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일반 칼럼

니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법칙들

beautician 2020. 6. 6. 11:48

니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법칙들

 

 

 

예전에 일주일에도 서너 번 씩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만날 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얘기 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인도네시아엔 길바닥에 돈이 굴러다녀. 그걸 쓸어담지 못하다니...여기 사는 한국 교민들 다 눈먼 봉사 아니야?"

 

물론 그런 생각 가지고 인도네시아 와서 1~2년 사이 가지고 온 돈 다 날리고 한국 돌아가는 사람들도 수없이 보았다. 그런 사람들을 굳이 분류하자면 '니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의 법칙들이 내 눈엔 다 보여' 타입의 인간들이다.  물론 잠깐 방문한 사람들 못지 않게 현지 6개월~2년 차 되는 사람들이 이런 경향을 가장 많이 보인다. 자기 돈을 써가며 현지의 모든 장벽들에 몸소 부딪힐 필요 없는 지사원들, 공관원들이 특히 그렇다.

 

그래서 자카르타 중앙통 탐린 거리 고층빌딩에서 영어 유창한 화교 직원들에 둘러쌓여 상류층 생활하며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들을 전전하면서 몇번 광산이나 시장통 등 현장 '견학'을 해본 사람들이 2~3년의 주재기간을 마치고 본사에 돌아가 '현지 전문가' 대우를 받는 것이다. 짧은 경험이 아집과 고집이 되어 오히려 자기 눈을 가려버리고서 말이다. 꼭 인도네시아만 그런 게 아니다. 어디나 다 그렇다. 오랜 경험이 중요한 건 그래서이지만 일천한 경험을 가진 이들은 그래서  오랜 경험자들을 매도해야 한다. 살면서 배워온 생존방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얼마 전 아침 일찍 또 다시 그런 타입의 사람을 굳이 찾아가 만나며 같은 그림이 반복되는 걸 보고 실소가 터졌다.

그런 사람들은 현지에서 20년 30년 산 사람들을 무지렁이 촌놈들, 뻔한 원칙도 바라보지 못하는 바보들로 여기곤 하는데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보니 반갑기도 하고,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측은하기도 했다. 2년 전후의 짧은 현지경험을 통해 자기가 모든 걸 다 알아버린 것처럼 생각하고 20-30년 살았던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난 한국 기업들, 한국 공무원 조직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절대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 해당 조직에 순응해 임원이나 고위직에 오르면 왜 다 하나같이 꼴통들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물론 그건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정의나 진실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오직 실적과 윗 사람의 인정 만이 성공을 담보하는  현대 사회, 조직과 기업의 고질적 문화 때문이다. 남보다 월등한 실적을 내려하지만 사람들 능력이라는 게 원래 다 고만고만 하니 동료의 등을 찌르고 아랫사람들에게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해야만 자신의 실적이 빛나게 되는 것이고, 똑같이 그런 과정을 통해 자기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 더욱 그런 행동에 박차를 가하는 게 성공적 조직생활의 대략이다. 

 

기업과 조직에 있는 이들은 주변을 돌아 봐라.  자기 방을 배정받아 들어가 앉은 높은 사람들 중에 정의롭고 진실된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그런 고귀한 분들이 인도네시아에 와서도 본연의 광채를 발하는 것이니 크게 불만을 표할 일도 없다. 그냥 실소를 터뜨리면 되는 것이다. 저러다 곧 돌아가서 본국에선 누구보다도 인도네시아를 잘 아는 것처럼 전문가 행세를 하고  다닐 테니.

 

그래도 예전 태국 경제를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는 사람 정도로 심한 편은 아니었다.  그는 태국에 사는 모든 교민들, 태국을 연구했다는 모든 박사들과 교수들을 매도하면서 큰 소리를 쳤다. 자긴 태국의 모든 것을 방콕 국제공항 비행기 트랜짓하는 두 시간 동안 모두 파악해 버렸다고 자랑하면서.

 

 

 

2020. 6. 5.