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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도네시아 호러영화의 문화산업적 특징과 추이분석

beautician 2021. 6. 18. 02:04

공포영화를 중심으로 본 동남아시아 영화시장의 문화산업적 의미

- 인도네시아

 

 

 

 

I. 들어가는 글

 

부침을 거듭하던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장르는 2016년 인도네시아 영화시장이 해외자본에 개방된 후 양질의 영화들이 여럿 나오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던 중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을 맞았다. 올해 3월 영화인들이 조코위도도 대통령에게 영화산업 재건에 정부차원의 도움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내고 대통령도 이에 화답하면서 ‘극장으로 돌아가자’ 캠페인이 벌어졌고 아쩨 독립투사<쯋냐디엔(Cut Nya Dhien)>(1988) 복원영화에 각부처 장관들이 각각 다른 날 측근 및 영화인들과 단체관람을 하는 등 정부측의 분명한 협조 제스쳐에 힘입어 상영관 방문 관객들이 올 초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물론 팬데믹 전 상황으로 돌아가려면 아직 멀었다.

 

많은 영화들이 유리한 시점에 개봉하려고 일정을 늦추거나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같은 OTT로 직행하는 현실에서 상당수 호러영화들이 영화산업 재건에 앞장서 극장개봉을 감행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인도네시아 공포영화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문화산업적 의미를 짚어보기로 한다.

 

 

 

II. 인도네시아 공포영화

 

1. 인도네시아 공포영화 현황

 

1) 최근 동향 및 주요 영화

 

인도네시아에서도 귀신만 몇 번 등장시키면 만사형통하는 호러영화 시대는 지났다.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는 최근 실감나는 캐릭터와 살아있는디테일, 이를 가능케 하는 탄탄한 시나리오에 힘입어 많은 발전을 보였고 그 위상도 국내외에서 크게 높아졌다.

 

조코 안와르 감독은 1981년 어린시절에 보았던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 원작에 감명을 받았고 영화계에 들어와 13년 동안 충분한 영화제작 지식을 쌓은 후 비로소 그 프리퀄 격인 2017년작 동명 영화를 제작해 그해 로컬영화 흥행수위를 달성, 2017년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17)에서도 7개 부문을 휩쓸며 인도네시아 호러 영화 장르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호러영화가 미학적 세련을 더해 가면서 조코 안와르 감독의 2019년작 <지옥의 여인(Perempuan Tanah Jahanam)>이 2020년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20)에서 영화제 사상 최다인 1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작품상과 감독상 등 주요 본상들을 포함, 7개 부문을 수상하며 보다 높아진 감독의 기량과 호러영화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그림 1. 조코 안와르 감독의 <사탄의 숭배자>과 <지옥의 여인>>

 

조코 안와르 감독은 빈약한 시나리오와 입체적이지 못한 등장인물 설정을 인도네시아 호러 영화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는다. 탄탄한 스토리와 설정을 통해 관객들이 등장인물의 무사함을 바랄 만큼 감정이입이 되어아먄 무서운 호러영화가 될 조건이 된다는 논리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출신, 배경, 성격을 분명히 설정하고 스토리 전개에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하여 단발적인 점프스케어 장면에만 의존하던 이전 호러영화들과 차별성을 보였다.

 

아위 수리야디(Awi Suryadi) 감독의 <다누르(Danur)> 연작도 비슷한 기조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해 2017년 시리즈 첫 작품부터 270만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뻴리타 하라빤 대학교(Universitas Pelita Harapan) 자유예술학부 교수이자 영화평론가 F. 파울 헤루 위보워(film F. Paul Heru Wibowo)는 수히르토 시대나 개혁시대(2000~2016)에 만들어진 호러영화들에 비해 최근작들에서 영상 테크닉과 스토리 측면에서 미학적, 예술적 발전이 두드러진다고 평가했다. 이는 촬영기법의 발전과 값비싼 카메라의 출현뿐 아니라 CGI (computer-generated imagery 컴퓨터 기반영상처리) 기술, 애니메이션, 특수효과 등 기술적으로 충분히 훈련된 전문가들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흑마술여왕(Ratu Ilmu Hitam)>(2019)과 <악마가 낚아채기 전에(Sebelum Iblis Menjemput)>(2018)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최근 몇 년간 제작된 호러 영화들은 꾼띨아낙이나 순델볼롱, 뚜율, 뽀종, 로컬 민화 속의 요괴와 귀신들을 꼭 등장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1] 인도네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국구 귀신들 대신 <람뽀르(Lampor)>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특정 지역 괴담이나 <다누르> 연작처럼 특정 개인이 겪은 초자연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2]

 

<그림2. <흑마술여왕>과 <악마가 낚아채기 전에> 포스터>

 

2) 역대 박스오피스 현황

 

인도네시아 영화시장이 해외자본에 개방된 2016년 이후 흥행한 공포영화들 내역을 통해 로컬영화 호러장르의 최근 추세를 읽을 수 있다. 

 

<표1. 인도네시아 공포영화 연도별 흥행작 (2016~2020)>

년도 (공포영화 편수) 연도별 흥행성적 15위 내의 공포영화 (흥행순위)
2016 (1) <더 돌(The Dall)>(15위)
2017 (5)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1위),
<다누르: 난 귀신이 보여(Danur: I can See Ghosts)>(4위),
<빙의인형(Jailangkung)>(5위),
<영안(Mata Batin)>(8위),
<더 돌 2(The Dall 2)>(9위)
2018 (7) <수잔나: 무덤 속에 숨쉬다(Suzzanna Bernapas Dalam Kubur)>(2위),
<다누르2: 마다(Danur2: Maddah)>(3위),
<아시(Asih)>(5위),
<빙의인형2(Jailangkung 2)>(9위),
<사브리나(Sabrina)>(11위),
<꾼띨아낙>(12위),
<악마가 낚아채기 전에(Sebelm Iblis Menjemput)>(13위)
2019 (3) <다누르3: 적막(Danur 3: Sunyaruri)>(4위),
<지옥의 여인(Perempuan Tanah Jahanam)>(7위),
<꾼띨아낙2(Kuntilanak 2)>(8위)
2020 (5) <악마가 낚아채기 전에 2(Sebelm Iblis Menjemput 2)>(4위),
<망꾸지워(Mangkujiwo)>(5위),
<빙의2(Rasuk 2)>(9위),
<태아(janin)>(12위),
<아시2(Asih 2)>(14위)

 *참조: 필름인도네시아 홈페이지

 

2010년부터 쇠퇴기를 맞아 한없이 추락하던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장르는 <사탄의 숭배자>(2017)가 크게 흥행하며 판도를 바꾸자 또다시 많은 호러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킨 헐리우드 영화 <컨저링(Conjuring)>(2013) 이후 <애나벨(Annabelle)>(2014), <더 넌(The Nun)>(2018) 등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 스핀오프 작품들이 나오자 이를 벤치마킹한 ‘다누르 유니버스(Danur Universe)’가 구축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적 사건이다.

