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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쫄(Ancol) 다리의 미녀

beautician 2021. 1. 16. 11:12

안쫄다리의 아름다운 처녀유령과 바람둥이 우이 탐바샤

 

20세기 초반 안쫄의 한 교량  

 

자카르타에 몇 년 산 사람이라면 안쫄 지역에 출몰한다는 처녀귀신의 도시괴담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지도 모릅니다. 지나는 남성들, 특히 여자들을 괴롭히는 무뢰한들을 공격한다고 알려진 이 유령은 오랜 기간 많은 목격자들을 낳았습니다. 그들의 일관된 증언 중 하나는 이 유령이 매우 아름다운 자태를 지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73년, 2019년에 각각 만들어진 <Si Manis Jembatan Ancol (안쫄 다리의 미녀)>를 비롯해 몇 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1973년 작에서는 주인공 소녀 마리암이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도 모두 다른 죤이라는 네덜란드 혼혈남자와 사랑에 빠졌으나 각자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가출한 마리암이 깡패들에게 납치되어 살해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1993년에는 같은 제목의 TV 시리즈가 1993년에 방영되었습니다. 이 TV 시리즈는 호러코미디로 섹시하고 친근한 유령 마리암이 다른 괴팍한 친구 유령들과 함께 사람들을 도와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모습을 그렸죠. 물론 원래의 도시전설을 지나치게 갈취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듭니다. 

 

또 여기 등장하는 안쫄다리가 어디냐 하는 의문도 종종 들게 됩니다. 왜냐하면 안쫄에 다리가 한 두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특정 교량을 지목합니다.

 

하지만 안쫄다리가 어디냐 하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보통 유령들은 지박령이니 죽은 곳 또는 시신이 묻힌 곳에 자주 출몰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위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안쫄다리 유령은 안쫄 지역 전역에서 목격담이 나온 바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머큐어 호텔(Mercure Hotel)이 들어서 자리에 있던 예전 호리손 호텔(Hotel Horison)에는 시티 아리아의 유령을 기리는 객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마치 자바 섬 수카부미 너머 뿔라부한라투(Pelabuhan Ratu)의 사무드라 호텔(Semudera Hotel)에 니로로키둘(Ni Lorokidul)에게 헌정된 객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호리손 호텔

버따위 문화역사 전문가 리드완 사이디는 자신의 저서 <끄또쁘락 버따위>(2001)에서 이 도시전설이 1950년경에 생겨났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이 지역에선 교통사고가 빈번했는데 사고를 낸 운전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여인이 차 앞을 지나는 것을 피하다가 사고를 냈다고 하나같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일부 신문들은 피로에 지친 운전자들이 헛 것을 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아름다운 여인으로 현신한 이 위험한 안쫄다리 유령에 대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습니다. 

 

훗날 어떤 이들이 이 유령이야기를 1870년 또는 1871년 이 지역에서 실종된 아리아란 이름의 십대 소녀의 사연과 결부시킵니다.  그녀의 유령이 아직도 이 지역을 떠돈다는 것이죠. 그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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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는 19세기 바타비아에 살던 아름다운 처녀였습니다. 그녀는 대나무로 벽을 세우고 짚으로 지붕을 엮은 허름한 집에서 ‘처마댁’이란 뜻인 마엠뻐르(Mak Emper)라고 불리던 어머니, 그리고 다섯 살 터울의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의 끝에 내몰려 있었지만 결코 불평하는 법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처마댁이라 불린 이유는 그들이 사는 초가집이 자카르타를 관통하는 찔리웅강(Sungai Ciliwung)의 지류, 깔리브사르(Kali Besar) 강변 대저택의 한쪽 구석 처마 밑에 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주이자 부호였던 저택 주인이 자비를 베풀어 그들이 처마 밑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도록 허락한 덕에 그들은 작렬하는 태양의 더위와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아리아도 저택 주인이 소유한 논과 농장에 나가 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모종에서 탈곡까지 농사일을 도왔고 당시 안쫄 지역에 울창하게 펼쳐져 있던 숲 속에 들어가 땔감이나 채소를 구하거나 멧닭 둥지에서 계란을 구해 오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일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아리아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멜로디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저녁 무렵 집 앞에 앉아 돌아가신 아버지가 쓰던 오래된 끄론쫑(Keroncong = 우클렐레나 키타와 비슷한 악기)을 치면서 예전에 자주 들었던 네덜란드 노래를 기억해 따라 부르며 향수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아리아의 초가집이 저택과 맞붙어 있어 아리아는 담 너머에서 열리는 부자들의 댄스파티를 자주 보곤 했습니다.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이 큰 소리로 웃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리아는 자신이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손님들의 파티복에 홀리듯 마음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엄마, 나도 저런 연회에서 신사숙녀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어요. 그럼 사람들이 노래솜씨를 칭찬하고 수고비도 줄 거에요” 농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아리아는 어머니에게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도 막 일을 마치고서 이제 옥수수죽을 만드는 중이었는데 그런 말을 하는 딸의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분명 사람들이 네 노래를 좋아할 거야. 그런 날이 분명히 올 가야.” 어머니는 아리아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아리아는 어머니의 반응이 기뻤습니다. 그러나 늘 불평불만이 많던 언니는 이번에도 심술을 부렸습니다. “아리아, 그런 건 꿈도 꾸지 마. 우린 가난하게 태어났으니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 그런 건 다 부질없는 소망이라고!”

