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이메일 사기극 - 인도네시아의 아프리카인 본문
매일 아침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받은편지함에 들어온 수십개의 이메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펨메일들을 지우는 일이다. 웬 성인광고는 또 그렇게 많은지 수십개의 필터링 장치를 해 놔도 또 수십개가 들어온다는 건 실제로 내 이메일 주소로 발송되는 스펨메일들은 그 몇배가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한동안은 스펨메일들을 지우다 보면 성인광고 외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눈에 띄는 것들은 ‘Urgent’, ‘Confidential’ 등의 제목을 달고 들어오는 국제 사기꾼들의 이메일 들이었다. 이들중 한 90% 정도는 나이지리아에서 온 것이고 나머지는 시에라리온, 가봉, 콩고, 소말리아… 국적들이 다양하기도 하다. 요즘은 보이는 데로 지워버려 어떤 내용으로 진화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전통적으로 시작부분에서 이미 냄새를 피운다.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자기가 국립은행장의 서자, 쫒겨난 혁명지도자의 아들, 전 대통령의 보좌관 등이라고 소개하면서 여차저차해서 어느 은행(등장하는 은행들은 해당 아프리카 각국의 국립은행, 스위스 은행도 등장하고 요즘은 런던의 저명한 모 은행의 이름도 오르내린다)에 수천만불이 적립되어 있는데 이걸 인출하는 데 또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 몇만불에서 몇십만불 정도를 비밀리에 지원해 주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서 30% 정도를 주겠다… 이런 얘기들이다.
처음 이런 이메일을 접한 90년대 초반에는 걸프전 당시 사우디 아라비아로 들어 왔다가 이집트 어느 은행의 차명계좌로 흘러 들어간 미국 CIA의 비밀자금이 이제 임자없는 돈이 된 것 같은데 이거 인출하려면 이런 저런 요건을 갖추기 위해 돈이 이만큼 필요하니 그 일부라도 보내주면 찾아서 나눠 갖자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친구들은 매일 이런 이메일을 수천통씩 보내고 있을 텐데 내 받은 편지함에 이런 내용의 이메일이 많을 땐 4~5통씩 들어오는 것을 보면 가끔 일확천금에 눈먼 사람들을 만나 성공하는 케이스도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몇 년 전에는 이런 비슷한 일이 자카르타에서도 실제로 벌어지면서 일간신문은 물론 한인정보지에도 경고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당시 경고문 내용은 이랬다.
[국제사기단을 조심합시다.]
(전략)
나이지리아 출신 국제사기단은 한국에도 6-7년전 출현하여 사회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일삼던 사악한 무리입니다. 접근방식은 전화 또는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며, 아주 좋은 사업이 있으니 이야기하자며 만날 것을 요구합니다. 만나게 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큰 금액의 수출 수입 오퍼를 주는 체 하면서 엉뚱하게도 돈세탁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국제경찰의 추적을 피해서 달러에 검은 색칠을 하였는데 이 검을 색을 벗겨내는 약을 구해야 한다면 돈을 빌리는 수법을 주로 씁니다.
이 국제사기단은 때때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리베리아, 프랑스 출신이라고 속이기도 합니다. 아주 어설픈 코메디 수준의 사기극이지만 간혹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이 그들의 주 표적이 되는 모양입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끌라빠가딩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중에 10만불, 7만불을 사기당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들을 피하는 방법은 정체를 밝히지 못하는 사업은 의심해 보시고 만나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연락처가 노출되면 계속 전화를 하며 귀찮게 하므로 단호하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후략)
이 ‘검은 색 벗겨내는 약’은 이들 사기수법의 압권이 아닌가 싶다. 작업 1단계는 으리으리한 호텔에 투숙한 나이지리아인이 만난지 며칠된 어리숙한 사람에게 시커먼 기름으로 범벅이 된 종이다발이 든 박스들을 보여 주며 그 다발 중에서 한 장을 꺼내는 것이다. 그리고는 시껍한 냄새가 나는 화공약품을 희석한 물에 그 종이를 담그니 시커먼 기름이 말끔이 씻겨 나가면서 쌈빡한 100불짜리 지폐가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어리숙한 손님 눈에선 불꽃이 튀고 환전상에 가져가 보니 진폐가 들림없다.
작업 2단계에서는 기름을 벗겨내는 이 화공품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돈을 세척하는데 충분한 화공품을 살 돈만 지원해 주면 이거 세척해서 나눠 갖자고 한다. 게다가 이 냄새가 지독해서 대량으로 세척하려면 호텔에선 곤란하니 장소를 옮겨야 한다고 덧붙인다. 화공품 값 10만불에 잠깐 세척하고 나면 천만불 나눠 준다는 말에 눈이 멀어 덜컥 믿어버린 이 손님이 당장 돈을 만들어 가져다 주지만 그 순간 이 나이지리아인은 증발… 이런 식이다.
이런 코메디는 그렇지 않아도 마약 등에 연루되어 이미 악명이 자자한 인도네시아의 아프리카인들의 위상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거꾸로 기회의 땅(?) 인도네시아에 얼마나 많은 일확천금에 눈먼 사람들이 졸부의 꿈을 키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기도 한다.
언제가 따나 아방(Tanah Abang)의 의류시장에서 싼 의류를 사서 본국으로 보내 판매하는 한 나이지리아인을 만난 일이 있다. 이 친구가 하는 일이란 한국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발도 들이지 않는, 교통지옥과 열악한 치안, 그리고 범죄로 악명높은 이 사장들을 매일 돌며 물건을 매입하는 것뿐 아니라 의류공장이나 의류재고상들을 찾아 다니며 싸게 나온 옷을 사러 다니는 것이다. 어쩌다 얘기가 나온 아프리카 악당들의 행각에 이 친구는 단호하게 잘라 말한다.
“아프리카인들은 절대 믿지 마세요. 큰 돈을 얘기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백이면 백 전부 사기꾼이에요.”
스스로 아프리카인이면서 이렇게 말하는 이 친구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도 홍콩에 주재하면서 몇 년째 줄곧 5억불짜리 오더를 곧 받을 거라고 얘기하던 한 한국사람을 알고 있다. 한동안 인도네시아 교민사회의 주류를 이루었던 봉제의류업계를 ‘흙탕물’ 이라고 비하하면서 인니에서 돈못버는 한국인들은 모두 병신들이니 이제부터 돈버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큰소리치면서 자신은 속절없이 몰락하고 있던 한 후배도 알고 있다. 서울에서 온 어리숙한 손님 돈으로 가짜 혼마 골프채며 짝퉁 나이키 신발을 사주며 갖은 생색을 내면서 뒤로는 자기 마진을 톡톡히 챙겼던 사람도 알고 있다. 월 20만 루피아씩 통장에 넣어주겠다고 약속하고 19살 먹은 현지 처녀를 보고르 집에 현지처로 데려 갔다가 몇 달 후에 쫒아 내면서 그 돈마저 떼어먹은 사람도 알고 있다.
“한국사람 절대 믿지 마세요. 다 사기꾼들이니까.”
앞서 언급한 나이지리아인처럼 나도 언젠가 만약 이렇게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 난 과연 어떤 심정으로 이 말을 하게 될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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