 

 

3) 다누르 유니버스 (Danur Universe)

 

인도네시아에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나 DC 수퍼히러오 유니버스를 벤치마킹해 <군달라(Gundala)>(2019) 같은 토착 슈퍼히어로들의 부미랑잇 유니버스(Bumilnagit Universe), 가똣까차(Gatotkaca) 같은 와양 인형극 속 인물들을 수퍼히어로로 차용한 사트리아 데와 유니버스(Satria Dewa Universe)가 각각 관련 영화들을 제작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MD 픽쳐스가 2017년부터 내놓고 있는 일련의 <다누르(Danur)> 공포영화 연작들도 일정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다누르(Danur)’란 ‘시체에서 뚝뚝 떨어지는 액체’ 또는 ‘시체냄새’라는 뜻이다.

 

그 첫 번째 영화는 2017년 작 <다누르: 난 귀신이 보여(Danur: I can See Ghosts)>로 리자 사라스와티(Risa Saraswati)가 쓴 ‘다누르 대화의 관문(Gerbang Dialog Danur)’이란 책을 각색한 것인데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작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20년까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 <다누르> 본편 트리올로지와 여러 편의 프리퀄과 스핀오프 등 모두 여덟 편이 이어졌다. 

 

<표 2. 다누르 유니버스 영화들의 흥행성적>

영화명 개봉일 감독 제작사 관객 
(흥행순위)
<다누르: 난 귀신이 보여> 2017. 3. 30 아위 수리야디
(Awi Suryadi)
픽하우스 필름스
(Pichouse Films)
2,736,157 (4위)
<다누르2: 마다
(Danur2: Maddah)>
2018. 3. 28 아위 수리야디 MD 픽쳐스
픽하우스 필름스
2,572,133 (3위)
<빙의(Rasuk)> 2018. 6. 28 우바이 폭스
(Ubay Fox)
MD 픽쳐스
디 컴퍼니
(Dee Company)
900,019
<아시(Asih)> 2018. 10. 11 아위 수리야디 MD 픽쳐스
픽하우스 필름스
1,714,798 (5위)
<어둠(Silam)> 2018. 12. 13 호세 뿌르노모
(Jose Poernono)
픽하우스 필름스 793,107
<다누르3: 적막
(Danur3: Sunyaruri)>
2019. 9. 26 아위 수리야디 MD 픽쳐스
 
2,411,036 (4위)
<빙의2(Rasuk2)> 2020. 1. 2 리잘 만토파니
(Rizal Mantovani)
디 컴퍼니
블루워터 필름스
(Blue Water Flms)
376,985 (9위)
<아시2(Asih)2> 2020. 12. 24 리잘 만토파니 MD 픽쳐스
픽하우스 필름스
330,097
(10위)

 * 참조: 필름인도네시아 홈페이지

 

<그림 3. 다누르 유니버스의 영화들>

인도네사아 로컬영화의 제작비 회수를 위한 최소 유료관객 평균이 30만 명 선으로 알려져 있다. <다누르> 본편 트리올로지는 매년 2백만 관객을 넘기며 로컬영화 흥행순위 3~4위를 차지했으므로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더욱이 매년 꾸준히 흥행 3~4위 성적을 내는 것은 한번 흥행 1위를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 여세를 몰아 제작된 <다누르>의 프리퀄 <아시>와 <빙의>도 각각 백만 명 전후의 관객을 불러들였다.  <아시>는 <다누르> 본편의 유령 ‘아시’의 등장배경과 그 이후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다누르>는 나름 안정적 궤도에 올라 제작인MD 엔터테인먼트는 이제 속편이나 스핀오프들이 일정 관객수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저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4) 2021년 호러영화 비중

 

2020년 3월 이후 코로나에 직격당한 인도네시아 영화산업 재건을 위해 정부가 적극 협조하는 ‘극장으로 돌아가자’ 캠페인과 창의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코로나 백신접종, 상영관에 보건 프로토콜 정착으로 영화 관람객들은 확실히 증가추세에 있다. 특히 <컨져링3: 악마가 시켰다>, <분노의 질주9> 등 헐리우드 대작들이 속속 극장개봉하여 관객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영화는 2019년 100만명 이상 관객이 든 영화들이 즐비했고 로컬영화 관객 연간 5,200만명을 넘었으나 2020년은 3월 하순 극장들이 코로나로 인해 속속 영업을 중단하던 시기까지 1,250만명이 들었고 2020년 10월 극장들이 영업을 재개한 후 5월말까지 유료입장관객은 약 45만 명에 불과하다.

 

로컬영화 정보 사이트 필름 인도네시아(Film Indonesia)에서 로컬영화 관객 수를 취합해 흥행 상위 15편을 게재하는데 지난 3월까지 단 두 편만 올라 있다가 5월 말엔 비로소 15편이 모두 등재되었다. 그러나 2019년 당시 등재된 영화 대부분이 100만명 넘는 관객수를 보였던 것에 비해 올해 현재 최상위 22만명, 최하위 198명까지 집계되고 있어 예년에 비해 로컬영화 개봉작 숫자가 아직 미미함을 시시한다. 하지만 최근 개봉작들은 올초에 비해 관객수가 크게 늘었다.

 

<표3. 2021년 인도네시아 로컬 영화 흥행순위>

순위 영화제목 관객수
1 <죽음의 렝게르 춤 (Tarian Lengger Maut)> 220,327
2 <꾸양 (Kuyang The Movie)> 126,108
3 <고마워요 엄마 고마워요 아빠 (Terima Kasih Emak, Terima Kasih Abah)> 38,414
4 <나의 이슬람 선생님 (Dear Imamku)> 35,514
5 <혼자 있지 마 (Jangan Sendirian)> 28,938
6 <드뚱: 할머니 그네의 비밀 (De Toeng: Misteri Ayunan Nenek)> 25,720
7 <악령의 눈물 2(Titisan Setan 2)> 24,186
8 <일어난 시체: 검은 영혼(Bangkitnya Mayit: The dark Soul)> 22,044
9 <전처 유령의 속삭임 (Bisikan Arwah Mantan)> 9,341
10 <플라스틱 섬: 미래를 위한 진로와 기록 (Pulau Plastik: Perjalanan dan Catatan untuk Masa Depan)> 8,051
11 <가스 퀴(Gas Kuy)> 4,786
12 <렘방의 음산한 빌라 (Villa Angker Lembang)> 4,174
13 <아윤디아의 집으로 가는 길(Ayundia dan Jalan Pulangnya)> 2,496
14 <보이지 않는 희망 (Invisible Hopes)> 1,481
15 <사이자와 아딘다 (Saidjah dan Adinda)> 198

* 참조: 필름인도네시아 홈페이지 (2021년 6월 12일 집계 기준)

 

팬데믹 와중에도 호러영화가 절반 이상인 여덟 편이 포함된 것은 2021년에도 호러 장르가 여전히 대세임을 시사한다.