 

아리아는 언니의 말에 풀이 죽었습니다. 물론 언니의 성격이 어두워진 것은 어쩌면 집안의 장녀로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이 겪게 된 모든 어려움들을 그 누구보다도 온 몸으로 감당해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빚을 감당하지 못해 전에 살던 곳에서 쫒겨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니는 아리아에 비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심지어 비관적인 성격이 된 것입니다.

 

어머니와 두 딸의 고단한 매일은 변함없이 바쁘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막 집에 들어가려던 아리아는 한 귀족이 그를 불러 세우는 모습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는 바바 림(Babah Lim – ‘바바’란 중국계 남성을 높여 부르는 호칭)의 저택에 손님으로 자주 드나들던 지체 높은 귀족으로 우이 탐바샤(Oey Tambasha)이란 이름의 유명한 부호였습니다. 그는 바타비아에서 아편판매를 독점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재산은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것이었죠. 아리아가 그를 보고 놀란 이유는 우이 탐바샤의 나쁜 품행과 여자들과의 추문에 대한 소문이 온 바타비아에 자자했기 때문이었어요. 아리아 역시 그것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우이 탐바샤는 바로 몇 달 전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뻐깔롱안에서 데려온 가믈란 악단의 가수 군찡(Guncing)이란 여인을 첩으로 들인 상태였는데 그 후에도 예쁜 여자를 보면 눈이 뒤집히곤 했습니다.

 

우이 탐바샤의 초상

 

그런 그가 자신을 부르는 것이 아리아에게는 불길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리아는 그에게 대구하지 않고 고개를 돌린 채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부터 걸어 잠갔습니다. 어머니가 왜 문을 잠그냐고 물었지만 아리아는 머리가 아파서라고 둘러댔어요.

 

한편 언니는 자신보다 아름다운 아리아를 질투하고 있었습니다. 아리아는 눈썹이 수려하고 머리결은 흑단처럼 윤기라 흘렀고 얼굴은 달처럼 빛나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아리아, 벌써 자려는 거야?” 아리아가 침상에 몸을 눕히자 언니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벌써 자려 들다니 지체 높은 네덜란드 아가씨 흉내라도 내는 거야? 닦아야 할 접시들이 잔뜩 쌓인 게 보이지 않아?”

 

아리아는 급히 일어나 작은 목소리로 언니에게 속삭였습니다. “언니, 그렇게 화내지 마. 예쁜 얼굴이 미워지잖아. 그리고 아까 못봤어? 집 앞에 그 우이 탐바샤가 와 있어. 언니도 알잖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그가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급히 집안으로 들어온 거야. 자칫 잘못하면 빈땅 마스의 그의 저택으로 잡혀가 첩으로 만들지도 몰라.”

 

“그게 어때서? 부자의 첩이 되면 생활이 풍족해질 텐데 뭐가 문제야?” 언니는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어머, 언니,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야? 난 그런 재산에 눈이 멀어 누군가의 첩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런 식으로 발끝에서 머리 끝까지 보석으로 치장하고 온 몸을 값비싼 옷으로 휘감는다 해도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지금처럼 가진 게 없고 허름한 옷을 입어도 난 상관없어. 난 엄마랑 언니랑 함께 사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해.” 아리아는 진심이었습니다. “난 내 명예를 돈과 세상의 쾌락을 위해 팔지 않을 거야.” 아리아는 순진하게 웃어보이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언니가 늘 틱틱거리며 트집을 잡곤 했지만 깊은 마음 속 심성을 잘 알았고 오히려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어요.

