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니출장 본부장님

인니 출장가신 본부장님 (4)

beautician 2014. 6. 5. 02:34


 

한본부장에게 상황을 정리해 메일을 보낸 그 날 새벽에 에디 사장에게도 일요일 아침의 미팅보고서를 메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에디 사장이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메일 잘 봤어요. 제 친구들한테도 다 회람시켰어요. 마침 그 문도(Mundo)랑 전화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벤이 문도에 전화했던 건 월요일인 5 20일 미팅이었대요.”

…?”

에르나씨 얘기로는 거론되었던 사안들이 시기적으로 좀 뒤섞여 있는 것 같다고 해서요.”

 

나는 한본부장 일행이 5 20일에 한 차례만 에르나씨와 미팅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에디 사장 역시 그렇게 미팅을 주선해 놓고 중국출장을 갔던 거였고요. 그런데 그날 에디 사장이 추가로 보내온 이메일을 찬찬히 읽어 보면서 그 동안 내가 어느 정도 확신하고 이번 사건의 전모와 추이를 다시 한 번 재구성해 봐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어쩌면 억울할 지도 모를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본부장과 벤이 귀국하기 전에 관련 이메일을 급히 보내는 것도 급선무라 생각되었고요.

 

--------- 원본 메일 ---------

보낸사람:  beautician
받는사람 : 한본부장

날짜: 2013 5 28일 화요일, 01 56 01 +0900
제목: Alphaparf 및 화교 투자자 상황 관련 - 추가 사항

 

한 본부장님,

 

월요일 새벽 에디 사장에게도 일요일 아침의 미팅보고를 이메일로 보낸 바 있었는데 해당 보고를 본 후 에디 사장이 보내온 답장 메일에는 내가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미처 모르던 사실들이 적혀 있었습니다.이게 본부장님께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겠지만 주지의 사실이라면 모르되 만약 본부장님도 모르던 상황이라면 자칫 억울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단 내용 공유코자 합니다.

 

당초 귀사 출장자들과 에디 친구분의 미팅은 지난 5 20()에 한 차례만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 제가 앞서의 이메일을 보낼 때까지도 거기 언급한 사건은 그날 미팅에서 발생했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미팅보고가 오늘 에디 네트워크 친구들에게 회람된 후 에르나씨가 지적한 부분에 따르면 5 22()에도 또 한 차례의 미팅이 있었고 에디 친구분이 결정적으로 빡친 그 사건은 이 수요일 미팅에서 벌어진 거라고 하는군요.

 

수요일 미팅의 주요 사항들은;

 

1. 이 미팅엔 ''과 미스터 강(Architect라고 소개된 분) 두 사람만 참석했고 본부장님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며,

 

2. 여기서 에르나씨는 자신이 읽을 수도 없는 한글 계약서를 넘겨받아 이 계약서의 개요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자 비로서 ''이 주체가 되어 설립한 신생회사와 계약을 맺는 것이라는 벤의 설명을 분명히 들었다고 하며,

 

3. 이 신생회사의 구성원은 벤과 미스터 강뿐 아니라 롯데와 모종의 깊은 관계가 있는 어떤 인물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 깊은 관계가 과연 어떤 관계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대목이 일요일 아침 미팅에서 좀 미심쩍었던 부분입니다. 에르나씨는 첫 번 째 회람 메일에서도 롯데와 관련된 한국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언급 했었는데 그쪽 실장님은 그날 미팅 중 양말회사 문도(MUNDO) 사장 아들이 미스터 강과 통화하며 미팅에 간접적으로 간여한 것을 오해한 것이라 극구 설명했기 때문에 그게 그런 식으로도 오해될 수 있는 문제인가 의아해 했었습니다.

 

4. 에르나씨가 기 설명 드렸던 이유로 계약을 거절하자 한국 출장자들은 '그럼 인도네시아엔 무슨 사업을 가지고 들어오면 좋을까요?' 라는 취지의 질문을 했다는데 그런 질문이 뜬금없기도 했거니와 내내 S뷰티와 롯데를 앞세워 30만불을 투자하라고 집요하게 종용하던 사람들이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 미용실 패를 그렇게 간단히 던져 버리고 이번엔 다른 유망사업을 거꾸로 물어오는 것이 매우 프로답지 못하다고 느껴졌다 하는군요.

 

여기 계속 등장하는 ''은 일요일 아침 말도 안되는 설명으로 대답을 가로채던 그 기획실장님이시죠?

