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인도네시아 출판산업의 팬데믹 대응 본문

출판

인도네시아 출판산업의 팬데믹 대응

beautician 2021. 8. 14. 11:58

인도네시아 출판산업의 팬데믹 대응

 

인도네시아 도서시장은 대체로 몰과 쇼핑센터에 입점한 대형 서점들이 신간 도서를, 시장통 서점에서 중고 서적을 주로 취급하는 구조인데 2020년 3월 2일 현지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후 3월 하순부터 6월 초까지 2개월 넘게 몰들이 폐쇄되면서 오프라인 서점들도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간신히 영업재개한 후에도 서점 손님들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는데 2021년 6월 델타변이가 주도한 감염폭발로 7월 3일부터 8월 10일까지 다시 한 달 남짓 문을 닫으면서 그간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표1. 인도네시아 코로나-19 신규확진자 발생 추이 (2021년 8월 12일 현재)

 

코로나 상륙 11개월만인 2021년 2월 3일 누적확진자 1백만 명, 4.5개월 만인 6월 21일 2백만 명, 1개월 후인 7월 22일 3백만 명을 넘기며 감염확산에 가속도가 붙었다. 7월 이후 전국적으로 강력한 이동제한조치가 시행되면서 기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한 모양새지만 8월 12일 누적확진자는 이미 380만 명에 육박했고 열흘 넘게 하루 1,500명 넘나드는 사망자를 내고 있다.

 

타격과 피해

팬데믹 기간 동안 전체 출판사의 58.2%가 50% 이상, 29.6%가 30~50%의 매출감소를 겪었다. 오프라인 서점 의존도가 월등히 높은 중소규모 출판사들은 팬데믹 초창기부터 자금난을 겪으며 크게 흔들렸다. 국가도 도서구입 규모를 줄여 2020년 71.4%의 출판사들이 교육부나 기타 정부부처, 국립도서관으로부터 도서주문을 받지 못했다.

 

한편 2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수입서적 전문서점 악사라(Aksara)의 끄망 소재 본점과 일본계 키노쿠니야(Kinokuniya) 서점의 스나얀플라자(Senayan Plaza) 소재 플래그쉽스토어가 2020년 12월말과 2021년 3월말 각각 문을 닫은 것은 서점산업을 직격한 팬데믹의 위력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서점 체인들은 2010년대에 적극적으로 확장하며 여러 지점들을 냈다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감량해 가던 과정에서 팬데믹을 맞아 치명상을 입었고 이들 서점이 문을 닫자 주요고객을 이루는 자카르타 중산층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오프라인 서점시대가 몰락해 간다는 정서가 한때 고조되기도 했다

 

여러 개의 출판사와 신문사를 보유한 꼼빠스-그라메디아 그룹(Kompas-Gramedia Group)의 현지 최대 서점 체인 그라메디아는 전국 주요 몰과 쇼핑센터에 120개 서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난 2020년 10월 자카르타에서 가장 목 좋은 따만 앙그렉몰(Mall Taman Anggrek) 지점 임대연장을 하지 않고 철수했다. 비용절감을 위해서였다. 이는 출판업계 대기업조차도 팬데믹에 고전하고 있다는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중소규모 오프라인 독립서점들이 극심한 경영란을 겪고 있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림 1. 2020년 12월 문을 닫은 악사라 끄망점>

그런 와중에 도서 불법복제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인도네시아 출판협회(IKAPI)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동안 54.2%의 회원사들이 온라인에서 불법복제 되어 거래되는 자사 출판물을 발견해 보고했다. 실제로 또코페디아(Tokopedia), 쇼피(Shopee), 블리블리(blibli), 부까라빡(Bukalapak) 같은 대형 온라인 쇼핑몰 플랫폼에서조차 불법복제 도서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을 지금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서출판산업의 대응과 변화

팬데믹이 도서산업에 가져온 가장 분명한 변화는 산업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마지막 오프라인 도서행사는 2020년 3월 자카르타 인근 BSD 지역에서 개최된 빅 배드 울프 북바자(Big Bad Wolf book bazaar)였고 이후 거의 모든 도서 행사들이 온라인에서 열렸다. 현지 대표적 도서 이벤트인 인도네시아 국제도서박람회(IIBF)도 2020년 9월 28일~10월 7일 기간 제40회 행사를 비대면으로 개최했다.

 

온라인을 통한 도서 홍보와 다수의 웨비나, 작가와의 온라인 만남도 확대되어 백세희 작가, 정문정 작가, <샤안>을 출간한 소녀시대 출신 제시카 정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하루출판사(Penerbit Haru)와 그라메디아를 통해 온라인에서 현지 팬들을 만났다.