 

 

5)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해외영화제 수상 경력

 

<표4. 인도네시아 호러영화의 해외영화제 수상 경력>

포스터 영화 기본정보 해외영화제 수상내역

<깔라>(2007)
원제(영문)<Kala(Dead Time)>
조코 안와르(Joko Anwar) 감독
- 2007년 뉴욕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 심사위원상
<다라의 집>(2009)
원제(영문)
<Rumah Dara (Macabre)>
감독: 모 브라더스 (Mo Brothers)
- 2009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여우주연상
- 2009년 뉴욕시 호러필름 페스티벌 관객상

<이상 모드>(2012)
원제(영문) <Modus Anomali (Ritual)>
조코 안와르 감독
- 2012년 뉴욕 아시안 판타스틱 필름(NAFF) 부천상,
- 2012년 몰린스(Molins) 영화제 감독상
<사탄의 숭배자>(2017)
원제(영문) <Pengabldi Setan (Satan’s Slave)>
조코 안와르 감독
- 2018년 미국 오버룩(Overlook) 필름 페스티벌 작품상
- 2018년 토론토 애프터 다크 필름 페스티벌 최우수 호러영화상
- 2018년 팝콘 프라이츠(Popcorn Frights) 필름 페스티벌 제일 무서운 영화상
<악마가 낚아채기 전에>(2018)
원제(영문) <Sebelum Iblis Menjumput (May The Devil Take you)>
티모 짜흐얀토 (Timo Thahjanto) 감독
- 2018년 카탈로니아 시체츠(SITGES)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미드나이트 엑스트림 부문 작품상
<지옥의 여인>(2019)
원제(영문) <Perempuan Tanah Jahanam (Impetigore)>
조코 안와르 감독
- 2020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작품상, 멜리스(Melies) 국제영화제 연맹(MIFF)상.
- 인도네시아 영화로서 처음으로 2021년 93회 아카데미 영화제 경쟁부문 출품 

 호러영화 장르에서 조코 안와르 감독이 특별히 열일을 했다는 게 위의 표에서도 여실히 읽힌다.

 

 

2. 인도네시아 공포영화의 문화적 특성

 

1) 인도네시아 공포영화의 기원과 역사

 

영화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처음 소개된 것은1900년 12월 5일로 바타비아(Batavia-자카르타의 옛 이름) 시내 따나아방(Tanah Abang)에서 빌헬미나 여왕과 헨드릭 왕자 즉위식 다큐멘터리, 남아프리카 트란스바알(Transvaal)에서 일어난 보어전쟁 장면들, 그리고 빠리에서 열린 박람회에 대한 단신들이 상영되었다.

 

1926년작 <루뚱 까사룽(Loetoeng Kasaroeng)>은 순다 전설 ‘잃어버린 긴꼬리 검은 원숭이’를 각색한 작품이지만 네덜란드인 G. 크루거(G. Kruger)와 L. 흐펠도프(L. Heuveldorp) 가 제작해 엄밀히 인도네시아 첫 호러 영화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림4. 루뚱 까사룽(Loetoeng Kasaroeng)> 신문광고>

 

이후 얼마간 시간 간격을 두고 1934년 치노 모션픽쳐스(Cino Motion Pictures)에서 <백사 흑사 요괴(Doea Siloeman Oeler Poeti en Item)>라는 제목으로 화교 테뗑춘(The Teng Chun) 감독의 본격 호러영화가 나왔다. 두 마리 뱀 요괴들이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내용의 중국민화 <우페쪼아(Ouw Peh Coa)>를 토대로 만든 이 영화가 인도네시아 첫 호러영화로 간주된다.

 

<그림 6. <우페쪼아>연극 포스터(왼쪽)와 <흑사 백사 요괴> 영화 포스터>

화교들이 산디와라 극단 구성원들의 대부분을 이루던 20세기 초엔 중국민화들이 각색되어 인도네시아에서 연극무대에 오르거나 영화화되는 일이 많았다. 테뗑춘은 1935년에도 요괴들이 등장하는 두 편의 호러영화 <앙하이지(Ang Hai Djie)>와 <티팟까이 결혼하다(Tie Pat Kai Kawin)>를 찍었다.

 

문학작가 아르메인 페인(Armijn Pane)은 당시 연극이나 영화들은 관객들이 일상의 문제들을 잊을 도피처 역할을 했으므로 전래동화나 외국 민화의 신비롭고 기괴한 이야기에 화려한 색채를 덧입혀 무대에 올렸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1937년 네덜란드 인디필름 신디케이트(Nederlandsch Indie Film Syndicaat)가 제작한 영화 <밝은 달(Terang Boelan)>이 크게 성공하면서 연극배우들이 대거 영화계로 유입되었다.

 

<그림 6. <밝은 달> 기사(왼쪽)과 <살아있는 해골> 포스터>

 

테뗑춘의 자바 인더스트리얼 필름(Java Industrial Film) 영화사는 1940~1941년 기간 중 무려 15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중 <살아있는 해골(Tengkorak Hidoep)>이라는 딴쭈이혹(Tan Tjoei Hock) 감독의 1941년작이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음산한 섬으로 향한 한 탐험가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무덤에 벼락이 내리 꽂히거나 해골이 움직이는 등 다양한 특수효과를 탑재해 관객들에게 호러영화의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

 

하지만 1942년 일본군이 인도네시아에 진주하면서 영화산업 발전도 멈췄다. 당시 태평양전쟁을 주도하던 일본은 라디오방송, 신문, 연극, 영화 등 모든 매체를 전쟁 독려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호러영화의 발전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 전쟁에 이어 독립전쟁까지 1949년 말에 모두 끝난 후 1950년 23편, 1951년 40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하지만 호러영화가 다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1971년으로 M 샤리푸딘(M. Syarifudin) 감독의 <리사(Lisa)>와 아왈루딘(Awaludin)과 알리 샤합(Ai Shahab)의 공동작품 <무덤 속에서 출산(Beranak dalam Kubu)>이 호러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전자는 인도네시아의 첫 심리호러영화로 평가되며 후자는 전설적 호러퀸 수잔나(Suzanna)의 데뷔작이다.

 

<리사>에서 계모는 세상을 떠난 남편의 유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남편의 딸 리사를 죽이려 한다. 착한 의사가 리사를 구해주는데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한 계모는 리사의 유령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며 공포에 시달리다가 실제로 리사가 집에 돌아오자 두려움에 떠밀려 절벽에서 떨어진다.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 <리사>는 인도네시아의 첫 ‘심리공포’ 영화로 평가된다

 

<그림 7. <리사(Lisa> 포스터>

 

개인에게 내재된 공포를 보여주는 <리사>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68년작 <로즈마리 베이비(Rosemary Baby)>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는 ‘너무 심각한 주제’라는 인상 때문에 별로 각광받지 못했고 이런 류의 심리공포 영화는 관객들이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리사> 이후 지금까지도 거의 제작되지 않았다.

 

한편 <무덤 속에서 출산>의 성공으로 제작사 띠다르 자야(PT Tidar Jaya)는 7,200만 루피아의 이익을 냈다.[1] 당시의 영화제작비가 2,500~3,500만 루피아 정도였으므로 이에 고무되어 1972-1980년 사이 22편의 호러 영화가 제작되었고 그 이후 1981-1991년의 10년간은 이전 기간의 4배에 달하는 84편의 호러영화가 나왔는데 그중 16편에서 수잔나가 주인공을 밑았다.

