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현지인 사고방식에 물든 한국인

beautician 2021. 9. 5. 11:29

현지 지역전문가를 무시하는 독특한 시각

 

숄랏 - 모스크에서 매주 금요일 정오에 갖는 금요 기도회

 

국민들의 대체적 성향의 차이를 문화의 차이로 보지 않고 우열의 등급으로 나누려는 모습을 아마도 우리 선조들이 일제강점기 당시 많이 느꼈을 텐데 인도네시아에 부임한 내로라 하는 기업들 지점장들에게서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인들이 일을 빨리빨리 서두르는 것에 대해 현지인들이 의아해 하는 인식뿐만 아니라 하루에 몇 차례 기도시간을 보장해 줘야 하는 것, 강제적인 르바란 보너스 지급 규정, 자바인들의 뒷담화(아닌 사람들도 물론 있고), 바딱인들의 싸가지 성질머리 같은 것(물론 그렇지 않은 바딱인들도 많음)들에 대해서도 이제 막 부임한 지점장들은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사실 대부분입니다.


현지에 부임한 지점장들이 갖는 생각은 아마 자대에 막 배치된 소대장들 각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상병 병장들이 막 부임한 소대장에게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원래 이렇게 해왔던 겁니다' 하면서 자기들 편한 쪽으로 소대장을 길들이려 하는 경우 많은데 정작 그 소대장들은 선배들에게 자대 가서 상병 병장들에게 잡히지 말고 오히려 걔들을 잡으려면 빡빡 굴리는 수밖에 없다는 교육을 받죠. 때로는 일반병들 잡지 말고 하사관들부터 잡으라는 말도 듣고요. 그래서 부임하는 날 부대 들어서면서부터 위병소 위병들 때려잡고 지나가던 하사 중사들 따귀 때리는 소위들이 예전에 그토록 많았던 겁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소대장이 막 부임하면 장교인 소대장과 군대 짬밥이 훨씬 오래된 상병, 병장들 사이에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분위기가 아주 냉랭해지는 겁니다.  불과 몇 개월만 지나면 격의없이 농담하며 지낼 거면서.

인도네시아 부임한 지점장들도 나이와 연륜의 차이는 좀 있더라도 신임소대장과 별반 차이 없습니다. 잡히면 안되고 내가 쟤들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니 주변에서 인도네시아에선 이래야 하고 여기 문화가 어쩌고 하는 얘기를 다 개소리로 듣고 인도네시아 부임한 지 일주일도 안되어 내린 스스로의 판단이 가장 옳다고 믿고 그걸 밀어붙이는 게 보통입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온갖 문제들이 발생하는 거고요. 가장 큰 병폐는 아무리 현지문화나 성향에 대해 조언을 해도 "사람은 세상 어디나 다 똑같은 거야" 이러면서 자기 상식과 자기 판단을 강요하다가 결국 사고나 터지면 아래 직원들이 제대로 조언을 해주지 않았다고 남 탓을 하는 겁니다. 뭐, 이해는 합니다. 그렇게 남이 책임을 져야 자긴 진급하고 승진할 수 있으니까요.

더욱 안타까우면서도 웃기는 점은 그들이 그런 오해와 잘못된 인식이 바로잡히지 않은 채 2-3년 현지 임기를 마치고 인도네시아를 떠난다는 것이고 본국에 돌아가서는 '인도네시아 전문가' 대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서두르는 한국인들과 천천히 하더라도 신이 원하는 시점에 일이 이루어질 거라 믿는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 평화가 찾아오는 건 대략 5-10년 정도 걸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현지인들과 평화를 이룬 한국인들이 본국에 돌아가면 이제 고향의 한국인들과 평화를 이루는 게 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일 것 같습니다.

여기 부임한지 얼마 안된 기업 간부들이 가끔 털어놓는 속마음을 들어보면 대략 이렇더군요.

"여기 오래 산 한국놈들은 다 여기 물들어서 현지인이랑 별로 다를 바 없어. 사고방식이 완전히 인도네시아식이야."

사실 그 얘기는 그 한국인이 현지전문가란 칭찬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런 면에서 인도네시아에서만 법인을 가지고 있는 기업체들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면이 있다고 봅니다. 만약 한국에 본사를 가진 회사라면 인도네시아를 그렇게 보는 본사 대표 및 임원진, 실무진과 개인의 힘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거대하고도 유구한 자체 문화를 가진 인도네시아 사이에 끼이게 되니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대기업 지점장들이 한국식 마인드를 굳건히 지키면서 2-3년의 현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게 그분들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훨씬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2년 또는 2-3년 현지생활 한다고 해서 지역전문가가 되진 않습니다.

 

 

2021 8. 28.

'매일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니 코로나 양성율 눈속임  (0) 2021.09.16
꼰대 입문  (0) 2021.09.16
대장금에 편승하기  (0) 2021.09.02
기사 속에 등장하는 중언부언  (0) 2021.09.01
남자들이 주먹질해서 서열 정하는 배경에는  (0) 2021.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