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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과 괴담 사이(1)] 꾼띨아낙은 인도네시아판 손각시일까? 본문
꾼띨아낙은 인도네시아판 손각시일까?
폭우가 쏟아지는 깊은 밤, 허름한 빈민촌 끝자락의 조산소에서 산모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제발 비명 좀 지르지 마. 저것들이 자꾸 다가오잖아!”
조산원의 비단(bidan: 산파)이 다급하게 속삭이지만 산모는 극도의 진통 속에 또 다시 비명을 지를 뿐이었습니다.
“이히히히힛! 이히히히힛!”
아까부터 산모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들려오던 간드러진 웃음소리는 이제 바로 담 너머까지 다가와 있었습니다. 조산원은 끄라맛 센티옹(Kramat Sentiong)과 조하르 바루(Johar Baru) 사이의 묘지터에 접해 있었는데 조산원은 묘지 안쪽으로 건물 반쯤이 삐죽이 들어가 있는 모양새였어요.
지명에 포함된 ‘끄라맛(Kramat)’이란 일견 신의 축복을 담은 성스러운 장소를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유령들이 곧잘 출몰하여 스산한 곳을 묘사하는 ‘앙커르(angker)’라는 단어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끄라맛 센티옹은 중부 자카르타 한복판이었지만 과거 네덜란드 강점기에 대형 묘지터였던 곳을 수하르토 시절에 갈아 엎어 도로와 주거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곳곳에 남은 오래된 공동묘지에선 꾼띨아낙이나 뽀쫑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넘쳐났고 심지어 하늘을 나는 관짝, 렘뽀르(Lempor)를 보았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센티옹의 한 구석에서 자정을 지나,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산고의 비명소리가 꾼띨아낙을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이제 꾼띨아낙의 웃음소리는 바로 조산원 지붕 위에서 들려왔고 대들보 위로 어슴푸레 들여다보이는 기와장들이 내리치는 폭우 때문인지 삐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모는 다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올렸고 꾼띨아낙의 간드러진 강렬한 웃음소리가 거기 화답하는 듯했습니다. 산파는 아기 받을 준비로 분주히 손을 놀리면서도 알꾸란의 구절들을 주문처럼 초조하게 되뇌었습니다.
전날 저녁부터 이미 하루를 훌쩍 넘은 지독한 산고가 이제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던 산모로서는 지붕 위의 꾼띨아낙이 그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앞세우고 집안으로 쳐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이젠 더 이상 주저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었습니다.
“탯줄이 아기 목을 감고 있어요. 정상분만을 하다간 아기 목이 졸릴 수 있어요. 제왕절개수술을 하는 편이 안전할 텐데요.”
병원에서 의사가 했던 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상분만보다 몇 배가 드는 제왕절개수술 비용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었어요. 모든 걸 책임지겠다던 남자친구는 이미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절망의 끝에 서 있었습니다.
난산 속에서 산모가 죽을 듯 지쳐갈 즈음 산파가 병원으로 옮길 것을 다시 한번 종용해 보았지만 상황은 변한 게 없었습니다. 수술은 여전히 큰 돈이 필요했고 산모와 아기가 죽고 사는 것은 이제 산파의 솜씨와 신의 뜻에 맡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가야. 네가 살려면 지금 세상에 나와야 해. 그러지 않으면 널 영영 구할 수 없게 된단다.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절대 너 혼자 보내진 않으마. 죽든 살든 엄마가 너랑 같이 할 거야. 그러니 이번 한 번만은 엄마를 좀 도와주렴.
산모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몇 대 째인지 모를 촉진주사를 맞았을 때 마침내 산고의 통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날카로운 비명이 또 다시 폭우 속 밤하늘을 갈랐고. 아기의 첫 울음소리는 지붕 위와 사방에서 귀가 아플 정도로 웃어대는 간드러진 웃음소리에 파묻혔습니다. 꾼띨아낙이 노리는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때 일단의 남자들이 조산원의 문을 박차고 들어와 일부가 큰 소리로 경전을 읽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그릇에 담아온 소금을 천장 위, 기왓장 밑으로 뿌려대기 시작합니다. 그런 비현실적인 장면들을 보면서 산모는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듯한데 어머니가 산모의 귓가에 다급히 속삭입니다.
“잠들어서는 안돼. 정신 차려!”
24시간 넘는 산고를 겪은 산모는 갓 태어난 아기를 안아 보기도 전에 실신해버릴 것 같았는데 그 말에 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잠들지 말라던 어머니를 포함해 산파는 물론 알꾸란을 읽으며 소금을 뿌려대던 남자들까지 그 찰나의 순간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잠들어 있었고 산모 혼자만 조산원 안에 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귓전을 울리던 꾼띨아낙의 웃음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조산원은 기왓장을 세차게 때리는 폭우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때 조산원의 문이 다시 열렸어요. 흰 형체들이 문 앞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러다가 팔 두 개가 조산원 안으로 쑤욱 들어왔습니다. 긴 손톱을 달고 있던 그 창백한 두 팔이 한없이 길어져 산모 옆에 뉘인 아기를 안아 올리려 할 때 산모는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며 발버둥을 쳤지만 가위에 눌린 듯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기는 꾼띨아낙의 두 손에 들려지고 있었습니다.
산모의 눈에 불이 번쩍 일었습니다.
“잠들지 말라 했잖아!!”