 

저로서는 이 메일을 통해 이 사건의 어느 일방, 또는 어느 개인을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습니다. 단지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해명이나 적절한 사과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어서 사건 자체의 진면목과 그에 대한 이쪽 분위기를 보다 분명히 전달하려 하는 것임을 양지바랍니다

 

사건의 스토리가 이렇게 흐르면 관련된 당사자들의 입장도 사뭇 달리 이해되고 상황도 좀 더 복잡해집니다. 하지만 에디 사장이나 그 친구분들 입장에선 여전히 이 모든 것이 귀사 쪽에서 해결하고 해명해야 할 문제들일 뿐입니다.

 

오늘 제가 받은 이메일에서 에디 사장은 현재 발생된 문제들이 아무쪼록 프로페셔널한 방법으로 해명되어 정리되기를 바라며 S뷰티와 앞으로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일은 전적으로 이번 사안을 귀사가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히고 있음도 참고 바랍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한본부장이 그 동안 해온 행동으로 미루어보면 그가 최소한 벤 일당과 한 패가 되어 움직였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정작 벤이 에르나씨에게 자기 회사에 투자하라며 정체를 밝히던 수요일 미팅에 한본부장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아침 미팅 당시 침을 튀기며 앞뒤 안맞는 해명에 열을 올리던 벤은 한본부장이 화교들 습성을 몰라 큰 실수를 했다는 식으로 폄하하며 수요일 미팅했다는 사실을 덮어 나나 한본부장이 모른 채 얼렁뚱땅 넘어가게 하려 했던 것일까요? 그런 벤을 바라보며 불편한 기색을 애써 숨기지 않았던 한본부장의 표정은 또 무슨 의미였던 걸까요?

 

어쩌면 그들 일당은 그렇게 에디 사장과 에르나씨의 뒤통수를 치는 와중에 또 한편으로는 벤과 미스터 강이 몰래 손잡고 한본부장의 뒤통수도 치려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랬다면, 이제 수요일 미팅의 실체를 알게 된 한본부장이 어떤 반응을 할지 흥미로웠습니다. 벤 일당은 정말 한본부장을 얼굴마담으로 내밀어 투자 유치한 돈을 들고 튀면서 그를 소모품처럼 내팽개치려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들은 서로 짜고서 사실은 S뷰티와 한본부장도 이 사건의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려고 내 앞에서 한바탕 쇼를 했던 것이었을까요?

 

그들은 내가 위의 메일을 내보낸 날인 화요일 밤 비행기로 귀국했고 난 그들이 자카르타에서 벌인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최소한 공식적인 사과메일이나 하다 못해 그게 아니라면 S뷰티 대표가 나나 에디 사장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걸어올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며칠간의 침묵이 흐른 후 한본부장으로부터 장문의 메일 한 통이 도착했는데 내가 그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지만 최소한 그 행간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 원본 메일 ---------

보낸사람: 한본부장 <*******@gmail.com>
받는사람 : beautician
날짜: 2013 5 31일 금요일, 21 21 18 +0900
제목: Re: Alphaparf 및 화교 투자자 상황 관련 - 추가 사항

 

안녕하세요.

사장님 제가 오늘 몸이 안좋아서 (아마도 화병인 듯 합니다) 사무실에 못나가 대표님과 이야기 마무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에디 사장에게 보내는 메일은 다음 주나 되어야 나갈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사장님께 메일을 보내는 것은 그 동안 사장님께서 진심으로 S뷰티와 저를 도와주시고 걱정해 주셔서 이번 일이 실제로는 어떻게 된 것인지 그 전반적인 내용을 사장님께만 개인적으로 말씀 드리려 합니다. 또한 후미에 언급되겠지만 이번 일로 인해 어쩌면 제가 세리를 퇴사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 롯데쇼핑몰 입점계획은 작년 12월 말 롯데 관계자의 부인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세워지는 롯데쇼핑몰에 프랜차이즈 미용실을 오픈하고 싶다며 저희 본점을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분의 조카분이 S앤코 대표님의 친구분이었어요. 그 분은 모든 자금은 자기가 댈 테니 S뷰티는 살롱 경영전반을 맡아 운영해 달라고 부탁해 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는 자카르타에 롯데쇼핑몰이 생기는지조차 모르고 있었고요.

 

그래서 지난 2월 자카르타 출장을 갔던 것이고 살롱 오픈을 준비하면서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시장을 확인하고 차제에 아카데미 사업 및 제품 유통 관련한 사업을 함께 추진하려 했습니다. 마침 인도네시아에서의 시장조사 및 법인설립은 대표님의 친구분이 알아서 한다고 했었고요. 저는 그 과정에서 사장님과 에디 사장을 만나게 되었던 거죠.