 

<그림 8. <무덤 속에서 출산>과 호러퀸 수잔나>

 

수하르토 정권이 들어선 후 호러영화 역시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맞추어 갔다. 새 정권은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를 먹고 세워졌다. 1965년 9월 30일 공산당 쿠데타가 실패하면서 공산당과 연루되었거나 심정적으로 동조했다고 여겨진 이들이 대거 숙청되었는데 최소 50만명, 최대 300만명이 1965~1966년 사이 이른바 ‘인도네시아 대학살’로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토대 위에서 수하르토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고 경제자유화를 실행하면서 동시에 군이 사회정치적으로 민간분야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이중기능을 허락하는 등 자기 버전의 인도네시아를 만들어 갔다. 신문, 라디오, TV, 영화 등 각종 매체에서 군대식 검열이 이루어졌다. 시민들은 더 이상 정부에 맞설 수 없었으므로 국가는 수하르토와 그 측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감히 저항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일이 빈번했다.

 

이런 공포 분위기에서 호러영화가 전성기를 맞는다. 1970~1990년대의 호러영화들은 각 지역의 전설들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왔는데 수잔나가 요염한 매력을 폭발시키는 가운데 폭력, 섹스, 코미디가 넘쳐 흘렀다. 당시 호러 영화가 차용한 전설과 괴담들은 민중의 일상과 친숙한 것이었고 극중 등장하는 순델볼롱, 뽀쫑, 건드루어(Genderuwo), 니로로키둘(Nyi Roro Kidul) 같은 귀신과 요괴들이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수입영화 쿼터를 줄인 정부정책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1972년 한 해 무려 700~800편의 영화가 수입되었는데 10년 후엔 200편 정도로 줄어들었다. 한편 영화제작 윤리강령이 1981년 제정되면서 국산영화들은 국가적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생겼다. 그 결과 호러영화 속 종교인이 도덕적 설교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귀신과 요괴가 아무리 거대한 힘을 가졌어도 결국은 영화 속 종교인이 대변되는 전능한 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진부한 스토리가 반복적으로 전개되었다.

 

1970년대 이후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나 의구심이 호러영화에 투영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대적 냄새가 나는 것들은 무엇이든 자연과 동화된 삶 또는 농촌사회를 파괴하는 것으로 그려지곤 했다. <무덤 속에서 출산>(1971)에서도 주인공 릴라는 도시에서 찌간야르 촌(Desa Ciganyar)으로 돌아온 후 친자매인 도라가 세운 사악한 계획의 타깃이 된다. 한편 <사뚜 수로의 밤(Malam Satu Suro)>(1988)에서는 자카르타 출신 청년 바르도 아르디얀토가 수케티(Suketi)란 이름의 순델볼롱과 결혼하여 나중에 큰 부자가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이르러 RCTI, SCTV, ANTV, TPI 및 인도시아르(Indosiar) 등 수많은 TV 채널들이 탄생하면서 영화산업은 일정한 후퇴를 겪는다. 대중이 TV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영화계 인력도 대거 TV 산업에 몰려갔다. 그러나 곧 동남아 외환위기로 시작된 파국이 세상을 덮쳤다. 1998년 5월 동시에 벌어진 민주화운동과 자카르타 빈민폭동이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수하르토 정권이 마침내 붕괴했고 정치경제적 혼란 속에서 인도네시아 영화산업도 어쩔 수 없이 동면에 들어갔다.

 

개혁정부가 들어선 후 2000년대 초 TV에 담력시범 프로그램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그 트랜드는 영화로 이어져 2001년 영화 <즐랑꿍(Jelangkung)>이 제작되기에 이른다. 호세 뿌르노모(Jose Poernomo) 감독과 리잘 만토파니(Rizal Mantovani) 감독이 함께 만든 이 영화는 21세기 인도네시아 호러영화의 이정표로 꼽힌다. 촬영에 불과 2주일 걸렸고 제작비는 10억 루피아(약 1억원)가 들었는데 150만 관객이 몰려 큰 이익을 냈다. 당시 인도네시아 상영관 숫자를 고려하면 150만 명 관객은 한국의 천만 관객에 버금가는 성적이었다. 당시 리리 리자(Riri Riza) 감독의 기념비적 어린이 뮤지컬 영화 <쉐리나의 모험(Petualangan Sherina)>이 두 배의 제작비를 들이고도 거의 같은 수준의 흥행을 했던 것과 여러 면에서 비교되었다.

 

즐랑꿍은 귀신 출몰현상에 관심을 가진 네 명의 친구들이 자카르타를 떠나 앙꺼르바투 마을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렸다. 그곳에서 친구들이 즐랑꿍 초혼술로 혼령을 불러내고 그후 무시무시하고 잔혹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그림 9. 2000년대의 호러영화들>

*  왼쪽부터   < 즐랑꿍>, <유령>, <유령의 섬>, <새신부의 폭포>

 

 

젊은이들이 담력시험을 하는 스토리는 이후 트랜드가 되어 아드리얀토 시나가(Adrianto Sinaga) 감독의 <유령(Hantu)>(2007), 호세 뿌르노모 감독의 <유령의 섬>(2007), 리잘 만토파니 감독의 <새신부의 폭포(Air Terjun Pengantin)>(2009) 등으로 이어졌다. 호러 영화에 섹스와 코미디 요소를 가미하는 관행도 돌아왔다. 요염한 여성들과 광대짓 하는 멍청이들이 호러 영화의 경직된 분위기를 녹였다.

 

몇몇 호러 영화들은 아예 해외 포르노 배우들을 섭외해 티켓파워 제고를 기대했다. 그래서 <머리 감겨주는 아가씨(Suster Keramas)>(2009)에는 사쿠라기 린(Sakuragi Rin), <따나구시르 묘지의 유령(Hantu Tanah Kusir)>(2010)에는 오자와 마리아(Ozawa Maria), <머리 감겨주는 아가씨(Suster Keramas 2)>속편에서는 아오이 소라(Aoi Sora) 등 일본 AV 배우들이 출연했다. 미국 포르노 배우 테라 패트릭(Tera Patrick)과 샤샤 그레이(Sasha Grey)도 <처녀귀신의 신음소리(Rintihan Kuntilanak Perawan)>(2010), <허리를 흔들며 목욕하는 뽀쫑(Pocong Mandi Goyang Pinggul)>(2011)에 각각 출연했다.

 

<그림10. 포르노 배우들이 출연한 인도네시아 호러영화>

 

이 시기에 일본 공포영화의 영향도 있어 꼬야 빠가요(Koya Pagayo) 감독의 <학교에 귀신들이 있다(Ada Hantu di Sekolah)>(2004), 하니 R 사뿌트라(Hanny R. Saputra) 감독의 <거울(Mirror)>(2005)은 일본풍을 담았다.

 

2007년 일간꼼빠스에 따르면 당시 호러 영화 평균 제작비는 20~25억 루피아(현재 환율 기준, 약 1.6-2억원) 선이었다. 리리 리자 감독의 <무지개 분대(Laskar Pelangi)>(2008)가 대략 90억 루피아(약 7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저렴한 제작비와 최소한의 관객이 반드시 보장된다는 매력이 섹스와 코미디를 버무려 젊은 층 타깃의 호러영화를 계속 제작하는 이유가 되었다.

 

필름인도네시아(FilmIndonesia.or.id) 자료에 따르면 2007~2015년 기간 흥행 상위영화 70편 중 16편이 호러 장르였다. 나낭 이티아부디(Nanang Istiabudi) 감독의 <카사블랑카 터널(Terowongan Casablanca)>(2007)이 120만 명 관객으로 최상위, 아디탸 구마이 (Aditya Gumay) 감독의 <따만 라왕(Taman Lawang)>(2013)이 52만 6,761명으로 최하위였다.