 

오프라인 도서매출이 멈추면서 디퍼블리시(Deepublish), 부꾸끼타(Bukukita), 부까부꾸(Bukabuku), 그롭마트(Grobmart) 등 온라인 서점 또는 도서중심의 온라인 쇼핑몰들이 급속도로 활성화되었다. 그라메디아, 미잔(Mizan)그룹 같은 대형 출판사들은 물론 중소규모 출판사들 역시 자체 온라인서점을 개설 또는 확대하거나 앞서 언급한 대형 온라인 쇼핑몰들과 손잡고 도서 할인판매 행사를 하는 등 온라인 의존도를 더욱 높여갔다.

 

코로나 사태로 e-북 수요도 크게 늘었다.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관리하는 국가도서원(Perpustakaan Nasional- Perpusnas)에 2020년 한 해 동안 총 14만4793개의 ISBN이 발급되었는데 이는 2019년의 12만3227개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2020년 ISBN 중 e-북은 2만2050개였으며 올해엔 5월까지 이미 1만3019개의 e-북 ISBN이 발급되어 이 추세대로라면 작년 물량을 간단히 넘어설 전망이다. e-북 출간이 늘어나는 것은 예전처럼 e-북 전문출판사들이 추가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기존 출판사들이 디지털 도서 출간을 늘렸기 때문이다.

 

출판과 판매방식에서도 변화가 찾아왔다.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2020년 하반기부터 기존의 출판계획을 전면 수정하거나 보류하고 확실하게 매출이 보장되는 유명 작가 작품 출간에 주력했다. <82년생 김지영> 번역본 출간을 담당한 그라메디아 편집자 줄리아나 탄(Juliana Tan)은 한국 소설이나 자기계발서의 경우 한류를 타 현지에서도 유명세를 떨치는 한국 아이돌이 추천한 한국내 베스트셀러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고 밝혔다. 또한 프리오더(pre-order)를 보다 광범위하게 운영해 자금회전율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2020년 3월 처음 오프라인 서점영업이 중단되고 출판사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그라메디아는 문닫은 서점에 직원들을 출근시켜 전화판매 주문배달 서비스를 시도했고 미잔그룹은 재택근무에 들어간 편집인들을 대거 온라인 도서 프로모션에 투입하기도 했다.

 

요원한 정부지원 요청

하지만 일부 대형 출판사들이 기민하게 상황에 따라 변화를 모색하고 자구책을 마련해 위기 타개를 도모하고 있는 한편 대다수 중소규모 출판사들이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사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출판협회(IKAPI)가 나서 다음과 같은 단계별 구체책을 정부에 제안하고 있다.

 

1) 구조 단계

① 교육문화부나 정부의 타 부처 또는 정부산하 단체들의 도서구매 활동 재개.

② 정부조달시스템에 출판사 참여 허용해 정부 기념품으로 국산도서 채택.

③ 공공도서관, 학교 및 시민독서공원 용도의 도서 조달.

④ 은행대출조건 완화

⑤ 도서출판을 위한 종이, 인쇄용 잉크 및 도서인쇄의 부가세 면제

⑥ 작가 소득세 면제 방식의 세금 지원

⑦ 책에 붙는 부가세 면제

⑧ 도서 불법복제와 판매 근절

 

2) 회복 단계

① 인쇄비 지원 및 작가 인세 지원 형태의 출판사 지원

② 출판사의 도서 마케팅 프로그램 비용 지원

③ 학교 대면학습 재개 전 출판 서브섹터 창의경제 종사자들의 백신접종 (이 부분은 2021년 7월까지 상당히 진행됨)

 

3) 정상화 단계

① 출판사의 도서전시회 개최 지원

② 해외 지적재산권(IP) 판매를 위한 국제 도서전 및 도서 에이전트 육성 지원

③ 시장개발 및 불법복제 근절을 위해 IKAPI의 온라인 시장 인프라 개발 지원

④ 불법복제 대응팀 구축과 불법복제범과 싸우는 저작권 보유자들 지원

⑤ 도서 불법복제 근절을 위해 지적재산권 법령의 관련 시행령 제정

 

IKAPI는 이러한 취지의 지원요청을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해왔고 정부 당국도 대체로 공감을 표했지만 정부차원에서 코로나 대응에 거의 모든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1차 구조단계의 요구사항들도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도서 출판산업, 서점산업 단위의 대책은 정부지원 없이 요원한 상황이므로 결국 개별기업 차원에서 가용한 자원과 아이디어를 모두 동원해 온라인을 지향하고 프리오더, e-북에 더욱 치중해 각자도생하고 있는 셈이다.

 

탄탄한 기반을 닦은 대기업이나 중견출판사들은 분명 이번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서 살아남겠지만 중소 출판사들과 영세 독립서점들에겐 어쩌면 특단의 대책과 함께 운이 더욱 필요한 상황일 듯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