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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민속과 주술

오늘은 무서운 이야기

beautician 2023. 8. 8. 11:06


 


인도네시아에는 아직도 몇 명의 술탄이 살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술탄은 과거 수하르토정권 시절에도 국민적인 인기와 명망을 얻고 있었던 하멩꾸부워노 10세. 족자라고 흔히 발음하는 중부 자바의 Yogyakarta에서 끄라톤(Kraton)이라고 불리는 회교왕궁에 살고 있다. 술탄이 사는 끄라톤은 Yogyakarta 뿐이 아니라 수마트라 북쪽 끝의 반다 아쩨(Banda Aceh)와 서부자바의 동쪽 끝인 찌레본(Cirebon)에도 있다.

 

 


지난 97 Cirebon에 처음 가보았을 때 인도네시아 국영석유회사인 뻐르따미나(Pertamina)의 대형 정유공장 뒤쪽을 지난 적이 있다. 그곳에는 마치 비무장지대의 철책선처럼 일직선으로 쭉 뻗어나가던 담장이 공장부지 안쪽을 향해 요철을 이루며 움푹 들어간 곳이 있다. 거기에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기 때문인데 마치 몸을 비틀며 머리를 풀어헤쳐 늘어뜨린 여인처럼 무성한 나무줄기들을 땅바닥에 닿도록 아래로 뻗치고 있어 언뜻 보기에도 약간은 기괴한 느낌을 준다. 가까이 가서 보려는 나를 동네사람들이 무섭게 달려와 막무가내로 말린다
.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그 나무는 옛날부터 ‘귀신들린 나무’로 여겨져 동네사람들이 경외하며 가끔 소원을 빌기도 하는 나무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뻐르따미나 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침 경계선에 걸치게 된 이 나무는 베어질 위기에 놓였는데 도끼를 들고 달려든 인부들이 나무에 손을 대는 순간 모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즉사해 버렸다는 것이다. 나무를 밀어붙이려 한 크레인 기사도 같은 꼴이 되었고 폭약을 장치하려던 사람들마저도 뒤이어 저승길에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를 베어낼 방법을 찾지 못한 공장측에서는 별수 없이 나무를 피해 철조망을 쳐야 했고 혹시나 이 나무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나무 사방으로도 철조망을 둘러 쳤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잘 찾아보면 인도네시아에는 아직도 이런 에피소드가 비일비재하다
.

인도네시아의 귀신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0년대 초에 우리 공장에서 발생한 귀신사건 때문이었다.

 

이 얘기를 간단히 간추리자면 공장 작업장에서 일하던 미싱공 한명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실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주변 사람들 증언에 따르면 국졸 학력밖에 되지 않는 이 미싱공이 실신한 상태에서 화란어를 중얼거리더라는 것이다. 그 이후 순식간에 공장이 공포분위기에 빠지면서 동시에 수십명씩의 종업원들이 귀신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기절하는 사태가 잇따랐는데 이는 공장이 옛날 화란인들과 중국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런 공장에 처음 입주할 때 두꾼(Dukun)이라고 불리는 인도네시아식 무당(말하자면 흑마술사)를 불러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종업원들이 본 귀신들은 대개의 경우 공장 벽면에 달려 있는 선풍기 위에 붙은 모습으로 납짝하게 쭈구리고 앉아 새빨간 눈을 부라리며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고 하며 때로는 직원들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들이 흐늘거리며 지나가곤 했다고 한다. 급기야 창고직원 한명이 흐리멍텅한 눈에 침을 마구 흘리며 자재창고 한 구석이 자기 집이라며 귀가시켜도 자꾸 창고로 기어들어오는 상황까지 발생하면서 공장은 가동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목사님을 불러 기도회를 갖고 이슬람 울라마(Ulama)를 불러 오기도 하고 급기야 두꾼을 불러 검은 염소의 머리와 다리를 잘라 여자화장실 타일바닥 밑에 묻고 피를 주변에 뿌리는 축신술을 한 후에야 귀신사건은 어느 정도 잠잠해 질 수 있었고 결국 귀신을 봤다는 직원들 전원을 강제 퇴직시킨 후에야 가까스로 공장가동을 정상화시킬 수 있었다.