 

<그림11. <카사블랑카 터널>과 <따만 라왕> 포스터>

호러 영화 한 편이 크게 히트하면 봇물 터지듯 유사한 호러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관행은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와 수하르토 정권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시대가 변하며 귀신들도 도시화를 겪었다. 대도시 구석구석 미스터리가 얽힌 장소들이 영화에 등장하는데 꼬야 빠가요 감독의 <저룩뿌룻 공동묘지의 유령(Hantu Jeruk Purut)>(2006), 호세 뿌르노모 감독의 <루마끈땅(Rumah Kentang)>(2012), 다핏 뿌르노모 감독과 아구스티 딴중(Agusti Tanjun) 감독이 합작한 <끌렌더르 몰(Mall Klender)>(2014), 에카 까틸리(Eka Katili) 감독의 <마예스틱의 랑삿 공원(Taman Langsat Mayestik)>(2014) 등이 자카르타와 반둥의 특정 장소들을 부각했다. 

 

<그림 12. 특정장소를 부각한 호러영화들>

*  왼쪽부터   < 저룩뿌룻 공동묘지의 유령>, <루마끈땅>, <끌렌더르 몰>, <마예스틱의 랑삿 공원>

 

 

호러영화는 2010년대에 들어서며 쇠퇴기를 맞았다. 2012년 19편의 호러영화가 나와 총 299만명의 관객이 들었는데 2008년엔 같은 19편의 호러영화에 760만명, 2009년엔 22편 723만명, 2010년엔 19편 453만명, 2011년엔 10편에 242만명 관객이 든 것에 비해 최악의 성적이었다. 2010~2012년 사이 다른 장르의 로컬영화들이 20-40억 루피아(1.6억~3.1억원) 정도를 들여 만들어지던 가운데 호러영화 평균제작비는 이전보터 훨씬 적은 6억~10억 루피아(4,600~7,820만원) 정도에 머물렀다.

 

지난 수십 년간 민화와 전설을 끊임없이 울궈 먹고 섹스와 코미디로 대충 버무리는 식으로 정형화된 호러영화 공식에 관객들이 드디어 싫증을 낸 것이다. 인터넷 발전과 스마트폰 보급으로 관객들이 클릭 몇 번으로 더 좋은 영화를 선택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날림으로 만든 호러영화들은 더 이상 설 곳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가 바야흐로 2016년 초 인도네시아 영화시장이 해외자본에 개방되고 2017년 조코 안와르 감독의 <사탄의 숭배자(Pengabdi Setan)>가 크게 성공하면서 앞서 ‘II-1-1) 최근 동향 및 주요 영화’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오늘날 호러영화의 새 전성기가 열렸다.

 

<그림13. <뻐나리 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포스터>

<다누르> 연작의MD 픽쳐스는 2020년 초 공포영화로서는 초유의 금액인 약 150억 루피아(약 11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뻐나리 마을의 대학생봉사활동(KKN di Desa Penari)>을 제작해 현재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17년 <사탄의 숭배자> 제작비도 20억 루피아(약 1.6억원) 수준이었으니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도 분명히 고급화되어 가는 중이다. 이 영화도 조코 안와르 감독 작품이다.

 

 

 2)  한국 공포영화와 접목

 

앞서 언급한 조코 안와르 감독의 2017년 작 <사탄의 숭배자>는 가장 성공적인 한-인니 영화 합작제작 사례다. Cj 엔터테인먼트가 제작비 투자와 배급에 참여했고 시나리오는 조코 안와르 감독이 직접 썼다.

 

믹스 엔터테인먼트(Mixx Entertainment)가 <여고괴담>(1998)을 리메이크한 <수니(Sunyi)>(2019)는 155억 루피아(약 11.7억원)을 벌어들이며 선전했지만 2019년 흥행순위에 들지는 못했다.

 

팔콘 픽쳐스(Falcon Pictures)와 퍼스트룩 필름(First Look Film)이 만든 <헬로고스트>(2010)의 리메이크작이 2021년 개봉을 앞두고 있으나 아직 트레일러나 시놉시스도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문화나 환경이 다른 건 당연한 일이지만 특히 무속에 대한 이해가 천양지차여서 <써니>(2011)나 <7번방의 선물>(2013)같은 다른 리메이크작들과 달리 공포영화 리메이크를 위해서는 좀 더 대폭적인 각색이 불가피하다. <여고괴담>의 경우 <수니>로 리메이크할 당시 인도네시아에 사실상 ‘여고’가 존재하지 않아 스토리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불가피했고 결과적으로 사전정보가 없었다면 한국관객들도 그것이 <여고괴담>의 리메이크였다는 것을 알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림 14. <수니(Sunyi) 포스터(왼쪽)와 <헬로고스트> 리메이크 스틸컷>

 

 

3. 인도네시아 공포영화의 특성

 

1) 역사-종교적 배경과 세계관

 

문서로 확인되는 인도네시아 역사시대는 7세기 수마트라 빨렘방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번성한 스리위자야 왕국(Kerajaan Sriwijaya)부터다. 자바에서는 1299년 세워진 마자빠힛 왕국(Kerajaan Majapahit)이 16세기말까지 존속했다. 이들은 모두 힌두-불교 왕국이다. 하지만 15~16세기 이슬람 왕국들이 속속 세워지면서 멸망하거나 이주했다. 현재 발리에 힌두교 인구가 대세인 이유는 당시 마자빠힛 왕국 유민들이 대거 그곳으로 이주해 정착했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무슬림 인구비중이 80%를 넘는 인도네시아에서 유일신 사상의 정통 이슬람과 토착 무속이 공존하게 된 이유는 이슬람 유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15~16세기에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아홉 명의 수호자’라는 의미의 ‘왈리 송오(Wali Songo)’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기록들이 서로 충돌하고 그 숫자도 8명에서 13명 사이를 오가고 있어 정통 역사보다 전설에 가까운 이들은 자바 땅에 이슬람을 전파했을 뿐 아니라 이슬람 교리와 자바 전통문화가 서로 어우러지도록 한 인물들이다.

 

당시 이슬람과 전통 무속의 대결은 왈리송오의 일원이자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고위 울라마(Ulama)였던 퇴마사 쉑 수바키르(Syekh Subakir)의 고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슬람 포교를 방해하던 자바의 귀신과 마물들을 퇴치하기 위해 똠박 끼아이 빤장(Tombak Kyai Panjang)이라는 장창(長槍) 형태의 영적 무기를 자바섬 정중앙인 띠다르산(Gunung Tidar) 정상에 세웠고 거기서 뿜어져 나온 영적 불꽃과 열기가 인근 마물들을 순식간에 불태워버리며 번져나가자 자바 영계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급기야 자바의 정령과 마물들의 왕, 9,000년 묵은 삽다빨론(Sabda Palon)이 현신해 40일 밤낮으로 쉑 수바키르와 격돌했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삽다빨론이 싸움을 멈추고 내민 타협안이 이슬람 포교를 막지 않을 테니 자바의 기존 관습과 문화를 파괴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쉑 수바키르는 고심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

 

이런 왈리송오의 고사들은 이슬람과 현지 문화가 융합되면서 두꾼, 빠왕, 꾼쩬 같은 무당들이 존속하고 무속에 깃든 요괴와 귀신들이 살아남거나 이블리스(iblis-마귀), 마리드(marid -마령), 이프리트(ifrit-귀신), 샤이탄(shaytan-악마), 잔(jann-악귀) 순의 이슬람 악마 체계에 편입되는 근거가 되었다.