 

그때부터 저는 회사에 에디 사장과 배사장님 애기를 하면서 인도네시아에서 살롱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려면 현지 파트너와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제가 하는 말은 모두 무시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저희 원장님의 사위가 급사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하더니 어느 날 앞서 언급한 롯데 관계자의 부인이 인도네시아 살롱 오픈을 포기하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조카분, 즉 대표님의 친구분이 갑자기 나서서 자기가 하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모든 경비는 자기가 알아서 조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3월에 출장도 다녀왔고 인도네시아 프랜차이즈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4월 초에 또 다시 한다 안한다 하는 얘기가 나왔는데 당시 대표님의 친구분은 자기가 혼자 자금을 대는 게 아니라 그분 친구(미스터 강)와 후배()가 함께 투자하기로 했고 자기들이 자카르타에서 합작할 투자자를 찾아 미용실을 오픈하겠다 하면서 그들과 함께 5월에 다시 인도네시아 출장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현지 투자자를 구하는 일과는 상관없이 어차피 살롱을 오픈되는 것으로 알고 에디와 제품약속을 한 것이 있어 (최종적으로 개발이 막 완료된 제품인데 한국에서 저희 매장은 물론 다른 미용실 매장에도 유통시키려고 계획하고 있었음) 같이 동행하였는데 거기서부터 엮이면서 대표님의 친구분과 후배분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지 못한 것이 저의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미스터 강이라는 사람은 저에게 21일날 서울로 가야 한다며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했었는데 그렇게 저에게 거짓말을 하고 에르나씨와 미팅을 한 것이죠.

 

그리고 롯데에 입점하지 않기로 확정된 것은 사실 자카르타에서 미팅 진행한 결과를 가지고 결정하게 된 일입니다. 당초 생각한 만큼 장소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 한국에서의 투자금액과 자카르타에서의 투자금 회수 등을 실질적으로 확인해보니 불합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죠. 물론 롯데와의 관계를 잘못 정리하면 국내 롯데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우리 미용실들이 피해를 입게 될까봐 상당히 조심스러웠지만 상황을 잘 설명하여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솔직히 저는 실제로 자카르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사장님 메일을 받아 보고서야 알게 되었고 저 혼자 바보가 된 것 같아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대표님께 사장님의 메일을 출력해 보고 드렸는데 이미 그 이전에 대표님의 친구분과 후배가 대표님께 미리 뭔가 이야기를 꾸며 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일요일 아침 사장님과의 미팅에 벤이 기를 쓰고 함께 나가 만나겠다고 할 때부터 좀 이상했어요. 미팅 중간에 마치 제가 화교들 습성도 모르면서 서둘러 진행하려다 만사를 그르치고 만 것처럼 벤이 이야기를 끌고가 기분이 몹시 언짢았는데 왜 그랬는지 이제야 비로소 모두 이해가 됩니다.

 

사실 호텔에서 중간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S뷰티가 인도네시아 사업에서 물러나면 난 어떻게 할 건지를 자꾸 묻더군요, 그때는 그냥 그려러니 했었는데...

 

벌어진 일의 실상은 이랬습니다.

다음 주에 에디 사장에게 공문을 보낼 때에도 뭔가 사실을 숨기거나 말을 보태거나 하지 않을 것 입니다. 저는 다음주 월요일 대표님과 이야기를 하고 일이 잘못 되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퇴사하려고 합니다.

 

사장님.

저는 인도네시아 시장의 발전가능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다른 브랜드의 회사로 가게 된다 할지라도 저는 인도네시아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싶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살롱오픈과 인도네시아와 한국간의 교류, 세미나, 제품유통 등등 말입니다. 사실 S뷰티에서 사용하는 펌 제품 역시 제가 직접 공장을 찾아 테스팅하면서 만들어낸 제품들입니다. 제품 관련 모든 기획 및 제작 역시 제가 진행한 프로젝트들의 결과물이었어요. 저의 최종 목표는 사장님과 에디 사장, 그리고 제가 그때 함께하고 있을 브랜드와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두서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아서 죄송합니다.

