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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한국어 번역사 실태 설문조사

beautician 2020. 11. 21. 12:36

인도네시아 출판업계 한국어 번역사 실태 설문조사

 

 

 

한국어 번역사들은 그 소재나 인원파악이 쉽지 않다. ‘역량 있는 한국어 번역사들이 없다고 불평하는 출판사들도 정작 해당 명단요청에 손사레를 치는 것은 한국인 번역사들이 대체로 대외비 수준의 주요 자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규 한국학과가 설치된 인도네시아의 4개 대학(인도네시아 국립대학(UI), 족자 가자마다 대학(UGM), 반둥교원대학(UPI), 나시오날 대학(UNAS)) 학생들은 과거 졸업과 동시에 거의 모두 한국기업에 취업했지만 최근엔 상당수가 프리랜서로 빠지고 그중 일부는 한국 콘텐츠 번역에 한 발 걸치기도 한다.

 

한국어 번역서가 가장 많이 나오는 그라메디아와 하루출판사가 각각 10명 미만의 한국어 번역사들과 거래하고 다른 몇몇 출판사들을 추가로 감안하면 활동 중인 한국어 번역사들은 30명 미만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엔 한국학과를 나오지 않았지만 한류에 심취해 독학을 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스스로 노력해 한국어 전공자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된 이들도 있다.

 

이번에 설문조사 답변을 받은 여섯 명 중 네 명이 UGM 한국학과 91~92학번 졸업생들, 다른 두 명은 비전공 독학파였고 본격적인 문학번역 경험이 적은 UGM 출신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출판사들과 작업을 하는 전문 번역사들이었다.

 

이들 중 단연 두각을 나타내는 햐신타 루이사(Hyacinta Louisa)는 반둥 빠라향안 카톨릭 대학교 출신으로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했고 올해 현지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각광받는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위시해 <김비서가 왜 그럴까> 1, 2, <설렘 주위보>, <달의 조각>, <>, <말의 내공> 등 하루출판사의 대표적 한국 콘텐츠들 상당수를 번역했다. 한국어 구사능력도 뛰어나 현재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에 근무하는 루이사는 베테랑 번역사이지만 번역료는 A4 한 장에 1만 루피아(780) 선으로 보통 1~2개월 걸리는 한국 서적 한 권 번역에 한화 16~20만 원의 번역료를 받는다. 인세는 없다.

 

역시 독학파인 페페(Pepe)는 한양대학교 국제어학원에서 14개월 간 언어연수를 했고 귀국 후 자카르타에서 그라메디아로부터 <이선동 클린센터>, <두근두근 너를 생각하는 시간>, <페인트> 등을 받아 번역했다. 페페가 받는 번역료는 루이사와 같은 수준이다.

 

UGM 한국어과를 졸업해 발리 덴빠사르에서 살고 있는 산티카(Santika)의 번역경력은 좀 더 화려하다. <싱글빌>(최윤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도우), <소원을 말해봐>(김량) 등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 만화, 동화책을 번역했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어>가 현지에서 11쇄를 찍는 등 공전의 히트를 치자 산티카가 번역한 그 속편이 얼마전 하루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나 번역료는 A49,500 루피아 (750), 오히려 조금 더 싼 편이다. 일반적인 번역료 수준은 소설의 경우 2개월에 2~300만 루피아(16~24만 원), 동화책은 2주에 40~70만 루피아(3~55,000), 만화책은 70만 루피아(55,000) 선이다.

 

그라메디아 KPG의 경우 만화책 번역은 알파벳 한 개에 25 루피아(2)으로 계산해 대사와 나레이션이 많을 경우 소설 번역 수준인 300만 루피아(24만 원) 선을 넘나들기도 한다.

 

UGM 한국학과 졸업 후 중부자바 족자 인근 블로라(Blora)에 사는 앙기(Anggi)는 한국어능력평가 TOPIK 중급 자격증을 가지고 <어린이를 위한 경제 비타민1>, <난 뭐든지 금방 싫증나>, <더러운 게 어때서>, <용돈이 항상 부족해> 등 주로 어린이용 도서들을 번역했다. 번역료는 권당 70~200만 루피아(55,000~16만 원) 선이다.

 

이들의 설문지 답변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취합된다.

 

1. 도서 번역시장에 형성된 한국어 콘텐츠 번역료(시장가격)가 너무 쌈.

2. 이해나 번역이 어려운 부분(유행어, 속담, 전문용어 등)을 극복하는 방법은 인터넷 검색이나 한국친구들에게 문의하는 것이 최선.

3. 번역기법에 대한 강연을 듣거나 특정 분야 번역을 위해 문학적, 기술적으로 별도의 공부를 한 적이 없음.

4. 출판사에 번역 원고 납품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이후 번역사가 교정교열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음 (전자의 경우 에디터나 윤문작가가 번역사를 배제하고 원고 전반을 다듬어 출간하는 것으로 이해함)

5. 번역사는 인세를 받지 못함.

6. 번역을 위한 한국도서 선정기준은 한국인-인도네시아인들 사이의 공감대도 있지만 K-POP 아이돌의 추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

 

이들의 답변은 역량 있는 한국어 번역사들이 없다는 출판사들의 불만과 수미상관 관계다. 남다른 연륜과 경력을 바탕으로 훨씬 좋은 조건으로 번역하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대부분의 번역사들이 이상의 번역조건으로 최선의 결과물을 도출해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하루 출판사에서는 일년 내내 번역서적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번 설문에 응한 번역사들이 늘 한국도서 번역에 매달리고 있지는 않았다.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또 하나의 요소는 번역사들의 문학적 역량이다. 한국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유려한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인도네시아어로 현지 독자들에게 잘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일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래서 현재 활동 중인 30명 정도의 한국어 번역사들 중 한국 콘텐츠 번역시장에 견고하게 형성된 번역료 등 제반 조건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거기에 문학적 재능까지 갖춰 원작의 내용은 물론 뉘앙스까지 살려낸 최선의 번역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이들은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출판사들이 역량 있는 한국어 번역사들이 없다고 하는 이유다.

 

번역사들을 돕겠다고 번역료를 올려 한국 도서 번역본 가격을 인상시키고 현지 출판시장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최소한 그라메디아나 하루 등 현지 출판사들 협조를 얻어 역량 있는 한국도서 번역사 양성을 위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진흥원 차원의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들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1119일자 한국일보엔 위에 언급한 번역사 햐신타 루이사의 인터뷰기사[1]<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한 한국 콘텐츠 번역도서들의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상황[2]이 실렸다.

 

인도네시아 귀신이야기를 현지 만화로 펴낸 배동선 작가는 "20년 넘게 불고 있는 한류로 인해 공감대가 형성된 한국적 감성과 한류 스타들의 영향력이 한국 도서 번역 바람의 원동력"이라며 "우수 번역물 시상과 번역기법 교육 등 한국출판문화수출진흥원의 각종 지원이 어우러지면 현지 번역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

 


[1] 한국일보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55135

 

[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권당 번역 16만원, 그래도 한국 책이 좋아요"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한국어를 독학했다. 실력이 늘어 한국 책 번역에 나섰다. 2

n.news.naver.com

[2] 한국일보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555136

 

[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34일만에 인니 서점가 석권한 '82년생 김지영'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외국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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