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예전 체중계로 재던 것보다 1킬로 정도 더 무겁게 나온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새로 산 체중계가 틀렸을 리 없습니다. 오히려 오래된 체중계가 어딘가 좀 헐거워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선 덜컥 든 생각이 이랬습니다.

 

'그럼 내가 그때 거의 90킬로 였다는 거야?'

 

새로 산 체중계로 처음 잰 몸무게는 82.5kgs. 70킬로까지 가야 하는데(정 안되면 75까지) 새 체중계가 갑자기 불타는 의지를 꺾었습니다. 하지만 1킬로 차이에 무너지면 10킬로 빼는 건 꿈도 꾸지 말아야죠. 우선 먹는 걸 줄이고 마감에 쫓기면서도 7층 공원층에 내려가 700미터짜리 둘레길을 일곱번 돌아 매일  5킬로를 걷고 죽어라 자건거 페달을 밟았지만 2킬로 정도를 빼는 게 한 달도 넘게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재보니 79.9kgs.

마침내 80킬로 밑으로 내려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아침에 잠시 그런 거고, 사람 몸무게가 하루에 1-2kgs 정도 왔다갔다 한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낮에는 여전히 81-82킬로 사이를 오갈 것입니다. 지금같은 추세로 식이요법와 운동을 계속하면 한달 즘 후엔 안정적으로 80킬로 밑의 몸무게가 나올 것이고 목표한 70킬로에 도달하는 건 아마 내년 말쯤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뇨수치와 혈압이 불과 두 달 사이에 정상치로 돌아왔다는 것이죠. 건강도 부지런해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러다가 가끔은 오래된 체중계를 꺼내 한번 올라가 봅니다. 그러면 디지털 체중계보다 1킬로 정도 빠지는 몸무게가 나오는데 왜 그리 나오는지 뻔히 알면서도 은근히 기분은 좋아집니다. 노력한 게 조금 더 보상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간신들 아부에 약한 게 다 이해가 갑니다.

나를 객관적인 나 이상으로 부풀려서 평가해 주는 것, 심지어 없는 것도 있다고, 과장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거짓말을 치며 칭찬해 주는 것, 그게 아부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불과 1킬로그램 적게 표시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리 기분이 좋은데 깜도 안되면서 주변 간신들로부터 '당신 분명히 대통령감'이란 말을 듣는 사람(들)은 얼마나 공중에 붕붕 떠 있겠어요?

 

 

2021.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