 

PS. S뷰티는 에디 사장이나 그 친구분들을 기망하거나 속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주체는 S뷰티였으며 대표님 친구분들은 단순히 인도네시아에 지인들이 많다 하여 도와준다는 개념으로 동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난 이 메일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본부장과 벤 일당 사이에 뭔가 균열이 생겨 있는 것만은 분명했는데 메일의 논조가 한본부장 자신이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이고 투사이자 순교자인처럼 포장하고 있는 것이어서 너무 어이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치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고 벤일당이 벌인 사건에 속절없이 말려들어 지금도 피해를 감수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궁극적으로는 S뷰티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서라도 자신이 개발한 제품들의 인도네시아 유통은 예정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부분은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나와 에디 사장에게 자기 제품을 팔아먹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요. 처음 의심했던 것처럼 그가 내게 팔려 했던 손팩, 발팩 들이나 에디 사장에게 들이밀었던 미용약재들은 S뷰티와는 관계없는 한본부장 개인의 장사품목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띈 것은 S뷰티 사장의 절친이라는 그 현지 파트너의 정체였습니다. 그는 3월 출장 당시 에디사장의 알파뷰티 사무실을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실장이란 사람이 2주 내내 한본부장이 가져온 미용약재들을 알파뷰티의 스튜디오에서 시연을 하고 있을 때 말입니다. 사실은 나 역시 당시 미팅에 초청되어 아침 10시경부터 스튜디오에 나와 있었지만 그의 도착은 한도 없이 늦어졌고 난 다른 약속이 있어 먼저 자리를 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현지 파트너가 오후 4시경이 되어서야 스튜디오에 왔다는 얘기를 나중에 에디 사장에게 들었어요.

 

배사장이 간 다음부터 미스터 한이나 미스터 리랑 말이 안통해 죽는 줄 알았는데 비록 늦게 왔지만 이 그나마 유창한 영어를 해서 좀 숨통이 트였어요.”

 

그 현지 파트너의 이름은 이라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후인 5월에 등장할 과 마찬가지로 시드니 유학파 출신이었고 도 그의 영문이름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에디 사장 역시 시드니 출신으로 유려한 영어를 구사했습니다.

 

아무튼 그 S뷰티의 사장 절친이자 현지 파트너 투자자였고 롯데 로얄패밀리로 추정되는, 하지만 최소한 한본부장의 이메일에 표현된 바대로라면 롯데 관계자의 부인의 조카라는 좀 복잡한 족보를 가진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본부장은 5월 출장 초기에 이 이 중간에 귀국해 버려 을 대체할 현지투자자를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던 것인데 사실 은 귀국한 것이 아니라 미스터 강과 벤을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의 인물이었고 한본부장 역시 수요일 미팅사건 직전까지는 에게 붙어 최소한 투자유치에 있어서는 그의 수족으로 움직였던 정황이 엿보입니다.

 

그때 한본부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다.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이 발견되면서 난 S뷰티와 한본부장에 대한 자료들을 될 수 있는 데로 모아 나름대로 상황을 판단해 보려 했던 것인데 예전엔 누굴 통해 뒷조사를 했어야만 했던 사안들을 요즘은 그들 스스로 또는 그 지인들이 남긴 멘션과 자료들을 인터넷을 통해 상당부분 찾아 보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난 그렇게 모은 자료와 그간 대화했던 내용들을 복기하면서 한본부장이 어떤 상황에 있었던가를 추론해 보았습니다.

 

40대 중반을 넘긴 한본부장은 당시 매우 늦게 결혼한 지 채 1년도 안된 신혼이었고 이철헤어커커에서 실장까지 달았던 그가 본부장 타이틀을 단 것은 토니앤가이로 전근한 후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S뷰티로 옮겨왔던 것이고요. 토니앤가이보다는 규모나 조직, 국제적 명성 등 전반적으로 좀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사장이 된 창업자의 아들이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적어 한본부장으로서는 매우 불편할 듯한 S뷰티로 옮겨온 것은 개인적 인맥이나 피치 못할 사정 같은 뒷얘기가 있을 듯해 보였습니다.

 

그가 미용실 지점설립과 관련해 인도네시아 출장을 오면서 굳이 허접한 제품들을 유통시켜 본사 몰래 다른 주머니를 차려 했던 시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자신의 능력이나 위치를 부각시키려 상식선을 넘는 얘기들을 했던 것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전권은 제가 쥐고 있으니 저랑 얘기해서 결정되는 게 파이널이라 보시면 되요.”

저도 S뷰티 학원에서 강사로도 나가는데 난 좀 돈이 쎄요. 다른 강사들은 한 시간 강의에 몇만원에서 몇십만원 받는 게 고작이지만 제가 하는 아웃렛 관리기법 강의는 수강생 1인당 20만원씩은 받거든요.”