 

<그림15. 영화 <망꾸지워(Mangkuwiko)>(2020)에 등장하는 두꾼(dukun) 이미지>

한편 카톨릭의 구마사제처럼 이슬람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루키야(Ruqiyah)가 있다. 오직 알꾸란에만 의지해 퇴마의식을 행하는 루키야들은 특별히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아 지역사회나 개별 사원에서 인정하는 우즈탓(Uztad) 정도의 이슬람 교사들이 수행한다. 그러나 루키야는 최근 일반 무슬림 대상의 강연회와 심신 및 장소의 정화에 초점을 둔 루키아 테라피로 발전해 더욱 일반화되는 추세다. 수하르토 정권(1967~1998) 당시 호러영화에서 퇴마사로 등장하는 루키야를 종종 볼 수 있었다. 1998년 자카르타 폭동 이후 전국에서 흑마술사(두꾼)에 대한 잔혹한 사냥과 학살이 자행되었고 최근엔 두꾼들이 ‘루키야’의 탈을 쓰고 행하는 무속 퇴마의식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림16. 뽀쫑 분장을 하고 마을 입구를 지키는 인도네시아 청년들>

무속은 인도네시아인들의 현실과 일상에 맞닿아 있어 신문지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뽀쫑 분장을 하고서 마을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이 단적인 예다. 무슬림들에게는 죽음을 궁극적으로 시각화한 뽀쫑 모습을 보여줘 코로나 경각심을 높인다는 취지라지만 여기 무서운 뽀쫑귀신이 있으니 코로나 귀신들은 들어오지 말라는 주술적 의미 역시 분명해 보인다. 우리네 마을 초입에 선 장승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무슬림들의 마을을 귀신이 지키는 모습은 사뭇 비현실적이다.

 

최근 자카르타 위성도시인 데뽁(Depok)지역에서 이웃의 재물을 훔쳐간다는 돼지요괴 바비응예뻿(Babi Ngepet) 소동을 조작해 마을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 우즈탓과 말 안듣는 어린 딸에게 붙은 악령을 쫓아내는 의식을 하다가 딸을 익사시키고 만 부모와 두꾼들이 구속되는 사건들도 벌어졌다. 대규모 인원이 밀집해 있는 봉제공장이나 학교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집단 빙의, 즉 끄수루빤 마쌀(Kesurupan Massal)은 현지 한국인들도 종종 경험하는 영적 현상이다. 자기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노조의 색다른 사보타지 투쟁방식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귀신을 목격한 직원들이 단체로 비명을 지르며 일사불란하게 졸도하는 봉제라인을 2층 관리실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종업원들을 쓸어버리는 것만 같다.

 

2005년 인도네시아 울라마 대의원회(MUI)가 무속금지 파트와(fatwa)[1]를 2005년에 발표했고2013년 설립된 인도네시아 샤리야 루키아 협회(Ruqyah Syar'iyyah Indonesia Association)에 가입한 루키야 테라피스트들이 1천 명이 넘는다. 그러나 이슬람의 수면 밑에는 여전히 어마어마한 무속 주술시장이 존재하며 귀신들을 부려 상대방을 죽거나 병들게 만드는 산뗏 저주술(Ilmu Santet), 도검불침의 신체를 만드는 일무끄발(Ilmu Kebal),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미칠 듯 사랑하는 마음을 강제로 심는 뻴렛주술(Ilmu Pelet), 이웃이나 후손의 부를 훔쳐와 단기간에 부자가 되려는 재물주술(Ilmu Pegugihan) 등 피와 생명을 제물로 요구하는 본격적인 흑마술에 정통한 정식 두꾼은 아니더라도 주술상식을 일상에 활용하는 아마추어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인도네시아의 전국 단위 거대 무슬림 조직 중 하나인 무함마디야(Muhammadiyah) 고위 성직자였던 함카(Hamka)가 1938년 ‘민중의 나침반(Pedomen Masyarakat)’지에 연재한 소설 『판데르베익호의 침몰(Tenggelamnya Kapal Van Der Wijck)』 엔 “도대체 의사가 뭘 안다고? 의사들은 이런 환자를 치료하지 못해! 상처를 치료하려면 주술사를 불러와야지! 그러다가 나중에 환자 상태가 정말 위중해지면 그때 가서야 의사한테 달려가곤 했다”든가 “빤더까르 수딴의 처신과 용기있는 행동에서 드러나는 성품은 매우 매력적이었고 심지어 간혹 주술에도 일가견을 보여 노인은 그가 마음에 쏙 든 나머지 자신의 딸 다엥 하비바와 혼인시켜 사위로 삼았다”는 식의 묘사로 이슬람 성직자조차 주술을 당시 남자들의 기본 소양이나 상식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인도네시아인들의 일상과 문화 깊숙이 스며있는 무속의 전통은 호러영화가 자연스럽게 현지에서 가장 각광받는 장르가 되도록 만든 문화역사적 배경을 이룬다.

 

 

2) 공포영화의 종류

 

호러는 스플래터, 슬래셔, 오컬트, 하드고어, 스너프 등 다양한 하위 장르를 포함하지만 영적존재/귀신 중심의 ‘악마적 공포’와 인간 중심의 ‘심리공포’로 나눈다면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는 거의 악마적 공포 일색이라 할 수 있다.  

위의 <표1. 인도네시아 공포영화 연도별 흥행작 (2016~2020)>에 등재된 호러영화들은 모두 예외없이 악령을 다룬 ‘악마적 공포’ 장르다.

 

 

3) 주요 소재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들은 주로 특정 요괴, 귀신, 마물들을 다루거나 영적 존재가 개입된 장소나 사건들을 주요 소재로 했다. 영적 존재나 기괴한 사건 자체의 공포감을 티켓파워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다가 조코 안와르 감독 시대에 들어서 스토리와 탄탄해지면서 재미가 더해지고 인물묘사가 치밀해지면서 일견 ‘심리공포’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을 보였다.

 

인도네시아 토착 전설과 괴담이 넘쳐나 초창기 중국 민화를 차용한 것 외에는 딱히 외국 소재를 사용한 것이 보이지 않지만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현지 괴담의 스팩트럼 속에는 네덜란드인, 일본인 귀신들도 다수 등장한다.

 

괴담들이 많은 만큼 수많은 소재들이 존재하지만 영화에 모두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1) 꾼띨아낙과 뽀쫑     

꾼띨아낙과 뽀쫑은 가장 많이 영화화된 소재다. 하지만 꾼띨아낙이 1970년대부터 영화화된 데 비해 뽀쫑의 영화화는 보다 최근인 2006년의 일이다.  비교적 분장이 용이한 여자귀신에 비해 몸 전체에 천을 두르고 딸리뽀쫑으로 꽁꽁 묶인 채 반쯤 썩은 무서운 얼굴을 드러내야 하는 뽀쫑이 분장과 특수효과의 어려움도 있지만 죽음을 궁극적 시각화한 뽀종이 대형 스크린에 오르는 것에 당시 무슬림 사회의 거부감도 크게 작용했다.

