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인니 출장가신 본부장님 (3) 본문
한본부장이 현지 투자자를 구한다는 사실을 난 그가 에디에게 보내온 해독불가능한 영문 이메일에서 대충 눈치채고 있던 차였습니다. 에디가 자기 랩톱으로 보여주었던 그 이메일에는 S뷰티의 회사프로필을 수정해서 만든 듯한 미용실 프랜차이즈의 프로포절이 파워포인트로 첨부되어 있었고 그 중 어느 페이지를 클릭하면 투자요건이 기재된 팝업박스가 떠올랐는데 그 요건들 중 하나는 30만불의 선금지불이었습니다.
에디가 한본부장 일행과 에르나씨의 첫 미팅을 주선하면서 그 일정을 내게 알려주었고 그 미팅 목적이 투자유치를 위한 것이란 말을 듣고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합작투자자 양쪽에서 각각 3억씩 투자해서 6억, 60만불을 가동한다면 사실 웬만한 미용실 7-8개는 족히 오픈하고도 남을 금액인데 다른 일반투자자들이 더 필요하신 건가요? 처음부터 너무 무리해서 크게 잡고 가시려는 건 아닌가요?”
전화를 걸어 콕 찝어 묻자 한본부장은 마지 못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실은 합작투자자에게 문제가 좀 생겼어요.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인도네시아쪽을 맡아 투자하기로 했던 분이 귀국해 버렸어요. 그래서 대체할 현지 투자자를 급히 찾아야 할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일이라면…, 뿌스피타 마르타에서 투자를 받기로 하셨던 것 아니었어요?”
뿌스피타 마르타가 절대 투자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본부장은 지난 3월 출장때 미팅한 이후 에디사장의 알파파프를 완전히 뒷전으로 돌려놓고 뿌스피타 마르타의 꽁무니를 줄곧 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줄장기간 내내 뿌스피타 마르타와 미팅약속도 잡지 못한 채 귀국했던 그가 이번 5월 출장에서도 뿌스피타 마르타와 투자계약을 완료하겠다며 간접적으로나마 기염을 토한 바 있었으므로 넌지시 한번 찔러 보았던 것입니다.
“아, 그게…, 뿌스피타 마르타 쪽에선 아직 검토할 부분들이 남아 있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뜻이겠죠.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취조하듯 꼬치꼬치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본부장이 왜 내겐 그런 얘기를 하지도 않고서 훌쩍 뛰어 넘어 곧바로 에디 사장에게 투자자 수배를 부탁했는지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왜 나한테 그 사실을 숨겼던 걸까요? 내가 에디 사장과 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않았던 것일까요?
전화로 한껏 흥분해 화를 내던 에디 사장이 보내온 이메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원본 메일 ---------
보낸사람: 에디사장
받는사람 : beautician
날짜: 2013년 5월 24일 금요일, 15시 42분 11초 +0900
제목: Fw:
Up date soal salon 살롱문제 업데이트
FYI From: n*****.erna@gmail.com To: 에디사장<ehadi5***@yahoo.com> Date: Wed, 22 May 2013 14:04:21 +0000 Subject: Re: Up date soal salon 살롱문제 업데이트
Eddy, 에디 이눔아. 정말로 S뷰티에서 온 사람은 그 영어 전혀 안통하는 알렉스란 사람뿐이야 (‘알렉스’는 한본부장이
쓰는 영문이름) 같이 온 다른 젊은 놈들, 그 ‘벤’이란 놈이랑 안경잡이(나중에 ‘미스터 강’으로 밝혀짐)는 그저 뭐 할일 없을까 기회만 노리는 놈들이었어. 너도 이미 만나봤다며? 나한테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하는 그 한국회사라는 게 결국 그 벤이랑, 안경잡이, 그리고 롯데 오너집안 가족이라는 또 다른 한국사람이 소유한 회사라는 거야.(에르나는 최소한 S뷰티나 롯데와 파트너계약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음)
한번 물어보자. 너 그 제품들 누구한테서 수입하겠다는 거야? S뷰티야? 아니면 그 세 놈이 만들었다는 그 회사야? 그 놈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놈들이야. 그저 롯데랑 S뷰티를 사칭하고 있는 거라구. 실제로 S뷰티에서 온 놈은 그 알렉스 한 놈뿐인 거고.