이번 미팅에서 롯데쇼핑에서 엄청나게 좋은 임대조건을 받아 냈어요. 남들은 상상도 못할 조건이죠. 이거 보고하면 우리 대표님이 무지 좋아하실 것 같은데…”

자카르타 지점에서는 모든 현지 여성종업원들은 초미니스커트를 입힐 생각이에요. 그래야 손님들도 즐거워하겠죠. 종교가 이슬람이면 그건 안되는 걸까요?”

“S뷰티 뉴욕지점도 내가 맡지 않으면 안되다고 대표님이 매달리시니 도리가 없었어요.”

 

그는 페이스북에서도 타워팰리스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는 자신을 부각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사실은 매우 외롭고 불편한 처지에서 뭔가 괄목할 만한 실적을 내서 나이 어린 사장에게 인정 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고 공교롭게도 늦은 나이에 얻은 어린 아내를 위해 뭔가 새롭고 독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 시점이었던 것인지도 모르죠. 하필 그때 S뷰티의 사장은 그에게 롯데의 절친이 자카르타에 프랜차이즈를 내려 하니 가서 좀 도우라는, 본부장이라는 직책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허드렛일을 맡겼던 것 아니었을까요? 자존심이 무척 상했겠지만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절친인 이란 사람은 어쩌면 롯데의 로얄패밀리이거나 그 주변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었던 거에요. 한본부장은 어쩌면 그에게 충성을 다해 이번엔 명실공히 롯데로의 이직을 꿈꾸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S뷰티의 사장이나 준, , 미스터 강보다는 훨씬 연배였던 한본부장은 인도네시아 출장의 막판에 그들에게 왕따를 당해 배신 당하는 듯한 상황에 몰린 것이라 보였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가 모을 수 있었던 모든 정보들을 토대로 만든 가설을 바탕으로 한 추론일 뿐입니다.

 

아무튼 한본부장의 이메일에 따르면 자카르타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배경은 이랬습니다.

 

1. S뷰티와 준이 각각 3억원씩 투자한다는 것은 애당초 거짓말. 기본 프레임은 S뷰티가 프랜차이즈점을 자카르타에 내주는 대가로 준이 3억원을 프랜차이즈비로 투자한다는 것이었고, (결국 계획한 투자총액은 6억원이 아니라 3억원)

 

2. 준 역시 단 한푼도 자기 주머니에서 내놓을 의지는 전혀 없었으므로 한본부장을 통해 그 돈을 충분히 낼만한 규모가 되는 뿌스피타 마르타를 현지 합작대상으로 여기고 집요하게 꽁무니를 쫓았던 것이라 보이며, (실제로 S뷰티와 준 양쪽이 가동가능한 투자준비금은 애당초 )

 

3. 그러다가 에디사장의 친구 에르나씨의 투자가 현실화 될 것으로 기대되자 준 일당은 현장에 미스터 강을 합류시키면서 S뷰티도, 한본부장도 모두 재끼고 자신들끼리 에르나씨의 투자금을 챙기려 시도했던 것 같고, (그런 내용을 어느 영화에서인가 여러 번 본 듯한 오마쥬)

 

4. 그 시도가 무산되었을 때 벤이 끝까지 뒤에 남았던 것은 배신감을 느꼈을 한본부장이 돌출행동을 하지 않도록 다독이고 나나 에디 사장의 반격을 방어하기 위함이었다고 보입니다.

 

막말로 하자면 결국 S뷰티나 준 일당은 돈 한푼 안들이고 현지 투자자의 30만불, 내지는 롯데쇼핑 소재의 고급미용실 한 개를 날로 먹으려 했던 것이라 판단되었습니다.

 

그런데 메일에서 갈팡질팡하는 한본부장의 마음을 읽게 한 곳은 PS 부분이었어요.