 

실제로 루디 수자르워(Rudy Suedjarwo) 감독의 <뽀쫑(Pocong)>이 2006년 제작되자 당시 기준으로 너무 공포스러워 무슬림의 건전한 가치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영화검열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문이 인도네시아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켜 같은 해 거의 같은 내용으로, 그러나 좀 덜 무섭게 다시 제작한 <뽀쫑2>가 크게 흥행했고 이후 뽀쫑 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극장에 밀려들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꾼띨아낙과 뽀쫑은 그 사이 민간에 친숙해져 이제 얼굴을 다 가린 헝클어진 긴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꾼띨아낙은 샴푸 광고에 등장하고 뽀쫑은 온갖 코미디 영화와 광고에 감초처럼 등장하게 되었다.

 

<그림 17. 각종 뽀쫑 영화들>

(2) 꾸양(Kuyang) 류(類)

깔리만탄 대표 귀신 중 하나인 꾸양(Kuyang)은 낮에는 평범한 사람으로 지내다가 해가 지고 나면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내장을 주렁주렁 매단 머리통 귀신이 되어 먹이를 찾아 날아다닌다. 올해 5월 영화 <꾸양(Kuyang The Movie)>이 극장개봉했다. 같은 스펙이지만 이름만 다른 수마트라 미낭까바우 지역의 빨라식(Palasik), 술라웨시의 뽀뽀(popo), 발리의 레약(Leak)도 있다. 캄보디아의 압(AHP), 말레이시아의 뻐낭갈(Penanggal), 태국의 크라슈(Krasue), 베트남의 말라이(Ma Lai) 등 인상착의가 비슷한 귀신들이 동남아 거의 모든 나라에 분포해 있고 관련 영화들도 태국과 캄보디아에서는 일찌감치 제작되었다.

 

<그림 18. 꾸양 계통 소재의 영화들>

* 왼쪽부터 <꾸양>, <빨라식>, <레약> 그리고 태국영화 <Inhuman Kiss>

 

 

(3) 니로로키둘(Nyi Rorokidul)과 니블로롱(Nyi Blorong)

자바 남쪽바다 마물들의 여왕 니로로키둘의 전설은 자바 남해안 전역에 퍼져 있는데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중부 자바 족자 남쪽 빠랑꾸수모(Parangkusumo)해안에서 마타람 왕국의 시조 권능왕 스노파티와 조우한 사건이다. 스노파티를 흠모하게 된 니로로키둘은 마타람 역대 술탄들의 영적 왕후가 되어 마타람을 수호하기로 맹세했고 그 맹세는 이제 행정권은 없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존경 속에 군림하며 현존하는 마타람의 후신 족자 술탄국과 수라카르타(솔로) 수난국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이 전설에 따라 니로로키둘을 만나면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것이란 생각에 술탄들은 물론 인도네시아 역대 대통령들도 그녀를 만났다는 소문을 흘리곤 했다. 그런 수호신 이미지를 토대로 민족주의적 여신으로 인식된 니로로키둘은 오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그녀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넘쳐났다.

 

니로로키둘의 군대 람뽀르(Lampor)를 지휘하는 니블로롱은 달이 찰 수록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가 달이 기울면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돌아가는 이무기 여인이다. 니블로롱도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

 

<그림 19. 니로로키둘과 관련된 영화들>

* 왼쪽부터 <니로로키둘의 탄생>(1985), <니블로롱>(1989), <람뽀르>(2019)

 

 

(4) 특정 장소들

앞서 ‘인도네시아 공포영화의 기원과 역사’부분에 소개한 <저룩뿌룻 공동묘지의 유령>, <루마끈땅>, <끌렌더르 몰>, <마예스틱의 랑삿 공원>들은 모두 음산한 괴담이 얽힌 장소들이다. 저룩뿌룻 공동묘지엔 머리 없는 신부의 유령이 큰 검은 개와 함께 목격된 곳이다. 반둥의 루마끈땅이란 저택은 식민지 시대 연회가 있던 날 부엌의 감자삶는 큰 솥에 아이가 빠져 죽었는데 지금도 간혹 저녁이 깊어갈 때 감자 삶는 냄새와 함께 저택 안으로 들어어가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끌렌더르 몰은 1998년 자카르타 폭동 당시 방화로 400명 정도가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은 곳으로 지금도 희생자들의 원혼이 목격되며 마예스틱 랑삿공원도 꾼띨아낙이 자주 출몰한다는 도심 속 공원이다.

 

그외에도 지금은 철도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지하감옥을 운영하며 수천 명의 목을 베어 아직도 그 원혼들이 배회한다는 스마랑의 라왕세우(Lawang Sewu) 건물, 열차사고로 큰 사상자를 낸 빈따로(Bintaro) 철로와 망가리이(Manggarai)역사의 괴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검은 문어 조형물이 지붕을 타고 오르고 있어 악마 숭배자들이 모임을 갖는 곳으로 소문난 반둥의 루마구리타(Rumah Gurita=문어의 집), 일가족이 몰살당해 이후 입주자들이 귀신을 보았다는 남부 자카르타 뽄독인다(Pondok Indah) 고급 주택가의 저택 등 기괴한 소문이 난 곳들은 대부분 영화 소재로 사용되었다.

 

<그림 20. 기괴한 소문의 장소를 소재로 한 영화들>

* 왼쪽부터 <라왕세우>(2007), <망가라이 유령열차>(2008), <루마 구리타>(2014), <뽄독인다 저택>(2006)

 

 

4. 동남아시아 문화권과 인도네시아 공포영화

 

1) 이슬람 문화권 영향

 

제목부터 이슬람 색체가 가득한 것들은 분명 인도네시아가 이슬람 문화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교도: 악마에게 저주받다(Kafir: Bersekutu dengan Setan)>(2018), <루키야(Ruqiya)>(2018), <막뭄(Makmum)>(2019) 같은 것이다.

 

한편 인도네시아 호러영화들 중 기독교나 불교 등 다른 종교가 스토리의 한 축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자칫 영화에서 발생한 종교적 오해가 사회적 파국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신과 알꾸란을 잘못 언급하는 것만으로 신성모독죄를 받아 징역을 살기도 하는 것처럼 타 종교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잡음이나 충돌을 피하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림 21. 이슬람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호러영화들>

*왼쪽부터 <이교도: 악마에게 저주받다>, <루키야>, <막뭄>

 

2) 인접국가 공포영화와의 유사점과 차이점

 

호러영화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인접국가와의 무속문화가 얼마나 유사한가에서 찾을 수 있다. 언어가 거의 유사하고 같은 이슬람권인 말레이시아와는 무속문화도 대체로 비슷해 호러영화의 교류도 많은 편이다. 때때로 포스터만으로는 말레이시아 영화라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내장을 주렁주렁 매달고 날아다니는 꾸양(Kuyang) 류(類)의 머리통 귀신들이 동남아 대부분 국가에 분포되어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엔 그런 류의 전설이나 괴담이 없고 필리핀의 대표적인 마물 마나낭갈(Mananaggal)은 목이 아니라 허리 부분이 끊어지면서 상체만 날아오르고 애당초 인간과 달리 박쥐와 흡사한 날개가 달려 있어 같은 사실상 꾸양 류와는 전혀 다른 종이다.