내가 보기엔 이 친구들은 S뷰티가 인도네시아에 오픈하겠다는 미용실 프랜차이즈를 팔아먹는 게 주목적이라 보여. 이 친구들이 계약문제를
얘기할 때 내가 깜짝 놀란 건 당연하잖아? 내가 어느 회사랑 파트너를 맺는 거냐고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불어봤더니 그제서야 회사이름을 대는데 도대체 누구 소유의 회사냐고 따져 물으니 비로서 저렇게 대답한 거라구. 저놈들한테 물건 사는 것도 조심하는 게 좋아. 한국에서 돌아다니는 허접한 물건들에 브랜드만 다시 붙여서 엄청 비싸게 들이미는 걸 테니까. 아니면 저놈들이 정말 미용실을 오픈한 다음에야 비로서 구매진행을 하든가. 저놈들이 막판에 하던 말을 들어보면 저놈들 자신도 정말 미용실을 오픈할 것인지 확신이 없는 걸로 보였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구.
저놈들 하는 말이 너한테도 미용실 의자들 디자인 좋은 것들을 복제해서 인도네시아에서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을 찾아달라고 했다며? 나한텐 미용실 인테리어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경험 많은 전문가 친구들을 소개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군. 난 지들이 전문가라서 미용실을 개업하겠다 하는 줄 알았어. 하지만 알고 보니 전혀 아는 게 없는 놈들이야. 알렉스 역시 S뷰티의 미용실 프랜차이즈권 파는 건 좀 알지 몰라도 미용실 인테리어, 동선 디자인이나 미용실 개업을 위한 제반 기획에 대해선 전혀 전문성이 없는 친구였어. Sent from my
BlackBerry® From: Eddy Hadis*** <ehadi5***@yahoo.com> Date: Wed, 22 May 2013 21:07:47 +0800 To: ira***@yahoo.com, n****.erna@gmail.com Subject: Re: Up date soal salon 살롱문제 업데이트
Dear all, 다들 주목.
Kaget bener saya dengar penjelasan ini. They have concealed some key information to me. Selama ini dia jual Lotte juga The S***. 설명 듣고 깜놀했다. 저놈들이 그동안 중요한 정보들을 내게는 숨기고 있었던 거야. 저놈들은 지금까지 줄곧 롯데랑 S뷰티 이름으로 나한테 약을 팔고 있었어.
Saya minta maaf karena tidak mengetahui informasi ini sebelumnya. Saya harus lebih hati-hati dengan mereka. 이런 정보들을 오히려 내가 먼저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저놈들 대할 때 내가 좀더 조심해야만 할 것 같다.
Sincerely, 암튼 미안. Eddy
Hadis*** 에디
Hi Ed, Ira, 에디랑 이라야. 안녕. S뷰티랑 파트너쉽을
맺는 계획에 대한 내 결정을 알려줄게. 저 친구들을 다시 만나 합작계약서를 검토해본 끝에 이 계약에
서명하지 않기로 결정했어. 이 친구들 전반적인 배경이 영 석연치 않았거든. Ternyata: 왜냐하면 1. Partnership bukan denga Lotte, juga bukan dengan The S***, tetapi dengan perusahaan Korea yang baru dibentuk. Perusahaan Korea ini pemiliknya adalah 3 orang yang katanya salah satunya ada koneksi dengan Lotte (entah koneksi seperti apa, gak jelas). Dan salah satunya adalah si Ben, yang kemarin ketemu dengan kita. Berarti perusahaan ini tidak punya pengalaman apa-apa sebelumnya. Terkesan bahwa mereka pun hanya akan membeli franchise The S***, BUKAN The Seri itu sendiri. 그간 설명 들었던 것과는 달리 파트너쉽 계약상대방이 롯데도 아니고 S뷰티도 아니었다. 이제 막 설립된 허접한 한국회사랑 계약하자는 거였다구.이 회사는 3명이 공동소유한 회사라는데 그 중 한 명이 롯데랑 관계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거야.(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설명하진 않더군). 또 다른 한 명은 어제 우리가 같이 만났던 벤이란 친구였고. 결국 이 회사는 이전 실적이 전혀 없을 수 밖에 없는 회사야. S뷰티와의 문제도 이 친구들이 정말 S뷰티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S뷰티의 미용실 프랜차이즈권 하나를 달랑 들고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싶어.