 

PS. S뷰티는 에디 사장이나 그 친구분들을 기망하거나 속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 모든 일의 주체는 S뷰티였으며 대표님 친구분들은 단순히 인도네시아에 지인들이 많다 하여 도와준다는 개념으로 동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본문을 저렇게 써버렸는데 이런 PS가 달리긴 어려운 일이죠. 본문을 달리 요약하자면 내가 준 일당한테 이렇게 당했다, 퇴직을 불사하고 저놈들과 싸워 바로잡겠다는 것인데 PS에서는 대표님 친구분들, 즉 준 일당은 단지 도우려 했을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난 이것이 원래는 이 이메일의 몇 가지 다른 버전들이 있었고 한본부장은 며칠 동안 준 일당을 까야 할지, 덮어 줘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다가 막판에 까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메일을 고쳐 썼지만 덮어주는 버전으로 썼을 당시의 PS 부분 지우는 것을 깜빡 까먹은 상태로 내게 발송했다는 가능성에 비중을 둡니다. 그건 나와의 일요일 아침 미팅 이후, 귀국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때까지 벤은 물론, 어쩌면 준과도 한본부장이 많은 얘기도 나누고 회유도 당했으리란 반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본부장이 메일을 그렇게 썼다고 해서 그가 자기가 쓴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는 아마도 날 처음 만난 날부터 줄곧 거짓말을 해왔던 것이라 믿어지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것을 회개하고 내게 100% 진실만을 고해성사 하고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살아오며 알게 된 것들 중 하나는 가면을 쓰고 주변을 기만하던 사람들은 어느 날 모든 것이 드러나 그 가면을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오면 영화에서나 보는 것처럼 스스로 파국을 향해 몸을 던지거나 속죄한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가면을 벗어 던지고 또 다른 가면으로 바꿔 쓴다는 사실입니다.

 

나 역시 그에게 진실만을 보일 수는 없었습니다. 장사꾼의 기본은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물론 배운 대로 그렇게 살지 못해 늘 곤혹한 상황에 부딪히곤 했지만 지금 이 대목은 내가 호통을 치며 분을 풀어야 하는 순간이 아니라 S뷰티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와 해명을 서면으로 받아 에디 사장과 관련 당사자들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당초의 목적에 충실해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난 속마음을 감췄습니다.

 

2013 6 1일 오전 12:03, Beautician 님의 말:

 

한본부장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중략) 단지 그 과정에서 그 조카분 조직이 자기들이 투자해야 할 돈을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남의 돈을 받아 돌려막기를 하려다가 물의를 빚은 것이니 전적으로 본부장님 잘못이라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그 분들은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귀사와 롯데 이름을 팔면서 정말 운이 좋아 성공하기라도 했다면 돈도 먹고 심지어 현지 고급 살롱도 한 개 삼킬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니 도덕적으로는 물론 법률적 위법성이 농후해 보입니다.

 

따라서 전체 그림을 보자면 이 사건으로 본부장님이 책임지고 퇴사하는 건 분명 오버고 궁극적으로는 이 사건의 배후 핵심인 그 롯데쪽 조카분이 책임을 지거나, 본의든 아니든 이런 사고를 칠 판을 깔아준 그 조카분의 절친, S앤코 대표님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에디 사장에게 들은 바 그 조카분도 시드니에서 공부했다는 것 같고 벤도 그쪽 출신이니 십중팔구 미스터 강도 그런 배경이겠군요. 호주의 주요도시엔 유력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자녀들도 많이 유학하고 있어 조카분과 그 친구들은 유학 당시의 인맥을 믿고 투자유치를 자신하며 나섰던 것 이라 생각됩니다.

 

현재로서는 현지 투자자라는 조카분쪽 상황도 저렇고 귀 본사에서도 투자의지는 애당초 없었던 셈이니 결국 귀사의 인도네시아 진출은 무산된 것으로 보는 게 맞겠죠? 본론인 미용실 진출을 접는 상황에서 각론 격인 귀 제품의 인도네시아 유통은 더 이상 얘기하실 게재가 아닌 것 같군요.

 

(중략) 그러나 중단되던, 계속되던 간에 에디 사장과의 문제는 끝까지 잘 마무리 지어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좋겠습니다.

 

퇴직하겠다는 얘기나 신세타령은 이 정도에서 끝내고 빨리 사과공문을 받아 에디 사장에게 전달하면서 그간 벌어졌던 일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그 정도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S뷰티는 사고를 친 준 일당을 대신해서 책임 있는 사과를 해야 했고 그것도 자카르타에서 준 일당과 함께 놀아나는 모습을 보인 한본부장 대신 S뷰티의 사장이 직접 해명하는 상황이 되어 주어야만 이번 사건이 원만히 마무리 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지점에서 최초 소개자로서의 내 책임도 끝나는 것이었고요.

 

그러나 한본부장과는 끝까지 손발이 맞지 않으면서 그렇게 마음먹은 방향으로는 전개되지 못하고 오히려 상황은 롤러코스터를 타며 급기야 파국을 향해 더욱 치닫게 됩니다.

 

2014.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