어머니가 소리지르고 있었어요. 얼마나 따귀를 갈겨 댔는지 양쪽 볼이 얼얼했습니다. 자기를 빼곤 모두가 잠들었다고 생각하던 순간, 사실은 산모 혼자 기절하듯 잠결에 빠져들었던 것입니다. 산모는 아기의 무사한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어느새 묘지 쪽으로 멀어지던 꾼띨아낙의 간드러진 웃음소리는 머스짓의 새벽 아잔이 울려 퍼지면서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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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가 태어나던 날 밤의 장면입니다. 이제 아름다운 여고생이 된 차차에겐 또래 남자 아이들이 줄을 서고 있지만 차차의 엄마와 할머니가 전하는 그날 밤의 이야기엔 소름이 돋았습니다. 북적거리는 스넨 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카르타 한복판에서 불과 십 수 년 전에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인도네시아 대표귀신 꾼띨아낙(kuntilanak)은 전통적으로 드레스코드가 분명합니다. 앞으로 늘어뜨린 헝클어진 머리칼을 하고서 헐렁한 흰 옷을 입고 나타나죠. 거기에 밤하늘을 뒤흔드는 간드러진 웃음소리는 불변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꾼띨아낙은 원래 임신 또는 출산 중 목숨을 잃은 엄마의 혼을 지칭합니다. 그래서 꾼띨아낙은 임신한 여성들을 몹시 질투하여 위해를 가하고 갓난아기를 빼앗으려 한답니다.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유지에게 겁탈당한 한 젊은 여성이 결국 임신하자 유지는 거꾸로 그녀가 부도덕하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처녀의 임신이 금기시되던 시절, 부정한 처녀가 마을에 액운을 가져올 거라 믿은 주민들은 그녀를 핍박한 끝에 살려 달라는 애원에도 아랑곳없이 급기야 생매장하기에 이릅니다. 어처구니없이 억울한 죽음이었습니다. 그후 꾼띨아낙이 되어 나타난 그녀의 원혼은 마을의 모든 남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출몰하며 자손 7대에 걸쳐 괴롭혔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꾼띨아낙이 꺼린다는 가위, 바늘, 못, 작은 칼 같은 날카로운 물체를 임산부가 몸에 지니거나 갓난아기 주변에 두어 꾼띨아낙의 접근을 예방합니다. 위의 에피소드에 등장한 차차의 엄마도 둘째를 임신했을 땐 화교 두꾼이 준 손가락 만한 작은 은장도를 항상 지니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실제 꾼띨아낙 목격담 대부분은 길가에 서있거나 울창한 숲속 아름드리 나무 위에서 떠다니며 어른거리는 모습이었고 방안에 홀로 앉은 임산부 등 뒤에 어느새 다가선 꾼띨아낙이 그저 내려다보기만 했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널리 알려진 꾼띨아낙의 공격성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었을까요?
현대에 이르러서는 남성들에게 복수심을 품은 채 안쫄 다리 근처를 떠도는 시티 아리아의 유령(Si Manis Jembatan Ancol)이나 카사블랑카 지하도에 출몰하는 빨간 옷의 여귀(Kuntilanak Merah) 등 자카르타의 유명한 도시괴담들의 예처럼 출산이나 임신과 관계없이 모든 여성의 원혼을 꾼띨아낙으로 통칭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무속에 등장하는 마물들과 귀신들 대부분이 그렇듯 꾼띨아낙 역시 사실은 오래 전부터 정글 속에 살던 고대의 존재라는 정황도 있습니다. 1771년 압둘라흐만 알카드리가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해안으로부터 내륙으로 길을 내며 지금의 서부 깔리만탄 주도 뽄띠아낙을 개척하던 시절 정글 속 마물들이 그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꾼띨아낙에 대한 공포가 컸습니다. 알카드리는 매일 밤 부하들을 시켜 꾼띨아낙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배에서 떼어온 화포들을 연이어 쏘아대며 한 걸음씩 전진한 끝에 마침내 꾼띨아낙의 본거지가 있던 곳에 사원과 궁전을 짓고서 그때의 사건들을 잊지 말자며 도시이름을 ‘뽄띠아낙 (Pontianak)’이라 지었습니다. 뽄띠아낙은 꾼띨아낙과 같은 의미로, 서부 깔리만탄 주도의 이름이 ‘처녀귀신’이라 붙여진 것입니다.
이슬람의 기치를 휘날리는 수면 밑에 견고히 자리잡고 있는 인도네시아 무속문화를 논하려는 이 글의 첫 주제를 꾼띨아낙으로 정한 것은 귀신들조차 자바 출신 귀신들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꾼띨아낙의 에피소드만은 대체로 일관성 있는 특징을 보이며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일견 음기 넘치는 한국의 처녀귀신 손각시와 여러 면에서 비교되지만 손각시의 발생원인이 생전에 인륜지대사인 혼인을 하지 못한 것이란 점에서 그 원한의 출발점부터 사뭇 다릅니다. 또한 손각시에 대한 대책이 대개 영혼결혼, 천도제, 성불인데 반해 꾼띨아낙은 퇴마의 대상이거나 용한 두꾼들의 저주술이나 재물주술에 사역마로 이용되곤 합니다.
그 내용을 한정된 지면에 모두 세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항간에 떠도는 도시괴담이나 영화, 문학작품 등을 통해서, 또는 문화적 단서나 연구자들이 생산한 관련 자료와 논문들을 통해, 우리 곁에 의외로 가까이 다가와 있는 현지 무속과 귀신들의 세계, 그리고 직장과 거래선에서, 또는 일상생활 중 만나게 되는 경건한 현지인들 마음 속, 무의식의 저편을 살짝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지려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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