롯데백화점 입점조건도 좋지 않아. 고정금액의 임대료를 내고 장소를 빌린다는 거거든. 난 수익분배방식으로 장소를 얻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어. 최소한 개장 후 최초 6개월은 손님들이 거의 없을 것을 각오해야 하는데 그런 방식으로 임대료 전액을 미리 주고 들어가는 건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일이지.
향후 계획 역시 흥미롭지도, 분명하지도 않았어. 비즈니스를 발전시켜 갈 방안에 대해서도 전혀
무지하고 어떠한 전략도 만들어 놓은 게 없어. 일단 미용실을 열어만 놓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역력했다구. 그래서 결론은 저
친구들과 파트너계약을 맺어서 기대할만한 부가가치 창출이나 어떤 중요성도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난
빠질게. 이상의 정보를 가지고
너희들도 저 친구들이랑 앞으로 뭘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하는 데에 참고하길 바래. |
에디의 친구인 PT. Trimitra Swadaya사 에르나씨의 메일에 자주 등장하며 당시 미팅을 주도했다는 ‘벤’은 아마도 그 기획실장이라고 소개받았던 호주 유학출신의 남자라고 추측했습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한본부장도 ‘알렉스’라는 영문이름이 있는데 호주에서 공부했다는 기획실장도 당연히 영문이름을 가지고 있을 터였습니다. 한본부장은 곧 S뷰티의 인테리어담당 팀장이 합류한다고 했는데 여기 이메일에 등장하는 안경잡이는 그 사람이라고 추측했고요.
에디 사장이 그들끼리의 이메일 교신들 중 일부를 내게 보내 준 것은 의외였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을 하는 동안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경우 우리 거래상대방이 되곤 하는 화교들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거든요. 내용을 읽어 보면서 사람들의 느낌과 판단이란 최소한 돈과 비지니스에 대한 문제라면 문화나 국적에 관계없이 대부분 똑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메일만 보면 일견 이걸 꼭 ‘사기’로 몰아갈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얘기의 앞뒤를 찬찬히 정리하자면 이렇게 됩니다.
1. 한본부장의 최초 설명은 한국의 S뷰티가 3억, 인니측 한국인 파트너가 3억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것. 그런데 그 한국인 파트너는 롯데 오너집안 사람이고 S뷰티 창업자의 아들인 현재 S앤코 사장과는 친한 친구 사이. (롯데 로얄패밀리가 고작 미용실을 하겠다고??)
2. 인도네시아 진출에 대한 전권은 뉴욕 맨하탄의 S뷰티미용실 지점과 함께 한본부장이 맡게 되었다는 설명. (좀 이상하죠? 위의 설명대로라면 자카르타 S뷰티미용실 지점은 S앤코 사장과 그의 롯데측 절친과의 동업인 것이 분명해 보이고 한본부장도 자기 입으로 S뷰티 현지지점장은 그 롯데측 절친이 맡는다 했는데 그 절친을 재치고 갑자기 한본부장이 전권을 받았다고??)
3. 그런데 그 절친이 갑자기 귀국해서 대체 투자자를 급히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됨.(돌발귀국의 이유는 전혀 설명되지 않았고 롯데의 로얄패밀리와 동업이 깨졌다면 자카르타 지점오픈이나 롯데쇼핑 입점계획 자체가 백지화되는 게 정상일 텐데 한본부장은 지점오픈을 계속 밀어붙입니다. 게다가 솔직히 S뷰티 본사가 직접 투자한다는 3억원만으로도 자카르타에 고급미용실 하나를 오픈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금액인데 왜 굳이 총액 6억원의 투자를 고집하고 있었던 걸까요?)
4. 그런데 알고 보니 벤은 S뷰티의 기획실장도 아니고 안경잡이 미스터 강도 S뷰티의 인테리어 팀장이 아님. (한본부장은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요? 한본부장의 그전에 했던 석연찮은 말들이 모두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는 부분입니다.)
5. 이 사람들은 S뷰티도 롯데도 아닌 자기들이 주주가 되어 갓 설립한 (실체가 있는지조차 불명확한) 제 3의 회사를 대표하면서 에르나씨에게 30만불을 자기 회사에 입금하라며 투자계약을 종용했고, (참 뜬금없죠?)
