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가장 존경하는 인물 본문
누가 뭐래도 좋다.
머리 속엔 관념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감찬, 을지문덕,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고 때로는 이승만, 박정희 같은 이들을 존경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존경하던 조선인들도 분명 있었다.
난 사실 부모님와 가족들 외엔 진심으로 누군가 존경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자만에 찬 얘기가 아니다.
누군가 존경하려면 그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잘 아는 위인이 없었던 것이다.
강감찬, 을지문덕, 이순신을 관념적으로 아니 그 존경심도 관념적일 뿐이다.
그러다가 양승윤 교수를 만났다.
몇 해 지내면서 아주 살가운 사이까진 되진 못했지만 그가 인도네시아에 뿌리내린 한국학에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최선을 다해 그분을 대하려 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관념적 존경심은 당연히 있었지만 2017년부터 <막스 하벨라르>를 공동번역하는 동안 그분들 좀 더 알게 되면서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일에 대한 자세, 그 진지함, 끈기. 내가 5개월 여에 걸쳐 초벌번역한 책을 양교수님은 2년 넘게 붙들고 감수와 재번역을 거쳐 출판사와 줄다리기를 하며 결국 2019년 9월 책을 펴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사람이란 누구나 다 단점이 있고 괴팍한 성격이나 구린 속내나 부끄러운 비밀 정도는 다 있을 터이지만 압도적인 장점 하나가 그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양승윤 교수의 인내심, 끈기, 열정, 일관성은 실로 압도적이었고 어느 새 난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또 한 명은 근 10년 전쯤 ROTC 모임 있던 식당에서 동문들에게 태평양전쟁 당시 자바에 진출하던 일본군들을 묘사하며 짧은 강연을 하고 있었다. 그 어설프고 어색한 무대에서 열심을 다해 설명하던 김문환 선배를 보면서 저 분은 저런 구체적인 자료를 어디서 보고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생각했다. 당시 김문환 선배는 <적도에 뿌리내린 한국인의 혼>이라는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초창기에 대한 저서를 낸 상태였다.
2015년 이후 어떻게 길을 잘못 들어 인도네시아 역사와 문화에 심취하게 되었을 때 나중에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라는 책으로 귀결되게 될 인도네시아 근현대사에 대한 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모아 번역하면서 문득 김선배를 다시 떠올렸다. 지금은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필요한 자료에 닿을 수 있고, 사실은 그것만으론 접근할 수 없는 구체적인 자료들을 쉽게 포기하는 시대이지만 그 모든 자료를 일일이 오프라인에서 찾아 복사하고 정리하고,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면서 한 시대의 역사를 정립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미루어 짐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9년 들어 인도네시아 한인진출 100년사를 쓰기 위해 편찬위원회가 조직되면서 김문환 선배와 함께 일할 기회가 생겼다. 1920년 장윤원 선생이 처음 발을 디딘 인도네시아의 한인사가 2020년으로 100년이 되기 때문이다. 김문환 선배는 경력이나 연륜으로 얼마든지 편찬위원장을 하셔야 할 위상이었으나 끝내 고사하셔서 결국 총괄위원이란 자리로 억지로 모셨다. 하지만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하고도 놀라운 원고를 제출하는 것을 보면서 노년에 접어든 연세에도 여전히 뜨거운 열정이 이분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2020년 6월 19일 집필진끼리의 교차감수를 위해 전체 한인사 집필진들의 원고를 넘겨받아 김문환 선배가 쓴 부분을 읽어 보면서 매 단락마다, 매 페이지마다 감탄사를 쏟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원고는 누구도 쓸 수 없다.
그의 작은 몸집 안에서 불타고 있는 뜨거운 열정. 그리고 그 한결같음에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면 도저히 존경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좋다.
2020.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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