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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니출장 본부장님

인니 출장가신 본부장님 (1)

beautician 2014. 5. 24. 13:20


  

어느 날 스맛폰에 찍힌 카톡문자의 뜬금없음에 난 한참 동안이나 액정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인연이 완전히 끊긴 것이라 생각했던 한국의 한 업체로부터의 메시지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초에 인도네시아에서 미팅을 가졌던 S뷰티 장차장입니다.

당시 사장님 도움을 많이 받았었는데 첫 만남 이후 한본부장이 단독으로 진행하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어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웠습니다.

 

현재 한본부장은 퇴사한 상태이며 첫 만남 때 사장님의 도움을 통해 보았던 인도네시아 시장이 매우 매력적이었던 기억이 남아 이렇게 다시 연락을 드립니다. 혹시 저희 S뷰티와 함께 진행할 만한 사업 아이템이나 의사가 있으시면 상호간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시고, 연락바랍니다.

 

난 이 카톡멘션을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행간의 뜻을 파악하려 했습니다. 정말 그 당시의 사건에 대해 알고서도 이렇게 천연덕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사실은 전혀 몰라서 순진하게 접근하는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었습니다.

 

S뷰티는 미용계에 한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리 없는 유명한 미용실 체인입니다. 1980년대부터 수많은 미스코리아들을 발굴했고 그래서 당시 미스코리아 진선미들의 인터뷰에서 모두에게 감사드리고요, 특히 oo미용실 oo원장님께 너무 감사하고요…’에 단골로 등장하던 그 미용실이 사세를 확장하면서 S뷰티로 진화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장차장님,

 

당시 한본부장이 일으킨 문제는 현지에서 여러 사람들을 곤란하게 했을 뿐 아니라 몇몇 미용사들에게는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특정경로를 통해 S뷰티 사장님께도 통지했지만 귀사로부터는 어떤 공식적인 사과나 반응도 없었고 안면을 바꾼 한본부장은 그 사건 이후로도 상당기간 S뷰티에 계속 근속한 것으로 확인되어 당시 귀사 사장님도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었거나 최소한 당시 이 사건을 묵인하고 그냥 뭉개버렸다는 반증으로 우린 이해하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정리 수순으로 현지 미용협회에도 S뷰티 관련 사고내용을 보고 했었고 그외에도 피해를 입은 미용사들이 개인차원으로 협회에 한본부장과 그 일당들의 행동을 고발한 일이 여러 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1년 넘게 지난 일이 되었지만 만약 S뷰티 측에서 인도네시아 미용업계와 어떤 식으로든 다시 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당시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분명한 해명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거운 얘기가 되었네요.

활기찬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런 답변을 내게 될 정도의 그 복잡하고 치졸했던 사건을 제 3자에게라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 지 좀 난감해집니다. 당시 S뷰티의 사장과 함께 인도네시아에 출장 온 한본부장과 장차장은 S뷰티가 첫 해외지점 미용실체인을 자카르타에 내려 한다고 했었죠. 당시 현지에 진출해 있는 다른 유명 해외체인점들이란 인디아인이 현지운영권을 인수한 토니앤가이(Tony&Guy)가 유일했었고 그나마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그 퀄리티가 현저히 떨어지던 와중에 한류가 강하게 불고 있던 인도네시아에 저명한 S뷰티의 진출은 향후 현지 미용업계의 판도를 바꿔놓을 수도 있는 사안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조차 한 사람의 탐욕과 조급증이 소속회사와 해당업계를 얼마나 들쑤셔 망쳐 놓을 수 있는지를 우린 그 후 반년도 안되는 사이에 철저히 목도했었죠.

 

하지만 그 사건의 주역이었던 S뷰티는 마치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는 듯 했습니다.

 

어제 보내주신 답장을 보니 저 또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때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S뷰티에 아무도 없기에 뭐라고 말씀 드리기 힘든 게 현재 저희들의 솔직한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장 당시 사장님이 보여주셨던 호의를 기억하고 미래적 파트너쉽을 가지려는 긍정적인 목적을 가지고 연락을 드렸던 거였어요. 그렇기에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앞으로 함께 일을 진행해 나가면서 서로의 신의를 지켜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과거의 오해들을 풀어 가는 방법이 아닐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건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이 없는 저희 입장을 다시 한번 이해해 주시길 바라며 혹시 한국 방문하실 계획이 있으시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이런 식의 반응은 어디선가 많이 봤던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던 난 모르는 일이니 없던 것으로 덮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이런 논조 말입니다. 조금 울컥 치밀어 오르는 심정이 되어 바로 카톡 회신을 날렸습니다.