 

이웃의 재물을 훔쳐오는 아기귀신 뚜율(Tuyul)은 말레이시아에선 토욜(Toyol), 중국 복건성에서 뀌키아(Kwee Kia), 태국에선 꼬만통 (남자뚜율), 꼬만라이(여자뚜율), 필리핀에선 티야낙(Tiyanak), 캄보디아에선 꼬헨크로(Cohen Kroh)라고 하는 등 거의 아시야 전역에 깃들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뚜율(Tuyul)>이란 제목으로 1978년과 2015년에 영화가 만들어졌다.  

 

<그림 22 영화 <뚜율>>

초혼술에 사용하는 인형 즐랑꿍은 중국어로 야채바구니 혼령’이란 뜻의 “차이란공’ (Cai Lan Gong = 菜篮公)이 원본문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즐랑꿍은 반으로 가른 야자열매를 머리로 하고 팔에 필기구를 장착한 인형의 모양이지만 중국의 차이란공은 아랫부분을 야채바구니에 고정해 혼자 서 있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영매나 두꾼도 아닌 아마추어가 손쉽게 영을 부를 수 있도록 고안된, 그러나 자칫 감당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파국을 맞기 쉬운 초혼술은, 형태와 방식은 다르지만 세계 어디에나 있다. 한국의 분신사바, 일본의 콧쿠리상 놀이, 서양의 위자보드 같은 것들이다. 관련 영화들도 대부분 제작되었다.

 

<그림23. 각국의 초혼술 영화>

*왼쪽부터 <자일랑꿍>(2017), <분신사바>(2004), <콧쿠리상>(2011), <위자:악의 기원>(2016)

 

 

5. 인도네시아 진출 시 유의해야 할 문화적 터부

 

인도네시아는 표현의 자유를 허락하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렇지만 마냥 모두 다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출판, 문학 등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것을 ‘SARA’로 표시되는 Suku(종족), Agama(종교), Ras(인종), Antargolongan (그룹) 이슈에 대한 부정적 또는 공격적 표현이다.

 

인도네시아는 도저히 한 나라가 되기 어려운 다민족, 다종교를 가진 거대한 인구와 수많은 섬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러기 위해 80% 넘는 무슬림인구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국교를 정하지 않은 세속국가가 되기로 선택했고 국가이념의 근간을 ‘다양성 속의 통일성’에 두었다. 즉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간극을 존중해야만 통일을 유지할 수 있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나라가 된 것이다.

 

SARA에 해당되는 문제라도 어려서, 몰라서, 처음이라서 틀리고 실수한 것은 사과하고 수정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오해가 풀리지만 종교에 관한 것만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슬람에 대한 모독이 가혹한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같은 정도의 주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쩌면 영화 개봉 전 영상검열위원회(LSF)를 거치며 상영승인을 받는 현재의 시스템이 SARA 문제를 한 번 더 점검하는 안전장치일 수도 있다.

 

 

 

6. 공포영화를 통해 본 인도네시아의 문화산업적 의미

 

수많은 전설과 다양한 괴담을 가진 인도네시아가 영화산업 태동기에 주로 중국민화와 전설을 소재로 사용한 것은 당시 영화인 대부분이 화교출신이었던 점도 있으나 오랜 네덜란드 식민지 통치 하에서 민족 정체성이 모호해진 측면도 있다.

일제강점기와 독립전쟁을 겪고 주권을 회복한 후에도 국토 곳곳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크고 작은 반란이 일어나고 1960년대 서파푸아 합병, 깔리만탄 북부의 사라왁 지역 국경에서 벌어진 말레이시아와의 대결정책, 1965년 9월 30일 공산당 쿠데타와 그 후 1년 넘게 전국을 휩쓸면 수많은 생명을 삼켜버린 인도네시아 대학살 시기를 지난 후 1970년대 들어 비로소 인도네시아 전통의 전설과 괴담을 담은 호러 영화들이 대거 등장한 것은 많은 피를 흘린 대가로 민족 정체성과 자존감은 마침내 확립되었지만 현대사의 비정한 순간들을 연이어 지나며 목도하게 된 가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대중의 마음이 판타지 어우러진 비현실의 세계, 호러 장르로 쏟아진 측면이 크다.

 

이제 민족 정체성과 현실도피의 문제를 어느 정도 뛰어넘어 영화의 재미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지금, 늘 제작비 조달에 허덕이던 인도네시아 영화제작자들이 대규모 해외자본과 만나면서 호러영화들도 획기적인 질적 성장을 이루며 관객들의 기대치에 접근하고 있다. 한편 한국, 중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영관 스크린 숫자 때문에 제작비 회수에 골똘하던 현지 영화제작자들에겐 이제 단번에 전 세계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같은 국제적 OTT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는 분명 매우 유망한 새로운 선택지가 되었다. 전세계 사람들을 집안에 가둔 팬데믹 기간은 이를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각국의 문화가 서로 충돌하며 우열을 겨루는 온라인 영화시장에서 어쩌면 가장 인도네시아 다운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을 가진다는 측면에서 가장 대중적 흥미를 일으킬 로컬 문화로서의 호러 장르는 앞으로 더욱 큰 파괴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III. 나가는 글

 

조코 안와르 감독이 <지옥의 여인>을 통해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인도네시아 영화제(FFI 2020) 여러 부분을 휩쓴 것은 제작비, CGI, 장비와 전문 인력 등 그간 극복하지 못했던 인도네시아 호러 장르의 여러 고질적 문제들을 현지 영화계가 마침내 어느 정도 해결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제 남은 건 좋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양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1년에 100편 이상 제작되는 인도네시아 로컬 영화들, 그중 족히 30%는 차지할 호러 영화 시나리오를 한줌도 안되는 스타 시나리오 작가들이, 아무리 능력있다 해도, 매번 모두 감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끝)

 

 

 

 

 

 

참 고 문 헌

 

함카(Hamka), 『판데르베익호의 침몰(Tenggelamnya Kapal van der Wijck』 Gema Insani, 2017, 8면, 159면

배동선,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아모르문디, 2018. 16~19면

 

인터넷 사이트

- 사이트

자와뽀스닷컴, “film horer indonesia” https://www.jawapos.com/  

더틱닷컴, “semesta danur” https://hot.detik.com/

안타라뉴스, “film horer indonesia internasional”

https://www.antaranews.com/

시네마푸티카닷컴, “sejarah film horer Indonesia” https://cinemapoetica.com/

꿈빠란닷컴, “Hello Ghost Indonesia” https://kumparan.com/

 

- 홈페이지

필름인도네시아, http://filmindonesia.or.id/ (2021년 6월 12일 최종)

 

블로그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꾼띨아낙” https://blog.daum.net/dons_indonesia/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순델볼롱” https://blog.daum.net/dons_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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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하다 반 죽었다.

 

꼬박 보름 걸렸지만 대체로 용두사미.

 

뭐 박사논문도 아닌데.

 

암튼 하얗게 불태웠다.

 

 

2021. 6. 14.

 

공포영화를 중심으로 본 인도네시아 영화시장의 문화산업적 의미 (수정본).pdf
2.20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