 

언니는 동생이 하는 말에 묵묵히 듣기만 했습니다. 아리아는 언니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언니가 까칠해진 이유가 나이가 찼는데도 아직 혼담을 청해 온 남자가 없어 초조하고 예민해져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죠. 언니는 집안 형편이 너무 가난해 혼처가 나서지 않는 거라 탓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아리아가 언니를 위로하며 곧 하나님이 좋은 남자를 보내줄 거라 말해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혼담은 언니가 아니라 아리아에게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들이 의탁하고 있던 저택의 부호 바바 림이 청혼해 온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리아 역시 그동안 아버지처럼 존경하며 주인 어른으로 여겨왔었는데 말입니다. 그 혼담이 들어왔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듣고 아리아는 한참동안이나 눈물을 흘렸습니다. 처음 들었던 감정은 바바 림의 본처 마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은 든 생각은 언니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자신이 먼저 결혼한다면 언니는 깊은 낙담에 빠지고 말 터였습니다.

 

“엄마, 난 바바 림에게 시집가지 않을래요. 주인마님도 저희가 여기 머물도록 허락해 주셨고 그동안 저희한테 너무나 잘해 주셨는데 이제 와서 제가 어떻게 첩이 되어 그분에게 남편을 나누어 갖자 하겠어요? 게다가 언니도 아직 혼처도 정해지지 않았잖아요. 내가 먼저 결혼하는 게 맞는 일일까요? 우린 가난하지만 자존심과 명예가 있잖아요. 엄마,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도 명예와 감정까지 팔 수는 없잖아요.” 그 말은 끝까지 들은 엄마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아리아야, 우린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돼. 이건 어쩌면 우리가 바바 림에게 그동안 입은 은혜를 갚을 기회인 거야. 우리 가족에게 그동안 그토록 큰 도움을 주신 분의 청혼을 너라면 감히 거절할 수 있겠니?”

 

하지만 아리아는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의 첩이 되면서 그게 진정한 사랑을 만난 결과라고 치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리아는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하여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이라 믿어 왔었죠. 밤이 깊도록 엄마와 아리아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아침이 되어 닭이 울고 태양이 떠오르자 아리아는 평소처럼 땔감과 나물을 해오고 멧닭 둥지에서 계란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습니다. 엄마는 전날 밤 아리아의 거절을 곱씹으며 여전히 화가 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리아는 자기 생각을 충분히 들은 어머니가 바바 림의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적당한 단어와 논리를 궁리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들 가정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의 요구를 매정하게 딱 잘라 거절하기 힘들 것임은 아리아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리아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손을 너무 오래 잡고 있어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 아리아는 어머니의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아리아는 어머니가 결코 바바 림의 청혼을 거절하지 못할 것임을 확신하며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근대의 안쫄 지역

 

그날 오후 아리아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땔감이나 나물을 찾으러 간 것도 멧닭 둥지에 간 것도 아닙니다. 그녀는 계속 걸어 숲을 지나 안쫄 해변에 다다랐습니다. 그녀는 이제 원치 않는 중대한 사건이 벌어질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낮에 밥을 조금 먹은 것이 그녀가 오늘 하루 종일 먹은 것의 전부였습니다.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가 부서지며 내는 소리가 조금 그녀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듯했습니다.

 

그녀가 잠시 앉으려 하는데 갑자기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나타나 아리아의 양쪽 팔을 하나씩 붙잡았습니다. 놀란 아리아가 온 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그들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우이 탐바샤가 부리는 깡패들로 삐운(Piun)과 수라(Sura)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운이 좋은 계집이군. 다른 여자들은 우이 탐바샤 어른께 빌붙으려 애를 쓰는데 넌 단번에 그 어른 눈에 들었으니.”