6. 그리고 그 제 3의 회사의 주주 중 또 다른 한 명이라고 소개된 ‘롯데 오너집안 가족’이란 도대체 누구? (돌연 귀국했다는 S뷰티 사장의 절친, 그 롯데 로얄패밀리가 떠오르는 건 순전히 기분 탓일까요?)
7. 결과적으로 벤과 미스터 강 등은 미용이나 미용실 업무에 대해 전혀 문외한임이 분명한데 그것도 현지측 투자자가 귀국해버려 미용실 오픈이 불투명해진 시점에 오히려 다들 득달같이 자카르타로 날아와 한본부장과 팔짱을 끼고 롯데와 S뷰티 이름을 팔면서 처음엔 뿌스피타 마르타에게, 후반부엔 에디 사장이 소개한 에르나씨에게 30만불을 투자금 명목으로 받아내려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하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건 분명한 사기시도라는 것이었습니다. 미용실 오픈계획이 이미 다 망가진 시점에서 당사자인 S뷰티나 롯데도 아닌 제3의 회사가 나서, 적은 돈도 아닌 30만불을의 투자를 모집하고, 그것이 몇 마디 거짓말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지 화교회사와 개인을 대상으로 실제로 프레젠테이션이 이루어지고 투자요청이 시도되었던 것이니까요. 그 돈이 입금되는 데로 튀겠다는 생각이었을까요? 에디 사장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서 격노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한편으론 만약 벤과 미스터 강, 롯데 오너가족 이렇게 셋이 세운 회사가 중간에서 모종의 협잡을 부리고 있을 때 S뷰티의 정식직원, 그것도 본부장씩이나 되는 직함을 가지고 있던 한본부장은 왜 그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 얼쩡거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벤 등의 신분을 나와 에디 사장에게 속이고, 더 나아가 에디 사장과 뿌스피타 마르타를 비롯하여 나와 에디 사장이 소개해 주었던 자카르타의 미용관련업체들에게 30만불 투자하라는 그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살포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한본부장은 분명 그 제 3의 회사 멤버들과 한패라고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저 사기꾼들과 작당을 하여 출장을 빙자해 인도네시아에 날아와 멀리 떨어진 본사에선 절대 모를 거라 확신하면서 자신을 출장 보낸 S뷰티 사장의 뒤통수를 치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난 그 시점에서 내가 뭘 해야 할 지 사뭇 고심했습니다.
실제로 S뷰티의 인도네시아 업무에서 난 당시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본부장 일행은 내가 소개해 준 사람들에게 사고를 치는 중이었으므로 소개하고 주선해 준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져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치는 사고로 인해 S뷰티 본사도 타격을 받게 된다면 가능한 한 그들의 이익도 지켜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한본부장은 말로만 자기 사장을 소개해 준다, 식사를 주선한다 하며 몇 번이나 약속하고서도 단 한번도 지킨 적이 없었고 난 당연히 S뷰티 어사장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한본부장이나 그쪽 직원들을 거치지 않고 바로 S뷰티 사장과 연결되는 방법을 고심하던 중 애당초 S뷰티 사장에게 나를 소개해 준 셈이 된 학군후배 A씨가 떠올랐습니다.
후배님, 전에 S뷰티 소개할 때 그쪽 오너를 잘 안다고 했죠? S뷰티의 이익을 지켜주고 싶을 만큼 가까운 사이인가요? 그렇다면 오늘 내일 사이 후배님 편한 시간에 전화 한 통 주세요.