당시 사건발생보고가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처음 들려오던 날 나는 본사 당직이었는데 귀신이라는 존재가 사람을 좀 겁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장가동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내가 당직을 서는 우리 사무실 층의 어두컴컴한 복도와 그 뒤의 새카만 사무실 공간이 그날처럼 으시시했던 적이 없다. 화장실을 가게 되면 세면대 앞에 붙어있는 거울에 존재할 리 없는 무언가가 비칠 듯 했고 그런 느낌은 집에 돌아가서까지 계속돼, 2층인 화장실의 조그만 창문 뒤로 사람 머리 하나가 불쑥 떠오를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인도네시아인들은 귀신을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하는데 진(Jin)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가깝고 일반적인 귀신들은 세딴(Setan)이라고 부른다
.

 


진은 실체를 가지고 변신에 능하다고 믿어지며 아직도 인적이 드문 깔리만탄이나 술라웨시의 밀림인근마을에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매일 산속 벌목장에서 늦게 돌아오는 남편이 어느날 평소와는 달리 저녁무렵 일찍 들어와 그날따라 아내와 격렬한 방사를 오래도록 벌였는데 그러다가 진짜 남편이 밤늦게 들어오면 그때까지도 이부자리 속에 함께 누워있던 남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흉측한 진으로 변하며 창졸간에 사라져 버린다는 식이다
.

세딴은 여러 종류가 있는 모양인데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가장 일반적인 것은 새카만 몸에 왕방울만큼 큼직한 새빨간 눈을 가진 귀신이다. 가끔 숲속 오솔길에서 목격되는 세딴들은 길을 걸을 때 마치 행진하는 군인들이 상방 15도를 바라보듯이 시선을 공중으로 빗겨 올려보며 다닌다고 하며 그래서 사람들이 세딴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세딴들도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귀신이 멈춰 있을 때는 상황이 다르다
.

예전 숙소의 가정부 니나는 어릴 때 친구들과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어울려 놀다가 뒤가 마려 뒷동산으로 달려가 볼일을 보려고 쭈그려 앉았을 때 조금 떨어진 커다란 나무 위에 이상한 것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올라가기 어려운 높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닥까닥 흔들고 있는 모습이 어린 아이 같았는데 나무 꼭대기쪽을 훑어 보는 듯 고개를 치켜들고 좌우로 돌리고 있던 이 물체가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며 고개를 돌리다가 니나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고 한다. 그 눈은 예의 왕방울 빨간 눈이었고 겁에 질린 니나는 보던 용무를 중간에 캔슬하고 달음질쳐 도망쳤다고 한다
.

이런 걸 보면 인도네시아의 귀신들은 한국 귀신들과 그 복장과 풍속 면에서 굉장히 다른 듯하다. 키가 장대처럼 커서 마치 키큰 나무처럼 보이는 귀신도 있는가 하면 우리 구미호에 해당하는 역할을 인도네시아에서는 개가 하고 있고 자신이 들어갈 새로운 몸을 찾아 임산부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처녀귀신(꾼띨아낙 - Kuntilanak)도 있다고 한다
.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보쫑(Pocong)이라는 것인데 인도네시아의 일반적인 장례풍속은 일단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하고 관에 넣는 것은 한국과 같지만 관에 넣기 전에 흰 천으로 시체를 둘둘 만 후 위 아래를 묶어 마치 커다란 흰소세지를 연상케 하는 모양을 만드는 것이 색다르다. 인도네시아에 살던 사람이라면 침대 위의 배게 말고 구룽 반딸(Gulung Bantal)이라고 하는 죽부인 용도의 안고 자는 긴 배게를 연상할 것이다. 이것을 보쫑이라고 부르는데 장지에서 매장할 때면 지역에 따라 다를지 모르지만 보통 관에서 시체를 꺼내고 다시 천을 풀어 시체만을 매장한단다
.

 



그런데 만의 하나 매장하는 사람들이 이 절차를 잊거나 무시하고 천에 싸인 채로 시체를 매장하면 이 시체는 그날 밤 반드시 일어선다고 이곳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은 보쫑인 상태에서는 그 영혼이 시체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영혼의 염원에 의해 시체가 일어나 보쫑을 풀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쫑을 봤다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수없이 많고 한국의 선데이서울 류의 현지 잡지에도 가끔 보쫑이 어느 동네에 나타났는데 어떤 담력좋은 울라마가 천을 풀어주었더니 시체가 스르륵 쓰러지더라 하는 기사들이 가끔 실리기도 한단다. 사무실의 내 인도네시아인 파트너도 밤길에 택시를 타고 가며 길 왼쪽에서 본 희고 비스듬히 세워진 짧막한 전신주 같은 것이 지나치고 나서 잠깐 뒤돌아 보았을 때 길 오른쪽에 가있더라는 살떨리는 얘기를 해준 적도 있다
.