 

히지만 그것은 결코 아리아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삐운은 격렬하게 저항하던 아리아가 비명을 지르지 못하도록 입과 코를 손으로 틀어막았는데 저항하던 아리아는 결국 숨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제 막 피어나던 아름다운 아리아는 안쫄 해변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깡패들 손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 이걸 어쩌지? 우이 나리가 아리아를 데려오라 했는데 죽어버리면 어쩌냐구?” 아리아의 몸이 축 늘어지자 깜짝 놀란 수라가 잡고 있던 아리아의 팔을 놓으며 소리쳤습니다.

 

“큰일이네! 일단 돌아가서 아리아를 만나지 못했다고 하자. 시체는 바다에 던져 버리자구. 사람들이 찾지 못하게. 들통나면 우린 끝장이야. 곧 네덜란드 경찰들도 순찰을 돌 텐데 빨리 움직여!”

 

아리아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 넣은 삐운과 수라는 아리아를 데려가지 못해 우이 탐바샤에게 혼날 것만 걱정했습니다.

 

사실 우이 탐바샤는 바바 림의 저택에서 열린 연회에 갔다가 담 너머에서 아리아의 모습을 보고 흑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날 아리아에게 직접 들이대려 했던 것입니다. 아리아를 특별히 아끼던 저택주인 바바 림은 이를 미리 알고 자신이 아리아를 먼저 취하면 우이 탐바샤가 감히 어찌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알 리 없었던 아리아는 번민에 빠져 주변상황을 신경쓰지 못하다가 우이 탐바샤가 그녀를 납치하려고 보낸 두 깡패들에게 살해당하고 만 것입니다.

 

엄마와 언니는 밤새도록 아리아를 기다렸지만 아리아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이 되고 다음 달이 되어도 아리아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더 지난 후에야 아리아의 어머니는 아리아가 안쫄 지역의 숲에서 야생동물에게 물려가 죽은 것이라고 비로소 결론짓고 기다림을 접었습니다.

 

어느날 밤 아리아의 어머니는 이미 떠난 지 몇 년도 지난 아리아를 여전히 기억하며 마음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다음 날은 아리아의 언니가 끄라맛 센티옹(Kramat Sentiong)에 사는 한 착한 남자에게 청혼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결혼에 대해 아리아가 품고 있던 생각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았다는 생각에 어머니는 더욱 슬픔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그외에도 결혼식 손님들을 위해 준비할 음식 재료가 충분치 않다는 사실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번민하다가 어머니는 잠결에 빠져들어 아름다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꿈속에 아리아가 나타나 반갑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서 자신이 왜 집에 돌아가지 못했는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그날 밤 우이 탐바샤가 보낸 두 명의 깡패에 살해당했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에게 슬퍼하지 말라 이야기했습니다. 언니의 결혼식을 자신이 돕겠다는 말도 했고요.

 

잠에서 깬 어머니는 가슴이 메어질 듯한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 앞이 소란해져 나가보니 그녀의 초가집 앞엔 아직도 펄펄 뛰는 수십 마리의 큼직한 생선들과 수십 단이나 되는 나물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언니의 결혼식을 위해 아리아가 보내준 선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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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등장하는 우이 탐바샤는 실존인물입니다. 그는 1827~1856년에 살았던 유명한 부호이자 바람둥이였고 29세 때 네덜란드 당국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지는데 이는 몇 건의 살인혐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잘생긴 남자였지만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늘 애인을 갈아치웠다고 합니다. 그는 가믈란 악단의 가수 마스 아젱 군징(Mas Adjeng Gundjing)의 오빠 수떼조(Sutedjo)를 청부살인하고 시장의 하녀를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아 1856년 10월 7일 새벽, 지금의 자카르타 역사박물관이 있는 옛 총독부 건물 스타두이스(Stadhuis) 앞 광장(지금의 자카르타 구도심 피타힐라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리드완 사이디(Ridwan Saidi)는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죽은 아리아가 안쫄다리의 귀신이 되었다면 지나는 사람들을 무조건 괴롭히는 싸구려 귀신일 리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나도 그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 안쫄 다리의 미녀>(1973)

 

< 안쫄 다리의 미녀>(2019)

 

 

참고자료

https://www.mpokiyah.com/2017/03/20/kisah-ariah-si-manis-jembatan-ancol-dan-oey-tambahsia/

https://id.wikipedia.org/wiki/Oey_Tamba_Sia

https://kumparan.com/kumparantravel/tragisnya-kisah-di-balik-urban-legend-si-manis-jembatan-ancol-1sATyqTy30A/f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