금요일 오후에 일단 그렇게 후배에게 SMS를 띄워 놓았습니다. 곧장 구체적인 얘기를 꺼내지 않았던 것은 아직 피아를 분명히 식별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어요. 후배가 S뷰티 사장에게 사람을 소개해 줄 정도의 사이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한본부장과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증거는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에디 사장이 무척 화가 나 있더군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전화로 그렇게 얘기하면 한본부장과도 미팅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는 미팅 약속들이 밀려 있다며 약속을 자꾸 뒤로 미루려 했고 이틀 후인 일요일에도 다른 약속이 있다며 피하려 했지만 내가 교회출석을 포기하고 아침 8시경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찾아가겠다고 반억지를 부리자 더 이상 거절할 핑계거리를 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약속하던 당시 그들 일행은 이미 순터르의 선레이크 호텔을 나와 시내의 써머셋 호텔(아파트?)에 묶고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 일찍 다시 전화를 걸어 미팅 약속을 재확인할 때엔 S.빠르만거리의 찌뿌뜨라(Ciptra)몰 직전에 있는 3성급 호텔로 다시 자리를 옮긴 상태였습니다. 약 2주 남짓한 출장기간 중 그들 일행이 자꾸 호텔을 옮기는 이유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금요일 내 문자메시지에 ‘네’라고 짧은 답변만 남겼던 학군후배 A씨는 일요일 아침까지도 전화를 걸어 오지 않았습니다. 난 그와 통화한 후 한본부장과의 미팅을 어떤 식으로 가져갈 지 방향을 잡으려 했던 것인데 부득이 순서를 바꾸어 한본부장의 얘기를 들어 본 후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건 뭔가 잘못 전달된 얘기에요. 그분이 오해한 거라구요.”
미팅약속을 하면서 당시 인테리어 팀장을 사칭했던 미스터 강이란 사람이 이미 귀국했다는 얘기를 얼핏 들어 그렇다면 함께 돌아갔으리라 생각했던 벤이 의외로 그 날 아침 미팅에 함께 나와 한본부장의 대답을 매번 채뜨려가서 자기가 답변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롯데라뇨? 아니에요. 그날 미팅하면서 일반적인 투자조건에 대해 물어보려고 문도 사장한테 전화했던 거에요. 롯데가 아니라. 문도(Mundo) 아시죠? 그 양말 만드는… 거기 회장 큰 아들이랑 시드니에서 같이 공부했거든요.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요. 나도 호주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나 화교들 많이 상대해 봐서 잘 알아요. 문제는 한본부장이 외국경험이 없다 보니 화교습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너무 오버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자카르타까지 와서 그런 오해를 받게 되다니 정말 미치겠네요. 그날 미팅은 그렇지 않았다니까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웃고 악수하면서 헤어졌다고요.”
벤은 분명 오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에르나씨나 에디 사장을 말귀도 못알아 듣고 뻔한 것들을 오해하는 멍청한 인도네시아 화교들로 폄하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함께 미팅했던 한본부장까지 외국인을 대할 줄 모르는 촌놈으로 싸잡아 공격하고 있었어요. 자기는 절대로 옳고 주변의 모든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틀린, 그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난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많이 봤습니다.
“어찌 되었든 기획실장님 말씀이 맞다면 저쪽에서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그렇게 몇 마디 말로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에디 사장이나 그분 친구들은 지금 단단히 화가 나 있어요.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로 해주시면 안될까요? 이메일로요? 영어도 됩니다. 단지, 회사 대 회사의 정식 공문형식으로 말이죠.”
한본부장은 미팅 시작부터 완전히 풀이 죽어 있었던 반면 벤은 이 이상 어떻게 더 해명을 하냐는 표정으로 짜증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중요한 다른 질문들은 대충 뭉개 버렸고 무엇보다도 아직도 자신이 S뷰티 기획실장이 맞다고 강변하는 부분은 직감적으로도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말하는 것을 듣자니 그는 미용은 물론 미용시장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고 미용인이라기보다는 장사꾼의 냄새가 뚜렷했거든요. 나 역시 전역 후 평생을 장사꾼으로 살았던 사람으로서 장사꾼들은 서로를 잘 알아보는 법입니다.
게다가 그날 아침 한본부장의 반응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어요. 첫 인사를 나눈 이후 그는 벤이 답변에 열을 올리는 내내 그 옆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줄곧 함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선레이크호텔에서 벤을 기획실장으로 소개하던 당시 그는 자신이 벤의 상관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 미팅에서 그는 나이가 훨씬 어린 벤의 기세에 완전히 눌려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그래서는 어떤 의미있는 대화도 나눌 수 없었어요.
“해명을 하려 해도 어떤 사안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해명을 하겠죠. 제가 이메일로 잘 정리해서 보내드릴 테니 읽어보고 답변 주세요.”
그날 집에 돌아간 나는 밤새 정리한 상황을 한본부장에게 이메일로 날렸습니다.
--------- 원본 메일 ---------
보낸사람: beautician
받는사람 : 한본부장
날짜: 2013년 5월 27일 월요일, 04시 56분 29초 +0900
제목: Alphapa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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