하지만 보쫑은 나쁜 귀신이 아니니 혹시 만나더라도 침착하게 천만 풀어주면 된다. 천만…


인도네시아의 귀신 얘기를 하자면 뚜율(Tuyul)을 빠뜨릴 수 없다. 서양으로 치면 네프리콘 정도 되는 귀신으로 키는 손가락만하고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의 말을 어김없이 따르는 귀신인데 어디든 들어가는 못하는 곳이 없고 무엇이든 훔쳐오지 못하는 것이 없어 주인은 뚜율에게 돈을 훔치도록 시킨다. 그래서 옷장 속에 잘 넣어 두었다고 생각한 돈이 영문도 없이 없어지면 뚜율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매일 집에 쳐박혀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새 집을 사고 부자가 되면 뚜율을 키운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뚜율을 키우는 것은 아무나 하기 어려운 일이다. 말하자면 두꾼 같은 흑마술사들이 하는 일인데 흑마술사들은 귀신을 다루고 쫒아내기도 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 90년대 후반에는 1년도 안되는 사이에 동부 자바의 수라바야 일대에서는 200명이 넘는 회교지도자들과 흑마술사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흑마술사에 대한 인도네시아인들의 믿음과 두려움에 근거를 둔다
.

공교롭게도 회교 술탄이 살고 귀신나무가 정유공장 담장을 가로막은 찌레본 역시 흑마술로 유명한 곳이다. 흑마술사는 병을 고치는 일도 하는데 늘 배가 아파 고생하던 전 직장의 수출입팀 매니저 로니도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두꾼을 찾았을 때, 두꾼 왈…


“누군가 당신에게 저주를 내렸어… 당신 뱃속에 바늘이 일곱개나 있는 걸…”


그러더니 아직 따끈따끈 한 갓낳은 달걀로 로니의 배를 문지르더라는 것이다. 그러기를 10여분. 로니가 느끼기에도 배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두꾼은 치료가 끝났다면 달걀을 깨뜨리는데 그 안에 정말 굵은 바늘이 일곱개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내 왼쪽 무릎이 오랫동안 고장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로니는 나를 그 두꾼에게 데려가려고 무던히도 날 설득했지만 가끔 두꾼들은 당신 뱃속에 뱀 두 마리가 들었다는 식의 얘기도 하곤 한다는데 내 무릎에 뭐가 들어 있다고 할지 몰라 끝내 거절했었다
.

 



어디나 그렇지만 귀신들이라고 다 눈 흰자위를 뒤집어까고 사람들만 괴롭히며 나쁜 짓만 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즘바딴 안쫄(Jembatan Ancol)이라는 자카르타 북부의 실개천의 다리에서 치한들에게 쫒기다 결국 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미녀귀신은 그 후 차례차례 당시 치한들을 저승길로 끌여 들였고 지금도 그 차갑도록 아름다운 자태로 그 실개천가를 오가면서 밤늦게 차를 몰고 지나치다가 자신에게 흑심을 품는 남자들을 매일 밤 제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전 직장을 그만 두고 다시 자카르타에 돌아왔을 때 전세를 얻을 형편이 못된 나는 가장 밑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인 전용 자취집(꼬스 - Kost)에서 자카르타 생활을 재개했다. 형편없는 방에서 형편없는 생활을 한 셈이었는데 그러다가 몇 개월 후 집을 세낼 수 있을 만큼 상황이 좀 나아지기 직전에는 자취집 안에 조금 더 크고 깨끗한 방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 방에서 전에 살던 여자 자취생이 죽었다는 소문이 자자했고 먼저 그 방에 살던 사람 역시 꿈자리가 뒤숭숭해 방을 뺏다고 들었지만 난 잠만 잘 잤다
. 뭐, 고의는 아니었다. 