 

이메일 주소 하나 주시면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약 1년 전에 나갔던 이메일에 수많은 파일들을 첨부하여 장차장에게 이메일을 날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이게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S뷰티와는 이제 와서 뭔가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이 눈꼽 만큼도 없는데 그들이 저지른 예전의 사건을 지적질이나 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당시 이 사건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했던 S뷰티의 사장부터 저 먼발치로 물러서 침묵하고 있었는데 말단의 차장쯤 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예상은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집니다.

 

사장님,

어제 보내주신 메일 잘 읽었습니다.

내용을 읽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부분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괜찮으시면 한국에 오셨을 때 뵙고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인도네시아에서의 호의에 감사드리며 평안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앗 뜨거라! 하면서 급히 발을 빼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내가 보낸 메일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거였어요.

S뷰티는 문제가 불거지던 당시에도 그토록 분명히 엿보이던 고의성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게 오해라며, 그들이 친 사건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던 현지업체들과 우리들을 말귀 못알아 듣는 이해력 모자란 부류로 취급했었는데 이번엔 자신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알겠습니다.

한국출장 일정이 잡히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답변하긴 했지만 내가 한국가서 S뷰티 방문을 위해 시간을 쪼갤 일은 절대 없습니다. 이것도 오해, 저것도 오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 또 다른 오해의 소지를 만들 이유는 절대 없으니까요.

 

내가 장차장에게 보낸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보낸사람: beautician"
받는사람 : <********@naver.com>
날짜: 2014
제목: FW: S뷰티 관련


장차장님,

 

아래 첨부 이메일은 작년 6월 ㅇㅇ의 A씨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장차장님이 처음 한본부장과 함께 출장왔던 당시 S뷰티 대표님이 만났던 사람이죠.

내게 ROTC 후배가 되고, 한본부장이 내 블로그 통해 나를 알게 된 것과는 별도로 이 친구도 대표님께 내 이름을 소개해 주었어요. 말하자면 나를 S뷰티에 소개해 준 셈이 되었으므로 당시 사고가 발생한 후 아래 이메일을 한본부장 거치지 않고 곧장 귀사 대표님께 전달하기 위해 A씨를 통해 보냈던 것입니다.

 

여기엔 많은 첨부파일들이 붙어 있는데 차근차근 읽어 보시면 퍼즐맞추기처럼 모든 조각들을 맞춰 갈 수 있습니다.

 

이 이메일을 발송한지 일주일쯤 후 A씨는 S뷰티 대표님이 이 메일을 받아 보았으며 6월말쯤 자카르타를 방문해 사건 당사자들에게 사과하고 해명할 것이라 전해왔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 후에도 한본부장은 S뷰티에서 꽤 오래 일하고 있었으므로 이 이메일이 사실은 A씨 얘기와는 달리 애당초 귀 대표님께 전달되지 않았거나, 정말 전달되었다면 귀 대표님이 이 사건을 묵인한 셈이며 자카르타가 발칵 뒤집히도록 사고를 친 한본부장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S뷰티 대표님 자신도 이 사건에 연루되었거나 최소한 암묵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우리가 이해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시 이 이메일이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카르타의 첫번째 롯데쇼핑백화점이 문을 열었을 때 몇몇 미용사들이 롯데쇼핑에서 S뷰티미용실을 찾다찾다 못찾아 우리에게 문의를 해온 일도 있습니다당시 롯데쇼핑에 미용실을 내려던 계획이 이미 무산되어 버린 이후가 분명한 시점에 한본부장 일당은 인근 미용실의 수석디자이너급 미용사들을 찾아다니며 S뷰티미용실이 곧 오픈할 것처럼 얘기하고 얼토당토치도 않은 초일류급 급여와 조건으로 스카우트 약속을 해서 그전까지 오래동안 근무했던 미용실에서 미리 퇴직금을 정산 받고 S뷰티미용실의 오픈만을 기다리던 미용사들이 몇 명 있었거든요그들이 입은 피해는 누가 보상해 줘야 합니까?  한본부장은 당시 그런 식으로 현지의 한 한국인 디자이너에게도 채용약속을 남발했습니다.  한본부장은 그렇게 자기가 감당치도 못할 사고들을 자카르타에 잔뜩 쳐 놓고 한국에 돌아간 후 정작 자신도 벤미스터 강 일당에게 사기를 당한 듯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습니다가증스러운 일이죠.

 

이런 사건들이 벌어졌는데 장차장님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앞으로 함께 일을 진행하면서 서로의 신의를 지켜 과거의 오해를 풀자'는 말만으로는 뭔가 다시 관계를 시작하고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는 '오해를 풀고 신의를 회복한 후에 함께 일을 진행하자'는 것이 맞는 순서입니다.

 

아래 내용들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걸 계속 쓴다면 아마도 또 다시 꽤 긴 연재가 될 듯 합니다.

쓰는 사람도 괴롭고읽는 사람도 괴롭고….^^

 

 

2014.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