3
층으로 되어 있던 그 자취집은 주로 지방에서 올라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과 술집 밴드, 가라오케 여종업원 등이 살아서 항상 시끌벅적했는데 2층은 좀 분위기가 달랐다. 사람들이 2층방을 잘 계약하지 않는 이유는 2층에도 누군가 자취 중 죽은 여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항상 자스민향 향수를 즐겨 썼다는 그 여자는 매우 미인이었다는 얘기도 돌고 있었지만 언제적 이야기인지 얼마나 미인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2층 방들은 불과 한두개 정도밖에 사용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2층을 연결하는 1층 대청 한가운데의 계단은 3층의 사무실 사람들이 퇴근하고 난 저녁시간부터는 대개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

하지만 당시 동부 자카르타 변두리에 조그많게 얻어놓은 사무실에서 늦게 퇴근하던 나는 가끔 그 계단에 사람이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보곤 했다. 꺽어진 계단 그림자에 가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혼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자태는 여자임에 틀림없었고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몸매의 여자였다. 그런 장면을 몇 번인가 보았다
.

혼자 앉아있는 모습이 단아하고 한편으로 외로워 보이기도 했고 그래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사업을 새로이 기초부터 세워가는 과정에서 여자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금물이었고 어느 방엔가 있을지 모를 그녀의 남자친구와 트러블을 만드는 것은 가장 원치 않던 일이었다. 내 방은 그 계단 바로 밑에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나 역시 애써 역동작을 취해가며 얼굴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

“저녁마다 가끔 계단에 앉아 있는 그 여잔 누구지?


어느 토요일 저녁 광란의 밤인 말라밍구(Malam minggu)를 기대하며 들떠있는 옆방의 남녀 어린 친구들과 함께 소또로 저녁을 떼우며 그렇게 묻자 갑자기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

“얼굴 봤어요?


나보다 15살은 더 어려보이는 옆방 여자애의 말에 고개를 젓자 이번에는 저희들끼리 정말 난리가 난다. 그거 귀신이라는 거다. 2층에서 죽었다는 그 여자의 귀신이 종종 계단을 거닐기도 하고 2층 복도를 다니기도 하는데 그렇게 가끔은 사람들 눈에도 띄기도 한다는 것이다
.

그 여자는 얼굴이 없어요…그 여자 본 사람들은 무서워서 자취방을 다 나갔어요… 얘기들이 분분했는데 그 여자가 자스민 향수를 즐겨 썼다는 얘기도 거기서 처음 들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자스민 향수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향수 냄새를 가끔 맡기는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는 말이 그 여자 귀신이 나타날 때에는 항상 자스민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는 것이다
.

귀신 얘기는 늘 오싹하지만 난 내 형이란 생각이 같다
.

형이 전에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 쁠라부한 라투(Pelabuhan Ratu), 직역하면 ‘여왕의 항구’라는 자바섬 남부해안의 도시로 주말을 이용해 놀러 간 적이 있다. 그곳이 그렇게 불리는 것은 대충 어깨너머로 들은 전설에 의하면 과거 자바 어떤 지역의 여왕이 전세가 기울자 바다(자바섬의 남쪽 바다)에 몸을 던졌는데 어떤 조화인지 그 영혼이 우리로 치면 용왕이 되어 수백년동안 자카르타 남부해안에 자주 출몰했고 가장 많이 목격된 곳이 그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

그녀의 이름은 ‘니롤로키둘’이고 인도네시아 초대대통령인 수카르노와 앞서 언급한 술탄 하멩꾸부워노10세의 아버지 9세 등등 수많은 저명한 사람들도 그녀를 만났다는 일화가 있다. 니롤로키둘은 녹색 옷을 즐겨입어 자신의 바다에 녹색 옷을 입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여 물귀신을 만든다고 하며 남자가 그리울 때면 뭍으로 올라와 멋진 남자를 데리고 바다속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사람들의 영혼이나 목숨을 담보로 바라는 바를 이루어 주기도 한다
.

 

 

 



그녀를 본 사람들이 그린 그림들이 그 지역에서 가장 큰 호텔인 사무드라 호텔(Sadudera Hotel)의 암자처럼 꾸며진 한 방에 전시되어 있는데 각각 다른 사람들이 그린 그림들 속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이 그렇게 닮아 있을 수 없다
.

“귀신이라도 예쁘기만 하면 대 환영이지.


그날 밤 그 호텔에서 묵으며 형이 한 말이다. 당시 아직 미혼이던 형은 일부러 창가 침대를 잡고 창문도 조금 열어 놓는 등 니롤로키둘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었지만 그날 밤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까, 아니면 이 물귀신도 꽤 까다로운 취향을 지녔기 때문일까?  옛날 그 자취집에 가면 나도 그 계단의 여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